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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07화 (707/1,214)
  • 707화. 치료

    구두충은 짙은 마기가 섞인 혈광으로 몸이 빛나고 있었고, 험악한 표정에 두 눈도 붉게 번득이는 것이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마기가 폭발했을 때의 심협과 매우 비슷했다.

    “죽어라!”

    구두충은 성난 포효를 지르며 손톱을 휘둘렀다.

    집채만 한 핏빛 손톱이 세 사람의 머리 위에 나타나 번개처럼 떨어졌다.

    거대한 손톱이 닿기도 전에 하늘을 찌르는 살기가 먼저 덮쳐와 순식간에 모두를 휩쓸었고, 강력한 살기가 곧장 심협의 머릿속으로 침투했다. 그의 신혼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폭주하던 살기도 능히 막아준 반룡벽의 보호가 있었기에 구두충의 살기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소백룡은 중상을 입었어도 경지가 높아 괜찮았으나, 무만아는 실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방금 입은 부상이 아직 낫지 않아 살기의 압박에 몸이 떨려와 움직일 수 없었다.

    심협이 기합과 함께 달빛을 뿜어냈고, 순양검에서는 검광이 치솟았다. 덕분에 세 사람은 혈색 손톱의 공격을 피해냈지만, 순양검은 거대한 손톱에 휩쓸려 검망이 어두워졌다.

    “마기에 물든 구두충은 도우가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오. 난 내버려두고 어서 도망치시오.”

    “가더라도 같이 갑니다!”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순양검을 들었다.

    검날에서 무수한 홍련업화가 화르륵 타오르며 순식간에 반경 30여 장을 뒤덮었다. 구두충까지 뒤덮이고 말았다.

    일격이 빗나가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구두충은 눈앞이 붉어지자 흠칫 놀랐다. 그의 경지가 심협보다 강하고 마기가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홍련업화를 능히 막을 수 있었지만, 천화인 홍련업화는 신혼마저 태울 수 있기에 그의 신혼도 충격을 받아 동작이 한순간 느려졌다.

    심협도 홍련업화로 구두충을 죽일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한순간의 틈을 노린 것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틈이 생기자 전력으로 을목선둔을 운공했다.

    구두충은 두 눈에서 혈광이 갑자기 폭증하더니 홍련업화의 영향에서 벗어났고, 곧바로 양손을 좌우로 휘둘렀다.

    두 개의 거대한 핏빛이 손에서 뿜어져 나와 가볍게 주위의 홍련업화를 갈랐고, 구두충은 혈색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돌진했다.

    심협이 이를 악물고 맞서려는 순간, 소백룡이 먼저 왼손으로 금색 용창을 휘둘렀다.

    창의 허상은 구두충의 몸을 뒤덮은 혈광을 찔렀다. 그러자 돌진해오던 구두충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심협은 그 틈에 곤토뇌인부를 꺼내 법력을 운공했다.

    거대한 번개가 허공을 가르고 구두충의 몸에 떨어졌다. 구두충은 방금 소백룡의 공격에 흔들린 상태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십여 개의 거대한 번개를 온몸으로 받아야 했다.

    꽈르릉! 꽝!

    번개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구두충의 몸을 감싸고 있던 혈광은 번개의 공격에 곧 부서질 것 같았다.

    심협은 바로 공격을 이어가지 않고 초록 빛을 번득이며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본 구두충의 아홉 개 머리가 하늘을 향해 포효하더니 눈에서 혈광을 뿜어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한곳을 향해 입에서 핏빛 번개를 뿜어내려 했다.

    한데 그때, 그의 몸이 갑자기 크게 떨리더니 뿜어져 나오던 강렬한 살기가 빠르게 사라졌고, 돌덩이가 된 것처럼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구두충의 거대한 몸은 점점 줄어들었는데, 마치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만성공주는 소백룡의 용창과 구두충의 월혼구에 연이어 관통당했지만, 용족이자 경지가 높았기에 살아 있었고, 몸을 간신히 일으켜 구두충에게 다가갔다.

    그때, 세 개의 검은색 둔광이 멀리서 날아왔다.

    이들은 세 명의 요족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아까 만성공주와 함께 있던 귀장이었다. 그의 옆에는 사람 모습의 요족 연산(連山)이 있었는데, 온몸이 자홍색 비늘로 뒤덮여서 겉보기에는 교룡과 비슷했다. 마지막 요족은 푸른 옷에 입이 보통 사람보다 배는 커 보이는 여자였다.

    연산 요물과 귀장 요물은 대승기, 푸른 옷의 여자 요물은 진선기의 대요였다.

    “주인님! 부인!”

    구두충과 만성공주의 상황을 본 요물들은 놀라서 황급히 달려왔다.

    “난 괜찮으니까 먼저 대왕을 데리고 돌아가라!”

    만성공주가 황급히 외쳤다.

    푸른 옷의 여자 요물은 그 말에 당황했지만, 구두충의 상태를 보고는 표정이 굳어지며 다른 두 요물에게 말했다.

    “어서 주인님을 혈지로 모셔가라!”

    귀장과 연산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구두충을 데리고 빠르게 돌아갔다.

    여자 요물이 주문을 읊자 커다란 푸른 빛이 만성공주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만성공주의 상처가 빠르게 낫기 시작했고, 몇 호흡 후에는 간신히 일어날 수 있게 됐다.

    “부인, 적들의 둔술 법력 파동이 느껴지는데 쫓아갈까요? 잠시 후면 모든 파동이 사라질 겁니다.”

    만성공주가 일어나는 모습을 본 푸른 옷의 여자 요물이 물었다.

    “아니다. 그들은 강자라 네가 쫓아간다 해도 적수가 못 될 게다. 우선 돌아가서 대왕님이 회복하시길 기다리자.”

    만성공주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푸른 옷의 여자 요물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만성공주의 말에 따랐다.

    * * *

    운몽택의 어느 이름 없는 호수. 허공에서 초록 빛이 반짝이더니 이내 심협과 무만아, 소백룡이 나타났다.

    소백룡은 상처가 심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심협은 신식을 펼쳐 반경 수십 리 안에 요물이 없음을 확인하고야 마음을 놓았다.

    “은행나무 신수와 멀리 떨어진 듯하니 당분간은 안전할 것 같아요. 어서 오열 선배를 눕히세요. 제가 비법으로 상처를 회복시킬게요.”

    “을목선둔으로 꽤 멀리 왔지만 구두충이 운몽택을 점령한 지 오래됐으니 저 아래의 요물들이 추격해 올 수도 있다. 오열 선배는 부상이 심하긴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우선은 거리를 벌리자.”

    그 말에 무만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삼협은 다시 을목선둔을 시전했다.

    연속으로 열 번을 넘게 이동한 끝에 운몽택 변두리까지 도착한 후에야 심협은 어느 작은 산속에 멈췄다.

    심협은 인적이 없는 산벼락에 동굴을 팠고, 소백룡을 데리고 숨어들었다.

    무만아는 서둘러 약과 비법으로 소백룡을 치료했다.

    심협은 이 도(道)에 능통하지 않았기에 연연을 건곤대에서 나오게 하여 무만아를 돕게 한 뒤 자신은 밖에 금제를 설치하여 동굴을 숨겼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그는 양의미진진도 설치하느라 반 시진이나 걸렸다.

    동굴로 돌아온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열의 몸에서 피는 간신히 멈췄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상처에 이상한 힘이 흐르고 있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떨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치유도 잘 안 되고요.”

    그녀가 땅에 설치해놓은 법진은 이전에 오장관에서 신목을 치유했던 대진과 매우 비슷했다. 그 규모만 작았을 뿐이다.

    법진은 소백룡의 몸을 휘감고 초록빛으로 번득였는데, 체내의 그 이상한 힘을 몰아내고 있는 듯했다.

    “이상한 힘이라면 마기인가? 마기라면 내가 처리할 수 있어.”

    “마기가 아니에요. 이건 음살(陰殺)의 기 같은 힘인데 평범한 음기와는 전혀 달라요. 저도 처음 보는 힘이에요.”

    심협은 신식으로 소백룡의 몸을 살폈고, 금세 그의 체내에 있는 다른 힘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힘은 분명 어딘가 이상했다. 매우 음한했지만, 보통의 음기와는 달랐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참마검을 꺼내 순양의 힘을 운공한 뒤 소백룡의 몸에 끌어들였다.

    소백룡의 몸에서 순간 금빛이 떠오르더니 거대한 순양의 힘이 경맥 곳곳을 흐르며 음한의 힘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무만아의 말처럼 이 힘은 상처 주위의 살점 안에 붙어 있었고, 순양의 힘이 아무리 충격을 줘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힘이지? 이렇게 이상할 수가……. 뭔가 방법이 없을까?”

    심협은 무만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법진을 설치해서 음한의 힘을 제거할 수 있죠. 다만 대략 한 달 정도 걸릴 거예요.”

    “그래도 해야지. 구두충은 강력해서 오열 선배가 없으면 우리는 신목 원액을 얻지 못할 거야.”

    “알겠어요. 그럼 바로 시전할게요. 그러는 동안 어떤 방해도 없어야 해요.”

    “좋아, 그럼 나는 다른 밀실을 만들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또 다른 밀실을 파고는 막 들어가려던 심협은 표정이 굳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푸른 빛이 그의 소매에서 날아가 동굴 주변 금제 안으로 들어가더니 금세 사라졌다.

    푸른 빛에 둘러싸여 있던 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홍과 여몽을 데리고 떠나라고 하지 않았나?”

    “두 정매를 안전한 곳에 숨기고 기다리던 중입니다. 한데 주인님의 기운이 느껴졌지요. 혹시 제가 주인님께 방해가 된 것입니까?”

    귀장은 당황한 듯 물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이제 폐관수련을 할 것이다. 만아는 다른 밀실에서 누군가를 치료할 테니 온 김에 호법을 서거라. 혹시라도 누군가 접근해오면 나한테 바로 알려야 한다.”

    심협은 동굴의 금제를 조종하는 법기를 귀장에게 건넸다.

    “예, 알겠습니다.”

    귀장은 공손하게 법기를 받아 들고는 벽 안으로 몸을 숨겼다.

    심협은 그제야 자리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우선 신목은택으로 본명원기의 상태를 살폈다. 이내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본명원기는 대량의 흑홍 마기에 물들었는데, 이전에 마기가 폭주했을 때보다 절반 이상이 더 물든 상태였다. 게다가 이 흑홍의 원기는 마성이 충만하여 조금씩 그의 원기를 갉아먹고 있었다.

    “젠장!”

    그는 낮게 투덜거리고는 서둘러 전력을 다해 신목은택으로 본명원기를 정화했다.

    * * *

    운몽택 깊은 곳. 궁전이 즐비하고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구두충은 궁전 깊은 곳에서 수십 장 크기의 연못에 가부좌 틀고 있었다. 연못은 붉은 피가 가득하여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혈지 주변에는 여덟 개의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각 돌기둥과 바닥에는 수많은 진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 기묘한 대진은 검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 옷을 입은 누군가가 돌기둥에 서 있었는데, 방금 구두충을 구했던 푸른 옷의 여자 요물이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10여 개의 혈색 진기가 맴돌고 있었다. 그녀가 혈지 주변의 법진을 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혈지 안에서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핏빛 기류가 구두충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더니 이내 완전히 치유됐다. 그리고 그제야 폭주했던 마기도 조금씩 사라졌다.

    한참이 지나자 구두충이 천천히 눈을 떴는데, 눈빛은 다시 맑아진 상태였다.

    “주인님!”

    푸른 옷의 여자 요물이 구두충 앞으로 날아가 절을 했다.

    “네가 날 데리고 온 것이냐?”

    구두충이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다만 한 발 늦어서 적이 도망쳤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네 덕에 마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으니 그 일은 죄를 묻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푸른 옷의 여자 요물은 감격하여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

    “추적은 어떻게 됐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게…… 적은 이미 도망을 쳐서……”

    “한 명은 중상을 입었고 다른 놈들은 대승기의 인간족인데 그걸 놓쳤단 말이냐!”

    구두충이 화를 내자 혈지 안의 피가 들끓었다.

    “주인님,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도착했을 때 적이 도망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쫓아갈 수 있었습니다. 한데 부인께서 적들이 강자라 제가 쫓아도 소용없을 거라고, 우선 주인님을 치료하라 하셨습니다.”

    “그녀의 상태는?”

    구두충은 자신이 만성공주를 찌른 일을 떠올리고는 화를 가라앉히며 물었다.

    “부인께서도 상처가 가볍지 않지만 용족이신 데다 체질이 강력하시어 제 치료를 받고 금세 회복하셔서 지금은 밀실에서 정양 중이십니다.”

    “알겠다. 부인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영물이 있으면 얼마든지 써도 좋다. 다만, 그놈들은 절대 가만둘 수 없다. 바로 수하들을 전부 풀어서 찾아내라. 청시조(靑翅鳥)도 풀어라. 그놈들이 회복하기 전에 반드시 찾아야 한다.”

    “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푸른 옷의 여자 요물은 대답하고는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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