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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11화 (711/1,214)
  • 711화. 넘보는 자들

    심협은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내고는 구결대로 규령비술을 운공했다.

    그의 손에 있는 초록색 씨앗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팔을 타고 미간에 모여들었다. 그러자 이내 미간에 초록빛 점이 생겼다.

    잠시 후, 그의 머릿속에서 영광이 나타나면서 매우 선명한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노란색 광막 안, 은행나무 신수의 상황이었다. 무만아는 씨앗을 은행나무 신수에 심어놓은 것이었다.

    심협은 내심 의아했다. 이전에 분명 함께 들어갔었는데, 무만아가 이런 씨앗을 심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쨌든 암컷 씨앗을 통해 은행나무 신수를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나무에는 아홉 개의 은행 영과가 반짝였는데, 이전보다 상당히 커져서 금방 완전히 익을 것 같았다.

    은행나무 신수 옆 허공에는 세 요물이 흩어져 있었는데, 서로 간의 거리는 백 여 장 정도였다. 이들의 몸 주변에는 노란색 진기들이 빼곡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적어도 백 개는 되어 보였다.

    세 요물의 진기들은 각각 작은 법진을 이루었고, 그것들이 연합하여 더 커다란 법진을 이루었다. 현재 법진은 놀라울 정도의 영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런 방해물도 없이 법진을 발동하고 있다니, 저놈들이 방심하고 있구나.”

    심협은 그 광경을 보자 내심 기뻤다.

    방금 전까지 노란색 광막 안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어서 고민했는데 자심목 씨앗으로 가장 중요한 법진이 발동하는 상황을 보게 되니 마음이 놓였다. 그는 진기들의 움직임을 통해 이 법진의 적지 않은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심협은 묵묵히 파사 등이 법진을 발동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회령잔으로 소백룡에게 알렸다.

    “다행이오. 세 사람의 상황을 자세히 알면 금제를 푸는 게 더 쉬울 게요.”

    사실 파사 등은 방심하고 있는 게 아니었고 건곤현금대진을 발동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서로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합을 맞추는 중이었다. 게다가 법진의 위력이 너무나 커서 세 요물은 내심 마음을 놓기도 했다.

    심협은 계속해서 이 상황을 소백룡에게 전했다.

    그러던 심협이 돌연 표정이 굳어 법력을 은신부에 주입하더니 곧장 엽은신통 구결을 읊어 주변의 숲과 하나가 되었고, 모든 법력 파동이 완전히 사라졌다.

    심협이 막 몸을 숨겼을 때, 10여 개의 기다란 빛이 멀리서 날아와 멀지 않은 곳에 내려섰다. 10여 명의 인간족 수사였다. 하나같이 은색 도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모두가 같은 종문의 수사 같았다.

    ‘인간족 수사? 시기를 보아하니 저들도 영과를 노리는 건가?’

    심협은 이들을 자세히 관찰했는데, 선두의 얼굴이 각진 남자는 진선 초기였다. 그 뒤의 세 명은 모두 대승기였다. 한 명은 회색 머리의 노인이었는데 간교해 보이는 얼굴이었고, 다른 한 명은 붉은 머리의 젊은 부인으로 표정이 냉담하고 눈빛은 싸늘했다. 나머지 한 명은 스물이 되지 않은 소년이었는데, 입술에 솜털이 있었고 표정은 도도해 보였다.

    나머지는 모두 출규기의 경지였다.

    “은행나무 신수가 있는 곳이 여기인가?”

    각진 얼굴의 남자가 옆에 있는 출규기의 마른 청년에게 물었다.

    “네. 다만, 저와 도련님이 왔었을 때는 이런 금제가 없었습니다.”

    “대장로님,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은행나무 신수는 지금 운몽택의 어떤 대요가 점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영과가 모두 익을 때가 되니 혼자 독차지하려고 금제를 설치한 듯합니다.”

    회색 머리의 노인이 각진 얼굴의 남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은행나무 영과는 천지의 영종이라 모두 익으면 스스로 날아가니까 금제를 설치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 금제는 비범해 보이지만 우리 화산종(禾山宗)에게는 문제될 것 없지. 모두 주변을 살피며 서둘러 파해법을 찾아라!”

    대장로가 분부하자 회색 머리 노인 등은 허리 숙여 답하고는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져 노란색 금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른 청년도 가려는데 대장로가 불렀다.

    “근비(靳飛)들은 어디 있느냐? 근비가 너를 은몽택 부근의 작은 성에서 대기시키고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운몽택에 들어가 상황을 살핀다고 하지 않았더냐? 한데 왜 지금껏 아무도 안 보이는 게냐?”

    “저는 거짓을 고하지 않았습니다. 근비 도련님과 원 선생은 정말로 제게 성에 있으라 하고는 다른 사람들과 운몽택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다만…… 도련님께서 미질화 정매를 잡아야겠다고 중간에 헤어지시는 바람에…….”

    숲에 숨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심협은 깜짝 놀랐다. 도련님과 원 선생이라면 구렁이 요물에게 죽은 그자들을 말하는 것일 듯했다.

    “흥! 화산종의 소주라는 자가 종일 여색에 빠져 있다니! 측근 호위라는 놈들은 말리지도 않고 무엇 한 것이냐!”

    대장로는 성을 냈다.

    “대장로님, 용서해주십시오. 저희는 분명히 말렸지만, 도련님의 성격상 저희의 말은 일절 듣지 않으셔서…….”

    “됐다! 이 일은 추후에 다시 책임을 묻겠다!”

    대장로는 차갑게 내뱉고는 다른 곳으로 날아갔고, 마른 청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뒤를 따랐다.

    모두가 이곳에서 멀어진 후에야 심협은 조용히 몇 리를 물러나 숲속에 다시 잠복했다. 은신부가 대단하고 엽은신통이 현묘하지만 화산종 대장로는 진선기인 만큼 너무 가까이 있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화산종 사람들은 주위를 살펴보고는 예상보다 강력한 금제에 자신들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장로님.”

    모두가 각진 얼굴의 중년 남자를 돌아봤다.

    “이 금제는 확실히 예사롭지 않구나.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 이미 이런 일을 예상하여 장문께 파금주(破禁珠)를 받아왔다.”

    대장로는 담담하게 웃고는 보라색 구슬을 꺼냈다. 구슬에는 자욱한 빛이 흐르고 있어 신비스러워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이 구슬을 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파금주는 화산종의 초대 종주가 평생 심혈을 기울여 연단한 진파지보(鎭派至寶)였다. 각종 법진 금제 안으로 침투하여 법진 금제의 영력 흐름을 막아내는 신기한 기능이 있어 화산종이 파해법진(破解法陣)을 창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화산종 개파 초기, 그들은 규모가 크지 않았음에도 파금주를 이용하여 적지 않은 유적과 비경을 깨면서 종문의 세를 불렸다.

    그 유적들 중에는 상고의 수사가 남긴 곳도 몇 군데나 있어서 금제가 매우 강력했지만, 모두 파금주로 파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눈앞의 이 금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파해금진을 펼쳐라!”

    나머지 사람들이 바삐 움직여 각종 진기와 진반을 꺼내더니 금세 노란색 광막 부근에 육망성(六芒星) 형태의 법진을 설치했다.

    파금주가 이보라고는 해도 법진과 함께 발동해야만 최대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장로가 법진 안으로 들어가 법진을 발동하자 보랏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고, 수중의 파금주도 더 강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대장로가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법결이 파금주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눈부신 보랏빛이 구슬에서 뿜어져 나와 노란색 광막을 두들겼다.

    광막이 파동을 일으키더니 물속에 돌을 던진 것처럼 주변으로 잔물결이 퍼졌고, 노란 빛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화산종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며 크게 기뻐했다.

    한편, 건곤현금대진 안의 파사 등은 바로 바깥의 동정을 눈치챘다.

    “누군가 금제를 부수려고 한다!”

    “운몽택의 요물들은 모두 우리에게 복종했는데 누가 감히! 설마 순기요인가?”

    “감히 그놈이 우리와 대적한다고?”

    “아니야, 주인님께서 이전에 그를 제압하실 때 은행나무 신수 부근에서 신수의 영력을 흡수하는 것은 허락하셨어. 대신 절대 은행나무 영과를 건드리지 않기로 약조했지. 겁쟁이인 그놈이 약속을 깰 리가 없어.”

    “순기요가 아니라 인간족 수사다.”

    연산과 귀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파사가 눈을 뜨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푸른색 작은 거울이 허공에 나타났는데, 화산종이 대진을 파해하는 장면이 거울면에 나타났다.

    “저놈들이 감히!”

    연산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구두충의 수하인 그들은 운몽택의 모든 요족을 무시할 수 있지만, 인간족 수사는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천하를 거침없이 누비던 구두충이 인간족에게 패해 운몽택으로 물러나 은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겁이 사라진 후로 종족 간의 싸움이 그치면서 번식의 속도가 월등한 인간족이 가장 빨리 세를 복구해 이제 모든 일족이 가장 꺼리는 종족이 되었다.

    “은행 영과가 곧 익을 테니 저자들이 넘볼 만도 하지. 허나 크게 걱정할 필요 없어. 주인님께서 이 금제는 상고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태을 수사가 와도 깰 수 없다고 하셨으니까.”

    그 말에 연산과 귀장은 그제야 안심하고는 서둘러 법진 금제를 발동했다.

    광막 안의 노란색 구름이 더 짙어지면서 원래보다 더 두꺼워졌다.

    심협은 자심목의 씨앗으로도 세 요물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입 모양을 보고는 대략적인 대화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상고의 대진이었구나. 그래서 이렇게 강력한 거야. 소백룡 선배가 파해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시간이 흐르면서 파금주의 보랏빛이 계속 노란색 광막을 때리면서 노란 빛이 확실히 줄어들긴 했지만, 광막 가장 깊은 곳에서 금제 영력이 더욱 강하게 전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대장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화산종의 다른 사람들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심협도 내심 실망하고 있었는데, 머릿속에서 소백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백룡이 금제를 파해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정말입니까? 어떻게 하면 됩니까?”

    “건곤현금대진은 현묘하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다행히, 도우가 세 요물의 술법 과정을 알려준 덕분에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소. 간단한 진판을 만들어 자심목의 씨앗을 결합하면 가능할 것이오. 우선 동굴로 돌아오시오. 상세하게 얘기해주겠소.”

    “알겠습니다.”

    심협은 대답하고는 조심스레 30리 정도를 이동한 후에야 속도를 높였다.

    반나절이 지나 다시 동굴로 돌아와 보니 무만아와 연연은 소백룡의 치료를 멈추고 다른 법진을 설치하는 중이었다.

    소백룡은 심협이 머물렀던 밀실에 있었는데, 안에서 법력 파동이 일렁였다. 건곤현금대진을 파해할 수단을 준비하는 중이리라.

    “오 선배님의 상처는 좀 어때?”

    심협은 소백룡을 방해하지 않고 무만아에게 물었다.

    “월혼 살기가 제거되지는 않았는데 술법으로 봉인해놔서 당분간은 문제없을 거예요.”

    심협은 그제야 안심하고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법진을 바라봤다. 이 법진은 소백룡을 치료할 때 사용했던 것과 비슷하게 초록색 나무가 있었지만, 진문은 더 복잡했다. 또한, 법진 안에는 많은 초록색 정석이 놓여 있었다.

    무만아와 함께하는 동안 신목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 신목림은 을목신통과 고술(蠱術)에 능할 뿐만 아니라 각종 보석으로 신통을 시전하는 데에도 능했다. 이를 통해 신통의 위력을 높이고 신식의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이 법진은 무슨 용도지?”

    “이것도 치료 법진이에요.”

    무만아는 집중하느라 고개도 들지 못하고 답했다.

    “아까 사용했던 법진보다 더 복잡해 보이는데 치료 효과가 더 좋은 건가?”

    “효과는 비슷해요. 다만 더 간단하게 발동할 수 있고, 정석이 있으면 경지가 약한 사람도 펼칠 수 있지요.”

    무만아는 초록색 정석을 법진 안에 놓고는 손을 털며 일어났다.

    법진 안에서 빛이 흐르더니 빠르게 곳곳의 진문으로 흘러가 마지막에는 초록색 나무로 모여들었다.

    “연연에게 오열 선배의 치료를 맡기려는 거야?”

    “맞아요. 오열 선배께서 그 금제를 파해할 방법을 찾으셨다니 저도 같이 가려고요.”

    “연연이 혼자서 이 법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당연하죠! 나를 무시하지 말라고요!”

    옆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연연이 팔짱을 끼며 심협을 노려봤다.

    “문제없을 거예요. 이 녹송석(綠松石) 외에도 하나를 더 줄 거예요. 그 정도면 법진을 발동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신중한 무만아가 자신 없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을 알기에 심협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아가 같이 가주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커지겠지. 내가 떠나오기 전에 화산종의 인간족 수사들이 영과를 노리고 찾아왔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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