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1화. 무만아(巫蠻兒)
“음, 좋소! 날 따라오시오.”
접인도인이 잠시 생각한 끝에 심협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고, 심협도 주저하지 않고 뒤를 따랐다.
다른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접인도인이 결정했으니 어쩔 수 없이 심협을 에워싼 채 함께 이동했다.
일행은 산골짜기 뒤편 숲으로 향했다. 숲속 깊이 들어갈수록 나무는 점점 커져서 어떤 것들은 두께가 3장에 높이는 수십 장에 달해 마치 푸른 언덕 같았다.
심협은 이러한 광경에 무척 놀랐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접인도인은 거대한 나무 앞에 서서 초록색 영패를 꺼내 들더니 결인했다.
초록 빛이 허공으로 녹아들자 갑자기 파문이 일었고, 문이 열리듯 허공이 벌어지면서 거대한 선과원이 나타났다.
선과원은 반경 50여 리에 주변는 높이 솟은 황토색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크기나 기세 모두 대당의 황궁 못지않았다.
선과원 내부는 수많은 크고 작은 정원이 높은 벽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밭마다 적게는 한 그루에서 많게는 몇 그루의 진귀한 영수(靈樹)가 심겨 있었다.
이곳의 천지영기는 보타산의 자죽림과 구범 비경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짙었다.
흙도 연보라색을 띠었고, 중후한 기운을 뿜어냈다.
심협은 서책에서 이런 땅을 구천식양(九天息壤)이라 한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최상품 흙으로, 중후한 토(土)의 영력을 담고 있으며, 만물, 특히 영초와 영수가 자라기에 최적화된 땅이었다.
모든 종문은 구천식양을 모아 영초를 키우고 싶어 했다. 흑곰 요괴의 밭에도 적지 않은 구천식양이 있으나, 다른 하품 영토가 많이 섞여 있어 연보라색을 띠지는 않았다.
한데 오장관의 이곳은 순수한 구천식양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선과원 주변의 황색 벽도 일반 벽돌이 아닌 모종의 토속성 영재라 토지의 영력을 자양할 뿐만 아니라 정원을 나누어도 서로 다른 영과끼리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심지어 땅 아래에서는 숨겨진 더 신비한 이보가 느껴졌다. 영계영월경처럼 끊임없이 부근의 천지영기와 지맥의 정화를 모아 선과원 안의 수많은 영수에 공급하는 보물인 듯했다. 단, 이 보물은 영계영월경보다 한 수 위라 모아오는 천지영기가 몇 배나 많았다.
“역시 오장관의 선과원입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심협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과찬이시오. 보물의 힘을 빌려 이렇게 큰 선과원을 만들 수 있었던 것뿐이지. 자, 이쪽으로…… 인삼과는 선과원 가장 안쪽에 있소.”
접인도인은 웃으며 답하고는 먼저 날아갔다.
‘역시 땅속에 이보가 묻혀 있구나. 그 지서(地書) 법보인가?’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접인도인의 뒤를 따라 날아갔고, 잠시 후 금방 선과원 중심의 거대한 정원 앞에 도착했다.
이곳의 정원은 반경이 수백 장에 이르렀고, 주위의 벽은 휘황찬란해서 다른 정원보다 기상이 더 높았다. 벽에는 취령진과 배원진(培元陣) 등 인삼과 나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각종 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원 가운데에는 커다란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1천 척 남짓한 높이에 짙은 푸른 가지와 푸른 잎이 무성했다. 잎사귀들은 파초선 같은 생김새에 잎 사이에는 어린아이처럼 생긴 열매가 자라고 있었다.
줄기든 나뭇잎이든 과일이든 모두 보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과일나무는 시들시들했고, 푸른 잎이 모두 움츠러들었으며, 인삼과의 영광은 매우 어두워 언제든 말라 죽을 것만 같았다.
과일나무 주위에 아직도 몇 개의 금제가 반짝이고 있었는데, 마치 이 나무를 치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별 효과는 없어 보였다.
“이게 인삼과 나무입니까?”
심협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앞의 거대한 나무를 바라봤다.
“그렇소. 인삼과 나무에 무슨 수단을 썼는지 영력이 빠르게 흩어지고 있소. 무슨 방법을 써도 막을 수가 없구려. 심 소우가 을목신통을 수련했다 하니 한번 살펴봐 주시오.”
말을 마친 접인도인이 결인하자 인삼과 주변의 금제가 사라졌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삼과 나무 앞으로 다가가 신식을 운공하여 나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접인 장로님, 저자가 인삼과 나무와 접촉하게 놔둬도 괜찮을까요? 저자는 지금 가장 유력한 범인입니다. 만일 저자가 이번 기회에 인삼과에 무슨 악독한 수단이라도 써서 더 나빠지면 어떡합니까?”
태산이 접인도인 옆으로 다가와 전음으로 물어봤다.
“괜찮네. 내 이미 인삼과 안에 오채왜왜부(五彩娃娃符)를 설치해놨으니 만약 심협이 정말 무슨 수를 쓴다 해도 부적으로 막을 수 있을 걸세.”
“미리 준비해놓으셨군요. 다행입니다. 다만 어째서 이런 귀찮은 짓을 하시는 겁니까?”
“만약 심협이 범인이라 또다시 나무에 무슨 수를 쓴다면 범인을 잡는 것이 되겠지. 또한, 그가 시전한 수단을 통해 인삼과 나무의 문제를 찾아낼 수 있을 걸세. 반대로 심협이 정말로 범인이 아니라면 저자의 을목신통으로 인삼과 나무의 문제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대승기 중기 수사의 을목신통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저자가 익힌 것은 신목림의 신목은택이니 가능할 수도 있지.”
“신목림의 신통이란 말입니까?”
태산은 진심으로 놀랐다.
한편, 그 무렵 심협은 신식을 인삼과 나무 안에 흘려보내 살폈다.
그러나 나무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순수한 영력이 너무도 짙고 또 너무 많았다. 게다가 모종의 특수한 법력 파동까지 담겨 있어 그의 신식으로도 겨우 2, 3척 정도만 들어갈 수 있었다.
‘역시 천지개벽 때 탄생한 영근(靈根)답구나! 이러니 접인도인의 신통으로도 문제를 찾아내지 못할 수밖에…….’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손을 나무에 올린 채 신목은택을 운공했다.
그의 손에서 초록 빛이 반짝이자 이내 몇 척 크기의 초록색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다만 이 소용돌이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초록 빛의 소용돌이는 주변의 을목의 기를 흡수하지 않고 오히려 을목의 영력을 주변으로 퍼트려 인삼과 나무 안으로 흘려보냈다.
신목은택은 매우 오묘하여 을목 영기를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운공하면 을목 영기를 퍼트려 영수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심협이 이곳에 온 것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인삼과가 말라버린 원인을 찾아낸다면 오장관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혹시라도 진짜 범인의 단서를 찾아낸다면 누명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을목 영기는 자연스레 인삼과 나무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인삼과 나무 안의 상황을 살피던 심협의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
인삼과 나무 안의 푸른색 맥락마다 영력이 흐르고 있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영수에만 생기는 영락(靈絡)으로, 수사 체내의 경맥과 유사했다.
바깥쪽 영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영락이 어지러웠다. 막힌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많은 부분이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그리고 어지러운 영락에는 인삼과 나무의 영락이 스스로 어지러워진 것처럼 외부에서 간섭한 흔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깜짝 놀란 심협은 신목은택을 나무의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흘려보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신목은택의 탐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심협은 전력을 다해 몇 척을 더 들어가서 살폈고,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자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마기?’
심협은 두 눈을 번쩍 떴다.
인삼과 깊은 곳은 살기가 가득했는데, 마기와 매우 유사했다.
문득 처음 마기가 폭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경맥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설마…… 마기가 인삼과에 침투하자 폭주해서 갑자기 시들어진 건가?’
그의 충격이 표정에 드러난 것인지 접인도인이 다가오며 물었다.
“심 소우, 뭐 좀 알아내셨소?”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집니다. 인삼과 내부에 매우 음살한 기운이 존재하는데 아무래도 마기 같습니다.”
심협은 손을 거두고는 잠시 후 숨김없이 말했다.
“마기?”
접인도인은 깜짝 놀랐고, 뒤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서 표정이 변했다.
명월은 놀란 와중에 갑자기 어제 일월전에서 느껴졌던 마기가 생각나자 표정이 다시 변했다.
“명월, 왜 그러느냐?”
명월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태산이 물었다.
“아닙니다. 인삼과에 마기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습니다.”
명월은 몸을 떨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답했다.
태산은 명월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추궁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세 개의 빛이 멀리서 쏜살같이 날아와 정원 안에 떨어졌다. 하나는 청풍이었고, 그 뒤의 두 사람은 오장관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중 한 명은 일찍이 떠났던 강신천이었고, 다른 한 명은 열여덟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고운 피부에 아리따운 얼굴이 눈에 띄었는데, 특히 눈동자가 매우 초롱초롱했다.
소녀는 푸른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옷에는 적지 않은 방울과 은고리 같은 장식이 많이 달려 있었다. 대당이나 서우하주의 복장과는 확연히 달라서 마치 남강묘지(南疆苗地)의 제사장 같았다.
소녀는 내려서자마자 바로 인삼과 나무를 바라봤는데, 눈에는 이상한 광채가 떠올랐다.
“청풍, 선과원은 본관의 중요한 땅이다. 강 도우는 그렇다 쳐도 어찌 외부인을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인가!”
안 그래도 인삼과 나무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접인도인은 청풍이 낯선 자를 데려오자 화가 치솟았다.
“접인 도우, 그리 화내지 마십시오. 제가 청풍 도우께 안내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무만아(巫蠻兒) 도우는 신목림 사람으로, 수많은 을목 신통에 능통합니다. 인삼과 나무 소식을 듣고 제가 나무를 살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강신천이 심협을 발견하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며 먼저 말했다.
“신목림!”
접인도인은 깜짝 놀라 푸른색 치마의 소녀를 바라봤다.
신목림은 매우 신비한 종파였다. 전해지는 바로는 오래전 신목족(神木族)이 세웠다고 하는데, 문하의 제자들은 수년간 숲속에서 수련하고 도를 닦아 자연과 태생적으로 친화력이 생긴다. 특히 을목신통은 삼계에서 제일이었다.
한편, 무만아를 살펴보는 심협의 눈에 의아함이 스쳐지나갔다. 이 소녀의 경지는 대승 후기로, 몸에 흐르는 법력도 매우 생동적이라 시시때때로 외부의 천지 영력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 평범한 수사의 법력과는 확연히 달랐다.
“후배 무만아, 접인 선배님을 뵙습니다. 함부로 귀관의 중지에 들어온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무만아가 접인도인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소녀의 목소리는 마치 산속에 흐르는 맑은 시냇물같이 맑고 부드러워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다.
“신목림의 무 도우였구려. 반갑소. 무 도우는 언제 오장관에 오셨소? 이곳에는 또 무슨 일이오?”
접인도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인삼과 나무는 어젯밤에 문제가 생겼는데 무만아는 오늘 아침에 오장관에 나타났다. 시기가 너무나 절묘하지 않은가? 그는 자연히 이 소녀의 동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접인 도우,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무 도우를 의심하는 겁니까? 무 도우는 내 벗입니다. 오늘 아침 부근의 금화성(金華城)에서 만났는데 오장관에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함께 온 것입니다. 여기 오기 전까지 무 도우는 인삼과 나무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강신천은 불만을 토했다.
“그랬군요. 내 괜한 생각을 했습니다. 무 도우, 용서해주시오.”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무만아는 다급하게 답했다.
한편, 심협은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의아해했다.
강신천은 천궁의 제자가 아닌가. 한데 어째서 오장관과 관계가 밀접해 보이며 사람을 데리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인가? 또한, 인삼과 나무가 시든 것은 오장관의 기밀이라 그도 범인으로 의심받았기에 알게 된 것인데 강신천은 어떻게 알았을까?
“강신천 도우는 천궁의 제자이지만 과거 스승님께 큰 은혜를 입어 스승님께서 오장관의 신통을 전수해주셨으니 반은 오장관 제자라 할 수 있습니다.”
명월이 다가와서 설명해줬다.
“그런 거였군요.”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강신천의 행보가 석연치 않았다.
강신천이 오장관 제자라 해도 이곳까지 외부인을 데리고 오는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