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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96화 (696/1,214)
  • 696화. 배부른 식사

    성에서 7, 8리 정도 가자 공기가 습해지기 시작했고, 물비린내가 감돌았다.

    심협과 무만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만아의 어깨 위에 있는 나뭇잎 정매만 점점 생기가 돌았다.

    “서두르지 마. 운몽택에 도착하면 풀어줄게.”

    무만아가 가볍게 다듬자 나뭇잎 정매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해졌다.

    반 각 정도 걷자 점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운몽택 부근의 늪 기슭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인간족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선족도 있었다. 그러나 심협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몇 명의 마족이었다.

    시끌벅적한 인간족이나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요족과는 달리 마족은 세 명뿐이었는데, 매우 무기력해 보였다.

    “운몽택에 들어갈 분 중에 인간족 수사 한 분만 모집합니다!”

    “안내등! 안내등 팝니다. 운몽택 필수품 안내등입니다.”

    “피장환(避瘴丸) 있습니다. 뱀, 벌레, 쥐, 개미도 피할 수 있고 장기도 피할 수 있습니다!”

    심협 등이 가까이 다가가자 온갖 소리가 사방에서 끊임없이 들려왔다.

    한데 놀랍게도 겨우 7, 8리 떨어진 천기성 가게보다 가격이 곱절은 비쌌다.

    딱 봐도 품급에 들지도 못할 피장환은 뱀이나 벌레 같은 것들은 물리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를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가격에 팔고 있었다.

    “소저, 혼자서 운몽택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니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어떻소? 내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 출규기 경지이긴 하나 소저는 책임지고 지켜드리겠소.”

    그럭저럭 준수한 청년이 부채를 흔들며 불쑥 나타나더니 대놓고 심협을 무시한 채 무만아에게 말을 걸었다.

    무만아는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예의 있게 거절했다.

    “이미 동료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리 매정하게 거절하지 마시오. 그런 한심한 놈과 다니는 것보다는 나와 함께 가는 게 더 좋을 것이오. 내게는 호위도 있고 영주보선(靈舟寶船)도 있는데, 거기 침대가 크고 푹신하다오.”

    청년은 방자한 웃음을 띠며 무만아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심협이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을 어떻게 혼을 내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럴 것도 없이 녀석은 갑자기 입이 비뚤어지면서 옆으로 픽 고꾸라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일제히 물러났고, 멀리서 몇 명의 수행원이 서둘러 뛰어와 주변을 에워쌌다.

    “도, 도련님!”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들은 서둘러 다가와 청년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러나 청년은 입이 비뚤어진 상태라 당연히 말을 할 수 없었고, 그저 한 손을 들고 심협 등을 가리킬 뿐이었다.

    수행원 중 짧은 수염의 노인이 심협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살피다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저희 도련님께서 두 도우께 어떤 무례를 저질렀는지 모르겠으나 이 원모가 대신 사과드리니 부디 이해해주시오.”

    노인은 공손한 척 인사를 건네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운을 조금씩 개방했다.

    심협은 출규 절정의 기운을 감지하고는 속으로 실소가 터졌다. 상대는 분명히 자세를 낮추는 듯하지만, 은연중에 경지를 개방했다. 이렇게 하면 체면이라도 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리라.

    그러나 심협은 그의 체면을 세워줄 생각이 없었기에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무만아에 앞서 불쑥 나섰다.

    “사람이 자신의 눈과 입을 관리하지 못하면 응당 벌을 받는 법.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려면 직접 해야지 왜 다른 사람이 대신 사과하는 것인가?”

    그 말에 청년은 더욱 흥분했고, 붉어진 얼굴로 심협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옆에 있던 수행원들도 자신의 주인이 모욕을 당하자 눈빛이 싸늘해졌다.

    짧은 수염의 노인 역시 안색이 어두워졌다. 기껏 체면을 세워줬더니 이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덤비지 않는가!

    “내 충고하는데, 집 밖을 나오면 신중하게 행동하는 게 좋을…….”

    “만아야, 이만 가자.”

    심협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리고 짧은 수염의 노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네놈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구나!”

    노인은 호통을 치며 손을 내밀어서 심협의 어깨를 잡으려고 했다.

    심협은 피하지 않고 몰래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며 어깨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노인의 손은 허공을 휘젓고 말았다.

    노인이 다시 공격하기도 전에 심협은 용상의 힘을 폭발시키며 아래로 내렸던 어깨를 치켜들어 노인의 손목을 가격했다.

    콰직!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리며 노인의 손목은 대번에 부러졌다.

    “크아악!”

    노인은 비명과 함께 멀리 날아가 청년 옆에 쓰러졌다.

    “대, 대승기…….”

    자신의 부러진 팔목을 쥔 노인은 경악에 고통조차 잊은 듯했다.

    더 이상 실랑이하기 귀찮았던 심협은 무만아와 함께 늪지 쪽으로 향했고, 구경꾼들은 스스로 길을 내줬다.

    무만아는 일부러 차가운 표정으로 당당하게 걸었지만, 구경꾼들 사이를 빠져나간 후로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심협이 손을 휘둘러서 비주를 소환하고는 무만아와 함께 올라탔다.

    한데 출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무만아가 외쳤다.

    “심 오라버니, 잠시만요!”

    이어서 그녀가 가느다란 팔을 들어 이리저리 흔들자 손목에 달려 있던 은방울이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뒤이어 그 예의 없던 청년의 비명이 들려왔다. 보아하니 좁쌀만 한 벌레가 그의 눈꺼풀 아래 피부를 뚫고 파고들었다.

    “고충(蠱蟲)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졌는데,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이 땅에 쓰러져 있는 청년과 노인을 밟고 지나가면서 다시 한번 두 사람의 비명이 이어졌다.

    고충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다는 듯 남자의 눈꺼풀에서 빠져나오더니 투명한 날개를 펼쳐 높이 날아올라 공중으로 사라졌다.

    심협은 한 마리의 투명한 작은 벌레가 허공에서 내려와 무만아의 허리춤에 있는 작은 주머니로 기어드는 것을 바라봤다.

    “됐어요. 이제 가요.”

    무만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바로 비주를 움직여 늪지 위에 낮게 붙어서 날아갔다.

    운몽택은 매우 넓어서 바다와 다름없었는데, 대부분 깊고 얕은 수역으로 덮여 있었다. 중간에 마른 육지가 간간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질퍽질퍽한 늪이었다.

    이곳의 장기는 특이하게도 대부분 지상에서 수십 장, 높게는 백여 장 높이에 있었다. 대부분은 독성이 강하지 않았지만, 장기간 노출되면 몸에 이로울 리가 없었다.

    백 장 이상의 높이에서는 극소수의 장기 소용돌이뿐이라 크게 방해되지 않을 터이나, 그렇게 높게 날면 장기로 가려진 늪지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힘들 터였다. 운몽택에서 기연을 찾기에는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심협처럼 비주로 십여 장 높이의 허공에서 비행했다.

    비주는 평온하게 날았고, 주위에서 약간의 비린내와 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겉보기에는 보통 늪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뭇잎 정매는 무만아의 어깨에 서서 흥분한 듯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마치 왜 약속대로 안 풀어주느냐고 재촉하는 듯했다.

    “서두르지 마. 여기는 육지와 너무 가까워서 널 놔줘도 지금 네 상태로는 금방 다시 사람들에게 잡히고 말 거야.”

    나뭇잎 정매도 무만아의 위로를 이해했는지 곧장 조용해졌다.

    무만아가 손을 내밀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몸이 초록색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사방에서도 초록색 빛들이 그녀의 손바닥으로 모여들었다. 이어서 그녀가 손을 조금 오므리자 초록 빛이 점점 한 방울의 초록색 액체로 변해갔다.

    “엄청 짙은 영기로구나.”

    심협이 놀란 듯 말했다.

    무만아가 환하게 웃으며 노래를 멈추자 초록색 빛도 사라졌다.

    “나뭇잎 정매는 천성적으로 수련을 한 몸이지만 평소에는 아침 햇살과 이슬, 목월화(沐月華)를 마셔야 생기를 유지할 수 있어요. 그녀가 사흘을 못 살 거라던 점원의 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대로라면 정말 오래 못 살 거예요.”

    그녀는 초록색 액체가 담긴 손을 나뭇잎 정매 앞에 놓았다.

    나뭇잎 정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서 마셔. 많이 배고프지?”

    나뭇잎 정매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바로 무만아의 손바닥으로 올라가 엎드리더니 초록색 액체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 액체를 모두 마신 후 나뭇잎 정매의 몸에 영롱한 초록빛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별빛처럼 환하게 빛나며 그녀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나뭇잎 정매의 몸이 자기도 모르게 활짝 펴졌고 등에 있던 투명한 날개도 펴지면서 무만아의 손 위에서 가볍게 날아다녔다. 그 모습은 우아하고 날렵하여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심협이 손을 휘둘러 법력으로 정매의 발목에 있던 가느다란 사슬을 끊었다.

    나뭇잎 정매는 우뚝 멈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그녀는 무만아에게는 본능적인 친근감이 있었지만, 심협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서는 무섭고 불쾌한 기운이 느껴져서 줄곧 경계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자신을 풀어준 것이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장 날갯짓해 순식간에 높이 날아갔다. 허공에 초록색 선이 나타나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직 몸도 회복되지 않았는데 괜찮겠죠?”

    무만아는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정매는 본래 비행과 은폐에 능하니 앞으로는 더 조심하겠지. 그러니 걱정하지 마.”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무만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운몽택에 들어서자 멀리 해안선이 보였고, 한동안은 방향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심협은 비주를 몰아 늪 깊은 곳으로 향했다.

    넓은 물 위를 지나갈 때 물 위로 드러난 섬이 간간이 보였다. 그곳에는 백로 같은 새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다른 호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수십 리를 더 날아가자 수면에는 안개가 피어올랐다. 습하지 않고 독성도 없어 마치 봄날의 옅은 안개에 싸인 듯 습하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심협은 점점 긴장을 풀었다.

    전방의 수역의 색깔이 점점 진해지면서 물속의 갈대들도 점점 무성해졌다.

    한데 그때, 수초가 갑자기 물 위로 솟구쳤다. 그 사이로 두 개의 둥글고 커다란 눈동자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심협은 힐끗 쳐다보고는 무시했다.

    “저건 청개구리 정괴(精怪)인데, 겁쟁이라 경계심이 강해요.”

    무만아가 웃으며 말했다.

    “만아야, 계속 구분이 잘 안 됐는데, 정괴와 정매의 차이가 무엇이냐?”

    “그건 확실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요. 보통 정매는 암컷이 훨씬 많고, 대부분은 풀, 나무, 꽃 등 식물이 정령화된 거예요. 반대로 정괴는 대부분 수컷이고, 육태(肉胎)가 영체로 된 거죠. 다만 이것도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게, 인삼은 풀 종류이긴 해도 정괴로 분류되거든요.”

    “소문에는 정매와 정괴가 번성하는 곳은 영기가 충만하고 보기 힘든 명당이라던데, 여기는 영기도 평범해 보이는구나.”

    “음,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해요. 개구리 정괴는 겁이 많아서 대부분 진흙 속 직접 만든 수부(水府)에 숨어만 있지 지금처럼 멀리서 지켜보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아니면…….”

    “아니면 여기가 그의 서식처가 아니거나.”

    심협이 무만아의 말을 받고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래사장을 바라봤다.

    그곳은 갈대가 무성했다.

    갈대 뒤로 수면에서 잔잔한 물결이 출렁였다. 일견 평온해 보였지만, 아래로는 이상한 그림자가 보였는데, 손에 투명한 실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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