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88화 (688/1,214)
  • 688화. 복구

    한편, 심협은 광막 안에 끝없이 차오르는 마기를 보며 자신이 저 마기에 대항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때, 운중정의 몸에서 번쩍이던 초록 빛에서 갑자기 혈기가 흘러나와 둥근 광막을 타고 흘러 천장 쪽에 떠 있던 신수의 문양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순간, 천장의 법진은 살아난 듯 불꽃처럼 짙은 적홍색을 띠었다.

    우웅!

    가는 공명음과 적홍색 빛의 기둥이 하늘에서 떨어져 그대로 푸른 광막으로 들어갔다.

    광막 안에서 휘몰아치던 마기는 적홍색 빛의 기둥과 뒤섞였고, 점점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하여 빛의 기둥과 함께 끊임없이 떨어져 구멍으로 내려갔다.

    모든 마기가 완전히 구멍 아래로 내려가자 운중정의 외침이 들려왔다.

    “지금이오!”

    심협은 망설임 없이 광막을 관통해 곧장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구멍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대진을 덮고 있던 광막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갈라졌던 석판이 다시 움직여서 합쳐졌다.

    세상은 다시 평온하고 고요해졌으나, 무만아의 눈에는 깊은 근심이 배어 있었다. 강신천 역시 걱정스런 얼굴로 침음했다.

    * * *

    심협은 무신단 지하 1층 허공에 한동안 떠 있다가 천천히 내려갔다.

    한참을 어둠에 적응한 뒤에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짙은 마기가 그를 불편하게 했다.

    지니고 있던 청령목인은 그가 발동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푸른 빛을 뿜어내 마기들을 물리쳤다.

    푸른 빛이 비치자 그제야 주변이 제대로 보였고, 심협은 당황했다. 주위는 텅 비 있었고, 정마법진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음, 다른 곳으로 떨어진 것인가?”

    그 순간, 주변의 마기가 갑자기 미친 듯이 요동치며 사방에서 심협을 향해 몰려들었다. 들어올 때 마기가 요란하게 흔들린 것 때문인 듯했다.

    청령목인이 뿜어내는 빛은 어느새 줄어들었고, 심협은 숨이 막혀오면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더 망설이지 않고 곧장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전신이 검게 빛나더니 칠흑 같은 갑옷에 휩싸였다.

    이 갑옷은 전체가 검은색이었고 매우 흉악하게 생겨서 무릎과 어깨에 가시가 돋아 있었다. 표면에는 비늘 같은 마문이 넓게 퍼져 있었고, 복부에는 입을 벌린 흉악한 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자는 입 위아래로 네 개의 이빨이 있었고, 두 눈은 은은한 광택을 띠며 반짝였다.

    주위의 마기가 접근해오자 사자의 두 눈이 갑자기 붉게 빛났고, 입에서는 갑자기 소용돌이가 생겨나 강력한 흡입력으로 마기를 흡수했다. 이에 따라 마갑은 검게 빛나면서 겹겹의 비늘이 마치 살아 있는 물결처럼 움직여 심협의 온몸을 휘감았다.

    심협은 마갑의 변화를 지켜보며 기뻐했다. 그의 추측대로 구여마갑은 묵림갑과 합쳐진 뒤 더욱 강력해졌고, 마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방어력도 높아졌다. 다만 방출되는 마기를 억제하는 능력은 그대로라 지금의 심협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마물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터였다.

    허나 지금은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마갑이 끊임없이 마기를 흡수하는 덕에 지금은 자신이 무사하지만, 마기의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 찰나의 방심으로 체내의 치우 마기가 폭주할까 우려가 됐다. 이곳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런 상황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구여마갑으로 마기를 흡수하는 동시에 황정경과 참마검을 운공하여 마기의 폭주에 계속해서 대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흘렀다. 그에게는 마치 반년이 지난 것 같았다.

    심협은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고, 긴장감에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쉬지 않고 흘렀다.

    이 무렵, 주위의 마기는 대부분이 흡수되어 어지럽기 그지없었던 1층 공간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구여마갑 안의 마기를 느낀 심협은 깜짝 놀랐다. 현재 마갑은 진선기 수사가 전력을 다해 일격을 날려도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진선기 수사는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아 그를 공격할 존재는 없었다. 이는 다행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갑 안의 마기를 소모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갑은 매우 무거워져서 마치 거대한 산을 짊어진 듯했다.

    심협은 주변을 둘러봤다. 빛과 마기 때문인지 여전히 멀리까지 볼 수는 없었는데, 백여 장 앞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심협은 머뭇거리다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검은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는 곳은 주변보다 마기가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구여마갑을 발동하여 마기를 흡수하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에 부쳤다.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부서진 벽돌이 쌓여 있는 폐허였다.

    실망감에 한숨을 내쉬던 그의 눈에 폐허 틈에서 현천정마(玄天淨魔)라 쓰인 벽돌이 희미하게 보였다.

    서둘러 몸을 굽히고 자세히 살펴보자 다른 벽돌에도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정마법진이로구나!”

    그는 기뻐하며 대진의 상태를 살폈다.

    상태를 살펴본 결과, 정마법진은 이미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법진의 기반도 마기에 심하게 침식되어 복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고민 끝에 심협은 우선 지모 원액을 가져오기로 했다. 만일 그러기 전에 마기를 전부 제거했다가는 원액을 취하기도 전에 여기서 빠져나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심협은 몸에 걸친 마갑이 더 무거워진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숙였다. 마기를 흡수하던 입 벌린 사자의 두 눈이 붉은색에서 암홍색으로 변해 있었는데, 점점 검은색에 가까워져갔다. 구여마갑이 흡수할 수 있는 마기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만약 억지로 더 흡수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구여마갑을 벗어서 다시 넣고는 제단을 지나 무규호가 설명해준 대로 동북쪽 지모 영천의 근간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둔술을 사용하지 않고 법력으로 신법을 운공해 달렸다.

    한데 법력 파동이 일어나자마자 주위의 마기가 다시 그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심협은 이를 무시하고 속도를 더욱 높여 쫓아오는 마기를 떨쳐냈다.

    잠시 후, 심협은 앞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푸른 빛을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매우 두꺼운 뿌리가 흙으로 만든 벽을 등진 채 땅속까지 뻗어 있었고, 표면에는 빛이 흘렀다.

    심협은 뿌리에 흐르는 빛을 통해 벽에 새겨진 문로가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일층의 금제 대진인가?”

    심협은 중얼거리며 뿌리 아래를 들여다봤는데,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뿌리 아래에는 텅 비어 있었다. 영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영천은? 지모원액은? 속은 건가?’

    심협은 의아해하며 정마법진이 있는 곳을 되짚어보고 방향을 다시 확인했지만, 자신이 잘못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무리 찾아봐도 영천의 흔적은 없었다.

    “무 선배님의 기억이 틀렸나?”

    심협은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군. 열여덟 개의 뿌리를 하나하나 찾아보면 되겠지. 여기에 있기만 하면 못 찾을 걱정은 없을 터.”

    생각을 정리한 그는 일어나서 벽에 몸을 붙인 채 왼쪽으로 빠르게 달렸다.

    얼마 되지 않아 두 번째 뿌리에 도착했지만, 역시나 영천은 없었다.

    다음, 그다음 그리고 또 그다음…….

    그가 마침내 3척에 불과한 작은 연못을 발견한 것은 일곱 번째 나무뿌리 아래에서였다. 그 안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었고, 푸른 빛이 반짝이며 물결이 흘렀다.

    지모 원액은 무규호의 말처럼 아무런 영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손이 닿는 순간 짙은 생기가 느껴졌다.

    “대단하구나!”

    심협은 크게 감탄했다.

    이곳이 다른 곳이었다면 바로 다 마셔버렸겠으나, 지모의 근원은 봉인 금제와 연관이 있음을 알기에 약속대로 작은 병에 담갔다. 다만 이 병은 그가 평소에 사용하던 것과 달리 꽃꽂이용의 사기병보다는 작고 음주용 술병보다는 조금 컸다.

    심협은 지모 영천을 담은 뒤 입구를 봉하여 임랑환에 넣고는 못내 아쉬워하며 영천을 바라보다가 입맛만 다시고 돌아섰다.

    이어서 그는 다시 부서진 정마법진으로 돌아가 복구하기 시작했다.

    부서진 법진의 기반은 어떤 마물이 남긴 날카로운 발톱 자국으로 인해 부문의 진도가 무력화되어 있었다. 나머지 부분은 마찬가지로 진각이 뽑히고 진추가 부서진 상태라 복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심협은 먼저 기반 위의 발톱 자국을 지운 뒤 다시 진도를 복구했고, 이 작업을 마치고는 법진의 나머지 부분을 자세히 살폈다.

    정마법진은 원형으로, 중간에는 구멍이 없었고, 부서진 부분도 주위의 진추가 부서지고 원래 위치를 벗어난 정도였다.

    심협은 한참을 바라보며 방법을 생각한 뒤 복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부족한 재료는 기본적으로 보완되고 부서진 진문도 하나하나 다시 새기면서 정마법진의 기초가 모두 완성되었다. 완전히 복구된 셈이었다.

    심협은 손을 털며 자신의 솜씨에 그런대로 만족했다.

    이어서 법진 위로 손을 가볍게 휘둘러 법력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법진에 빛이 흘렀고, 진문에서 옅은 금빛이 번쩍이면서 무형의 힘이 솟아났다.

    법진에서 특이한 영력 파동이 흘러나오는 순간, 사방에 퍼져 있던 마기가 영력 파동에 이끌려 피에 굶주린 맹수처럼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휘이잉!

    텅 비어 있던 공간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모여든 마기들은 법진 위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법진 중앙까지 뻗어 나갔다.

    본래 아무것도 없었던 법진 중앙에서 갑자기 광막이 밝아지더니 마기가 그 안으로 모두 흘러들어 사라졌다.

    심협은 그 장면을 보며 매우 의아했다.

    “왜 마기를 지하 2층으로 돌려보낸 것처럼 보이지?”

    하지만 심협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의 마기가 모두 사라졌으니 얼마 뒤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우 위험해 보이던 임무였지만 다행히도 큰 위험 없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허나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심협이 순조롭게 끝냈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본래 빠르게 마기를 흡수하던 법진이 마치 지하에서 역습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빛이 강하게 흔들렸고, 속도도 현저히 느려졌다.

    심협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며 다가가 법진을 굳건히 하려던 순간, 법진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터졌다.

    폭발력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심협은 겨우 몇 장 밀려났을 뿐이지만, 땅에서 새빨간 부문이 나타났다. 또한 그 부문에서 끊임없이 마기가 흘러나와 다시 그곳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심협은 깜짝 놀라서 다시 바닥의 법진을 바라봤다. 법진은 완전히 부서져서 다시 복구할 가능성조차 완전히 사라져버린 터였다.

    흘러나오는 마기는 숨을 돌릴 시간도 주지 않고 일제히 심협에게로 몰려왔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손을 휘둘러 구여마갑을 다시 소환하여 몸에 걸친 뒤, 억지로 발동하여 사방에서 밀려오는 마기를 흡수했다.

    하지만 마갑은 이미 한계였다. 마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느려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무게 때문에 오히려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심협이 초조하고 있는데 갑자기 빛이 크게 번득이더니 휙 하고 날아갔다.

    두 개의 용안만 한 단환이 허공에서 불꽃을 뿜어내고 번개를 내리치며 땅에 떨어지더니 크기와 생김새 모두 인간 같은 꼭두각시로 변했다.

    화속성 꼭두각시는 온몸이 붉은색으로, 붉은 갑옷 틈으로 붉은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얼굴선은 딱딱하여 각이 져 있었다. 몸에는 영문이 새겨져 있었고, 가슴에는 투명한 정석이 박혀 있었는데, 안에서는 붉은색 불꽃이 타올랐다.

    뇌속성 꼭두각시도 생김새는 화속성과 거의 비슷했으나, 푸른 갑옷을 입고 손에는 푸른 뇌전 장도를 쥐고 있었다.

    이 둘은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다. 정체를 몰랐다면 뇌신과 화신의 부하라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 영력 파동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었고, 전력도 출규기 정도에 불과해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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