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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92화 (692/1,214)
  • 692화. 혼인 요청

    무신단의 건물. 신목족 모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원환대진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가요?”

    무만아가 초조하게 물었다.

    “강렬했던 마기의 반응이 모두 사라졌다. 심협이 허마를 이긴 건가?”

    운중월이 머뭇머뭇 입을 뗐다.

    “그럴 리가. 좀 전의 마기는 실로 강력해 법진마저 떨렸네. 그토록 강력한 마물을 심협이 혼자서 어떻게 이기겠는가?”

    운중정은 전혀 믿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마기가 모두 사라졌으니 심 오라버니를 꺼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아직 안 된다. 마기가 사라지고 강력했던 마기 반응도 전부 사라졌지만, 아직 완벽하게 정화되지는 않았어. 그전까지는 절대로 열 수 없다.”

    운중정이 단호하게 답하자 무만아는 스승을 돌아봤다.

    “스승님…….”

    “만아야, 대장로의 말이 맞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꾸나.”

    그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원한 법진 중앙을 바라보고만 있던 강신천이 갑자기 외쳤다.

    “저기를 보십시오! 마기의 반응이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모두가 강신천이 가리킨 곳을 돌아보았다.

    법진 중앙의 푸른 영역 안에 남아 있던 먹구름 같은 검은색이 이제는 작은 점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렇군. 처음의 마기는 널리 흩어져 있었지만 색깔은 저리 진하지 않았어.”

    운중정이 진중하게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무슨 의미입니까?”

    “제 추측대로라면 저 검은 점은 심 도우의 마기일 겁니다. 이제 지하 공간에 있던 마기는 전부 사라진 겁니다.”

    강신천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아닐세. 어쩌면 마물이 마기를 모아 정련한 것인지도 모르네.”

    “마물들이 마기를 저렇게까지 정련할 수 있다면 진즉 법진을 부수지 않았겠습니까?”

    운중월의 말에 강신천이 오히려 반문했다.

    그러는 동안 무만아는 두 눈을 감고 다시 신수와 소통을 시도했다.

    잠시 후, 무만아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진짜예요! 저 마기는 심 오라버니의 것이예요! 1층에서 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모두가 그제야 경계심을 내려놨다.

    “그가 정말 해낼 줄이야.”

    “어서 봉인을 열고 심 도우를 꺼내주십시오.”

    “당연히 그래야지.”

    강신천의 재촉에 무규호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요. 심 오라버니는 지금 체내의 마기와 싸우고 있어요. 지금 상처를 회복하며 마기를 제압하고 있으니까…… 그 일이 끝난 후에 꺼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만아의 만류에 운중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

    사실 무만아는 한 가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심협은 현재 마기를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쉬지 않고 신수의 정원의 힘을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후, 강력한 봉인이 마침내 다시 열렸고, 심협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웃는 얼굴이 아닌 폭음이었다.

    퍼펑!

    폭음과 함께 원한 법진에서 금빛이 솟아올라 심협의 몸을 뒤덮었다.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심협은 갑자기 몰려온 강력한 압박감에 그대로 허리가 굽어졌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심협이 화난 얼굴로 얼굴을 간신히 들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자세히 살펴보는 것뿐일세.”

    운중정의 차가운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사방의 대진이 발동하더니 금빛이 심협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엄청난 위압감이 담긴 힘이 몸 구석구석을 지나가는 게 느껴졌지만, 딱히 해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에 심협은 화를 억눌렀다.

    잠시 후, 운중월이 말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체내의 마기도 대진에 들어갈 때와 비슷한 것을 보니 마환이 따라붙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운중정은 그 말을 듣자 손을 휘둘러서 대진의 움직임을 멈췄다.

    심협은 몸을 짓누르던 그 강력한 힘이 사라지자 잠시 운중정을 노려본 후, 일어나더니 몸 상태를 살폈다. 온몸에서 뚜둑 거리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심 오라버니.”

    무만아가 다가오자 심협은 서둘러 새로운 도포를 몸에 걸쳤다.

    “심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무만아는 얼굴을 붉히며 다가왔다.

    “괜찮소. 약속도 지켰소.”

    “지모 원액도 얻었소?”

    자신의 물음에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신천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하! 훌륭하오!”

    그때, 무규호가 다가와 사과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뿐이니 좀 전의 일은 심 도우가 이해해주게.”

    심협은 무사히 살아 돌아왔고, 대승 후기가 된 데다 지모 원액까지 얻으면서 기분이 좋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선배님, 혹시 이틀 정도 머물면서 경지를 굳건하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일세.”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번에는 운중정이 다가왔다.

    “괜찮다면 무신단에서 겪었던 일을 상세하게 들려줄 수 있겠소?”

    방금 무신단 아래에서 있었던 마기의 변화가 복잡했기에 그는 의문이 가득한 상태였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겼으나, 지모 원액을 담은 일만 상세히 말하지 않으면 다른 것은 숨김없이 말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다 같이 모여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족장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심협의 이야기가 끝나자 운중정이 무규효를 바라보며 물었다.

    “심 소우의 말대로라면 그가 만난 것은 허마가 아니라 혈부(血符)의 힘으로 변한 혈마(血魔) 같소. 아무래도 치우 마혼의 힘이 더 강해진 모양이군.”

    무규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님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들은 그대로요. 치우 분혼의 힘이 더 강해졌다는 것은 곧 본체의 힘이 더 강해졌다는 뜻이오.”

    운중정도 한층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강신천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치우의 봉인은 천궁의 대능께서 직접 굳건하게 하셨으니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심협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꿈속에서 깨어난 뒤로 그도 한동안은 마환이 정말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겪었던 일들을 통해 마환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재 사람들 대부분이 경각심을 잃은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오늘, 신목족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 예감은 더욱 강해졌다.

    “흥! 치우의 마혼이 흩어졌다고는 하나 본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변함이 없소. 마혼의 변화는 본체에도 영향을 주는 법. 천백 년 동안 틀린 적이 없소.”

    “두 분 선배님, 저는 두 분의 걱정이 터무니없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목족의 무신단은 지켜야 하니 앞으로도 신목족이 힘써주십시오.”

    심협이 탄식하며 말했다.

    “물론이오.”

    운중정의 표정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심협의 말에 기분이 풀어진 것이다. 신목족이 무신단을 지키는 것은 조상의 유지를 실천하기 위함이지만, 어쨌든 외부인에게 인정받자 확실히 기분은 좋았다.

    “대장로, 신목림을 완전히 개방하고 외부 일족의 제자를 받아들이는 일은……?”

    무규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족장님, 족장님의 생각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오래전부터 우리 신목족은 쭉 자력으로 살아왔습니다. 만약 외부인을 받아들였다가 일족의 제자들이 외부의 악습에 물들어버린다면…….”

    운중정이 머뭇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대장로, 바깥은 당연히 어지럽고 혼란스럽겠지만, 그곳에도 훌륭한 인재들이 있소. 여기 심 도우만 봐도 그렇지 않소? 우리 신목족이 심 도우 같은 청년 인재들을 받아들인다면 무신단을 지키지 못할까 봐 염려할 필요도 없고, 일족의 대물림이 끊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소?”

    운중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심협을 돌아봤다.

    “그렇다면…… 심 소우, 우리 만아와 혼인하여 신목족에 남는 것은 어떻소?”

    “말씀은 감사하오나 저는 이미 혼인을 약속한 여인이 있으니 만아 소저를 곤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뜻밖의 제안에 심협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대장로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무만아도 바로 얼굴을 붉히며 빽 소리를 질렀다.

    그 반응에 모두가 껄껄 웃었고,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신목림이 종파를 세우고 천하의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일을 어떻게들 생각하시오?”

    운중정이 웃음을 거두고는 다른 장로들에게 물었다.

    “난 찬성이오.”

    턱 밑에 하얗고 짧은 수염이 난 노인이 먼저 답했다.

    “전 반대입니다. 운산해, 당신은 이미 족장님과 오래전에 이 일을 했었죠?”

    운중월이 말했다.

    “저도 찬성입니다.”

    다른 백발 노파가 그렇게 말하자 운중월의 눈이 커졌다.

    “산운(山韻), 그대가 어찌……?”

    그때였다.

    “저도 찬성입니다.”

    “저도…….”

    찬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분명 절반 이상이었다.

    운중정은 눈살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니 다시 구체적으로 의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이미 오래전에 제자를 받아봤으니 구체적인 것은 우리끼리 의논하지. 심 도우는 우선 돌아가 쉬게. 이틀 동안 신목 원신 근처 가옥에서 지내게나.”

    심협 등은 인사를 남기고 나왔다.

    * * *

    이틀 뒤, 심협과 강신천, 무만아는 신목족을 떠나 다시 오장관으로 향했다.

    만천성과 운소노도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결국 족장에게 붙잡혀 신목림을 개방하는 일을 도우라는 명을 받고 수련에 집중해야 했다. 두 사람은 심협 등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목림을 나온 세 사람은 법력 소모를 따지지 않고 전력으로 달렸고, 보름은 걸릴 거리를 열흘이 되기도 전에 도착했다.

    오장관까지 거리가 좀 남았을 때, 둔광이 날아와 맞이했다. 접인도인이었다.

    “세 분, 지모의 근원은 가지고 온 것이오?”

    접인도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다행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심협은 지목 원액이 담긴 사기병을 꺼냈다. 그윽하고 짙은 생기가 병 너머로 느껴졌다.

    무만아는 ‘작은’ 병을 보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이내 쓰게 웃었다.

    심협이 지모의 근원을 담아온 병은 상당히 컸다. 그러나 운중정이 ‘한 병’이라고만 했지 병의 크기를 정해준 것은 아니었다.

    “고생하셨소. 어서 갑시다. 인삼과 나무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소.”

    접인도인은 크게 기뻐하며 세 사람을 곧장 인삼과 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안내했다.

    정원에는 겹겹의 금제가 설치되어 있었다. 족히 십여 개는 되었고 수많은 오장관 수사들이 정원을 지키며 법진을 발동하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청풍과 명월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러 빛이 법진에서 뿜어져 나와 인삼과 나무로 흘러들었다. 아마도 치료 법진이리라.

    그러나 인삼과 나무의 상황은 이전보다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조금도 빛나지 않았고, 잎도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상태였다.

    나무에 달린 인삼과 열매도 본래 영기가 충만해야 하지만, 지금은 매우 쇠락한 모습이었다.

    심협 등이 나타나자 정원의 수사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이 법진들은 별다른 효과가 없습니다. 선배님, 전부를 물려주십시오.”

    접인도인은 무만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곧바로 오장관 제자들에게 손짓했다.

    오장관 수사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금제를 치웠다. 이제 정원에는 이전부터 나무를 지키던 방어 금제들만 남게 됐다.

    “이 금제들도 거두어주세요. 술법을 시전할 때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무만아는 방어 금제를 보며 말했다.

    “아무런 금제도 남기지 말란 것이오?”

    접인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금제는 그렇다 쳐도 남은 세 개의 금제는 진원자가 직접 설치한 것이라 위력이 강력할 뿐만 아니라 땅속의 영맥과도 굳게 연결되어 있으니 거두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부터 신목림의 비술로 지맥과 인삼과 안의 마독을 제거할 것인데 어떠한 금제의 방해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반경 5백 장 안의 모든 금제를 제거해주세요.”

    무만아가 정중한 표정으로 말하자 접인도인도 어쩔 수 없이 제자들을 물렸고, 부근의 모든 방어 금제도 제거했다.

    이번 일에 심협과 강신천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조용히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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