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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03화 (703/1,214)

703화. 축소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심협은 머뭇거리지 않고 돌진하면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에서 불꽃이 번쩍이더니 붉은 검광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세 줄기 검의 허상으로 나뉜 순양비검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홍련업화를 뿜어내며 앞에서 나타난 빛줄기들과 충돌했다.

“부서져라!”

심협의 외침과 함께 세 개의 검광이 불꽃을 뿜어냈고, 곧바로 세 개의 빛을 집어삼켰다. 홍련업화가 타오르는 곳에서 천지영기가 흘러들어왔다.

“여기구나!”

심협은 바로 그곳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불꽃이 타오르면서 세 줄기 빛은 점점 커졌고, 이내 타원형의 출구가 생겼다.

심협은 강렬한 빛과 함께 그곳을 뚫고 나갔다.

눈앞이 밝아지더니 익숙한 분홍색 갈대밭이 보였다. 한데 한참을 날아왔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원래 위치 그대로였다.

이 광경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앞에서 하얀 빛줄기가 곧장 하늘로 치솟았다. 거대한 존재가 곧장 장기로 만들어진 구름을 뚫고 그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한편, 지상의 물에서는 푸른 산봉우리가 조금씩 사라져갔고, 주위에 가득하던 검은 안개도 조금씩 걷혔다.

그제야 비로소 산봉우리의 본체가 보였는데, 실로 거대한 민물조개였다. 그들이 처음에 만났던 것이 바로 이 조개의 본체였던 것이다.

검은 안개가 전부 사라지자 무만아와 연연의 모습도 드러났다.

두 사람은 심협이 나타나자 기쁨에 겨워 곧장 곁으로 날아왔다.

“심 오라버니, 어떻게 환상을 깬 거예요?”

연연이 물었고, 무만아도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하늘을 가리키며 아직 닫히지 않은 커다란 구멍을 가리켰다.

“내가 아니야. 누군가 신기요를 물리쳐서 우리가 환상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줬어.”

무만아와 연연도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그곳에는 여전히 법력 파동이 남아 있었다.

“허나 일부러 우리를 도와준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근처를 지나다가 신기요의 공격을 받아서 반격한 모양이야. 그래서인지 곧장 떠나버렸지.”

“어쨌든 벗어났으니까 다행이네요.”

그러나 심협은 마음이 무거웠다. 이 운몽택에는 알 수 없는 위험이 너무 많아서 오래 머물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자. 최대한 빨리 은행나무 신수의 원액을 가지고 이곳을 나가는 게 좋겠어.”

무만아도 심협의 생각을 눈치챘다.

“심 오라버니, 은행나무 신수 원액은 없어도 되니까 지금 바로 돌아가요.”

그녀의 말에 심협은 의아했다.

“왜? 이제 금방인데?”

“이대로 가면 또 어떤 위험을 만날지 몰라요. 두 사람을 또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어요.”

“아니다. 이미 약속한 일 아니더냐.”

“아니에요. 신수 원액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저한테는 모두가 무사히 돌아가는 게 더 중요해요.”

“그래도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도중에 돌아가면 아쉽지 않겠어?”

“연연의 일족을 구했으니 성과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무만아가 웃으며 말하자 심협은 생각에 잠겼다.

무만아는 심협이 돌아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줄 알았으나, 이어진 심협의 말은 의외였다.

“그럼 원액은 나 혼자 가서 가져오는 게 낫겠구나. 너희는 먼저 비홍과 여몽에게로 돌아가거라.”

“네? 아니, 어떻게 그래요?”

“저…… 심 오라버니, 만아 언니.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신수의 원액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연연이 불쑥 물었다.

“보통은 신수 아래, 지맥과 만나는 곳에 있어.”

“신수 아래라…… 그럼 제가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진짜?”

연연의 말에 무만아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우리 나뭇잎 정매 일족은 매년 춘분(春分) 때마다 신수에 제사 지내는 전통이 있어요. 그때마다 일족의 비밀 통로로 신수 아래로 가서 제사를 지내거든요. 근데 거기서 신수의 원액 같은 건 본 적이 없는데…….”

“세상의 모든 신수는 해와 달과 감응하고, 땅의 움직임을 느끼며, 지맥의 음양과 교류해. 그러니 분명 원액이 있을 거야. 아마 은행나무 신수의 원액이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서 너희가 못 본 걸지도 몰라.”

무만아의 설명에 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우선 우리 일족의 비밀 통로로 가 봐요. 그럼 대요의 감시를 피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럴 수 있다면 좋지. 여기까지 온 이상 시도는 해보자.”

심협의 말에 무만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도 이렇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연연의 안내를 받아 나뭇잎 정매들의 땅으로 향했다.

연연은 고향이 폐허가 된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작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무 가옥이 대부분 부서진 광경에 심협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 힘이 더 강했다면 구두충을 제거할 수 있었을 텐데…….’

무만아는 연연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연연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눈물을 닦은 후, 두 개의 나무가 합쳐져 있는 오래된 나무로 이들을 안내했다.

심협은 나무의 구멍을 보고는 실소가 터졌다. 그 구멍은 심협이 머리통 정도나 들어갈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맙소사, 이건 전혀 예상 못 했군.’

연연도 당황했는지 허둥거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는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답니다.”

무만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고는 두 개의 노란색 단환을 꺼냈다.

“우리 신목족은 수시로 신수 곳곳을 탐색하는데, 원래의 지맥을 망가트리지 않으려고 한 장로님께서 구신환(九身丸)이라는 단약을 만드셨어요. 이걸 먹으면 몸이 작아지죠. 단, 법력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원래 몸으로 돌아갈 거예요.”

“다행이네. 나는 둔지부로 가야 하나 했거든.”

심협은 웃으며 단환을 건네받아 입에 넣었다.

노란색 빛무리가 흘러나와 온몸을 뒤엎었다.

“음?”

약간 어지럽다 싶은 순간, 몸이 빙글빙글 돌면서 줄어들더니 순식간에 1촌 정도로 작아졌다. 심지어 연연보다 머리 반 개쯤 더 작아진 상태였다.

무만아도 서둘러 단약을 먹어 몸을 줄였다.

연연이 날아서 먼저 나무 구멍으로 들어갔고, 두 사람도 뒤를 따랐다.

백여 장을 내려가자 마침내 땅이 나타났는데, 앞에는 비스듬한 지하 통로가 있었다.

연연은 몸에서 초록 빛을 발하며 앞장섰고, 심협과 무만아는 법력을 유지하며 뒤따라 걸었다.

길이 좁아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심협은 묵묵히 시간을 계산했는데, 꼬박 하루를 걸었는데도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심 오라버니, 만아 언니. 이제 다 왔어요.”

“연연, 너희 일족은 왜 신수 근처에 살지 않고 그렇게 멀리서 산 거야?”

“신수는 운몽택 모든 일족의 정신적 신앙이라 누구도 개인적으로 점유할 수 없어요. 신수 근처에 마을을 세우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죠. 옛날부터 암묵적인 약속이었어요. 그래서 더더욱 대요의 악행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심협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무만아의 일족이 신수를 점유한 것과 달리 운몽택에서는 신수 가까이에 마을을 세우는 것은 일족의 저력에 달려 있는 것이리라.

그때, 심협과 무만아가 갑자기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왜요?”

연연이 내심 긴장하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심협이 위를 올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위에서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져. 법진의 진기가 있는 것 같아.”

“이상하네요. 신수를 보호할 생각이었다면 왜 땅 아래에 금제를 설치하지 않은 걸까요?”

무만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

“아, 그건 저들이 은행 영과가 모두 익으면 사방으로 흩어지는 걸 막고, 눈치 없는 정매가 와서 몰래 훔치기를 바라는 거예요. 나 같은 생존자를 노리고요.”

심협은 구두충의 음험함을 알기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갈색 뿌리로 통로가 막혔다.

한데 연연은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다.

“신수의 뿌리예요! 드디어 도착했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뿌리 틈새로 몸을 붙이고 지나갔다.

심협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

뿌리를 지나온 세 사람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비밀 통로의 끝이었고, 뿌리에 막혀 있던 출구 밖에는 매우 넓은 지하 석실이 있었다. 그 안에는 등불이 가득했고, 요물들이 지키고 있었다.

세 사람은 들통나지 않으려고 줄곧 법력을 억제하느라 신식으로 살피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의외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특히 연연은 순간적으로 영식이 불안해졌다.

심협이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기운의 파동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았다.

“연연, 지금부터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건 너무 위험해. 넌 우선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서 우리를 기다리는 게 좋겠어.”

그의 전음에 연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막 떠나려는 순간!

“정매다! 정매가 죽으려 제 발로 찾아왔구나!”

음흉한 외침과 함께 푸른 빛이 세 사람을 향해 곧장 날아왔다.

‘이제 도망치기는 늦었군.’

심협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휘두르며 유지하고 있던 법력을 흩어버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커지더니 손을 들어 푸른 빛을 막았다.

무만아도 곧장 원래 크기로 되돌아왔다. 연연은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았다.

주위에서 한바탕 고함이 들려오더니 수십 마리의 못생긴 요물이 무기를 들고 이들을 포위했다.

주위를 둘러본 심협의 눈에 석실 담벼락에 있는 거대한 나무뿌리가 보였다. 이곳이 신수의 아래쪽인 게 틀림없었다.

이때,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족?”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돌아보니 보라색 치마에 머리를 곱게 올리고, 곱상한 외모, 풍만한 몸매의 미부인과 몸집이 굵고 작은 귀장(歸藏)이 있었다. 그들 뒤로는 요물들이 보였다.

“대담한 놈들이로구나. 감히 대왕님의 영과를 노리다니! 그렇게 죽고 싶더냐?”

귀장이 욕설을 퍼부었다.

“오해다. 우리는 신수의 영과가 아니라 원액만 조금 가지러 온 거다.”

“흥! 교활한 인간족의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요염한 미부인이 차갑게 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가 뭘 하려는 생각이건 이곳에 들어온 이상 살려둘 수 없다. 저놈들을 잡아라!”

귀장이 외치자 요물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무만아는 손을 흔들며 조용히 무언가를 읊조렸다.

삽시간에 석실과 땅바닥이 강렬하게 흔들리더니 두꺼운 가시덩굴이 튀어나와 달려드는 요물들을 공격했다.

요물들은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심협이 연연을 잡고는 건곤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싸움이 시작되면 널 보호할 수 없으니까 여기 들어가 있어. 안에 짙은 음기가 있는데, 견딜 수 있지?”

“물론이죠.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으면요.”

연연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자신이 없어 보였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오늘 신수 원액을 얻는 건 무리인 것 같으니 기회를 봐서 도망칠 거거든.”

심협은 연연을 안심시키려 웃으며 말하고는 그녀를 건곤대 안으로 넣었다.

그는 두 장의 둔지부를 꺼내 하나는 무만아의 몸에, 하나는 자신의 가슴에 붙인 뒤, 그녀의 어깨를 잡고 외쳤다.

“가자!”

두 사람은 순식간에 땅속으로 들어가 빠르게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석실 안의 요염한 미부인이 눈살을 찌푸리자 귀장이 급히 말했다.

“부인, 걱정하지 마시오. 저들은 도망칠 수 없소.”

이어서 그의 몸에 노란 빛이 감돌더니 땅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심협은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얼마나 나아갔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사방에서 이상한 법력 파동이 느껴지더니 그들의 노란 빛이 사라졌고, 땅이 갑자기 단단해졌다. 동시에 주위의 공간이 순식간에 굳어지면서 암석과 땅이 그들을 압박해 왔다.

그들 아래에서 귀장의 몸이 빠르게 팽창하더니 거북이 등껍질이 돌진해 왔다. 그 기이한 파동은 바로 거북이 등껍질에서 전해오는 것이었다.

“이런! 둔지부의 효능이 사라졌어!”

심협이 속으로 놀라고는 부적의 힘이 다 사라지기 전에 무만아를 데리고 재빨리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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