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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87화 (687/1,214)

687화. 제단 안으로 들어가다

다음 날, 태양이 지평선 위로 천천히 떠올랐다.

심협과 강신천은 무만아의 안내를 받아 신목 아래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마음의 준비를 마쳤음에도 끝이 안 보이는 거대한 신수 앞에 서자 놀라서 입이 쩍 벌어졌다.

한 그루 나무에 서 있다기보다는 울창한 숲에 서 있는 듯했다.

신수는 너무나 거대해서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좌우로도 끝이 보이지 않았으며, 신수 아래 땅을 뚫고 나온 갈라진 뿌리는 하나하나의 두께가 수백 장에 달했다.

땅 위로 솟아오른 10여 개의 커다란 나무뿌리는 거대한 나무를 받친 채 마치 거문고의 줄처럼 가지런히 밑으로 늘어져 있었다.

솟아오른 나무뿌리 아래로 신수의 뿌리에 둘러싸인 원형의 돌 건축물 있었다. 그 위에는 푸른빛이 흘렀다.

무만아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무규호와 운중정 등이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운중월과 다른 일고여덟 명의 신목족 장로들이 원환대진(圓環大陣)안에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긴 백발이었다.

어젯밤 신목옥으로 가는 길에 무만아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일족의 장로들은 무신단을 지키기 위해 법력뿐만 아니라 대량의 정혈도 소모하여 수명은 여전히 길지만 모두 백발이 되었다.

심협은 그들을 바라보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한 그루의 풀이나 나무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기운이 마치 감춰진 듯해 누가 누군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들의 기운은 서로 하나가 되어 이상할 정도로 조화로웠고, 마치 신수와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심협은 그들 아래의 대진을 내려다봤다. 원형의 대진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원형 받침대가 있었고, 각각에 복잡한 무늬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운중월을 포함하여 모두 8명이 각자 둥근 받침대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 자리만 비어 있었는데 대장로 운중정의 자리 같았다.

“돌이킬 것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소.”

“선배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허나 이미 결심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만류해도 소용없겠군. 그럼 무신단 지하 1층의 배치를 알려주겠소.”

“부탁드립니다.”

“신수의 뿌리는 매우 번잡하나 주요 뿌리줄기는 18개뿐이오. 밖에서 본 것과 비슷할 게요. 다만 더 많은 뿌리가 엉켜 있을 뿐.”

지상의 건물은 무신단 최후의 진추(陣樞)에 불과했다. 실제로 아래 3층의 면적이 지상보다 몇 배나 광대했고, 심지어 내려갈수록 넓어졌다.

지하 1층의 면적은 폭이 365장에 이르렀고, 그중 18개의 뿌리는 1층 가장자리,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통로는 한가운데 있었다.

마기를 정화시키는 법진이 있는 곳은 두 층이 맞물리는 곳이었다.

“우리가 도우를 1층 중심 구역으로 보내줄 거요. 그곳은 마기가 가장 짙은 곳이지. 도우가 찾는 지모 원액은 18개의 뿌리 중 동북쪽 뿌리 근처에 있소.”

“무만아 소저에게 지모 원액이 천성적인 영액이라고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들어본 적이 없군요. 어떻게 생겼습니까?”

“동북쪽은 본래 신수의 영기가 가장 많이 모여 있던 곳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땅 밑에 점점 대지의 원액이 모여 샘을 이루었소. 도우가 찾는 지모 원액이 바로 그 샘물이지. 겉보기에는 보통 샘물과 다를 바 없지만 손만 닿아도 그 안에 담긴 짙은 생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오.”

심협은 운중정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

“미리 말하겠소. 인삼과 나무를 살리는 것은 우리 신목족 비술과 지모 원액이 함께 조합되어야 효과가 있소. 지모 원액의 양은 중요하지 않지. 그러니 작은 병 하나 정도만 받아 오시오. 절대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 지모 원액과 신수는 상생의 관계이자 봉인을 제압하는 무신단의 힘이기도 하니 소모가 너무 크면 훗날 마기를 제압할 때 오히려 반격을 당할 수도 있소.”

운중정은 근엄한 표정으로 당부와 경고를 반씩 담아 말했다.

“알겠습니다. 마음 놓으십시오.”

“그렇다면 다행이오.”

그제야 운중정의 표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이제 정마법진에 대해 설명해주겠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정마법진을 복구하고 재가동하는 것일세. 대진만 재가동한다면 순식간에 마기가 정화될 걸세. 다만, 마물이 허화(虛化)하여 1층으로 달려들 테니 대비해야 할 게야.”

이때 무규호가 이어서 말했다.

“마물이 허화한다고요?”

“오랜 세월 싸움을 통해 마물들도 온갖 시도를 하고 있네. 그것들은 자신의 몸에 담긴 치우의 마기를 흡수하면서 잠깐이나마 허화할 수 있는데, 그렇게 1층의 봉인을 무시하고 바로 2층으로 돌진할 수 있게 되었네.”

그 말에 심협은 신경이 곤두섰다. 마기만 상대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건만, 마물들이 방해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허화한 마물은 일부만 영적 상태가 되니 실력은 크게 저하되네. 그러나 일시적으로 불사의 상태가 되니 죽여도 다시 살아날 걸세. 치우의 마기를 없애야만 다시 아래층에 있는 본체로 돌아가지. 1층 법진의 제압이 살아난다면 어느 정도 위험은 통제할 수 있을 걸세.”

심협은 말을 끊지 않고 잠자코 들었다.

“심형, 내가 같이 가겠소. 두 명이 가면 승산이 더 커질 것이오.”

강신천은 심협이 걱정하는 듯하자 바로 제안했다.

“아니오. 강형은 내 부탁한 대로 해주시오.”

심협은 고개를 저었다.

“심 오라버니. 제가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잘 알아요. 대신 이 향낭을 받아주세요. 위험할 때 도움이 될 거에요.”

무만아가 입술을 꼭 깨물고는 심협에게 다가와 말했다.

한편, 무규호는 그 향낭을 보는 순간 안색이 바뀌었다.

“만아야, 그건 네 엄마가 남겨준 호신부적이 아니더냐?”

손을 내밀어 향낭을 받으려던 심협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른 손을 거두었다.

“만아 소저, 고맙소. 허나 그토록 소중한 물건은 받을 수 없소.”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거예요. 그러니 무사히 돌아와서 돌려주세요.”

무만아는 고개를 숙인 채 불그스레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나는 살아 돌아올 거요. 허나 모친의 유품을 받을 수는 없소.”

무규호는 제자가 다시 권하려 하자 불쑥 끼어들었다.

“만아야, 걱정하지 마라. 이 스승이 심 도우를 위해 호신용을 준비했다.”

그러더니 손바닥만 한 목패를 꺼내 심협에게 건넸다.

목패에는 어지러운 무늬와 불규칙한 흉터 같은 것이 있었는데, 한가운데에 신수와 비슷하게 생긴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청령목인(靑靈木印)이라네. 신수의 나무껍질로 만든 것으로, 그 안에 신수의 기운을 넣었다네. 법력을 운공하면 신수의 허상이 나타날 걸세. 진선 초기 수사의 전력을 다한 공격도 막을 수 있지. 다만 안에 담긴 신수의 기운에는 한계가 있으니 다 소모되고 나면 방어 효과가 사라진다네.”

“감사합니다.”

“방어 효과가 사라져도 훌륭한 수련 보조의 법기가 될 테니 버리지 말게. 그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신목은택을 수련할 때 효과가 배는 높아질 걸세.”

그 말에 심협은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두 사제(師弟)가 건네준 물건에는 모두 자신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심형, 내가 같이 가는 걸 원치 않으니 대신 나도 성의를 보여야겠소.”

강신천도 불쑥 나서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용안만 한 금속 단환이 있었다. 위에는 세밀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아무런 영력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은……?”

“언술(偃術) 꼭두각시를 모르는 게요?”

“일전에 장안에서 언수는 본 적이 있소. 다만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이 단환과는 생김새가 확연히 달랐지.”

“언수는 천기성 언사가 만든 가장 낮은 등급의 물건으로 일반 백성들이 놀 때나 쓰는 것이고, 단환으로 응축한 언술 꼭두각시는 그것과는 다르오. 이 두 개는 출규기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하나는 화(火)속성이고 하나는 뇌(雷)속성이오. 아마 이것들이 허마를 막아낼 수 있을 게요.”

“고맙소. 한데……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오?”

“손에 쥐고 법력을 흘려보낸 뒤 던지면 끝이오. 법력으로 공격할 대상을 지정해두면 알아서 공격할 테니 제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참으로 편리하군요!”

“또한 핵심 언추(偃樞)만 부서지지 않으면 쉬지 않고 적을 공격할 게요.”

“알겠소. 고맙소.”

심협이 청령목인과 언수 꼭두각시를 챙기자, 무규호가 동물 가죽 두루마리를 꺼내 천천히 펼쳤다.

“이것은 정마법진의 포진도라네. 지금 상황으로 봐서 부서진 곳은 아마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일 걸세.”

무규호가 그림 위 몇 곳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했고, 심협은 머릿속에 새겼다.

“허나 실제로 어떠한지는 직접 들어가야 봐야 하겠지. 이것은 대진 복구에 필요한 재료들이니 받아두게. 들어가는 순간부터 오직 자네의 손에 달렸네. 다시 말하지만, 실패한다 해도 자네를 위해 무신단을 열어줄 수 없다네.”

“그럼 무사히 마친 뒤에는 어떻게 연락하면 되죠?”

“무신단에 들어가면 심 소우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어떤 소식도 전할 수 없을 게요. 마기가 전부 사라진 것이 느껴지면 봉인을 열고 꺼내주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운중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심협이 웃으며 다시 물었다.

“준비를 마쳤으면 지금 바로 시작하는 게 좋겠소.”

말을 마친 운중정은 원환법진의 자기 위치로 돌아가 앉았다.

그가 앉자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눈을 떴다. 이어서 운중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각자 법결을 맺어 법진을 발동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몸이 동시에 초록빛으로 번쩍였고, 몸 뒤에서 생겨난 푸른 빛이 강물처럼 흘러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아홉 개의 푸른 빛의 모여들자 건물 전체가 푸르게 빛났다.

심협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가느다란 광흔이 빛나면서 복잡하고 빼곡한 도문 법진이 서서히 나타났다.

대진의 중앙 상공에는 신수와 똑같이 생긴 허상이 나타났는데, 그 잎이 흔들리자 푸른 빛이 흐르면서 짙은 생명의 기운이 충만해졌다.

이때, 아홉 개의 푸른 빛의 강이 모여든 곳에서 가벼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곳을 중심으로 한 겹의 푸른 광막이 천천히 사방을 뒤덮었다. 그리고 마침내 반원 형태의 푸른 광막이 되어 원형 대진을 뒤덮었다.

“나무에는 영기가 있어 세상을 조화롭게 만드니, 무신이 두려워 마기가 오르지 못하도다. 진마대진(鎭魔大陣)이여, 열려라!”

운중정의 일갈과 함께 원형 대진이 강하게 흔들리면서 사방 벽에서 원형 대진과 호응하듯 빛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진 안의 아홉 사람도 낮은 소리로 무언가를 읊조렸다. 이는 신목족 특유의 언어인지 그 어조가 매우 독특했다. 아홉 명의 목소리 사이에는 어떤 특별한 공감이 있는 듯 서로 하나로 합쳐져도 소리는 크지 않았고, 듣고 있노라면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마찰음이 천천히 들려오더니 바닥의 원환대진 중앙에 있던 두꺼운 석판이 천천히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어서 칠흑처럼 어두운 구멍이 나타나더니 그 입구에서 검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그 속도가 매우 느렸지만, 조금씩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푸른 빛이 광막 안에 충만해졌다.

무만아는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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