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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06화 (706/1,214)
  • 706화. 역전

    구두충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호법 신룡은 무슨. 겨우 서천 불종의 문 지키는 개 아닌가.”

    백의 청년, 오열은 화난 표정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말을 아꼈다.

    대신 심협이 나섰다.

    “네게 오열 선배를 비하할 자격이 있는가? 이전에 누군가 제새국에서 초상집 개처럼 참패하고 도망쳐 이제는 마족 휘하가 되었다던데, 실로 개보다 처참한 처지 아닌가!”

    그 말을 들은 구두충은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제새국에서 손오공의 간계에 놀아나지 않았더라면, 할 일 없는 천병과 천장들이 아니었더라면 본존은 절대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반응을 보아하니 백의의 청년은 소백룡이 확실했다.

    “너희는 삼태자 사람이었구나. 이번에 운몽택에 온 것도 신수의 열매를 훔치기 위함인가?”

    만성공주가 심협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열 선배께서 그런 잡다한 짓을 할 분인가? 우리는 저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연히 만난 것뿐이지.”

    심협은 만성공주를 조롱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만성공주는 소백룡이 이렇게 몰래 움직일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소백룡이 이곳에 온 이유도 짐작했지만, 옆에 구두충이 있기에 언급하지 않은 것뿐이다.

    “당신이 벽파담(碧波潭)의 만성공주인가? 과거 주옥을 버리고 돌멩이를 골랐으니 지금쯤 후회가 막급하겠지?”

    심협은 만성공주의 표정을 보고는 도발했다.

    “닥쳐라!”

    만성공주의 가녀린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버럭 외치더니 긴장한 눈빛으로 구두충의 눈치를 살폈다.

    구두충은 운몽택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녀를 아꼈지만, 성격은 갈수록 괴팍해졌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안정시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매력에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오, 격렬한 반응을 보니 심각하게 후회 중이신가 봅니다, 공주님? 하하하!”

    “이놈이!”

    만성공주는 수치스럽고 화가 났다.

    한데 그녀의 표정을 본 구두충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그녀의 뺨을 때렸다.

    “이 파렴치한 년! 백룡에게 미련이 남았던 것이냐!”

    이쯤 되자 심협도 당황했다. 자신이 도발하긴 했지만, 구두충이 이렇게 쉽게 화를 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내의 뺨을 때릴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심협보다도 더 당황했던 만성공주는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당신이 감히 날 때려?”

    그녀는 뺨을 감싸고는 버럭 화를 냈으나, 구두충은 다시 한번 그녀의 뺨을 때렸다. 특히 이번 따귀는 매우 강해서 만성공주는 날아가 땅에 곤두박질쳤고, 입가에서는 피가 흘렀다.

    “천한 것! 여기가 벽파담이고 네가 아직도 그때의 만성공주인 줄 아는 것이냐? 한 번만 더 함부로 입을 놀리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구두충이 살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만성공주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숙였다. 씁쓸한 표정이었다.

    소백룡은 그래도 만성공주와 과거의 인연이 있었기에 이 광경을 보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무렵, 심협은 구두충을 주시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온몸에 악기(惡氣)가 심해서 자신의 감정조차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구두충, 과거에는 네가 상고 때부터 인간 세계에 복을 불러오는 귀차(鬼車)의 혈통임을 감안하여 목숨을 살려줬다. 한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운몽택을 점령하여 곳곳에서 살육을 저지르고 서해 용궁까지 쳐들어와 보물을 훔치고 아버님에게 중상까지 입히다니. 살고 싶다면 훔쳐간 보물을 내놓고 사라져라. 그러지 않는다면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소백룡이 심호흡으로 감정을 억누르고는 차갑게 말했다.

    심협은 이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소백룡이 운몽택에 온 이유가 그런 것이었구나. 구두충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군 운몽택으로 쫓겨났음에도 감히 서해 용궁에서 행패를 부렸다니.’

    “네가 날 어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과거 제새국 전투에서도 넌 손오공과 천병, 천장의 뒤에 숨어 있다가 요행으로 살아남았지. 오늘은 숨을 곳도 없을 테니 한번 제대로 싸워보자. 네놈에게 그때처럼 월혼구(月魂鉤)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더는 말이 통하지 않는구나. 목숨을 내놓아라!”

    소백룡은 금색 용창(龍槍)을 휘두르며 구두충을 향해 돌진했다.

    “오냐, 어서 덤벼라!”

    구두충도 소리치며 월혼구를 휘둘러 금색 용창을 막았다.

    하늘을 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고 금과 은의 빛이 허공에서 폭발하면서 강력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심협은 소백룡과 구두충 사이에서 불어오는 충격에 다시 한번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는 서둘러 치료하는 동시에 반룡벽을 발동하여 순양의 힘을 무만아 몸에 주입했다.

    무만아는 신음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깼어?”

    심협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일으켰다.

    “고마워요, 심 오라버니. 또 제 목숨을 구해주셨네요.”

    무만아는 기절하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런 얘기를 하기엔 이르구나.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말이야.”

    심협은 고개를 젓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소백룡과 구두충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창의 허상이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낫의 환영이 연달아 반짝이면서 굉음이 마치 무수한 천중과 번개처럼 울려 퍼졌다. 쌍방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엄청난 창법이네요. 저분은 누군가요?”

    무만아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용족 선배님이셔. 서해 삼태자 오열이신데, 방금 우리를 구해주셨어.”

    “오열 선배님! 그분이셨군요! 우리도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무만아도 소백룡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니, 오열 선배 혼자로도 충분할 거야.”

    소백룡의 창법은 오홍보다도 위였다. 기세는 거센 파도 같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용족 창법의 진수가 모두 담겨 있는 듯했다. 날카로운 창의 허상에는 중후한 법문의 힘까지 담겨 있어 위력이 더욱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창술에 지속력까지 더해줬다.

    반대로 구두충의 음혼구는 위력이 강한 대신 뒷심이 부족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밀릴 게 분명했다.

    심협의 예상대로 소백룡은 싸울수록 더욱 강력해져 온몸에서 금빛이 반짝였고, 창끝은 끊임없이 휘황찬란한 금빛을 뿜어냈다. 반면 구두룡은 점점 위세가 줄어들었고, 얼굴이 시뻘게져 숨을 헐떡였다.

    “이럴 리가 없어! 이놈의 실력이 이렇게까지 강해졌을 리가 없어!”

    구두충은 경악과 분노가 교차한 목소리로 외쳤다.

    과거, 만성공주를 두고 두 사람은 서해 용궁에서 싸운 적이 있었다. 그때도 소백룡은 약한 편이 아니었지만, 구두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한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소백룡의 경지와 실력은 모두 비약적으로 강해진 것이다.

    구두충은 당황한 탓에 더욱 열세에 몰렸고, 순간적으로 허점이 드러났다.

    소백룡은 눈은 매우 날카로웠다. 용창이 뱀의 혀처럼 두 개의 월혼구 사이로 들어가 좌우로 강하게 흔들었다.

    땅! 땅!

    두 번의 굉음과 함께 구두충의 팔은 감전된 것처럼 떨려왔고, 두 자루의 월혼곡은 흔들리며 양쪽으로 크게 벌어졌다.

    “용권우격(龍卷雨擊)!”

    소백룡이 외치자 용창에서 금빛이 크게 발했고, 수많은 창의 허상이 쏟아져 나와 폭풍우처럼 구두충의 몸을 뒤덮었다.

    구두충은 당황했지만 월혼구를 다시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목에서 혈광이 반짝이더니 여덟 개의 사나운 짐승 얼굴이 솟아났다.

    아홉 개의 머리가 동시에 입을 벌리자 아홉 개의 혈광이 뿜어져 나와 흑홍색 혈운이 앞을 막았다. 뿜어져 나오는 악취는 아까 쏟아졌던 검은 비와 비슷했다.

    그가 다른 일을 꾸미기도 전에 수많은 창의 허상이 혈운을 공격했다.

    창의 허상이 혈운에 닿자 치익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고, 마치 불에 닿은 얼음처럼 빠르게 녹아서 순식간에 절반이나 사라졌다.

    하지만 이 혈운은 다급하게 시전한 술법이라 위력이 부족했기에 금색 창의 허상 몇 개는 그대로 뚫고 들어가 뒤에 있는 구두충의 몸을 찔렀다.

    구두충의 거대한 몸은 충격에 뒤로 날아가 땅에 곤두박질쳤고,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몇 개 뚫렸다.

    구두충을 향한 소백룡의 원한은 너무나 깊었기에 당연히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금색 용창이 휙 소리를 내며 교룡이 굴을 빠져나가듯 구두충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한데 그때, 누군가가 쏜살같이 날아와 두 팔을 펼치고 구두충의 앞을 막았다.

    “삼태자! 부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소백룡은 당황하여 서둘러 날아와 용창을 회수하려 했으나 이미 기세가 너무 강력했기에 멈출 수 없었고, 창끝은 끝내 만성공주의 가슴을 뚫었다.

    소백룡은 예상치 못한 변고에 반쯤 넋이 나가버렸다.

    “용궁에서 훔친 물건을 돌려줄게요. 그러니 제발 구두충의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만성공주는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개의치 않고 소백룡을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당신은 정말…….”

    소백룡은 서둘러 용창을 뽑고 만성공주의 상처를 살펴보려 했다.

    한데 그때, 차가운 빛이 만성공주의 배를 뚫고 나와 소백룡의 가슴을 반 척이나 찔러 들어갔다. 바로 구두충의 월혼구였다.

    중상을 입어 쓰러져 있던 구두충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아홉 개 머리의 눈이 모두 붉게 물들었다. 그러자 하늘을 찌르는 살기가 성난 파도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심협이 아까 마화하면서 생긴 살기와 매우 비슷했다.

    소백룡은 분노로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오른손으로 번개처럼 빠르게 월혼구를 붙잡았다. 그 순간, 금룡의 비늘이 나타나고 금색 손톱이 자란 손으로 변했는데, 월혼구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한데 월혼구에서 갑자기 무서운 은빛이 반짝였는데, 그 안에는 붉은 마광이 섞여 있었다.

    소백룡의 온몸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성난 파도처럼 사방으로 몰아쳤다. 이와 동시에 용의 포효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금빛이 완전히 발하기도 전에 굉음과 함께 월혼구가 폭발했다.

    은색 태양이 붉은 마광을 뿜어내자 손쉽게 폭발하는 금빛을 막아내고는 소백룡을 집어삼켰다.

    하늘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과 함께 수많은 은빛의 파도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자 순식간에 강력한 소용돌이가 생겨나 사방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선배님!”

    소백룡이 승기를 잡는 모습에 안도하던 심협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붉은 빛을 뿜어내며 은빛 소용돌이를 향해 돌진했다.

    무만아도 서둘러 달려갔지만, 그녀의 신혼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에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하늘 높이 치솟은 소용돌이가 휩쓸며 다가왔고, 그녀는 수백 장이나 밀려난 뒤에야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그녀가 돌아보니 붉은 빛이 번개처럼 다가왔는데, 그 안에는 소백룡이 있었다.

    소백룡은 평범한 수사라면 벌써 숨이 끊겼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으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용족인 소백룡은 온몸이 용의 비늘로 덮여 있었고, 이마에는 용의 뿔이 솟아 있었다. 용화(龍化)가 절반 정도 진행된 것으로, 단단한 용의 비늘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다만 의식은 없었다.

    “오열 선배님!”

    무만아는 소백룡의 현재 상태를 보고는 서둘러 다가와 초록색 보석으로 비법을 시전했다.

    보석에서 빠져나온 초록 빛이 소백룡의 몸으로 들어가자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매우 느렸는데 어떤 강력한 힘이 비법의 효과를 방해하는 듯했다.

    “여기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심협은 서둘러 말하고는 무만아와 함께 전력을 다해 날았다.

    한데 얼마 가기도 전에 앞에서 갑자기 혈광이 반짝이더니 구두충이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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