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89화 (689/1,214)
  • 689화. 곤혹

    심협은 급한 대로 법력을 흘려보내 자신을 공격하게 했다. 정신이 나가서가 아니라 구여마갑에 쌓인 마기를 소모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빨리 소모한 후, 주위에서 몰려오는 마기를 흡수할 생각이었다.

    두 꼭두각시는 심협의 지시대로 바로 움직였다. 둘 모두 움직임이 매우 자연스러웠고, 직접 조종할 필요도 없었다.

    꼭두각시들은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뇌속성은 속도가 매우 빨라 순식간에 심협 앞에 다가오더니 뇌전이 흐르는 장도를 휘둘러 머리를 베려 했다.

    심협은 몸을 틀어 구여마갑의 어깨 부위로 막아냈다.

    꽈르릉!

    갑자기 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면서 번개가 번쩍거렸다.

    “힘이 장난이 아닌데?”

    심협은 생각보다 강력한 꼭두각시의 공격에 몸이 내려앉자 깜짝 놀랐다.

    곧이어 그의 어깨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면서 모여든 번개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동시에 구여마갑에서도 동시에 검은 빛이 뿜어져 그의 온몸을 감쌌다.

    사방으로 흩어진 번개가 검은 빛에 닿으면서 부서지기 시작하자 심협은 몸을 마비시켰던 힘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한데 번개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앞에서 불덩어리가 날아왔다.

    기세등등하게 날아오는 불덩이가 그의 가슴을 가격했다.

    퍼펑!

    강력한 힘에 휘청거린 몸을 간신히 가누자 튀어 오른 불덩이가 기름처럼 온몸에 흐르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몸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뜨거운 열기에 그의 이마 앞에 늘어져 있던 머리카락이 위로 솟구쳤다.

    마갑의 검은 빛이 불길에 휩싸여 빠르게 사라지자 갑주 안에 쌓여 있던 마기가 바로 보충했다. 이에 마기가 많이 소모되었다.

    이를 본 심협은 매우 흐뭇했다.

    언술 꼭두각시는 확실히 대단했다. 경지가 낮아 공격력이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공격하고 술법을 시전할 수 있다니, 실로 훌륭했다.

    “적을 만나면 같이 싸우라고 준 언술 꼭두각시가 나를 공격하고 있으니, 이 사실을 강형이 알게 된다면 뭐라 할까?”

    심협은 그런 생각에 피식 웃으면서도 10여 회나 이어진 꼭두각시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 무렵 구여마갑에 쌓인 마기가 거의 소모된 상태라 꼭두각시들의 공격을 멈추게 했다.

    한데 주위로 수많은 마기들이 몰려들면서 구여마갑의 마기는 다시 가득 찼고, 심협은 다시 언술 꼭두각시로 자신을 공격하게 했다. 이런 상황은 제법 오랜 시간 이어졌다.

    * * *

    무신단 위의 건물. 모두가 원형 대진 중앙을 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기이했다.

    대진 중앙, 푸른 빛의 구역에 마치 칠흑 같은 먹구름이 떠올랐는데,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한데 먹구름이 거의 사라져가던 중 갑자기 어디서 솟아났는지 다시 먹구름이 몰려와 푸른 빛의 영역을 뒤덮은 것이다.

    “대장로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무만아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하구나. 방금 분명 모든 마기가 사라졌거늘, 왜 갑자기 또 이렇게 많아진 거지?”

    운중정도 의아해했다.

    “마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그가 정마법진을 복구했다는 건데…… 한데 왜 마기가 다시 나타나는 거지? 복구에 실패했나?”

    무규호가 천천히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한데 운중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신천의 다급한 말이 들려왔다.

    “또 줄어들었습니다.”

    운중정이 서둘러 시선을 돌려보니 방금 전까지 마기로 가득하던 푸른 빛의 영역에서 마기가 서서히 줄어들어갔다.

    ‘심협이 정마법진을 복구하여 마기를 흡수했다가 법진이 다시 부서졌고, 다시 정마법진을 복구한 건가?’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규호를 바라봤다.

    “정마법진이 이렇게 쉽게 복구하고 고칠 수 있는 겁니까?”

    무규호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데 그들이 어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또다시 변화가 일어났다. 먹구름이 다시 푸른색 영역을 뒤덮든 것이다.

    * * *

    심협은 다시 마기가 가득한 공간과 영력 소모가 심하여 눈에 띄게 무기력해진 두 개의 언술 꼭두각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은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점점 더 많은 마기가 끊임없이 1층 공간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구여마갑의 입을 벌린 사자의 두 눈동자는 이미 다시 검은색으로 변했고, 마기가 가득 차서 더는 흡수할 수 없었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두 개의 언술 꼭두각시를 사용하여 자신을 향해 공격하게 했다. 그 공격을 조금이라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심협은 자신의 법력을 조금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구여마갑에 의지하여 방어했다.

    몇 합을 주고받자 뇌속성 꼭두각시의 장도에 흐르는 뇌전은 매우 약해졌고, 화속성의 꼭두각시도 마찬가지로 위능이 크게 떨어졌다.

    심협은 속으로 탄식하며 한 손으로 결인하며 읊조린 뒤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바로 푸른빛이 반짝이며 소용돌이가 떠올랐다. 통령지술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물의 구멍에서는 작은 파도만 일렁일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심협은 금세 깨달았다. 이곳은 신목족 최고의 금제가 있는 무신단 아래이자 사방은 이미 금제에 봉쇄되었으니 통령지술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심협이 자기 자신에게 술법을 시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상황이 더 악화됐다.

    그의 단전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느껴졌고, 두 눈이 뜨거워졌다. 곧바로 온몸의 경맥 내 법력이 흐트러지고 피부에서 검은 마기가 밖으로 흘러나와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의 살기가 온몸을 에워쌌다.

    심협의 가슴에서는 분노가 치솟았고, 두 눈은 점점 붉게 변해갔다.

    다만 아직 심신은 잃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는 바로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며 단전 안에 잠들어 있는 참마검을 발동하여 순양의 힘으로 온몸에 휘몰아치는 마기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일순 심협의 전신 곳곳이 전쟁터가 되어 마기와 순양의 힘이 서로 싸우면서 뼈를 깎고 껍질을 벗기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크윽!”

    심협은 참지 못하고 신음했고, 이를 악물고는 심신을 굳게 지키며 체내의 법력을 순식간에 극한으로 뿜어냈다. 지금은 법력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참마검도 단전에서 끊임없이 울부짖으며 법력을 뿜어냈다. 더없이 순수한 순양의 힘이 온몸에 퍼지면서 도사리고 있던 마기와 한바탕 격전을 벌였다. 체내의 마기가 다시 발작해서일까? 구여마갑은 이 순간 몰려오는 마기의 흡수를 멈췄고, 주위의 마기도 마치 동류를 만난 것처럼 더는 몰려오지 않았다.

    외부의 위험은 해결되었으나, 심협은 안도할 수 없었다. 그의 두 다리는 완연한 핏빛으로 변해버렸고, 식해에서는 피의 파도가 용솟음쳤으며, 진득한 살기가 끊임없이 신혼을 공격했다. 심지어 식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허상이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멸시하듯 그를 내려다보았다.

    심협의 신혼 소인은 식해 공간 대부분을 차지한 거대한 몸을 바라보자 본능적인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설령 꿈속에서 상대를 쓰러트린 적이 있고 현실에서는 마환이 이미 사라져 다시는 강림할 일이 없을 거라고들 하고 있음에도 그가 치우에게서 받는 압박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더욱이 이제 천책이라는 가장 큰 버팀목도 사라져 오직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 줄기 마기 따위가 내 식해에서 날뛰도록 둘 것 같은가?”

    그 순간, 심협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간 쌓여 왔던 답답함과 분노가 갑자기 폭발했다.

    구석까지 몰렸던 신혼 소인도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두 다리가 분노의 불꽃으로 이글거렸고, 손을 들자 허광으로 만들어진 장검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바로 응축된 순양비검의 검원(劍元)이었다.

    심협의 신혼 소인이 결인하자 신념이 빠르게 움직이며 순양검결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가 손에 쥔 장검은 붉게 번득였고, 불꽃이 타오르면서 점점 퍼져 나가 이내 검 전체가 불꽃으로 타올랐다.

    심협의 신혼은 순양비검을 쥔 채 고개를 들어 피의 파도로 만들어진 치우의 허상을 노려보며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식해에 분노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순양분검!”

    다음 순간, 신혼 소인이 비검을 휘두르자 그 날에서 엄청난 크기의 불꽃이 날아가 치우를 단번에 베어버렸다.

    펑!

    폭발음과 함께 치우의 몸은 부서졌고, 다시 파도가 되어 사라졌다.

    순양검봉이 일격을 가한 뒤 식해에 떨어지자 뜨거운 불길이 타올랐다.

    삽시간에 심협의 식해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붉은 빛이 번득였고, 핏빛 연꽃이 식해 구석마다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잠시 후 심협의 식해는 다시 깨끗해졌다.

    분노에 휩싸인 두 눈을 천천히 뜨자 어느새 순양비검이 스스로 날아와 그의 손에 쥐어졌다.

    검날에서 뿜어져 나온 홍련업화가 그를 지키자 주위의 마기는 두려운 듯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심협은 바로 심신을 수습하고 다시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여 참마검으로 체내의 마기를 제압했다.

    순양비검 안의 홍련업화가 타오르자 체내의 마기도 예기가 꺾인 듯, 점점 순양의 힘에 우위를 빼앗기며 제압되어 갔다.

    잠시 후, 체내의 상황이 정리돼가던 심협은 갑자기 체내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음 순간, 무신단 지하 1층에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심협은 아연실색했다. 방금 상황에서 작은 한계를 뚫고 대승 중기에서 후기로 올라간 것이다.

    그는 서둘러 손을 흔들었다. 불꽃에 휩싸인 순양비검이 호위무사처럼 그의 주위를 돌며 마기가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심협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법결을 결인했다. 그러자 사방의 영기가 그의 체내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신단 지하 1층에는 적지 않은 마기가 있었기에 영기는 터무니없이 희박했다. 그의 주위에는 한 줄기 회오리바람만 불어왔을 뿐, 영기를 전혀 흡수할 수 없었다.

    한데 그때,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신단 전체가 크게 흔들리더니 사방의 어둠 속에서 갑자기 푸른 빛이 번쩍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 둘, 셋…….

    이윽고 열여덟 개의 푸른 빛이 나타났고, 이와 동시에 심협 체내의 신목은택 비술이 저절로 운공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열여덟 개의 빛에서 순수하기 그지없는 목(木)의 영기가 허공을 헤엄치는 물고기 떼처럼 심협을 향해 몰려왔다.

    겹겹의 영기가 끊임없이 몰려오자 심협의 몸은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뒤덮였고, 순양비검이 주위를 지키지 않아도 마기들은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그는 바로 공법을 운공했다.

    * * *

    무신단 위의 건물. 모두는 또다시 충격에 빠졌다.

    방금 전, 신수가 강하게 흔들리더니 건물을 감싸고 있던 신수의 덩굴도 모두 잇달아 빛을 발했고, 푸른 영기가 나무뿌리를 따라 끊임없이 땅속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저자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운중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대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의 마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먹구름은 여전히 푸른 영역 대부분을 뒤덮고 있었다.

    “신수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설마……?”

    운중월은 두 눈을 뜨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말을 끝맺지 않았으나, 모든 사람이 다음의 말을 예측할 수 있었다.

    “대장로, 봉인 대진은 문제없는 것이오?”

    무규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운중정이 한참을 자세히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문제없습니다. 1층의 금제 법진이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부서진 곳은 없는 모양입니다.”

    “당신들 지금 뭘 의심하는 거야? 심형이 그런 짓을 할 사람으로 보여?”

    강신천이 더는 참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스승님, 아니면 제가 신수와 연결하여 어떻게 된 일인지 살펴볼게요.”

    “그게 좋겠구나. 조심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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