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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04화 (704/1,214)
  • 704화. 구두충

    두 사람이 땅속에서 나오는 순간, 사방에서 요물들이 몰려왔다.

    심협이 황급히 둘러보니 그곳은 넓은 땅이었고, 그리 높지 않은 나무들로 가득했다. 더 먼 곳에는 매우 거대한 금색 나무의 모습이 보였는데, 바로 은행나무 신수였다.

    그는 곧장 을목선둔을 시전하여 무만아와 함께 도망치려 했다.

    “어딜 가려고!”

    요염한 미부인이 물고기 비늘 문양이 가득한 푸른 장검을 들고 그들을 쫓아왔다.

    미부인의 법력 파동은 대승 후기 정도였고, 장검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검날 끝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물보라가 그녀의 몸 주변을 감쌌다.

    미부인의 검세에 힘이 모여들자 칼끝의 물보라에서 머리 네 개에 뿔이 달린 머리가 튀어나와 심협 등에게 달려들었다.

    수룡의 압박감에 심협은 긴장했다.

    이 순간, 그는 서둘러 빠져나갈 생각에 모든 힘을 폭발시켰다.

    몸에서 황정경 공법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고, 용상의 힘과 함께 나타난 두 마리의 용과 코끼리 형상이 머리 네 개의 수룡을 향해 돌진했다.

    콰쾅!

    금색 용과 코끼리의 강력한 힘에 수룡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용상의 힘이 멈추지 않고 곧장 요염한 미부인을 향해 돌진했고, 미부인은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심협은 시선을 거두고는 무만아를 붙든 채 을목선둔을 펼치려 했다.

    한데 그때,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백배나 커진 귀장이 땅을 뚫고 나와 두 사람을 향해 돌진해왔다.

    심협의 술법이 일순 끊어졌고, 다시 시도하기에는 늦었다. 이에 그는 우선 피하고자 높이 날아올랐다.

    분노의 포효가 신수 아래에서 갑자기 들려왔다.

    뒤이어 붉은 빛이 하늘 높이 솟구쳤고,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력한 법력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심협은 속으로 아차 했다.

    ‘그놈을 깨웠구나!’

    심협과 무만아는 날아서 도망쳤지만, 얼마 가지 못해 혈운이 뒤에서 성난 파도처럼 밀려왔고, 두 사람은 금방 따라잡혔다.

    “안 되겠다! 어서 올라타!”

    심협은 무만아를 끌어 순양검 위에 태웠고, 무만아도 거절하지 않았다.

    심협이 양손을 재빨리 결인하자 순양검의 빛이 폭증하며 두 사람을 뒤덮었고, 속도 또한 배가 되어 쏜살같이 날아갔다.

    혈운을 떨쳐내고 구름과의 거리를 벌리던 중, 하늘을 뒤흔드는 소리가 울렸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혈운이 갑자기 몇 배로 커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을 뒤덮고 공간을 뒤덮었다.

    뒤이어 혈운은 몇 배나 빨라져 거센 파도처럼 몰아쳐와 순식간에 순양검과 함께 두 사람을 뒤덮었다.

    심협은 서둘러 기혈번을 꺼냈다. 기혈번은 핏빛 빛무리가 되어 두 사람의 몸을 뒤덮었다.

    “이 혈운은…… 설마 구두충인가요?”

    무만아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으나, 심협은 대답하지 않고 현황일기곤에 법력을 주입하여 크게 휘둘렀다.

    백여 장 크기의 거대한 곤봉 허상이 꽂히자 굉음과 함께 혈운이 부서졌고, 그 틈으로 탈출구가 보였다.

    심협은 머뭇거리지 않고 순양검의 속도를 높였으나, 휘어진 차가운 빛이 순식간에 나타나 기혈번을 향해 떨어졌다.

    “오라버니, 뒤요!”

    무만아가 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찌익!

    차가운 빛은 지금껏 몇 번이나 심협을 대신하여 수많은 공격을 막아냈던 기혈번을 너무도 쉽게 뚫고는 주춤거리더니 다시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차가운 빛의 존재를 느낀 심협이 다급히 현황일기곤을 휘두르자 희미한 잔상이 나타났다.

    땅!

    현황일기곤이 차가운 빛을 막아냈지만, 날카로운 괴력이 현황일기곤을 타고 심협의 몸을 찔렀다.

    심협은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에 피를 토하고 튕겨나갈 뻔했지만, 기혈번의 빛무리가 혈운과 충돌하면서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차가운 빛은 곧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초승달 모양의 도(刀) 같으면서도 도가 아니었고, 검인 듯하면서도 검이 아닌, 기이한 무기였다. 날에는 차가운 빛이 반짝였는데, 사람의 영혼을 빨아먹는 것처럼 신축(伸縮)이 일정하지 않았다.

    현황일기곤에는 베인 흔적이 있었다. 만약 적지 않은 영양신철을 넣지 않았었다면 방금 일격에 부러졌을 것이다.

    기혈번은 뚫린 구멍 사이로 핏빛 빛무리가 빠르게 사라지더니 다시 작은 깃발로 변했다. 그러나 겉에 흐르던 혈색이 어두워졌고 애절한 소리를 울리는 것이 꽤나 손상이 심해 보였다.

    혈운 틈으로 생겨났던 통로는 어느새 다시 막혀버렸다.

    심협은 안색이 어두워져 대책을 생각해내려 했지만, 초승달 법보에 신경이 쓰여 다른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저 보물은 너무도 위험해서 조금만 방심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될 것이다.

    그때, 초승달의 법보가 혈운 속으로 사라지면서 기운도 사라졌다.

    심협은 방심하지 않고 신식을 최대한 퍼트려 감시하려 했지만, 주변의 혈운은 뭔가 이상했다. 신식이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펼치기 어려워 전력을 다해도 30장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쿠르릉!

    혈운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리더니 거대한 핏빛 촉수가 두 사람을 휘감았다.

    심협이 막으려는 순간, 옆에 있던 무만아가 먼저 두 개의 푸른 비조(飛爪) 법보를 내던졌다. 비조는 푸른 빛줄기를 뿜어내며 핏빛 촉수와 몇 번 충돌하면서 공격을 막아냈다.

    심협은 그 틈에 치료 단약을 먹은 후 흡수하여 오장육부의 내상을 치료했다.

    그 무렵, 두 개의 비조 법보가 빛이 약해진 상태로 휘청거렸다.

    “조심해, 저 촉수에는 법보를 오염시키는 효능이 있어!”

    심협이 푸른 빛으로 번득이는 눈으로 살펴보고는 설명했고, 이에 무만아는 서둘러 법보를 거두어들여 살폈다. 비조에 침투한 붉은 빛이 그 안의 금제를 침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 붉은 빛을 제거하려는데, 주위의 혈운에서 다시 굉음과 함께 수십 장 두께의 거대한 촉수가 솟아나왔고, 촉수는 끈적거리는 핏빛으로 번득이며 두 사람을 뒤덮으려 했다.

    무만아가 두 손을 결인하자 온몸이 눈부신 초록빛으로 번쩍이더니 소매에서 수십 개의 초록 빛이 날아갔다.

    이 빛이 바람을 맞으면서 대나무 잎 같은 비검으로 변했다. 여든한 개의 초록색 비검은 강력한 기세의 거대한 검진을 이루더니 검기를 뿜어내며 핏빛 촉수를 베었다.

    샤악!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고, 촉수는 검기에 베여 산산이 조각났다.

    그러나 이번 촉수는 마치 액체 같아서 금세 다시 뭉쳐져서 완전히 소멸할 수 없었고, 오히려 끊임없이 검진 내부로 침입했다. 게다가 촉수의 핏빛은 계속해서 청목비검 안으로 파고들어 검광을 빠르게 퇴색시켰다.

    “기다려!”

    심협은 초승달 법보를 내버려둔 채 현황일기곤을 휘둘러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곤봉의 허상이 사방을 내리치면서 곤봉의 숲을 이루어 촉수를 완전히 뒤덮었다.

    “부서져라!”

    심협이 현황일기곤을 휘몰아치자 하늘 가득하던 곤봉의 허상이 강렬하게 내리쳤다.

    굉음과 함께 혈색 촉수는 터져나갔고, 혈운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현황일기곤도 혈광에 물들면서 음랭(陰冷)의 힘이 곤봉 안으로 침투했고, 곤봉의 금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이를 본 심협의 눈이 커졌다. 이 음랭의 힘은 다름 아닌 마기였던 것이다.

    그는 이 힘을 제거할 방법은 없었지만,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보랏빛이 반짝이면서 유령주가 그의 손에 나타났다. 구슬에 보라색 얼굴 모양이 떠오르더니 현황일기곤을 향해 흡입력을 발휘했다. 그러자 곤봉에 침투한 마기가 순식간에 빨려 나오면서 현황일기곤은 다시 금빛으로 반짝였다.

    ‘역시 유령주는 마기 흡수에 제격이로군.’

    심협은 이어서 유령주를 발동하여 무만아의 푸른색 비조와 청목 비검에 담긴 마기도 흡수했다.

    “내 혈운 대진의 마기를 제거하다니, 제법이구나. 허나 너희는 내 아내를 다치게 했으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오늘 너희는 여기서 죽는다.”

    두 사람이 안도하기도 전에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그림자가 혈운 속에서 나타났다.

    키가 8척 정도에 머리에는 은색 투구를, 몸에는 갑옷을 걸쳐 온몸이 은빛으로 빛나는 자였다. 손에는 차갑게 빛나는 초승달 모양의 법보를 들고 있었다. 꿈속에서 봤던 구두충이었다.

    구두충의 품에는 누군가 안겨 있었는데, 아까 그 요염한 미부인이었다.

    미부인은 구두충의 품에 안겨 아까 같은 흉흉한 표정이 아니라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표정이었다.

    심협은 가늘게 뜬 눈으로 상황을 살피다가 손을 뒤집어 뇌전의 기운이 흐르는 곤토인뇌부를 꺼내더니 법력을 주입했다.

    꽈르릉!

    강력한 번개들이 번쩍이면서 만들어진 수십 장 크기의 번개 숲은 너무도 쉽게 혈운을 뚫고 구두충에게 떨어졌다.

    “가자!”

    심협은 곤토인뇌부의 위력에 넋이 나간 무만아의 팔을 잡고, 반대 손으로는 현황일기곤을 휘두르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어딜 도망치려고!”

    구두충이 버럭 외치며 막으려는 순간, 수많은 번개가 날아왔다.

    허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손에서 가시가 가득한 암홍색 주먹을 뿜어냈다.

    칼 같은 가시로 가득한, 바윗덩이 같은 혈색 주먹이 머리 위로 날아가 번개들을 모두 막아냈다.

    퍼펑!

    주먹의 허상은 번개 숲을 뚫고 지나가면서도 단지 혈광만 조금 흔들렸을 뿐, 흐트러진 기색이 없었다.

    구두충이 주문을 읊으며 오른손을 다시 한번 휘둘렀다.

    혈색 주먹 허상이 갑자기 맹렬하게 빛나면서 강력한 힘을 뿜어냈고, 허공에서는 마치 주먹의 허상에 짓눌린 것처럼 갈라지는 소리가 울렸다.

    다음 순간, 번개 폭풍은 완전히 부서졌다.

    전력을 다해 혈운에서 벗어나려던 심협은 뒤편의 상황을 눈치채고는 깜짝 놀랐다.

    번개와 폭풍을 부순 거대한 혈색 주먹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엄청난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을 쫓아왔다.

    심협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을 뒤로 휘둘러 청령목인을 던졌다.

    영인에서 나무의 허상이 허공에 나타나더니 부드러운 초록 빛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백 장 크기의 거대한 나무 허상으로 변했다.

    무만아도 뒤쪽을 향해 소매를 휘둘렀다.

    초록빛의 보석이 날아가면서 매우 짙은 을목의 파동을 일으켰는데, 이전에 그녀가 오장관에서 사용했던 보석과 흡사했다.

    초록색 보석이 반짝이며 떨어지자 신수의 허상은 열 배로 커지면서 더욱 단단해졌고, 나무 주변에는 나선형의 신비한 영문이 떠올랐다.

    신수의 허상이 실체가 되는 순간, 혈색 주먹이 꽂혔고, 굉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신수의 허상이 강렬하게 흔들리면서 수많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부러졌지만, 신수의 줄기는 단단해서 주먹을 막아낼 수 있었다.

    “제법이구나. 하지만 너희는 도망치지 못한다.”

    구두충은 내심 놀랐지만 바로 냉소하며 오른손을 펼쳤고, 손에서 기이한 혈색 부문이 떠올랐다.

    거대한 혈색 주먹을 활짝 펼치자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손으로 변해 그대로 떨어졌다.

    신수의 허상은 충격에 부러졌고, 목인도 펑 소리와 함께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심협과 무만아는 거대한 압박감이 담긴 거대한 손바닥 앞의 작은 벌레와도 같았다. 무만아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혼절했고, 심협도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은 채 신혼이 강하게 흔들렸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곧 꺼질 것만 같았다.

    그때, 그의 반룡벽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뜨거운 기운이 흘렀다. 그러자 흔들리던 그의 신혼이 안정을 되찾았다.

    허나 하늘을 뒤덮은 손바닥 앞에 현황일기곤, 순양검, 유령주, 기혈번 등은 하나같이 빛을 잃었고,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웠다.

    ‘여기가 끝인가?’

    심협은 창백하게 질렸고, 저 거대한 손바닥에 짓눌려 죽는 모습이 떠올랐다. 옥침이 있다면 꿈속 경지를 소환해 보기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 신통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한데 그때, 심협의 머릿속에서 처음 마화(魔化)했던 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마기가 폭발하면 경맥이 혼란스러워지고 육신에 심각한 손상을 입지만, 신통력은 증폭한다. 그때도 단 한 번의 을목선둔으로 두 개의 주를 건넜다.

    심협은 길게 따질 것도 없이 유령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마기를 받아들였다.

    ‘마화되면 이성을 잃으니 길(吉)이 될지 흉(凶)이 될지 모르지만, 처참하게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의 두 눈이 붉게 물들면서 칠흑 같은 마기가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퍼졌고, 무시무시한 살기가 폭발했다. 몸에는 피와 같은 요염한 붉은 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협을 중심으로 실체 같은 붉은색 살기가 반경 몇 리를 뒤덮었다.

    말로는 복잡했지만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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