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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01화 (701/1,214)
  • 701화. 환무(幻霧)

    “오라버니, 왜 그래요? 저자가 그렇게 강한가요?”

    무만아의 물음에 답하려던 심협은 퍼뜩 무언가가 떠올라 서둘러 미질화 정매에게 말했다.

    “저 상석에 있는 자의 수련 경지를 알아봐줄 수 있어?”

    미질화 정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뒤이어, 화면에서 물구렁이 옆에 있는 대요가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형제, 대왕의 측근인 자네는 대왕의 경지를 알고 있나?”

    “무슨 소린가, 3년 전에 상처를 치료하면서 진선 후기를 돌파하신 것을 자네는 모른단 말인가?”

    물구렁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대는 것을 들으며 심협은 내심 안도했다. 저자는 아직 태을 경지에 도달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때, 화면이 바뀌었다.

    물구렁이의 꿈속에서 구두충이 무언가를 꾸미고는 물구렁이에게 지령을 내리고 있었다.

    “백류(白流), 나는 계속해서 폐관하여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그러니 정매를 찾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라. 이 일을 잘 해내면, 은행 영과가 다 익었을 때 상으로 하나를 주겠다.”

    구두충의 거만한 목소리에도 물구렁이는 매우 공손하게 포권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전력을 다해 더 많은 정매를 바쳐 대왕님께서 하루빨리 쾌유하시길 돕겠습니다.”

    그 말에 심협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구두충은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미질화 정매도 상황을 눈치채고는 꿈속의 다른 요물을 조용하여 또 물구렁이에게 질문했다.

    “대왕님께서는 저렇게 강력하신데 어찌 다치신 건가?”

    막 질문에 답하려던 물구렁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안색이 돌변했다.

    곧이어 허공에 나타난 화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꽁꽁 묶여서 평안하게 누워 있던 백류가 다시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머리를 거칠게 흔들자 미질화 정매의 더듬이가 그의 귀에서 빠졌다.

    “죄송해요. 꿈이 무너져서 더는 방법이 없네요.”

    미질화 정매가 미안한 듯 말했다.

    “괜찮아. 이미 큰 도움이 됐어. 고맙다.”

    심협이 진심으로 감사했다.

    적의 정체가 구두충이며 그가 부상을 당해 경지가 떨어졌고, 치료를 위해 폐관 중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어떻게 하죠?”

    무만아는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백류를 보며 물었다.

    심협이 잠시 생각하더니 정매와 정괴들이 모여든 곳으로 가서 물었다.

    “저 물구렁이 요물을 어떻게 처리하길 원하시오?”

    “죽여야 해요!”

    연연이 제일 먼저 대답했다.

    “죽여야 합니다!”

    다른 정매도 뒤이어 일제히 소리쳤다.

    그동안 물구렁이는 운몽택 곳곳에서 악행을 저지르며 종족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정매를 잡아 죽였다. 이로 인해 멸족한 종족도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분노와 원한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백류의 가슴에 박혀 있던 순양비검에서 갑자기 홍련업화가 뿜어져 나오더니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그의 신혼마저 휩쓸어 잿더미로 사라져 버렸다.

    정매들은 심협의 도움으로 살아났는데 복수까지 해주니 모두가 감동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무만아가 정매들에게 물었지만,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장우가 내리는 지금도 그들이 여기에 있는 것은 그들의 집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불에 대부분 타버린 우산 나무를 보며 서글퍼했다.

    “운몽택은 넓으니까 북쪽으로 더 멀리 가면 서식처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개구리같이 생긴 정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맞아요. 대요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신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온몸이 노란, 식물의 뿌리같이 생긴 정매가 맞장구쳤다.

    그러자 나머지 정매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무만아는 이들 모두를 하나하나 치료해주고 배웅했다.

    이제 우산 나무 아래에는 심협과 무만아, 연연과 비홍, 이름이 여몽(如夢)인 미질화 정매만 남았다.

    심협이 바라보자 연연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는 신수까지 안내해야죠.”

    “연연은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니 헤어질 수 없어요.”

    비홍도 바로 말했다.

    “저, 저는…… 갈 곳이 없어요.”

    여몽이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무만아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 고향은 울창한 숲속이라 정매들이 살아가기에 괜찮을 거야. 나와 같이 갈래?”

    연연과 비홍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만아는 그들의 대답을 보고는 여몽을 바라봤다.

    “저, 저도 갈래요.”

    여몽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나름 원만하게 일이 해결되자 그제야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엄청난 천둥이 울려 퍼졌다.

    무언가를 감지한 심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의 구름은 뇌광으로 번쩍였고, 구름 사이로 하얀 그림자가 헤엄치듯 지나갔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고 자세히 보려 하자 뇌광은 사라졌고, 구름은 다시 평온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둥번개가 한바탕 몰아치자 운몽택에 내리던 장우도 마침내 점점 잦아들었다.

    하늘이 다시 맑아졌을 때, 일행은 은행나무 신수를 향해 출발했다.

    “길 안내는 연연 한 명이면 충분해. 이곳은 너무 위험하니까 비홍과 여몽은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그럼 저희는……?”

    비홍이 머뭇거리며 심협을 바라봤다.

    “운몽택을 벗어나 안전한 곳에 숨어 있다가 우리가 돌아오면 다시 합류하자.”

    비홍과 여몽은 자신들이 같이 가봐야 방해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억지를 부리지 못하고, 인사를 남기고는 먼저 떠났다.

    “심 오라버니, 무 언니, 저렇게 가다가 위험한 일이라도 당하면 어떡하죠?”

    연연은 자신의 다음 여정보다 저들이 더 걱정됐다.

    심협은 말없이 허리춤의 건곤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저들을 배웅해 안전한 곳을 찾아줘.”

    “네, 주인님.”

    건곤대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 안개가 흘러나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비극은 현재 출규 후기의 경지로, 은폐와 기습에 능했기에 비홍과 여몽을 지켜주기에 제격이었다.

    무만아와 연연은 심협의 조치를 보고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일행은 다시 출발했고, 얼마 되지 않아 마치 분홍빛 바다처럼 빼곡한 분홍색 갈대 늪이 나타났다.

    비주의 뱃머리에 선 심협은 분홍색 갈대밭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갈대는 피어오른 꽃만이 아니라 대와 잎사귀마저 분홍색이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붉은색이 짙어졌다.

    심협은 운몽택에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천기성 상점 점원의 충고가 생각났다.

    “연연, 저 분홍색 갈대에 무슨 위험이라도 있나?”

    “위험이오? 그런 거 없는데…….”

    연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심협은 그 말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점 점원이 없는 말을 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 이전에 들었던 소문은 있어요. 이전에 선마(仙魔) 대전이 일어난 곳이라 두 종족의 강자들이 여기서 많이 죽었대요. 그래서 전설에 의하면 선마의 피가 이곳 갈대에 뿌려져 붉게 물들었다고 하던데요?”

    심협은 그 말을 웃어넘겼다.

    어느새 비주는 갈대 늪에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줄기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는데, 그 순간 심협의 낯빛이 변했다.

    무만아도 곧장 손을 흔들어서 세 개의 푸른색 피장환을 꺼내 하나씩 건넸다.

    받아서 바로 복용하니 숨쉬기가 편해졌다.

    연연은 두 손으로 약환을 안은 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곳의 공기 중에는 보이지 않은 독장(毒瘴)이 있어서 바깥보다 더 위험해. 어렸을 때부터 여기서 살아온 너는 이런 독에 익숙해졌을 테니 이상함을 못 느끼는 것도 당연하지.”

    무만아의 친절한 설명에 연연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제 괜찮으니까 계속 가자.”

    그때, 앞에서 바람이 불어오더니 순식간에 온 하늘을 휩쓰는 광풍으로 변했다.

    휘이잉!

    갈대밭이 광풍에 휘날려 격렬하게 춤추기 시작했고, 수많은 분홍색 잎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면서 하늘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을 심협은 신기한 듯 바라봤지만, 옆에 있던 연연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환무(幻霧)예요! 아무래도 신기요(蜃氣妖)를 만난 것 같아요!”

    연연이 울상을 지었다.

    “신기요? 그건 또 뭐야?”

    “운몽택 깊은 곳에 사는 거대한 정괴예요. 운몽택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신기요가 있긴 한데, 그것들은 신기요와 다른 정괴들과 결합하여 낳은 후손이라 본명환술을 사용할 수 있고, 바람이나 물, 번개, 불과 같은 술법을 사용할 수도 있어요.”

    “그럼 운몽택의 정괴는 무슨 술법을 사용하지?”

    “사실 신기요가 사용한 환무에 빠지면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해서 그들이 무슨 술법에 능한지 아무도 알지 못해요.”

    연연이 절망한 눈빛으로 말했다.

    “걱정 마, 우리는 이제 막 들어왔으니까 왔던 길 그대로 나가면 될 거야.”

    심협이 연연을 안심시켰다.

    전설에 의하면 이무기는 용족과 조개 정괴가 낳은 후손으로, 용족의 강력한 혈통을 가진 데다 환술에는 다른 어떤 생령보다도 뛰어난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환상을 잘 만들고 사람을 현혹한다고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기루는 사실 그들이 뱉어낸 신기(蜃氣)가 변한 것이고도 알려져 있다.

    심협은 방심하지 않고 비주의 방향을 돌렸다.

    주변에는 분홍색 안개가 자욱했고, 시야는 점점 흐려졌으며, 주변 갈대들의 높낮이가 변했다. 그리고 그제야 심협은 기이함을 감지했다.

    그는 법력을 끌어올리며 갑자기 소매를 휘둘렀다.

    회오리가 그의 소매에서 날아가 전방 백 장 안의 안개를 제거했다.

    짙은 안개가 거두어지자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십여 장 앞에 우뚝 속은 거대한 산이 있었는데, 그들의 비주는 그 산으로 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협이 서둘러 비주를 멈췄지만, 결국 피하지 못하고 충돌했다.

    쾅!

    날갯짓을 해 허공으로 떠오른 연연과 달리 심협과 무만아는 휘청거리다가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심협은 산으로 날아가 손으로 표면을 만져봤다. 손에서 전해지는 딱딱하고 차가운 돌의 감촉과 수많은 이끼의 미끈거림은 절대로 환상이 아니었다.

    “운몽택에 이렇게 큰 산이 있었나?”

    심협이 돌아보며 묻자 무만아와 연연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적 없어요.”

    이들도 심협 옆으로 날아와 산을 만지며 살폈다.

    “이건…… 너무 사실적인데요? 이것도 신기요가 만들어낸 환상일까요?”

    연연의 감탄을 들으며 무만아는 산에 손을 댄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산에서 짙은 생명력과 초목의 기운이 느껴져요. 이건 절대 환술로 만들어낸 게 아니에요.”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뜨며 말하자 심협은 유명귀안으로 자세히 살핀 후, 금세 신통을 거두었다.

    “정말 대단한 환무로군. 내 영목 신통으로도 허점이 보이지 않아.”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연연, 무슨 방법이 없을까?”

    무만아의 질문에 연연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날갯짓을 하며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이전에 파파께서 혹시라도 환무에 들어가면 신수의 반응을 의지해 신수가 있는 쪽으로 움직이라고, 절대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요 때문에 신수를 느낄 수가 없어요.”

    연연이 초조하게 말했다.

    “여기서 갇혀 죽을 수는 없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연연이 서둘러 말렸다.

    “어째서?”

    “파파가 말해준 전설 중에, 환무 깊은 곳에는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물건이 있댔어요. 실수로 들어갔다가는 정말 죽게 될 거예요.”

    “하지만 계속 여기에 있을 수도 없잖아. 이 산이 이렇게 사실적이란 걸 환무가 매우 강하다는 의미야. 여기 머물수록 더욱 위험해질 거야.”

    그때, 무만아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한번 해볼게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제게 우리 일족의 신수와 소통할 수 있는 비법이 있어요. 천하의 신수들은 서로 지맥이 연결되어 있으니 어쩌면 제가 은행나무 신수와 소통해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거 좋은 방법이야.”

    “잠시만 기다려줘요. 바로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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