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2화. 마독(魔毒)
“심 도우, 며칠 동안 일월전 밖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제 일월전에서 갑자기 마기의 파동이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계시는지요?”
심협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명월이 갑자기 전음으로 물었다. 이에 심협은 심장이 철렁했으나, 가까스로 내색하지 않았다. 바로 귀장을 불러 양의미진진을 복구했지만 결국은 마기가 조금 새어나간 모양이었다.
“한데 그 일을 알면서도 어찌 접인 선배께 말씀드리지 않은 겁니까?”
심협은 담담하게 전음으로 반문했다.
그 말을 들은 명월은 소매 속에 감춰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실 어제 느꼈던 기운이 진짜 마기인지 아닌지 확신을 못 했기에 떠봤던 것인데 예상치 못하게도 진짜로 밝혀진 것 아닌가.
“당연히 접인 장로님께 말씀드릴 겁니다. 다만, 그전에 우선 도우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명월은 호흡을 정리하고는 천천히 말했다.
“그건 제가 가지고 있는 마보에서 새어나간 마기입니다. 그 마보는 접인 도우께서 제 저물법기를 살펴볼 때 이미 보셨을 겁니다.”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명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접인 도우에게 다가갔다.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명월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무 도우께서 을목신통을 익히셨다 하니 그럼 인삼과 나무를 좀 살펴봐 주십시오.”
접인도인은 무만아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무만아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인삼과 나무 앞으로 다가가 오른손으로 결인했다. 이어서 초록빛으로 반짝이니 시작한 왼손을 나무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주문을 읊자 왼손의 초록빛이 빠르게 뭉쳐지면서 밖으로 퍼져 나가는 초록색 소용돌이로 변했는데, 심협이 방금 시전한 신통과 똑같았다.
접인도인 등은 가볍게 감탄사를 뱉었다.
‘저건 신목은택? 저 신통도 신목림의 것이었나?’
심협도 어리둥절하여 속으로 생각했다.
무만아가 시전한 신목은택은 심협의 것보다 더 강력했다. 더 커진 초록빛의 소용돌이는 인삼과 나무 안으로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접인도인은 옆에 서서 무만아가 법술을 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명월을 바라봤다.
명월이 입술이 미약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어제 있었던 일원전의 일을 접인도인에게 전하는 것 같았다.
접인도인은 놀란 듯했으나 이내 손을 저어 명월을 물러가게 했다.
몰래 접인도인을 주시하던 심협은 우선 안도하고는 무만아를 살폈다.
무만아의 초승달 같은 눈썹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는데, 탐사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녀가 손을 뒤집어 꺼낸 주먹만 한 초록색 보주(寶珠)는 밝은 초록색 빛을 뿜어냈다.
‘보주?’
심협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무만아가 뭐라고 중얼거리자 몇 배나 더 강해진 초록 빛이 순식간에 초록색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소용돌이가 갑자기 몇 배로 커지면서 초록빛도 함께 짙어졌다.
‘그렇구나. 신목림에 신목은택의 위력을 강하게 해주는 보물이 있을 줄이야. 그렇다면 무만아는 내가 살펴봤던 것보다 더 깊은 곳까지 살펴볼 수 있겠어.’
심협은 조용히 추측했다.
한데 무만아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손은 내리지 않았다.
“어떻소?”
접인도인이 바로 물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인삼과 나무 안에 누군가 강력한 마독(魔毒)을 심어놔서 영락이 매우 어지러워졌습니다. 만약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한 달이 되기도 전에 나무는 죽게 될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 어두워졌다.
“접인 선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신목림은 독 제거에도 아주 능합니다. 제가 한번 마독을 제거해보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오.”
무만아는 인삼과 나무 옆에 가부좌를 틀더니 한 손으로 결인하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몸에서 눈부신 초록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불과 몇 호흡 만에 인삼과 나무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장의 초록색 광진이 생겨났다.
심협 등은 서둘러 광진 밖으로 물러났다.
초록색 광진이 움직이자 하늘을 찌르는 초록 빛이 뿜어져 나와 인삼과 나무를 뒤덮었고, 동시에 잠꼬대 같은 소리가 광진 안에서 흘러나왔다.
심협 등은 이것이 어떤 신통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식견이 넓은 접인도인도 이 광진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 반 시진쯤 지났을 때, 초록색 광진이 갑자기 강렬하게 반짝였다. 동시에 소용돌이가 생겨나더니 매우 빠르게 회전했다.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자흑색 기운이 소용돌이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 올랐다.
“마독!”
접인도인은 기쁜 표정으로 백옥 호리병 법보를 꺼내 마기를 흡수했다. 다른 영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리라.
본래 영롱하게 빛나던 백옥 호리병은 갑자기 강하게 떨리더니 빠른 속도로 자흑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접인도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엄청난 마독이구나! 저 백옥 호리병의 품급은 낮은 편이 아닌데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겨우 버티다니…….’
심협은 접인도인 쪽은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게 반짝이는 눈으로 초록색 광진을 지나 인삼과 나무의 내부를 바라봤다.
마독은 끊임없이 빠져나왔고, 인삼과 나무의 영광도 점점 회복세를 보였다.
“역시 신목림은 대단하구나.”
심협은 아무도 모르게 감탄했다. 접인도인 등도 인삼과 나무의 변화를 눈치채고는 크게 기뻐했다.
한데 그때, 인삼과 나무 주변의 땅에서 갑자기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자 나무의 영광도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초록색 광진안에 있던 무만아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녀가 바로 결인하자 주변의 광진은 속도가 점점 느려졌고, 몇 호흡 뒤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무 도우,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접인도인이 다급히 물었다.
“제가 마독을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이 독은 인삼과 나무뿐만 아니라 나무 아래의 지맥에도 침투했습니다. 지맥에 있는 마독까지 제거하지 않으면 독이 나무에 침투하는 속도만 더 빨라져서 나무가 완전히 말라버릴 겁니다.”
무만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맥에도 마독이 있다니! 이전에 내가 살펴볼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소.”
“이 독은 매우 은밀한 데다 지맥과 하나가 될 수 있어 보통 수단으로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인삼과 나무 안의 마독을 역추적하지 않았다면 지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찾아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럼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이오?”
접인도인의 물음에 무만아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심협은 임랑환을 조용히 만지작거렸다. 만독혼원주가 마독까지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홍이 인삼과를 훔칠 때 만독혼원주를 사용한 적이 있으니 이 보물을 꺼내는 순간 자신에게 큰 화가 돌아올 수도 있다.
“지금으로써는 한 가지 방법뿐입니다.”
무만아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게 무엇이오? 부디 가르침을 주시오. 인삼과 나무를 살릴 수만 있다면 어떤 요구든 모두 들어주겠소.”
접인 도우가 바로 말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제가 이번에 오장관에 방문한 것은 사실 인삼과 나무의 원액을 구할 수 있을까 부탁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인삼과 나무를 치료하면…… 조금만 얻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무만아가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인삼과 나무의 원액 말이오? 물론이오. 인삼과 나무만 치료해준다면 반드시 원액을 드리겠소. 도대체 무슨 방법이오?”
“지맥과 나무 안에 있는 마독은 매우 깊이 도사리고 있어 제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다행히 신목림의 지모(地母)의 근원(根源)은 고칠 수 있습니다. 그리 되면 지맥을 복구하여 인삼과 나무를 구할 수 있을 겝니다. 다만, 지금 제가 가지고 있지 않아 신목림으로 가서 가지고 와야 합니다.”
무만아는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모지원(地母之源)이라면 나도 그 명성을 들어본 적이 있소. 다만 그 물건은 신목림에서도 매우 중요할 텐데…… 무 도우는 가지고 올 자신이 있소?”
접인도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요.”
무만아는 왠지 자신이 없어 보였다.
“무 도우께서 확신이 없다면 제가 함께 신목림으로 가서 지모의 근원을 얻을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접인도인은 그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데 무만아가 심협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눈이 커졌다.
“설마…… 심협?”
심협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 도우께서는 저를 아십니까?”
“삼계무도회의 영상을 봤어요. 심 도우의 도움이 있다면 지모의 근원을 얻을 가능성이 더 커지겠군요.”
무만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옆에 있던 강신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돕겠소. 우리 셋이 힘을 합치면 반드시 지모의 근원을 가져올 수 있을 거요.”
“강 도우는 진선의 경지이니 당연히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강 도우는 몰라도 심협은 안 되오!”
태산이 버럭 외쳤다. 그러자 강신천이 의아한 듯 눈을 치떴다.
“어째서입니까?”
강신천은 심협에게 악감정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이번 기회에 가까워지고 싶었던 터라 다소 언짢은 목소리로 태산에게 되물었다.
“심협은 지금 이번 사건을 벌인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소. 이 틈에 도망치려는 것일지도 모르오.”
이어서 태산은 자신들이 심협을 의심하는 이유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끝까지 들은 강신천은 낮게 신음했다.
“이미 심마를 걸고 제가 한 일이 아니라고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면 접인 선배께서 제게 금제라도 거십시오! 나는 그저 서둘러 인삼과 나무를 구하고 싶을 뿐입니다.”
심협이 정색하며 말하자 접인도인도 혼란에 빠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진짜 범인이 아닐 수도……?’
옆에서 지켜보던 강신천은 심협의 진솔한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번 일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심 도우가 심마를 걸고 맹세했으니 그의 소행은 아닐 터. 접인 도우께서는 그에게 기회를 주시죠. 제가 함께 있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만일 심 도우가 범인이고, 그가 도망친다면, 모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무만아도 거들었다.
“인삼과 나무에 심어진 강력한 마독은 마족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심 도우가 마족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음, 강 도우와 무 도우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니, 좋소. 그럼 심 도우도 수고해주시오. 단, 그전에 심 도우에게 피의 맹세를 걸겠소. 만약 순조롭게 지모의 근원을 가져와 인삼과를 살린다면 모든 일은 없었던 일이 될 것이오.”
“접인 장로님,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됐다!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물러가라!”
태산의 다급한 만류에 접인도인은 싸늘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태산은 못마땅한 얼굴로 물러났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심협이 정중하게 말하자 접인도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피 한 방울이 허공에 떠올랐다.
뒤이어 접인도인이 양손으로 결인하며 주문을 외우자 허공에 떠오른 피가 복잡한 무늬로 변해갔다.
“가라!”
접인도인이 결인한 손으로 밀어내자 혈색의 무늬가 심협의 얼굴로 날아갔고, 그의 미간에 신비한 핏빛 무늬가 두 번 반짝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제 됐소.”
심협은 이 금제가 어떤 것인지 묻지 않고 무만아, 강신천과 신목림의 일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곧 허공으로 날아올라 오장관 너머로 향했다.
“접인 장로님, 심협을 보내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이학이 다가오며 물었다.
“자네들과 싸우던 모습으로 미루어 심협은 매우 고강하여 관내의 진선기 이하는 누구도 상대할 수 없을 걸세. 허나 관내에 남아 있는 진선기 이상의 장로 중 나를 제외하면 다른 셋은 요직을 맡고 있어 함부로 나설 수 없지. 또한 심협이 진심으로 돕는다면 지모의 근원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될 게야. 게다가 피의 맹세까지 걸었으니 도망칠 수도 없을 걸세.”
“그렇군요.”
“이 일은 이제 신경 쓰지 말고 인삼과 나무 주변에 금제를 최대한 펼치게. 저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로 나무가 다쳐서는 안 돼!”
접인도인의 분부에 이학 등은 서둘러 움직였다.
접인도인은 한쪽에 서서 왼손의 백옥 반지를 내려다봤다. 반지는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반지는 진원자와 교류할 수 있는 보물로, 방금 진원자와 연락한 결과 심협을 신목림으로 보내도 좋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관주님은 심협을 조금도 의심하시지 않는 것 같단 말이야. 진짜로 심협이 범인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접인도인은 혼자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