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86화 (686/1,214)

686화. 모험

한편, 심협의 말에 무규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내가 실언했군. 미안하오.”

강신천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뒤늦게 깨닫고는 곧장 사과했다.

“전설에 의하면 여래 부처께서 삼계사주(三界四州)를 돌아다니며 세상에 욕심이 많아지고 애욕(愛欲)이 일어나 극도의 혼란에 빠진 것을 보고는 제자 금선이 다시 환생하여 경전을 취하고 온 세상에 전하여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고 도덕의 이상을 고쳐서 근본을 알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허나 현재 대승 불법이 천하에 퍼졌음에도 여전히 중생은 도탄에 빠져 있으니, 이를 봤을 때는 마환이…… 모두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겝니다.”

“바로 그렇다네. 인간족 중에 이를 꿰뚫어보는 자는 극히 드물지.”

무규호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족장님! 무만아는 허락 없이 사사로이 일족을 벗어난 것으로도 모자라 외부인까지 끌어들였으니 죄가 더 가중되었습니다. 무단이탈로 신수의 잎이 떨어졌거늘, 어찌 중벌에 처하지 않으신 겁니까?”

모두가 돌아보니 커다란 체구의 신목족 장로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머리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는데, 은백색 머리카락은 높게 솟았고, 턱에는 하얀 수염을 기르고 있어 정정하고 위엄이 넘쳐 보였다.

“중정 장로님을 뵙습니다.”

무만아가 먼저 예를 올리자 만천성과 운소노도 일제히 허겁지겁 절을 올렸다. 이 노인을 두려워하는 게 분명했다.

심협과 강신천도 같이 허리를 숙였다.

“대장로님.”

운중월은 엄숙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운중정(雲中庭)은 그곳에 있는 모두를 둘러봤는데, 특히 무만아를 바라볼 때는 아쉬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장로, 만아가 일족을 떠났던 것은 내가 묵인한 것이니 그 죄는 내게 물으시오. 또한, 여기 두 소우도 내가 데리고 온 것이오.”

무규호가 먼저 나서서 해명했다.

“무녀가 함부로 자리를 비운 것은 누가 허락했든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스승님, 대장로님. 일족을 함부로 벗어난 것은 제 책임이니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다만 여기 두 도우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함부로 들어온 것이 아니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이번에 이들을 데리고 온 것은 인삼과 나무를 살리기 위해 지모의 원액을 주고자 함입니다.”

“인삼과 나무?”

운중정은 그 말에 깜짝 놀랐고, 무규호의 표정도 조금 풀렸다.

“하면 네가 일족을 떠난 것도 인삼과 나무의 원액을 찾기 위함이었던 게냐?”

“네, 그러고자 했으나 오장관에 도착해보니 인삼과 나무는 이미 마기가 침투되어 말라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여 이들에게 지모의 원액을 주어 인삼과 나무를 살리려고 했습니다. 인삼과 나무만 살아난다면 나무의 원액을 받아올 수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네가 일족을 떠난 것도 이해할 수 있겠구나.”

운중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이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헛수고인 것 같구나.”

“어째서입니까?”

강신천과 심협은 초조한 표정으로 운중정을 바라봤다.

운중정은 무규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말을 이었다.

“네가 떠난 뒤, 무신단에서 다시 이상한 움직임이 일어났고, 아래 1층 공간이 마기의 침투를 받아서 내려갈 수 없게 되었다.”

“선배님, 설마 지모의 원액이 무신단 아래에 있는 겁니까?”

“맞아요. 지모의 원액은 지신단 1층에 있어요.”

강신천의 물음에 무만아가 대신 답했다.

무신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심협과 강신천은 이해하지 못했고, 당연히 무만아의 말에도 여전히 궁금한 표정이었다.

“무신단은 신수 뿌리에 세워져 있는데, 땅 위에는 대전 하나만 지어져 있고, 지하로 3층이 있어요. 지모 원액은 지하 1층에 있고요. 한데 지하 3층에는 치우 마혼의 분신과 백여 마리의 흉포한 마물이 봉인되어 있지요. 그 마혼과 마물들을 봉인하는 게 우리 신목족의 사명이에요.”

무규호가 뒤를 이어서 말했다.

“일정한 시간마다 무신단 아래에 봉인된 마족과 치우의 마혼은 한 번씩 폭주하여 무신단의 봉인을 공격하지. 지금까지 우리 신목족의 생명을 대가로 그들을 물리쳐왔네. 한데 그들이 공격할 때마다 신수의 제압과 봉인의 힘이 점점 약해졌고, 결국은 3층의 봉인이 파괴돼 지하 2층마저 점령당했네.”

“만아가 일족을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마기가 다시 폭주했고, 무녀가 없으니 신수의 힘도 빌릴 수 없었네. 적지 않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결국 2층까지 내주었지. 당장은 1층 봉인을 뚫지 못하고 있지만, 마기가 계속해서 솟아오르고 있다네.”

운중정은 무만아가 사사로이 떠난 일을 원망하는 듯 덧붙였고, 그 말에 무만아의 얼굴에는 더 짙은 죄책감이 묻어났다. 두 눈은 빨갛게 물들었다.

“그렇다면 지모 원액을 얻으려면 무신단 지하 1층으로 가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대들은 지모 원액을 얻을 수 없소.”

“선배님, 저희는…….”

“그대들을 신목림에 들이고 신목 원신(元神)을 보게 한 것만으로도 조상들의 뜻을 어긴 것인데 어찌 무신단에 발을 들일 생각이란 말이오?”

강신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운중정이 거칠게 말을 끊었다.

“대장로님, 공을 세워 제 죄를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무신단으로 들어가 지모 원액을 꺼내오겠습니다.”

무만아는 잔뜩 힘이 들어간 주먹으로 포권하며 청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운중정이 엄하게 꾸짖었다.

“우리는 신목족이다. 천성적으로 대지의 숲과 친하고 마기에는 취약함을 잊었단 말이더냐. 무신단 1층은 이미 마기로 가득하니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무규호도 눈살을 찌푸리며 운중정의 말을 받았다.

그때, 심협이 불쑥 끼어들었다.

“선배님, 어떻게 해야 저희가 무신단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꿈도 꾸지 마시오. 그대들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소.”

“선배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후배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시오.”

심협의 물음에 운중정은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저희가 무신단 1층의 마기를 제거할 수 있다면 저희를 들여보내 주시겠습니까?”

“하하! 지금 농담하는 건가? 무신단 1층에 있는 마기가 얼마나 짙은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오?”

운중정은 재미난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방법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쨌든 잘 해결된다면 모두에게 이득이요, 만약 실패한다면 그저 저희가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운중정은 심협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그제야 표정이 굳어졌다.

“마기를 깨끗하게 제거하지 못하면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오. 그래도 가겠소?”

“한번 해보겠습니다.”

심협이 웃으며 대답했다.

“심 오라버니, 너무 위험해요.”

“정말 마기를 제거할 방법이 있는 게요?”

무만아가 걱정스레 말렸고, 강신천도 참지 못하고 전음으로 물었다.

“있소. 확실하지는 않지만…….”

심협은 사실대로 강신천에게 말했다.

“가능성은?”

“많아야 3할.”

“그럼 죽으러 가는 게 아니오?”

“그럼 다른 좋은 방법이 있소?”

강신천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방법이 있는 건가?”

무규호가 굳은 표정을 물었다.

“선배님, 저는 누구보다도 제 목숨을 아끼는 자입니다. 절대로 허투루 목숨을 걸지 않지요.”

“알겠네. 그렇다면 나도 더는 말리지 않겠네. 만약 정말로 마기가 침투하는 걸 막을 방법이 있다면 굳이 마기를 전부 제거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네. 무신단 지하 1층과 2층 사이에 본래 정마법진(淨魔法陣)이 있다네. 저번에 마물들이 들이닥쳤을 때 법진이 파손되을 뿐이지.”

“그렇다면 더 좋군요. 그 법진만 고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하네만, 법진의 파손 정도를 알 수가 없으니 자세한 것은 직접 봐야 할 걸세. 다만 법진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라면…… 자네가 생각해둔 방법에만 의존해야 할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그가 이토록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자 다른 자들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때, 운중월이 끼어들었다.

“족장님, 저자의 몸에는 마기가 도사리고 있으니 이대로 무신단에 들여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심협을 향한 그녀의 의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

“운 장로님, 제가 정말 마족이라면 알아서 죽으려고 앞장서서 마족을 제압하고 있는 마신단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제가 들어간 후에 뭔가 수상하다 싶으면 무신단으로 봉인하십시오. 그럼 저 또한 마물들과 함께 지하에 봉인되겠지요.”

그 말에 운중월도 더는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럼 심 소우의 말대로 하지.”

무규호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저희가 언제 들어가면 좋겠습니까?”

“서두르지 마시오. 무신단을 열려면 우리도 준비가 필요하니 내일 아침에 들어가면 될 걸세.”

“선배님, 후배에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해보시게.”

심협의 말에 운중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이번 일을 잘 해결한다면 제게도 지모 원액을 조금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만아 소저의 처벌을 면해주셨으면 합니다. 오장관에서 제가 만아 소저에게 큰 빚을 져서 말입니다.”

모두가 그 말에 뜻밖이라 생각했고, 무만아 역시 감격한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았다.

운중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만아가 이번에 일족을 벗어난 목적이 무신단의 봉인을 강화하기 위함이었으니, 그대 말대로 이 일만 잘 해결한다면 그녀의 처벌을 면해주겠소.”

“감사합니다, 선배님.”

“고마워요, 심 오라버니. 감사합니다, 대장로님.”

“족장님, 이번 일은 더 자세한 계획이 필요하니 의논을 좀 하시죠.”

운중정은 손을 내젓고는 무규호에게 말했다.

“잘됐군요. 마침 운중월 장로도 장로들께 건의할 게 있던 참이오.”

운중월은 무규호의 말에 주름진 얼굴이 굳어지더니 연신 헛기침을 했다.

“만아, 천성. 이분들은 우리 신목족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손님이니 잘 대접하여 내일 일출 때 무신단으로 안내하거라.”

“네.”

무규호의 당부에 무만아와 만천성이 동시에 대답했다.

무규호 등은 몸이 초록색으로 빛나더니 순식간에 그곳에서 사라졌고, 평대에는 이제 심협 등만 남게 됐다.

무만아는 신목 원신을 한참이나 바라봤는데,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심 오라버니, 강 오라버니. 도와주려고 했는데 결국 오라버니들을 끌어들인 꼴이 돼버렸네요.”

그녀는 미안한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말은 내일 봉인을 다시 한 후에 해도 늦지 않소. 지모 원액만 꺼내면 다 해결될 거요.”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심협은 여유가 넘쳐 보였다.

“3할의 확신밖에 없다더니, 죽는 게 두렵지도 않소?”

옆에 있던 강신천이 나무라듯 말했다.

“네? 심 오라버니, 3할이라뇨?”

“그건 죽으러 가는 거 아닌가?”

“죽어? 누가 죽어?”

놀란 무만아나 만천성과는 달리 운소노는 한참을 듣고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족장과 두 장로가 사라지자 마침내 끼어들 용기가 생겼다.

“소노야, 넌 조용히 있어.”

만천성은 그녀의 작은 머리를 꾹 누르며 혀를 찼다.

“내 지금까지의 삶이 꽤나 파란만장했다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내 쉽게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

“심형,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게요? 정말 대당 관부와 오장관이 충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오?”

강신천이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소. 대당 관부와 오장관은 인간족과 선족 사이에서 굳건하지 않소? 그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싸움을 벌인다면 삼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오.”

“그렇다면 내일 나도 같이 가겠소.”

강신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심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나 혼자서도 충분하오.”

“그게 정말이오?”

강신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위험한 곳에 굳이 여럿이 들어갈 필요가 있겠소?”

“혼자서 못할까 봐 그런 게 아니오. 게다가 이번 일에 나도 깨달은 바가 있어 그러니 심형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소?”

“아니오.”

거듭된 거절에 강신천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해 화를 내려 했으나, 그러기도 전에 심협이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강형이 오장관으로 돌아가 나 대신 대당 관부와 오장관의 충돌을 막아주시오.”

그 말에 강신천은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내일 큰일을 해야 하니 오늘은 푹 쉬게 해주시죠.”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들은 덩굴을 따라 내려갔고 소노는 졸음이 몰려오자 만천성의 등에 업히더니 금세 잠들었다.

하늘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왔고 별들은 하염없이 반짝였다.

신수 덩굴 곳곳에서는 등불 같은 푸른 형광빛이 평화로이 걷는 그들 사방으로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심협은 주변의 짙은 초목영기를 느끼며 가슴이 은근히 아려왔다.

‘바깥세상도 이렇게 평화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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