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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02화 (702/1,214)

702화. 각종 환상

무만아는 비주에서 뛰어내려 산 아래 모래사장에 가부좌를 했다.

그녀의 몸에서 바로 초록 빛이 번득였고, 몸 아래에서는 빛무리가 퍼져 나갔다. 짙은 생명의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와 점점 사방으로 퍼졌다.

그녀의 발치에서는 모래사장을 뒤엎은 이끼들이 빠르게 자라기 시작했고, 물가의 수초들도 미친 듯이 늘어났으며, 뒤쪽 산의 덩굴도 빠르게 무성해졌다.

연연은 무의식적으로 무만아 옆으로 날아가 주위를 맴돌았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심협도 비주를 챙겨 넣고는 내려왔다.

무만아의 법결은 조금씩 바뀌었다. 오른손 검지 끝이 저절로 갈라지면서 한 방울의 정혈이 흘러나와 똑 하고 몸 앞의 땅에 떨어졌다.

피는 곧장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았고, 몸 앞에서는 빛무리가 출렁이더니 분홍색으로 변해 먼 허공으로 퍼져서 사라졌다.

한참 뒤, 무만아의 몸이 떨려왔고, 안색은 창백해졌다.

“괜찮아?”

“법력을 많이 소모해서 그런 거니까 괜찮아요.”

“어때, 성공했어?”

무만아가 고개를 젓고는 무기력하게 말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인지 아니면 법진이 막혀서인지 신수의 존재를 느낄 수가 없었어요. 정혈로도 못 했고요.”

심협은 내심 아쉬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연연이 흥분하여 주변을 날아다니다가 무만아의 어깨로 내려오더니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아 언니, 정말 대단해요! 방금 언니 머리 위에서 날아다닐 때 제가 운몽택 전체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영기의 긴 강이 제 몸에서 흐르는 기분이 들었는데 진짜 황홀했어요.”

“그럼 앞으로 내 옆에서 수련하렴. 너한테 큰 도움이 되겠다.”

무만아는 따로 설명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네.”

연연은 지금 그들이 어떤 상황에 빠져 있는지도 잊은 듯했으나, 그녀가 무심코 한 말에 심협은 무언가가 떠올랐다.

“만아야, 어쩌면…… 은행나무 신수의 기운과 친밀하지 않아서 연결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무만아는 그 말에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요.”

“그럼 연연을 매개로 한다면?”

“연연을 매개로……?”

무만아는 중얼거리며 가능성을 생각하며 천천히 법력을 회복했다.

한편, 연연은 심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상을 쓰며 물었다.

“저를 매개로 한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만아는 비술로 신수와 연결를 시도했지만, 은행나무 신수를 본 적이 없으니 신수의 기운을 모르지. 그러니 신수를 알고 있는 너를 통하면 신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도움이 필요하단 소리죠?”

연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심협은 그 순수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아 언니, 내가 어떻게 하면 돼요?”

연연은 무만아 앞으로 날아가며 웃었다.

“정혈 한 방울이 필요해.”

“그거라면 문제없죠.”

연연이 바로 손가락을 깨물려고 하자 무만아가 말렸다.

“지금 말고 이따가 내가 정혈을 떨어트릴 때, 그때 같이 하면 돼.”

“알겠어요.”

잠시 후, 법력을 회복한 무만아는 다시 신통을 시전하여 은행나무 신수와 소통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정혈을 떨어트릴 때 미리 준비하고 있던 연연도 함께 자신의 정혈을 떨어트렸다.

크고 작은 두 방울의 정혈이 동시에 빛무리에 떨어지자 하나로 합쳐져 사방으로 퍼졌다.

이번에는 빛무리가 퍼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고, 방금처럼 원 모양으로 퍼진 것이 아니라 부채꼴처럼 오른쪽 전방을 향해 퍼졌다.

한참 뒤, 무만아가 다시 두 눈을 떴다.

“어떻게 됐어?”

무만아는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채꼴 빛무리가 날아간 곳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희미한 기운이 부르는 게 느껴졌어요. 저쪽일 거예요.”

“좋아,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출발하자.”

심협이 다시 소환한 비주에 모두 오른 뒤 무만아에게 말했다.

“좀 쉬고 있어.”

그렇게 말한 그는 다시 비주를 조종했다.

한데 비주가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자 그들의 뒤에 있던 거대한 산이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산에 세로로 균열이 생기더니 짙은 안개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한참 뒤, 수백 리를 날아가니 전방의 안개가 점점 옅어졌고, 머지않아 비주는 안개를 완전히 빠져나왔다.

안개가 모두 사라지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다시 넓은 수역으로 돌아왔다.

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는 매우 거대한 천 장 높이의 은행나무가 보였다. 나무에는 잎이 무성하여 마치 수많은 황금 이파리가 걸려 있는 것 같았고, 햇살이 비추자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나왔다! 찾았다!”

연연히 흥분하여 소리쳤다.

한쪽에서 정양하던 무만아도 눈을 떴는데, 낯빛이 평온해진 상태였다. 웅장한 금빛 은행나무가 보이자 그녀의 눈에는 감격의 빛이 스쳤다.

심협도 기뻤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나무로 접근했다.

한데 점점 다가가던 심협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해. 왜 대요가 설치한 법진이 보이지 않지? 법진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

그는 비주를 멈추고는 의아해했다.

“숨겨둬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 맞다. 전에 제가 도망칠 때는 열 개쯤 되는 하얀 기둥이 세워져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보여요.”

연연의 그 말에 심협은 아차 싶었다.

“이런!”

환무의 위력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다.

그가 조처를 취하기도 전에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이 울려 퍼졌다.

꽈르릉!

마치 하늘이 흔들리는 듯했고,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왔다.

거의 대지와 비슷할 정도로 두꺼운 먹구름 사이로 번개가 번쩍거리더니 거대하고 흉악한 머리가 불쑥 튀어나와 아래의 세 사람을 노려봤다.

“치…… 치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무만아도 겁에 질려 있었다. 거대한 머리와 싸늘한 눈빛만으로도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심지어 연연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속지 마! 저건 환상이야!”

심협이 크게 외치는 순간, 먹구름이 미친 듯이 흔들리더니 거대한 팔이 튀어나왔다. 이 팔은 하나하나가 작은 산봉우리 같은 손가락들을 말아 쥐더니 내리쳤다.

실제 같은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바람 소리를 내며 주먹이 떨어졌다.

심협은 재빨리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며 현황일기곤을 꺼내 크게 올려쳤다.

콰쾅!

굉음에 하늘이 흔들렸고, 심협 등은 하늘을 찌르는 괴력에 뿔뿔이 흩어졌다.

한편, 치우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심협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심협은 전신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며 다시 날아오는 주먹을 바라봤다. 한데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환상은 환상이군. 본체를 본 적이 없으니 치우의 진정한 공포를 어찌 알겠는가? 너는 본체의 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하하!”

심협이 하늘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었다.

만약 진짜 치우였다면 좀 전의 일격으로 그들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심 오라버니, 이게 무슨 일이죠?”

무만아가 연연을 안고 황급히 다가오며 물었다.

“지금 우리는 환무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온 것 같다. 이 환상에서는 아마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나타날 거야.”

심협의 설명을 들은 무만아는 심협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치우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의아한 것은 방금 심협의 말이었다. 마치 이전에 치우와 싸워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허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심협에게 물으려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갑자기 신목족의 신수가 원래 은행나무 신수가 있던 곳에 나타났다.

먹구름 사이로 나온 치우가 입을 벌리자 강력한 마염이 뿜어져 나와 신수를 완전히 태워버렸고, 그녀 일족들은 이전의 정매들처럼 나무에서 빠져나와 뿔뿔이 흩어졌다.

한편, 연연은 자신의 일족들이 거대한 뱀에 하나둘씩 먹히는 장면을 보며 쉬지 않고 비명을 질러댔다.

“속지 마! 이건 환상이야!”

심협이 다급하게 외치더니 두 발로 땅을 강하게 박차 하늘 높이 솟구쳤다.

만약 치우가 그의 악몽이고 공포의 근원이라면, 오늘 꿈속에서처럼 자신의 공포와 직면할 것이다.

그가 하늘 높이 솟구치자 치우가 주먹을 뻗어왔다.

심협은 허공에서 사월보를 시전하여 이리저리 피하며 ‘치우’에게 접근해갔다.

그는 황정경 공법을 빠르게 운공하는 동시에 양손으로 현황일기곤을 쥐고 손오공의 곤법으로 가짜 치우를 내리쳤다.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치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치 진짜와 같은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느껴져 끊임없이 꿈속 세상에서 치우와 싸웠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심협의 가슴 한쪽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진짜 치우면 어떠한가? 난 이미 너를 이겼었다!’

분노와 함께 법력이 폭발하면서 현황일기곤에서는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금빛 곤봉의 허상이 하늘 높이 치솟아 하늘을 관통하자 천지의 기운이 흐트러졌고, 운몽택 전체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금빛이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하늘에 가득한 먹구름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이 순간, 마치 누군가 반으로 가른 것처럼 하늘 가득하던 구름은 금빛을 경계로 양쪽으로 물러났고, 진짜 하늘이 나타났다.

그리고 먹구름에 숨어 있던 ‘치우’의 몸에도 금색 선이 나타나면서 구름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연연의 일족이 뱀에게 잡아먹히는 환상도 사라지기 시작했고, 무만아의 눈에 비친 신수가 불타는 광경도 점점 사라졌다.

한데 환상이 깨졌다고 여기던 심협에게 몸이 갈라진 치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심협은 환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심하지 않고 현황일기곤으로 맞섰다.

콰쾅!

굉음이 울려 퍼졌고, 강력한 힘에서는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게 진정 환상이란 말인가?’

심협의 몸이 크게 흔들리더니 강력한 힘에 밀려 그대로 추락했다.

늪지에 가득하던 물에서는 물기둥이 솟구쳤고, 늪지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심협은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내심 당황했다. 그는 자신이 환상을 깨부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환상은 그의 생각보다 더 강력했다. 심지어 환상 중에는 실체가 있고 실체 중에는 환상이 섞여서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잠시 혼란스러웠던 심협은 금세 마음을 다잡고 사방에서 점점 밀려오는 늪과 호수를 바라보며 눈빛을 굳혔다.

“다시 해봐야겠군.”

마음을 정한 심협은 붉은 빛이 되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번에는 다른 환상의 방해를 신경 쓰지 않고 곤봉으로 길을 열어 곧장 치우의 거대한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치우는 입을 벌려 눈앞까지 다가온 심협을 삼키려 했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이 환상이 도대체 어떤 귀물의 짓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심협은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구여마갑으로 몸을 감싼 후 더 빠른 속도로 치우의 입을 향해 뛰어들었다.

“심 오라버니!”

무만아가 비명처럼 외쳤고, 연연은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 치우의 입속으로 들어간 심협은 어둠에 잠겼다.

“그래봐야 환상이겠지. 어디 어떻게 생겼는지 볼까?”

심협은 태연히 웃으며 둔광으로 변하여 계속해서 위로 치솟았다.

일천 장, 삼천 장, 백 리…….

심협은 거리를 재며 날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어느덧 수백 리를 날아왔지만 여전히 어둠뿐이었던 것이다.

‘치우’의 몸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이 정도일 리는 없다.

그는 마치 영원한 어둠의 공간에 빠진 듯했고, 아무리 날아가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심협은 방향을 바꿔 다시 수천 리를 날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잠시 허공에 멈춰 서서 대책을 궁리했다.

한데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아주 먼 곳에서 갑자기 고함이 들려오더니 이어서 무언가가 격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아무런 허점도 없었던 환상에서 갑자기 격렬한 파동이 느껴졌고, 먼 어둠 속에서 세 줄기 빛이 보였다.

그 빛은 어둠 속에서 찢어진 세 개의 구멍처럼 눈에 확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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