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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98화 (698/1,214)
  • 698화. 흉신(凶神) 대요

    심협은 안내등을 회수하고는 연연의 아내에 따라 비주를 몰아 운몽택 깊은 곳으로 향했다.

    깊이 들어갈수록 안개가 자욱해져 신식마저 방해받기 시작했다.

    수역의 넓은 늪지를 지나 백여 장 정도 갔을 때, 연연이 비주를 멈추게 하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앞에 피어오른 연기를 바라봤다.

    “왜 그래?”

    “이 호수를 우리는 경연호(鏡煙湖)라고 부르는데 안에는 포악한 물 원숭이가 살고 있어서 우리는 감히 접근조차 못 했어요. 돌아서 가는 게 좋겠어요.”

    연연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게 좋겠구나.”

    심협도 괜히 문제가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는 바로 비주의 방향을 바꿔 경연호 오른쪽으로 우회했다.

    한데 비주가 절반 정도 지났을 때, 경연호 쪽에서 갑자기 짐승의 포효가 들려오더니 거대한 성벽 같은 백 장 높이의 파도가 몰려왔다.

    심협은 재빨리 손을 들어 파도를 향해 뻗었다.

    수백 장 길이의 검기가 그에 손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하늘 끝에서부터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고, 파도는 절반으로 갈라졌다.

    촤아악!

    갈라진 파도가 양쪽으로 떨어지는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그때, 수십 장 높이의 거대한 그림자가 호수를 건너 심협 쪽을 향해 달려왔다. 생김새는 원숭이 같았는데 몸에는 털 대신 푸른 비늘이 가득했고, 손과 발 사이에는 물갈퀴가 있었으며 온몸에서 포악한 기운을 풍겼다.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보자 몸 곳곳에 상처가 있었는데, 특히 오른쪽 어깨와 가슴에는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고, 비늘도 많이 벗겨져 있었다.

    상처가 모두 낫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 생사를 건 싸움을 치른 듯했다.

    “진정해! 우리는 그냥 길을 건너가려는 거야!”

    물 원숭이가 돌진해오자 연연이 황급히 날아올라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물 원숭이는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현재 그의 머릿속에는 두 명의 인간족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저리…… 비켜…….”

    물 원숭이가 소리치자 강력한 기류가 순식간에 연연을 날려버렸다. 그러자 무만아가 바로 날아올라서 조심스럽게 그녀를 받았다.

    물 원숭이의 흉악한 눈빛은 심협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녀석은 두 발로 수면을 강하게 때렸는데, 그러자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동시에 물 원숭이의 몸은 단숨에 높이 뛰어올라 심협의 머리를 향해 두 주먹을 휘둘렀다.

    물 원숭이의 경지가 출규기 절정밖에 되지 않았기에 심협은 약간 안도하며 두 손을 높이 들어서 허공을 잡았다. 현황일기곤이 나타났다.

    쾅!

    물 원숭이의 주먹이 현황일기곤을 때리자 갑자기 산의 거대한 힘이 짓누른 듯했다.

    심협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두 팔도 전혀 구부러지지 않았다. 대신 비주가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가라앉아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편, 물 원숭이는 이 광경에 눈이 커졌다. 온 힘을 다한 자신의 일격은 자신보다 경지가 높다 해도 인간족 수사라면 육체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한데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하기도 전에 심협의 현황일기곤이 날아와 그를 뒤로 날려버렸다.

    물 원숭이의 몸이 쭉 밀려 나갔다가 호수에 빠지면서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났다.

    그가 다시 물을 빠져나오는 순간, 이미 상처를 입은 오른쪽 어깨에 강한 충격을 받고는 바로 다시 물에 빠지게 되었다.

    이쯤 되자 물 원숭이는 상대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물속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십여 장 정도 헤엄쳤을 때, 마치 주변의 물들이 그를 향해 몰려온 것처럼 갑자기 온몸이 굳어졌다.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을 때 몸이 억지로 비틀어지더니 물보라에 휩쓸려서 위로 솟구쳤고, 이내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몸은 두꺼운 물의 밧줄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가 발악하고 있을 때 불꽃으로 타오르는 비검이 날아와 미간 앞에 멈췄다.

    “왜 우리를 공격한 거지?”

    심협은 물 원숭이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죽어 마땅한 인간족이니까!”

    물 원숭이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험악하게 외쳤다.

    “그 상처…… 인간족이 한 짓인가?”

    “흥!”

    물 원숭이는 심협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목을 뻣뻣이 세우고는 죽기를 기다렸다.

    “성깔 있군. 그 상처는 인간족이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대로 말하면 목숨을 살려주지.”

    물 원숭이는 심협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입을 열었다.

    “뻔뻔한 인간족! 내가 다친 틈을 타 기습하는 것밖에 못 하지.”

    심협은 그 말에 무만아를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다시 물 원숭이를 돌아봤다.

    “기습? 공격은 네가 먼저 하지 않았느냐.”

    물 원숭이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다시 말했다.

    “내가 말한 건 네가 아니다.”

    “그럼 누구지?”

    “모른다! 전부 파렴치한 것들이었지. 내가 물구렁이에게 중상을 입은 틈에 기습했다. 나한테 절반은 먹히고 절반은 겁먹고 도망갔지.”

    물 원숭이는 그렇게 말하다가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채고는 물었다.

    “너희는…… 그놈들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닌가?”

    심협은 물 원숭이의 두서없는 말에 한숨이 나왔다.

    ‘뭐라는 거야?’

    그때, 무만아와 연연이 옆으로 날아왔다.

    “네가 말한 물구렁이가 신수를 차지한 대요의 수하 맞아?”

    영영이 물었다.

    “그렇다. 그건 왜 묻지?”

    물 원숭이가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그놈이 너를 안 죽였어?”

    “안 죽인 게 아니라 못 죽인 거지! 한 번만 더 덤비면 내가…… 껍질을 벗겨서…….”

    “사실대로 말해.”

    심협은 물 원숭이의 말을 자르며 차갑게 툭 내뱉더니 순양비검을 이 원숭이의 미간에 조금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홍련업화에 물 원숭이의 눈썹이 타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 이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죽을 뻔했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놈은 나를 죽이기 직전에 급히 돌아갔다. 급한 부름이라도 받은 것처럼…….”

    물 원숭이는 비검의 위협에 순순히 말했다.

    “급한 부름이라…… 그를 부를 수 있는 자라면 그 대요겠지. 대요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그분 말인가?”

    물 원숭이가 목을 움츠리며 말했다.

    물구렁이한테는 놈놈 거리더니 대요는 뼛속까지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그분은 매우 살벌한 흉신이다. 과거 운몽택에 처음 왔을 때 도중에 만난 요물들을 모조리 죽이고 시체조차 남기지 않으셨지. 그리고는 원수를 피하고자 계속 운몽택 깊은 곳에 숨어서 상처가 회복되기를 기다리셨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점점 모여들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물 원숭이는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그런 걸 물은 게 아니다. 대요는 어떤 종족이지? 경지는? 어떤 신통을 사용하지?”

    “그건…… 나도 모른다. 그분과 싸워서 살아 돌아온 자가 없으니까. 그분의 심복인 대요들 외에는 운몽택에 사는 정매와 요괴 중에는 그분에 대해 정확히 아는 자가 없을 것이다.”

    심협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 대요가 수하들을 급히 부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얻은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닌가.

    “됐다. 이제 가라.”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물 원숭이를 감고 있던 물줄기가 사라졌고, 동시에 비검도 물러났다.

    “날 안 죽이는 거냐?”

    “왜? 죽여주기를 바라느냐?”

    심협이 흘끗 노려보며 말하자 물 원숭이는 두 손을 모아 포권을 하고는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이내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며 멀리 헤엄쳐 갔다.

    한데 백 장 정도 간 그가 갑자기 머리 위로 머리를 내밀고는 심협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너희가 왜 대요에 대해 묻는지 모르겠다만, 죽고 싶지 않으면 그분을 건드리지 마라!”

    이어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더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은데…….”

    연연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나쁜 놈들이 다 험상궂게 생기 것은 아니다. 험상궂게 보여도 모두가 다 악을 저지르는 건 아니니까.”

    심협의 말에 연연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물구렁이는 아주 잘생겼지만, 뼛속까지 나쁜 놈이었어요. 그놈보다 더 나쁜 놈은 없을 거야.”

    그러더니 심협을 힐끗 바라봤다. 갑자기 그가 매우 잘생겨 보였다.

    연연은 고개를 두어 번 도리질하더니 날갯짓하여 다시 무만아에게로 갔다.

    다시 출발하고 한참을 날아가던 중 연연이 심협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 대요가 매우 무섭고 강하다는 데 그래도 갈 건가요?”

    “가야지.”

    “왜요? 저를 위해서 우리 일족을 찾아주려고요?”

    “당연히 아니지.”

    심협의 칼 같은 대답에 연연의 날개가 조금 처졌다. 조금 실망한 모양이다.

    “우리의 목적은 그 대요가 아니라 신수다. 당연히 너를 도와 일족을 찾을 것이나, 은행나무 신수의 원액도 얻어야 하거든.”

    그제야 연연의 날개가 다시 활짝 펴졌다. 오히려 ‘그래, 널 위해서야’라는 말보다 믿음이 가고 더 마음에 들었다.

    무만아는 그 모습을 보고는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매 중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소수 종족 외에는 대부분 이렇게 순진해서 희로애락이 겉으로 다 드러난다.

    * * *

    며칠이 지났다.

    운몽택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하늘의 먹구름은 더 짙어져 벌써 3일째 태양을 보지 못했다.

    늪지 안은 온도도 매우 높았고, 흙탕물 속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장우(瘴雨)가 내리려나 봐요. 서둘러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겠어요.”

    무더운 환경에 힘이 빠진 연연이 무만아의 어깨에 누워 하늘을 가리켰다.

    “장우가 뭔데?”

    무만아가 물었다.

    “저 구름은 일 년 내내 흩어지지 않은 부패한 기운이 뭉쳐서 만들어진 독장운(毒障雲)이에요. 저것들은 계속 쌓이다가 때가 되면 장우를 뿌리죠. 장우는 독성이 독장운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저 같은 정매에게는 상당한 골칫거리랍니다.”

    연연이 정신을 좀 차리고는 설명했다.

    “그럼 비를 피해야겠구나.”

    “저쪽으로 백 리 정도 가면 거대한 우산처럼 생긴 나무가 있을 거예요.”

    심협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속도를 높였다.

    콰르릉!

    그들의 머리 위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커다란 천둥은 광야에 오랫동안 머무르다가 조금씩 사라졌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사방에서 자욱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연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반경 수천 리를 모두 뒤덮어버렸다.

    무만아의 어깨에 엎드려 네 개의 날개를 활짝 펼쳐서 비를 막으려던 연연은 자신만이 아니라 비주에도 비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이런 공수지술은 심협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던 것이다.

    “심 오라버니, 이런 신통이 있으면 비를 피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니에요?”

    연연은 처음으로 ‘심 오라버니’라고 불렀지만,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왔으니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사실 연연은 며칠 내내 방향을 분별해내느라 매우 피곤했고, 이를 알아챈 심협이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연연은 그 말에 헤벌쭉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방의 광야에 어슴푸레한 거대한 물체가 마치 커다란 우산처럼 생겨서 반경 백 장을 뒤덮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본 ‘거대한 우산’은 수십 장 크기의 거대한 나무였다.

    줄기는 굵고 꼿꼿했으며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주변을 전부 가리고 있었다.

    “다 왔다!”

    연연은 그제야 다시 생기가 돌아 날아갈 듯이 말했다.

    “이전부터 장우가 내릴 때마다 미처 집에 가지 못한 정매와 정괴들은 모두 나무에서 비를 피하는데, 그때는 천적끼리도 공격하지 않아요. 다만, 그들은 엄청 겁쟁이라 특히 인간족이나 마족을 무서워하니까 겁을 주면 안 돼요.”

    연연이 서둘러 당부하자 무만아와 심협은 서로를 바라본 후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들이 나무 아래로 내려가려는 순간, 갑자기 나무 위로 불꽃이 떨어졌다.

    콰쾅!

    사람 머리만 한 불꽃이 나무 위에서 폭발하면서 수많은 불똥이 튀었고, 불길이 일었다.

    평범한 불꽃이 아니었고, 불길도 거세고 사나워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옮겨 붙어 금세 나무 윗부분을 뒤덮었다. 세차게 내리는 장우도 불길을 꺼트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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