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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97화 (697/1,214)
  • 697화.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심협의 비주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 그림자가 갑자기 실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10장 앞의 수역이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다. 이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커다란 그물이 갑자기 수축하면서 엄청난 양의 새하얀 번개가 방출됐다.

    꽈르릉!

    번개가 수면을 때리자 수면 밑바닥에서 짙은 핏기가 돌았다. 물속에서 살던 물고기나 새우들이 번개에 감전되었고 또 번개 그물에 잡혀 들어가고 있었다.

    “으아앙!”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개구리 정괴가 번개 그물에서 발버둥 쳤지만 빠져나오지 못했고, 점점 줄어드는 번개 그물에 잡힐 듯 했다.

    무만아가 더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으나 심협이 말렸다.

    그녀가 의아한 눈으로 돌아보니 심협이 손을 휘둘렀다. 소매에서 푸른색 부적이 쏜살같이 날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번개 그물이 일으킨 파도로 날아갔다.

    꽈르릉!

    다시 한번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부적에서 번개가 뿜어져 나와 번개 그물과 뒤섞였다. 다만 서로 융합하기는커녕 번개 그물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이미 도망치기를 포기했던 개구리 정괴는 살길이 보이자 곧장 튀어 올라 그 구멍으로 빠져나오더니 물속으로 도망쳤다.

    다음 순간, 수면이 출렁이며 거대한 파문이 일어났다. 이어서 마치 대포가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물기둥이 흩어지자 개구리 정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속에서 며칠 동안 매복하고 있던 인간족 수사는 화를 내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번개 그물이 왜 망가진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기에 그저 수면을 때리며 욕설을 퍼부을 뿐이었다.

    “고마워요, 심 오라버니.”

    무만아가 기뻐하며 속삭였다.

    “이 정도로 뭘. 그나저나 운몽택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구나.”

    “왜요?”

    “늪지로 들어오기 전에 눈치채지 못한 거야?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무리를 짓지 않았느냐. 평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겨우 그것 때문에요?”

    “또한, 그 겁 많은 개구리 정괴가 나타난 것도 이상하지. 원래 서식지가 공격당해서 탈출한 모양이구나. 운몽택 외곽까지 도망친 것을 보면 운몽택 안에 변고가 생긴 게 분명해.”

    “은행나무 신수와 연관이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 아닌 듯하구나.”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수면에서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더니 멀리서 새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마치 높은 벽이 그들을 향해 밀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비주는 곧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곳 근처까지 다가갔다.

    안개로 들어가기 전에 얼른 살펴보니 안개에는 독이 없었다. 단지 안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났고 음기도 자욱했다.

    “지금까지의 안개와는 다른 것 같으니 조심해야겠구나.”

    심협의 당부에 무만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손의 은방울을 조금 흔들었다.

    심협은 그녀가 고충으로 길을 탐색하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두 사람이 안개 속을 한참이나 지나가자 안개는 점점 더 짙어졌고, 먼 곳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심협은 등롱같이 생긴 안내등을 꺼내 천기성 상점 점원이 알려준 방법대로 아래 달린 붉은 실을 비주 뱃머리에 묶었다. 이어서 법력을 안내등에 주입했다.

    등불 안쪽에서 콩 같은 불이 툭 하고 치솟자 안에서 불꽃이 흔들렸다. 뒤이어 등불은 빠르게 부풀어 올라 허공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3장 높이까지 날아오른 후로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심협이 바라보자 등불 안의 부채꼴 모양 무늬가 불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이 무렵 호수의 바람 소리는 점점 커졌다. 한데 허공에 떠오른 안내등은 예상치 못한 바람에도 날려서 뒤로 날아가지 않고 오히려 바람을 맞으며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마치 무언가가 안내등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런 거였군. 똑똑한데? 저렇게 간단하게 안내등을 만들어 돈을 벌다니.”

    무만아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뭐가 보여?”

    “심 오라버니, 등불 안에 뭐가 있는지 보이나요?”

    “잎…… 은행나무 잎 같은데?”

    “저게 우리가 찾는 신수의 잎이에요. 안내등의 원리는 은행나무 신수의 잎사귀가 뿌리로 돌아가려는 특성을 이용한 거예요.”

    “나뭇잎이 뿌리고 돌아간다고?”

    “은행나무 신수의 잎은 떨어질 때 그 안의 영기가 다 사라지기 전에 신수에게 이끌려 뿌리로 떨어져서 다시 힘으로 변하여 신수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그렇구나! 그럼 우리는 안내등만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고 신수가 있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겠지?”

    심협이 무만아에게 물었을 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허공에서 유유히 들려왔다.

    “안내등만 따라가다가는 당신들은 죽게 될 거예요.”

    “누구세요?”

    무만아가 놀라서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심협도 바로 허공을 돌아봤는데, 안내등의 붉은 실이 어딘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굽어 있었다.

    무만아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손바닥만 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바로 이전에 그들이 놔줬던 나뭇잎 정매가 붉은 실에 반쯤 기대어 앉아 있었던 것이다.

    “너…… 왜 다시 돌아온 거야?”

    “이 꼬마는 가지 않고 계속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어.”

    “정말요? 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내가 따라오는 걸 알았나요?”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야.”

    무만아는 그제야 심협이 오는 내내 평온한 척했지만 사실은 운몽택에 들어온 뒤부터 줄곧 마음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주변을 경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제가 따라오는 걸 알고 있어서 개구리 정괴도 구해준 건가요?”

    나뭇잎 정매는 붉은 실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고는 물었다.

    이 말은 좀 뜬금없었기에 무만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정매를 바라봤다.

    심협도 어이없다는 실소를 터트렸다.

    “그러고 싶으니까 그런 거지, 내가 굳이 너에게 호감 살 필요가 있겠느냐?”

    그 말을 듣고서야 무만아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나뭇잎 정매는 심협이 자신을 놓아주고 개구리 정괴를 도와준 것이 자신의 호감을 사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라고 오해한 것이었다.

    심협의 반응은 그녀에게 확실한 답을 주었다.

    나뭇잎 정매는 그 말에 얼굴이 빨개지며 입을 삐죽 내밀더니 입을 다물었다.

    “너야말로 왜 우리를 따라온 거지?”

    나뭇잎 정매는 심협의 딱딱한 말투에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허공에서 내려왔다. 그러더니 한 손은 허리에 대고 한 손으로는 심협의 코를 누르며 말했다.

    “잘 들어요. 난 당신을 따라온 게 아니라 저 언니를 따라온 거라고요.”

    “아하, 그렇구나? 한데 저 언니는 날 따라오고 있단다. 그러니 결국 너도 나를 따라온 것 아니겠느냐.”

    “그, 그게…….”

    나뭇잎 정매는 화가 났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난 무만아, 여기는 심협 오라버니야. 넌 이름이 뭐니?”

    “연연(鳶鳶).”

    나뭇잎 정매는 심협을 노려보고는 다시 무만아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연연…… 좋은 이름이네. 그런데 왜 우리를 따라온 거니?”

    무만아가 생긋 웃으며 묻자 연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만아 언니, 지금 신수를 찾으러 가는 거 맞나요?”

    연연은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응, 맞아.”

    “그럼 절대로 저 등을 따라가서는 안 돼요.”

    연연은 머리 위의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옆에서 심협이 불쑥 끼어들어 물었다.

    “아직 모르는군요. 신수는 지금 대요(大妖)가 점령한 상태예요. 그는 다른 사람이 신수를 더럽히는 걸 막기 위해서 신수 주변에 결계를 설치해놓고 신수의 기운이 퍼져 나가는 걸 막아버렸어요. 그래서 지금 신수의 잎으로 만든 안내등은 소용없죠. 오히려 이상한 곳으로 안내해 운몽택 안에서 길을 잃게 될 걸요?”

    연연이 설명했다.

    “대요? 어떤 대요지?”

    “저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연연은 자신의 대답에 심협과 무만아가 어리둥절해 보이자 설명을 이어갔다.

    “대요 밑에는 강한 요괴들이 엄청 많아서 우리 같은 정매나 정괴들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어요. 싸워보지도 못했죠.”

    “그 대요는 왜 은행나무 신수를 점령한 거지?”

    “신수가 곧 열매를 맺으려 하니까요.”

    예상치 못했던 사실에 심협과 무만아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때를 잘 맞춰 온 것이었다.

    “당신들은 신수의 열매 때문에 온 게 아니었나요?”

    연연은 두 사람의 반응에 의아한 듯 물었고, 심협과 무만아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이때쯤 운몽택에 들어오는 수사들은 하나같이 신수의 열매 때문에 오던데……. 이 열매는 5백 년에 한 번 열려서 평범한 동물들이 먹으면 영지가 열리고 저 같은 정매가 먹으면 수명이 백 년 늘고 경지가 올라요. 인삼과 같은 천재지보와 비슷하죠.”

    심협은 운몽택에 신수가 있는지도 몰랐으니 5백 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린다는 사실이나 그 효능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자신도 여기에 와서 운에 맡겼으리라.

    “일족의 선배님들은…….”

    계속 말하려던 연연이 어째서인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왜 그러니?”

    무만아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번에 그 대요의 수하인 물구렁이 요괴가 우리가 사는 곳까지 쳐들어와서 일족을 죽였어요. 그때…… 어렸을 때부터 날 키워준 파파까지 잡아 먹혔고요. 그래서…… 갈 곳이 없어서…….”

    연연은 눈이 빨개졌고, 기분이 축 처지자 날개도 같이 축 늘어졌다.

    “연연아…….”

    무만아는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너희 일족 중에 또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심협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저는 바로 인간족 수사들에게 잡혔었거든요. 그래서 누가 살아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연연은 괴로운 표정으로 낮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우선 다른 일족 사람들부터 찾아봐야지.”

    연연은 심협의 말에 그제야 눈빛이 살아났다.

    “맞아요. 먼저 찾아봐야겠어요.”

    “우리가…….”

    무만아는 입을 열었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도와줄게.”

    “정말요? 날 구해주고 또 도와주겠다니, 당신들은 제가 만났던 사람 중에 제일, 진짜 제일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럼 난 신수를 찾는 걸 도와줄게요!”

    연연이 감격한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껏 만난 사람들은 다 그녀를 붙잡아 팔아치우려 들었던 모양이었다.

    “좋아, 그럼 우리는 지금부터 동맹이야.”

    무만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와 대요에 관해서 더 아는 게 있어?”

    “제가 도망칠 때쯤 신수는 벌써 향기를 풍기고 있었어요. 열매가 열릴 때가 가까워진 거죠. 열매가 열리면 하루 동안 필요한 일정월화(日精月華)를 흡수해야 익어요. 그리고 은행 영과는 모두 익으면 하늘을 감지하고는 스스로 날아서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운몽택의 생령들은 그것을 기연으로 얻을 수 있어요.”

    “대요가 결계를 치고 은행 영과를 독차지한 게 아니었어?”

    “일족 선배님께 들은 바로는 은행 영과가 날아오를 때는 움직임이 매우 심해서 평범한 정괴들은 막을 힘이 없대요. 그래서 그것들이 떨어지면 그때 차지한다고 들었어요.”

    “대요에 관해서 더 아는 게 있어?”

    심협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물었다.

    “옛날부터 운몽택 깊은 곳에 살고 있었는데, 줄곧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발톱을 드러내더니 신수를 독차지했죠. 그리고 다른 요물이나 정매들이 손도 못 대게 하고 수하들을 보내서 우리까지 죽인 거예요!”

    심협은 다시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쨌든 너희 일족부터 찾아보고, 신수는 그다음에 생각하자.”

    그 말에 연연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정매들은 순진하고 순수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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