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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00화 (700/1,214)
  • 700화. 구두성군(九頭聖君)

    눈앞에서 달빛이 반짝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심협이 어느새 백의의 남자 눈앞에 나타나더니 그대로 금빛 용각추로 상대의 가슴을 찔렀다.

    백의의 남자는 용각추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룡의 기운에 온몸의 피가 억누를 수 없는 파동을 일으켰다. 세상 모든 물의 후예는 교룡의 지류였기에 천성적으로 진룡에게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는 법력을 운공했고, 두 눈이 보랏빛으로 반짝였다. 이에 억지로 몸에 힘을 주어 간신히 압박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었다.

    푹!

    용각추가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허나 상대의 가슴에 핏자국이 보이지 않자 심협은 눈이 가늘어졌다.

    ‘속았다!’

    용각추는 마치 허공을 찌른 것처럼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눈앞에 있던 백의의 남자는 빠르게 쪼그라들어 빈 가죽 주머니처럼 변하더니 오히려 심협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리도 너무 가까웠고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심협은 미처 손을 떼지 못하고 몸을 크게 돌렸다.

    쪼그라든 가죽 주머니는 그를 덮치지 못하고 그의 한쪽 팔만 감싼 채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자의 껍질에는 무늬가 가득했다. 바로 물구렁이가 벗어버린 뱀 가죽이었다.

    심협의 팔을 감싼 뱀 가죽에서 갑자기 초록 빛이 번득이더니 부패의 기운이 빠르게 흘러나왔다.

    심협의 옷은 빠르게 녹으면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신념을 움직여서 팔에서 붉은빛을 뿜어냈다. 홍련업화가 뿜어져 나와 그의 피부를 보호했다.

    불꽃과 만나자 초록빛 뱀 가죽은 갑자기 팽창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바로 사월보를 시전하여 백 장을 물러나 장우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무만아 등으로부터 멀어졌을 때, 팽창하던 뱀 가죽이 갑자기 폭발했다.

    퍼펑!

    짙은 검푸른 독 기운이 흘러나와 심협을 뒤덮었다.

    다행히 제때 호흡을 멈추긴 했지만, 목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고, 뒤이어 시선도 흐려졌다.

    그때,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심협의 몸이 초록빛으로 빛나면서 오래된 진도(陣圖)가 떠올랐다.

    진도에서 가느다란 초록 빛이 솟아오르더니 끊임없이 심협의 몸을 씻어냈다.

    심협은 온몸에서 상쾌함을 느꼈고, 시야도 다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자가 무만아의 뒤에서 쏜살같이 달려와 기습하려는 게 보였다.

    “조심해!”

    무만아는 즉각 양손으로 결인하며 외쳤다.

    “형극무(荊棘舞)!”

    다음 순간, 그녀가 서 있는 땅이 강렬하게 흔들리더니 검은색 강철 바늘이 가시처럼 달린, 팔뚝 두께의 덩굴이 땅속에서 쑥 솟아 나와 달려오는 백의의 사내를 공격했다.

    사내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시덩굴에 처박혔다.

    무만아는 가볍게 뛰어올라 가시덩굴로 들어가더니 양손을 휘둘렀다.

    땅의 가시덩굴이 미친 듯이 자라나더니 서로 교차하고 뒤엉키며 백의의 사내를 그 자리에 꽁꽁 묶었다.

    하지만 그는 사악하게 웃더니 본체인 하얀 뱀으로 변하여 헤엄치듯 빠져나왔고, 다시 무만아를 향해 돌진했다.

    무만아가 양손을 휙 거두자 가시덩굴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하지만 눈처럼 하얀 뱀은 가죽이 강철처럼 단단했고, 가시에 긁혀도 불똥만 튈 뿐, 치명적인 상처는 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가시덩굴에서 빠져나와 입을 쩍 벌려 무만아의 머리를 물려고 했다.

    “진토환(塵土丸)!”

    무만아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그 순간, 땅이 노란색으로 빛나더니 두 개의 흙으로 만들어진 인형들이 빠르게 솟아 나와 물구렁이의 머리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두 개의 도가 좌우에서 머리를 내려쳤지만, 물구렁이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두 개의 교차한 도에 끼여서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구렁이의 입은 무만아 코앞까지 왔으나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이때, 그의 입에서 새빨간 혀가 갑자기 휙 튀어나와 무만아를 찔러 들어갔다.

    “무살(霧殺)!”

    붉은 빛이 공격하는 순간, 무만아의 몸이 안개처럼 변하여 사라졌다.

    뒤이어 사방에서 짙은 안개가 피어올라 사방 백 장을 뒤덮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안개 속에서 심협의 신식도 강한 방해를 받아 무만아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무언가 잘려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주변에 가득하던 안개도 점점 걷히기 시작했다.

    땅에는 피가 흥건했고, 한 마리 거대한 구렁이가 머리가 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무만아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서 있었다.

    “대단해!”

    심협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무만아는 언제나 온화했는데, 일단 전투가 시작되니 질풍노도처럼 술법을 시전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편, 무만아는 심협이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자 왠지 부끄러워졌다.

    그녀의 창백했던 얼굴이 발그레해지더니 양손으로 법결을 결인했다. 주변의 허공에서 실오라기 같은 순수한 목속성 원기가 모여들어 초록빛으로 변하여 그녀를 감쌌다.

    심협은 시선을 돌려 아직 번개 그물에 갇힌 정매들을 풀어주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쓰러져 있던 물구렁이의 사체에서 갑자기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머리가 잘린 부위에서 살점이 꿈틀댔고, 곧장 사람 머리가 튀어나오더니 장검을 물고 무만아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신목은택으로 법력을 회복 중이라 무방비였던 무만아는 피할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던 심협이 쏜살같이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면서 구여마갑이 순식간에 나타나 그대로 장검을 막아냈다.

    챙!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구여마갑 겉에 흐르던 빛무리는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고, 심협이 기합을 넣자 마갑에서 마기가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강렬하게 돌진했다.

    물구렁이 요물은 강력한 힘에 휩쓸려 멀리 날아갔다.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던 심협은 곧장 사월보를 시전했다.

    쾅!

    심협의 한쪽 발이 연속으로 잔상을 만들어냈고, 그 강력한 힘은 목숨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물구렁이의 몸에서 콰직 하는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늑골이 완전히 부러졌을 뿐만 아니라 척추도 세 동강 난 것이 느껴졌다.

    물구렁이는 몸부림치며 일어나려 했지만, 붉은 장검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으윽!”

    물구렁이의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얌전히 있어. 안 그러면 불태워서 잿더미로 만들어주마.”

    물구렁이는 순양비검에 담긴 홍련업화의 위력이 느껴졌기에 비명을 참았다.

    “날 죽이려고? 우리 대왕이 누군지 모르는 것이냐?”

    물구렁이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모른다. 어디 한번 말해봐.”

    “흐흐흐, 그래서 네놈이 겁도 없이 날 공격한 것이구나. 우리 대왕님은 바로 구두성군(九頭聖君)이시다.”

    물구렁이는 당황했지만, 이내 음산한 목소리로 답했다. 상대가 그 이름을 들으면 두려워 도망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심협은 그게 뭐냐는 듯 눈을 끔뻑거렸고, 이에 물구렁이는 어이가 없었다.

    “구령원성(九靈元聖)은 들어봤어도 구두성군은 처음 듣는데?”

    한참을 생각해봤지만 심협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인물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떤 자냐? 경지는 어떻게 되지?”

    “너…… 정말로 우리 대왕님을 모르는 거냐?”

    물구렁이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대답이나 해!”

    심협이 손가락을 튕기자 물구렁이 가슴 앞에서 갑자기 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물구렁이는 괴로움에 발악했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외쳤다.

    “나한테서 우리 대왕님의 정보는 얻지 못한다! 꿈도 꾸지 마라!”

    심협은 혀를 차더니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홍련업화가 그대로 돌진하여 물구렁이의 신혼을 태우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물구렁이는 바로 엄청난 비명을 질러댔다. 이 끔찍한 고통은 육체의 고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이 모습에 막 풀려난 정매들은 몸을 덜덜 떨었다. 멀리 도망치고 싶었지만, 감히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비홍 언니, 일족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정말 없는 거야?”

    연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무만아가 초목의 정화를 모아서 만든 영액을 마시고는 한숨을 돌린 비홍은 연연을 돌아보더니 빨갛게 물든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연의 얼굴에는 슬픔이 서렸지만, 이내 원망과 분노를 뿜어내며 물구렁이 요물을 노려봤다.

    “심 오라버니, 어때요?”

    무만아가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고집불통이야. 신혼이 불타면서도 쓸 만한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어.”

    “나뭇잎 정매 일족의 땅으로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모두 부서져서 이제 연연과 비홍만 남았대요.”

    무만아의 씁쓸한 목소리에 심협은 이미 예상했음에도 분노가 치솟았다.

    “그래, 말하지 않을 거라면 살려둘 이유가 없지.”

    심협이 싸늘하게 내뱉더니 손을 천천히 들었다.

    물구렁이는 심협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용서를 빌기는커녕 저주했다.

    “날 죽이면 우리 대왕님께서 널 갈기갈기 찢어서 뼈를 갈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것이다!”

    심협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을 위로 올렸다. 순양비검의 불꽃이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면서 물구렁이 가슴의 상처가 점점 커졌다. 이제 곧 죽을 터였다.

    그때, 약간 겁먹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어쩌면 제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협은 홍련업화를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미질화 정매가 연연과 함께 그들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무슨 방법이라도……?”

    “대인께서 저자의 신혼을 상하게 했으니 지금은 많이 약해졌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미질화 정매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심협은 미질화 정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던 원사 등의 말을 떠올렸다.

    “그럼 수고해줘.”

    심협이 포권하자 미질화 정매는 과한 인사를 받은 것처럼 손사래를 쳤다.

    그녀가 다가오자 물구렁이는 콧방귀를 뀌더니 버럭 외쳤다.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썩 꺼지지 못…….”

    그가 욕을 퍼붓는 순간, 몇 개의 가시덩굴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강하게 묶었고 입도 틀어막았다.

    물구렁이가 강렬하게 발악하자 심협이 강하게 발로 짓눌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발악했지만, 미질화 정매의 머리에 달린 두 개의 가느다란 더듬이가 쭉 늘어나 그의 양쪽 귀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물구렁이는 발버둥을 멈췄다.

    미질화 정매의 몸에서 화려한 빛이 번득이기 시작하더니 그 빛은 두 개의 더듬이를 타고 끊임없이 물구렁이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물구렁이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평온해졌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마치 좋은 꿈을 꾸는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잠시 후, 미질화 정매가 천천히 두 눈을 뜨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이 지나가자 화려한 빛의 가루들이 떨어져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고 점점 모여들어 희미한 화면으로 변했다.

    점점 선명해진 화물에는 요물들의 술자리가 비쳤다.

    가장 상석에 있는 것은 물구렁이 요물이 아니라 머리에 은색 투구를 쓰고 몸에 갑옷을 걸친, 매우 크고 음험한 사내였다.

    그가 술잔을 들어서 물구렁이의 공을 치하했다.

    “저자는!”

    심협은 음험한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심 오라버니, 아는 사람이세요?”

    “음…… 원수라고 할 수 있지.”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험한 남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꿈속에서 만났던 마족 12존자 중 하나인 구두충, 강력한 태을 경지의 수사였다. 만약 정말로 그자가 맞다면 현재 자신의 경지로 찾아갔다가는 헛되이 죽고 말 것이다.

    이런 생각에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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