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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93화 (693/1,214)
  • 693화. 복구

    심협은 거의 말라버린 인삼과 나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심 도우, 무슨 고민이라도 있소?”

    “아니, 좀 이상해서 그렇소. 오장관에 이런 큰일이 일어났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어찌하여 진원자 선배께서는 천계에서 돌아오시지 않는 걸까요?”

    심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물음에 강신천이 답했다.

    “아, 그건 말이오, 진원자 선배께서는 사실 천정 33천(天) 밖에 있는 자소궁(紫霄宮)에서 열리는 도존법회(道尊法會)에 참석하러 가셨소. 삼청성인께서도 분신을 내려보낼 만큼 중요한 그 법회에서는 무상혼원도과(無上混元道果)를 전수받는데, 이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 진원자 선배께서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오.”

    “그렇군요. 강형은 견식이 넓으시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허허, 나는 천궁의 제자이니 천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고 있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강신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무렵, 접인도인 등은 이미 정원 밖에 있는 평범한 금제를 모두 제거해 이제 정원에는 세 개의 대진만 남아 있었다.

    접인도인은 정중한 표정으로 모두를 물리고는 경지가 높은 수사 스무 명만 불러 금제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콰쾅!

    끝없는 노란 빛이 땅에서 솟구치면서 두꺼운 노란색 사막이 만들어졌고, 은연중에 수많은 산의 허상이 보였다.

    심협과 강신천은 멀리 서 있었음에도 이 노란 사막에 담긴 난공불락의 강력한 금제의 힘을 생생하게 느꼈다.

    허나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란색 사막이 나타나는 순간, 뒤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곧 하얀 빛이 솟구치면서 하얀 광막이 생겨났다. 찬란하게 빛나는 하얀 빛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이어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보라색 법진 광막이 나타났다. 광막에서 수많은 보라색 연기가 피어오르자 부근의 허공이 부식되듯이 강하게 떨렸다.

    “대단한 법진들이오.”

    “인삼과를 보호하기 위해 진원자 선배께서 직접 설치한 만악유사진(萬岳流沙陣)과 천환현령진(千幻炫靈陣) 그리고 자문독왕진(紫紋毒王陣)이오.”

    “셋 모두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오.”

    “진원자 선배께서 직접 만들어낸 것으로, 오장관 제자 중에서도 아는 자가 별로 많지 않으니 심형이 못 들어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오.”

    “그렇군요. 저토록 비범한 위력의 금제라니, 진원자 선배는 정말 대단합니다.”

    강신천의 설명에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렇소. 만악유사진은 난공불락이고 천환현령진은 끝없는 환상에 빠져들게 하며, 가장 강력한 자문독왕진은 진법 안에 구천의 절독(絶毒)이 있어 조금이라도 닿으면 바로 뼈와 살이 녹아 죽게 되오. 진선의 존재도 예외가 아니지. 그러니 그 열매 도둑이 도대체 어떻게 저 진법 금제를 뚫고 인삼과 나무를 해쳤는지 의문인 것이오.”

    강신천의 말에 심협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제야 오홍이 어째서 자신에게서 참마검과 만독혼원주를 빌렸는지 알 것 같았다. 만악유사진의 난공불락은 참마검으로 부술 수 있고 자문독왕진은 만독혼원주로 해결 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오홍이 저 세 개의 강력한 금제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이었다. 오장관에 협력자가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인삼과 나무가 망가진 것도 오홍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물론 답은 알 수 없었다.

    접인도인 등이 세 개의 법진을 해제하는 데 족히 세 시진이나 걸렸다.

    쾅! 쾅! 쾅!

    세 번 연속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땅이 강하게 흔들렸고, 땅 깊은 곳에서 지진 같은 굉음이 울렸다. 그제야 세 개의 거대한 금제가 서서히 사라졌다.

    “법진은 모두 제거되었소. 이제 어떻게 하면 되오?”

    접인도인이 무만아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의 혈색은 좋지 않았다. 법진을 없애는 과정에서 경지가 가장 높은 접인도인이 그 후폭풍을 대부분 감당한 탓에 상처도 가볍지 않았다.

    “저에게 신목예어대진(神木囈語大陣)이 있어요. 이것으로 지모 근원의 효능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접인도인께서는 이 대진을 원 내에 설치해주시고, 출규기 이상 수사 중 목속성 공법을 수련한 수사 열 명에게 이 대진을 발동하게 해주세요. 인원이 없으면 수, 토 속성 공법을 수련한 수사도 괜찮습니다.”

    무만아가 빛이 뿜어져 나오는 포진 도구를 꺼내며 말했다.

    “그 제자 정도는 있소.”

    접인도인은 담담하게 웃고는 정원에 있는 다섯 명의 수사를 선발한 뒤 전신 법기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했다.

    반 각 뒤, 다섯 명의 오장관 제자가 멀리서 날아와 정원으로 내려왔다. 이들은 모두 대승기 수사로, 몸에서 초록빛이 흐르고 있었다. 고명한 목속성 공법을 수련한 흔적이었다.

    심협은 오장관의 저력에 내심 놀랐다. 대승기 수사는 어디서든 강자로 대접받는데, 오장관에는 목속성을 수련한 자만으로도 그런 경지의 제자 열 명을 쉽게 모은 것이다.

    무만아 역시 놀란 기색이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그들을 지휘하여 법진에 배치했다.

    반 시진 뒤, 신목예어대진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진 안은 초록빛으로 반짝였다. 마치 높이가 몇 장이나 되는 나무 같아 숲으로 이루어진 법진처럼 보였다.

    심협은 잠시 넋이 나가 있다가 무만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사기병을 건넸다.

    “대진의 발동을 돕는 분들 외에는 모두 멀리 물러나 주세요.”

    무만아의 말에 심협 등은 정원 밖으로 물러났다.

    그제야 무만아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신목예어대진을 발동하자 대진의 초록빛이 높이 솟구쳤고, 순식간에 수십 배나 커져서 높이 수백 장의 거대한 나무로 변했다. 더욱이 그 수는 정원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멀리 물러나 있던 심협 등에게도 커다란 대진의 기운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거대하면서도 순수한 을목영기가 마치 큰 강물처럼 다가와 그들의 몸에 닿았다.

    심협은 온몸 곳곳이 굳어지고 피부에 실낱같은 나무 무늬 광택이 흐르면서 마치 몸이 나무가 된 것만 같았다.

    그는 깜짝 놀라 황급히 더 뒤로 물러나 대진의 영역에서 벗어난 뒤 신목은택을 운공하여 체내의 을목영기를 풀었고, 그제야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굉장한 법진이오.”

    강신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심협은 기이한 눈빛으로 대진을 보며 거대한 신식을 넓게 펼쳤다.

    신목예어대진이 완전히 발동하자 법진의 초록빛 거대한 나무들의 뿌리가 땅 깊숙이 들어가 땅속에 있는 지맥과 연결됐다.

    수많은 초록색 부문이 거대한 나무들의 뿌리에서 흘러나와 지맥으로 들어가더니 금세 지맥 전체를 가득 덮었다.

    이 부문은 대진의 위능을 담고 있었기에 지맥 안의 원기는 순식간에 투명해졌고, 그 안에서 검은색 기운이 천천히 떠올랐다.

    “역시 지맥에도 마기가 침투해 있었구나!”

    심협은 신목예어대진에 또다시 감탄했다.

    무만아의 가느다란 열 개의 손가락이 결인하자 나머지 열 명도 다급하게 대진의 발동에 협력했다.

    지맥 안으로 흘러 들어간 초록색 부문이 일제히 떨리더니 마치 불문의 범음(梵音) 같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자연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부문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 지맥 안의 검은색 기운도 떨리기 시작했다.

    무만아는 땅속 검은 기운의 변화를 감지하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손을 뒤집어 초록색 씨앗을 꺼냈다.

    그녀가 던진 씨앗은 신목예어대진의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초록빛 나무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나무의 허상에서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점차 실체로 변하기 시작했고, 몇 호흡 뒤 완전한 진짜 나무가 되었다. 이어서 신목예어대진 안에서 을목의 기운이 일제히 파동을 일으키면서 대진 안의 커다란 나무로 모여들었다.

    한가운데의 초록색 나무는 순식간에 자라나서 금방 혼자 우뚝 솟더니 대진 안의 어떤 나무들보다도 커졌다. 이 커다란 나무 꼭대기에는 커다란 초록색 꽃봉오리가 피어나려 했다.

    모든 을목영기가 초록색 꽃봉오리에 모여들었다.

    지맥 안의 초록색 부문은 검은 기운과 함께 천천히 흘러서 거대한 꽃봉오리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검은색 기운들은 가볍게 흔들리기만 할 뿐, 빨려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역시 예어대진만으로는 안 되는 건가.”

    무만아가 한숨을 쉬고는 사기병을 꺼내 결인했다.

    한 방울의 지모의 근원이 허공을 지나 대진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수십 장 크기의 짙은 노란색 구름이 몽글몽글 솟아나 빠르게 대진 안으로 들어갔다.

    무만아가 법진을 발동하자 노란색 구름이 재빨리 지맥을 파고들었다.

    지맥의 초록색 부문은 노란색 구름과 하나로 합쳐지면서 몇 배나 짙어졌다.

    초록색 부문은 빠르게 흘러 곧장 검은 마독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모의 근원까지 더해져 위력이 막강해진 예어대진은 순식간에 노란색 구름과 부문으로 검은 마독을 끌어내 지맥에서 제거했다.

    대진 중앙의 커다란 나무의 꽃봉오리에 차오른 검은색 기운은 기다리고 있던 접인도인의 백옥 호리병 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무만아는 지모의 근원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자 안도하며 다시 조심스럽게 한 방울을 더 대진 안에 떨어뜨렸다.

    족히 반나절은 지나서야 마독은 완전히 제거됐다.

    인삼과 나무에 있던 마독은 상대적으로 쉽게 반 시진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마독이 전부 제거되자 인삼과 나무는 순식간에 생기를 되찾았다. 나뭇잎이 파릇해졌고, 인삼과도 영광을 뿜어내 영성 가득한 향으로 정원을 가득 채웠다.

    정원 밖에서 이 향을 맡은 심협은 몸이 한껏 가벼워졌다.

    “무 도우, 강 도우 그리고 심 도우도 정말 고맙소. 우리 오장관이 큰 빚을 졌소!”

    접인도인은 크게 기뻐하며 심혐과 강신천에게 날아와 감사 인사를 했다.

    심협은 편해진 마음으로 짧게 인사를 나눴다.

    무만아도 신목예어대진을 완전히 거두었는데, 매우 창백해 핏기 하나 없는 것이 법진을 발동하느라 영력 소모가 매우 큰 듯했다.

    “접인 선배님, 제가 마독을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무만아는 쉬지 않고 접인도인에게 말했다.

    “저도 마기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하였으니 어쩌면 그 내력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심협은 나서서 돕기로 했다. 그의 혐의는 모두 풀렸으나 오장관과 대당 관부는 여전히 관계가 틀어져 있었고, 정교금과 원천강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몸으로 가능하다면 그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었다.

    “물론이오.”

    접인도인은 다소 의외라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백옥 조롱박을 꺼내서 무만아에게 건넸다.

    무만아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두 눈을 뜨고 재빨리 결인했다. 그러자 초록 빛이 조롱박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떤 신통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매우 신중한 표정으로 미루어 예사롭지 않은 비술임이 틀림없었다.

    조롱박 안의 검은색 마기는 자극을 받자 천천히 요동쳤다.

    심협은 신식으로 조롱박 안의 마독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독 안의 마기는 매우 이상했다. 맑으면서도 동시에 탁한 느낌이었는데, 지금까지 봐왔던 마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마기 안에 이상한 원기가 섞여 있는 것 같다.’

    심협은 현음미동으로 살펴보고는 그렇게 판단했다.

    무만아가 두 손을 계속 결인하며 주문을 외자 조롱박 안의 마기가 용솟음치기 시작하면서 마독에서 분리되어 나오려 했다. 무만아도 마독 안에 존재하는 이상한 원기를 감지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원기와 마기는 이상할 정도로 긴밀하게 결합해 무만아의 술법에도 분리되지 않았다.

    “무 소저, 내가 도와주겠소.”

    심협은 보라색 구슬을 꺼냈다. 마족의 머리로 제련한 유령주였다.

    그가 결인하며 주문을 외우자 유령주에서 보라색 무늬가 떠오르더니 매우 기이한 사람의 얼굴로 변했다.

    이 얼굴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입을 벌리자 보랏빛이 새어 나왔다.

    마독 안의 마기는 곧장 격하게 파동을 일으키면서 유령주를 향해 흘러왔지만, 그 안의 이상한 원기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마기만을 흡수하는 것, 바로 유령주의 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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