소설리스트

대몽주-712화 (712/1,214)
  • 712화. 또 한 명의 서천취경(西天取經)

    “화산종이요?”

    무만아는 그 종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도 그 종문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 진선 초기의 수사가 이끌고 있어. 대승기 수사가 세 명 있고. 일전에 너에게 치근댔던 그 경박한 자가 화산종 소주였던 모양이야.”

    그 말에 무만아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경박한 남자 때문이 아니라 화산종 사람들 틈에 진선기 수사가 있다니,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대승 후기인 두 사람이 대적할 수 있을지 걱정된 것이다.

    “꼭 나쁜 소식은 아니야. 저들이 시선을 끌어줄 테니 우리는 그 틈에 잠입할 수 있겠지.”

    “그건 그러네요.”

    무만아는 심협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다시 입을 열려던 심협은 표정이 돌변하더니 동굴 위로 고개를 들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

    그는 말을 마치기가 부섭게 하얀 진기를 꺼내서 흔들었다.

    주위에서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심협의 모습이 사라졌다.

    무만아는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생각을 돌려 연연에게 법진을 발동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편, 심협은 눈앞이 흐려지더니 이내 양의미진진 공간에 나타났다.

    귀장이 변한 검은색 안개 덩어리가 많이 줄어든 대신 매우 짙어져서 수시로 들끓고 있었다. 강력한 음기 파동이 안에서부터 끊임없이 뿜어져 나와 부근의 하얀 안개를 파도처럼 몰아쳤다.

    심협은 귀장이 곧 돌파하려는 것을 알고는 결인하여 그동안 모아왔던 건곤대 안의 음기를 전부 방출했다.

    짙은 검은색의 음기가 건곤대에서 나와 검은 안개 덩어리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시커먼 안개 덩어리 안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음기의 파동이 갑자기 더 강력해졌다.

    동시에 심협도 하얀 진기로 주위의 안개를 더욱 짙게 해 한곳으로 모았다. 그러자 검은색 안개 덩어리 주변에 두꺼운 안개 장벽이 만들어졌다.

    검은 안개 덩어리에서 흘러나오는 음기 파동은 갈수록 격렬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도달한 듯했다.

    심협은 유명귀안으로 검은 안개 덩어리 너머 귀장의 상태를 살폈다.

    현재 귀장은 온몸에 검은 불꽃을 뒤덮은 채 두 눈을 감고 미간과 가슴, 단전에서 피어오른 각기 다른 검은 불꽃을 가슴으로 모으고 있었다.

    “삼원지화를 융합하기 시작했군. 불꽃이 안정적이니 나 때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

    심협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건곤대의 음력을 흘려보내 귀장을 도왔다.

    검은 안개 덩어리 안의 검은 빛이 점점 짙어지더니 잠시 후에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검은 영광이 폭발하면서 기류의 소용돌이로 변하여 주변을 휩쓸었다.

    하얀 안개 장벽이 충격에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여러 곳에 구멍이 생겼지만,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고, 검은 빛 사이로 거대한 존재가 천천히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귀장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 특히 머리가 반들반들해졌고, 귀기로 된 옷도 갑옷에서 검은 승복 같은 것으로 변한 상태였다. 물론 그보다 큰 변화는 대승기, 그것도 초기가 아닌 중기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주인님!”

    귀장은 두 눈을 뜨더니 귀기를 거두고는 심협에게 예를 올렸다.

    “단번에 두 단계를 돌파하다니, 경사로구나. 그놈의 음기가 그렇게 충만했나?”

    심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귀물의 내력이 상당하고 체내의 음력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 귀물의 내력을 알고 있나?”

    “원기를 흡수할 때 생전의 기억을 일부 볼 수 있었습니다. 추측대로 승려, 그것도 덕이 높은 고승이었습니다. 서천으로 불경을 얻으러 가는 도중에 큰 강에서 요물에게 죽임을 당했지요. 죽음이 달갑지 않았던지 귀도에 빠졌는데, 생전 불심이 매우 순수하여 귀물이 되어서도 그토록 강했던 겁니다.”

    “경전이라고?”

    심협은 깜짝 놀랐다. 그 귀물이 서천취경과 관련이 있단 말인가!

    ‘내가 알기로는 서천으로 불경을 가지러 간 승려는 당삼장뿐인데…… 설마 당삼장 이전에 다른 스님이 갔다가 실패한 건가?’

    심협은 궁금했으나, 어찌 됐건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자의 과거가 어떻든 지금의 너를 만들었으니 됐지. 또 알아낸 건 없어?”

    “마침 아뢰려던 참이었습니다. 그 귀물이 주인님께 패했을 때 힘이 거의 사라지지 않아서 전부 제가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완벽하게 섭혼마음과 귀호(鬼嚎)를 이어받게 됐습니다.”

    귀장이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좋은 소식이로구나!”

    심협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귀도 신통을 직접 겪어봐서 그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섭혼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검은색 귀물의 귀신 울음소리 같은 음파 공격인 귀호 역시 위력이 상당했다.

    “마침내 주인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능력으로 앞으로 주인님께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게 됐습니다.”

    귀장이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제 돌파에 성공했으니 함께 가자.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구나.”

    “명 받들겠습니다!”

    실력이 크게 향상된 귀장은 그 힘을 선보일 기회가 오자 기대하며 건곤대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결인하여 양의미진진 공간에서 나와 동굴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었어요?”

    무만아는 갑자기 나타난 심협을 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

    “동굴 주변에 설치해놓은 금제에 문제가 생겨서 확인해봤어.”

    심협은 귀장의 일을 설명하지 않고 대충 둘러댔다.

    무만아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얌전히 한 시진 정도 기다리자 다른 밀실 문이 열리더니 소백룡이 나왔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손에는 일고여덟 개의 진반과 수십 개의 진기가 들려 있었다.

    진반은 담황색 옥돌로 제작한 것으로, 품질이 비범하여 강력한 법력 파동을 발산하고 있었다.

    “선배님.”

    “심 도우, 이것은 곤원법진(坤元法陣)이오. 짧은 시간 안에 건곤현금대진과 연결하여 그 위에 통로를 열 수 있소. 다만, 급하게 만드느라 세 번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됐으니 조심해서 사용하시오.”

    “고생하셨습니다.”

    “그대들의 대화를 들었소. 다른 세력이 끼어들었으니 이변이 생기기 전에 어서 가보시오.”

    “알겠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만아와 함께 은행나무 신수를 향해 날아갔다.

    반나절 뒤, 두 사람은 아까 심협이 몸을 숨겼던 숲속에 도착했다.

    화산종 사람들은 노란색 광막 근처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더 큰 법진을 설치하여 건곤현금대진을 파해하려는 중이었다.

    “저들을 어떻게 이용할 생각이에요?”

    무만아가 조용히 전음으로 심협에게 물었다.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저들에게 말을 걸어볼 생각이야.”

    “위험하지 않을까요?”

    “저들은 지금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지만 방법이 없어. 한데 우리에게는 들어갈 수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지. 물론 나도 걱정은 돼. 그러니 저들에게 우리 진짜 실력을 보여주지 않는 게 좋겠어. 우선 만아는 건곤대에 들어가서 기다려. 안에 음기가 심하니까 조심하고.”

    “알겠어요.”

    “좋아, 상황을 봐서 나오도록 해.”

    심협은 손을 휘둘러 무만아를 건곤대에 넣고는 초록 빛을 번득이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편, 화산종 사람들은 한동안 바쁘게 움직인 끝에 마침내 이전보다 열 배는 커다란 법진을 설치했다.

    대장로가 법진을 발동하자 손에 든 파금주와 법진이 보광을 뿜어냈다. 이전보다 더 밝은 빛은 마치 태양처럼 눈이 부셨다.

    “파(破)!”

    대장로가 양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외치자 파금주가 손에서 날아가더니 건곤현금대진의 노란 광막에 그대로 박혔다.

    파금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이 끊임없이 노란색 광막으로 들어가자 노란 빛은 갑자기 격렬하게 들끓더니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구슬 주위의 광막도 갑자기 흐려지면서 파금주도 안으로 움푹 들어갔다.

    잠시 후, 파금주는 몇 척을 더 전진했고, 광막에는 커다란 통로가 생겨났다.

    화산종의 다른 사람들은 그 광경에 모두 환호성을 질렀지만, 대장로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파금주가 광막 밖의 금제를 깨긴 했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반격이 거세어져서 그는 이미 힘이 부쳤다.

    노란색 광막이 얼마나 두꺼운지 실감한 대장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전력을 다해 파금주를 발동했다.

    그때, 파금주 주위의 노란색 광막이 갑자기 번득이더니 안쪽에서 운기(雲氣)가 감도는 노란 빛이 새어 나왔다.

    움푹 들어간 노란색 광막이 빠르게 부풀어 오르면서 눈 깜짝할 사이 원래대로 돌아갔고, 파금주는 그대로 튕겨 나갔다.

    화산종 사람들의 환호성이 뚝 그쳤고, 대장로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가 기침을 하자 피가 흘러나왔다. 노란색 광막의 반격이 갑자기 강해지면서 파금주와 연결되어 있던 그도 내상을 입은 것이다.

    “대장로님!”

    회색 머리의 노인이 서둘러 다가왔다.

    “괜찮다. 파금주 영력이 튕겨나간 것뿐이니 큰 문제는 없어.”

    대장로가 손을 내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화산종 사람들은 그 말에 안도했지만, 일이 쉽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초록색 단약을 꺼내 먹은 대장로는 이내 안색을 되찾았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파금주의 위력을 최대로 발동했음에도 광막을 부수지 못했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한데 그때, 차가운 표정의 젊은 부인이 먼 곳에서 날아왔다.

    “대장로님, 저쪽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누군가 이 금제를 파해하는 듯합니다.”

    “누군지 봤느냐?”

    “푸른 옷을 입은 남자인데 실력이 약하지 않습니다. 저도 들킬까 봐 멀리서 지켜보다가 돌아왔습니다.”

    “독낭자(毒娘子),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여 온 그대가 얼굴도 못 내밀고 도망쳐 오다니, 정말 진귀한 광경이군요.”

    옆에서 도도한 소년이 비아냥거렸다.

    “생각이 짧은 게 어린애는 어린애구나. 그자가 금제를 실제로 파해하고 있으니 잘만 이용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터인데 죽여서 어쩌자는 게냐?”

    여인이 차갑게 웃으며 되받아치자 도도한 소년은 화가 난 듯 눈빛이 험악해졌다.

    “그만! 너희는 지금 같은 상황에도 싸울 참이냐! 독낭자, 그자의 파해법이 효과가 있더냐?”

    대장로는 낮게 호통치고는 독낭자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안내해드릴테니 직접 가보시죠.”

    대장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금주를 챙긴 후 독낭자와 함께 날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뒤를 따라 건곤현금대진 맞은편으로 향했다.

    가보니 마른 체형에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가부좌를 한 채 몇 장 크기의 법진을 발동하고 있었다. 사내의 외모는 평범했고, 경지는 대승 후기였다. 법진에서는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와 거대한 광구(光球)가 되어 수많은 개미 같은 부문을 쏘아내고 있었다.

    빗발치는 듯한 부문이 노란 광막에 쏟아지자 두꺼운 광막이 빠르게 분해되어 점점 흐릿해졌고, 몇 장 크기의 구멍이 빠르게 안으로 침투했다.

    “이건……?”

    대장로느 그 광경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파금주를 발동해도 약간 흔들렸던 광막을 눈앞의 청년은 그리 복잡해 보이지도 않는 작은 법진으로 이토록 깊이 파해한 것이다.

    청년도 대장로 등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벌떡 일어나 당황한 표정으로 법진 발동을 멈췄다.

    법진 안의 영광이 번득이자 진기와 진반이 땅속에서 뚫고 나와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푸른 옷의 남자는 쏜살같이 달아나려 했다.

    대장로가 하얀 빛과 함께 나타나 앞을 막았다.

    “도우는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대장로가 웃음을 머금은 채 말하자 청년 주위를 회색 머리 노인과 도도한 표정의 소년 그리고 독낭자 등이 에워쌌다.

    “무슨 짓입니까?”

    청년, 심협은 깜짝 놀란 척하며 현황일기곤을 꺼내고는 머리 위로 푸른 보광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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