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80화 (680/1,214)

680화. 네 가지 이유

개산월이 차갑게 빛나며 몇 배로 더 커진 뒤 심협을 향해 떨어졌다.

심협은 발에서 달빛을 뿜어내며 이리저리 피했다.

하지만 상하좌우의 허공이 갑자기 빛나더니 연우검법처럼 환영과 실체가 섞인 네 개의 개산월의 환영이 허공에 나타났다.

네 개의 개산월 환영은 비록 환영이었으나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모두 차단하고는 강하게 찍어 내려왔다.

심협이 현음미동을 시전하자 눈이 다시 푸르게 번득였다. 그는 그 상태로 진창해 신통을 시전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푸른 얼음꽃 한 송이가 손에서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가 개산월의 환영에 맞섰다.

쩌적!

서늘한 소리와 함께 개산월의 환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얼어붙어 거대한 얼음 조각으로 변했다.

개산월의 실체가 드러나자 다른 세 개의 개산월 환영은 바람에 흩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우검법의 허실(虛實) 변화를 간파한 것인가!”

태산은 경악으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심협은 대답 없이 달빛을 뿜어내며 두 사람의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30여 장을 물러나 전세에서 벗어났다.

태산과 이학은 심협의 귀신과 같은 신법을 보고는 섬뜩해져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고, 그저 상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대전의 문을 몸으로 막아섰다.

“두 분 장로님, 저는 며칠 동안 계속 일월전에서 법보를 제련하느라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제게 이러시는 겁니까?”

심협은 차분한 목소리로 공수하며 말했다.

“너는 우리 오장관의 인삼과를 훔치고 그것도 모자라 나무까지 망가뜨리지 않았느냐! 이는 대죄이니 죽어 마땅하다!”

태산은 노기 띤 얼굴로 몸에서는 하얀 빛을 강하게 뿜어내며 개산월을 다시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푸른 얼음은 기운이 매우 강력하여 개산월 안에 흐르던 법력도 얼어붙은 탓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법력까지 얼리다니, 이건 무슨 한빙 신통이지?’

태산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말씀드렸지만 며칠 동안 저는 일월전에서 법보를 제련하느라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데 어떻게 인삼과를 훔치고 나무를 부수겠습니까?”

“증거가 확실한데 어디서 발뺌하는 것이냐?”

“증거가 확실하다니요?”

심협이 당황하여 그 증거가 뭐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태산! 이학! 이 무슨 짓들인가!”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멀리서 날아와 대전 밖으로 내려왔다. 접인도인과 명월이었다.

“접인 장로님, 심협이 인삼과를 훔치고 나무를 망가트린 게 확실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런 파렴치한 놈은 당장 목을 쳐야 합니다!”

태산이 화를 내며 말했다.

“누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단 말입니까? 오장관에는 이치도, 도리도 없는 겁니까? 어찌 시시비비도 가리지 않고 목숨부터 취하려 드는 겝니까?”

심협은 여러 차례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태산과 이학이 전혀 물러나지 않자 자연스레 목소리에 분노가 실렸다.

“뭐라! 지금 뭐라고 했느냐?”

오장관을 모욕하는 심협의 말에 태산이 노발대발하며 꺼낸 푸른색의 장도 법보가 차가운 서늘한 빛이 되어 심협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심협이 결인하자 이번에도 푸른 얼음꽃이 피어나 장도를 막았다.

극한의 기운이 폭발하면서 장도는 다시 푸른 얼음에 갇혔고, 모든 위능을 잃고는 땅으로 떨어졌다.

이제 심협도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진창해의 위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절대적인 한기가 순식간에 푸른 장도 안의 법력을 얼려버렸고, 그 안의 금제에까지 침투했다.

얼음 안의 장도에서 가벼운 소리가 나더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광경에 심협 자신도 깜짝 놀랐다.

보타산에서 나온 이후로 진창해 수련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못했는데 이 신통은 어느새 훨씬 강해져 품급이 낮지 않은 법기를 가볍게 얼려버린 것이었다.

‘태생적으로 이 신통이 나와 맞는 건가? 아니면 무명 공법과 진창해의 호흡이 좋은 건가?’

한편, 접인도인 등도 이를 보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감히 내 법보를!”

얼굴이 새빨개진 태산은 심협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더니 몸에서 보광을 뿜어내며 다시 공격하려 했다.

“그 정도 망신으로는 부족한 게냐? 당장 멈추거라!”

접인도인이 태산을 노려보며 차갑게 호통을 쳤다.

심신이 흔들리는 기운에 태산은 가볍게 떨더니 일순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평온함을 되찾더니 다시는 공격하지 않았다.

“심 소우, 대단한 신통이오. 방금 시전한 것은 보타산의 진창해 신통이지요? 위력을 보니 제3중까지 도달하여 4중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하오. 감탄했소.”

접인도인인 심협에게 살며시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은 차가웠다.

“과찬이십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심협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그도 눈치챌 수 있었다. 태산과 이학이 이렇게 다짜고짜 살수를 퍼부은 것은 분명히 접인도인의 뜻이었을 것이다.

그는 오홍과 백소천 등에게서 오장관에 대해 수없이 들었었다. 이 종문은 예의범절을 중시하고 평소 행동이 신중하다. 태산과 이학이 장로 자리까지 앉은 것을 보면 분명 경거망동하는 자들이 아닐 터. 설령 자신이 인삼과를 훔친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절대로 이렇게 바로 공격해올 리가 없었다.

접인도인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에 대한 상대의 감정이 좋지 않음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기에 심협도 능청스럽게 대처했다.

“이번 일은 이들이 경거망동하였소. 그래도 두 개의 법보는 이만 풀어주시오.”

접인도인은 개산월과 푸른 장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심협은 말없이 결인했다. 얼음은 천천히 녹기 시작해 몇 호흡 뒤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개산월과 푸른 장도는 벗어나자마자 다시 태산의 수중으로 돌아갔다.

두 법보의 상태를 확인한 태산은 다행히 아무런 손상도 없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심협을 노려보는 눈빛에 담긴 살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접인 선배께서 직접 오셨으니 여쭤보겠습니다. 방금 두 장로께서 말끝마다 제가 인삼과를 훔치고 나무까지 망가트렸다 했고 증거가 확실하다던데, 그 증거가 도대체 뭡니까? 접인 장로님께서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십시오.”

“심 소우, 너무 화내지 마시오. 이 일은 아직 확실하지 않소. 그리고 그 말도 태산 등의 막연한 추측이었을 뿐이니 부디 심 소우가 이해해주시오.”

담담한 심협의 말에 접인 장로도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접인 장로님, 어째서 확실하지 않다고 하시는 겁니까? 분명히…….”

태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지만, 접인도인이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다 말을 삼켰다.

심협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심 소우, 사실 어젯밤 본관에서 또 도난 사건이 일어나서 인삼과 두 개를 도둑맞았고, 어떤 신통을 시전했는지 인삼과 나무도 갑자기 말라버렸소.”

접인도인은 심협을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

심협은 태산과 이학에게서 그 일을 듣기는 했었지만, 접인도인에게서 구체적인 내용을 듣게 되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심 소우는 어젯밤 어디서 무엇을 했소? 증명해줄 사람이 있소이까?”

접인도인은 천천히 물어봤지만, 눈빛은 더없이 날카로웠다.

“저는 며칠 내내 일원전에서 연기하며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젯밤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월 도우께서 계속 산골짜기 밖을 지키셨으니 제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심협은 망설임 없이 말하고는 최후의 희망을 명월에게 걸었다. 하지만 명월은 머뭇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흥! 네가 금제를 사용하여 일월전을 뒤덮어 외부에서 안쪽의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명월은 골짜기 밖에 앉아 있었으니 네가 둔술을 시전하여 조용히 나갔다 온다 한들 그가 어찌 알겠느냐?”

태산이 냉소하며 반박했다.

심협의 눈빛이 굳어졌다. 태산의 이 말은 다소 억지가 있었지만,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믿든 말든 어젯밤 나는 일월전에서 나가지 않았소.”

“증명할 방법이 있소?”

“없소. 하면 반대로 묻지요. 어찌하여 제가 인삼과를 훔치고 나무를 망가트렸다고 확신하는 것이오?”

심협이 반문했다.

“우리가 심 소우를 의심하는 건 모두 네 가지 이유 때문이오.”

접인도인은 대답을 거절하지 않고 네 개의 손가락을 폈다.

“첫째, 백과선회가 끝난 지금 오장관에 남아 있는 외부인은 심 소우뿐이오.”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둘째, 심 소우는 최근 계속 일월전에 머물렀소. 일월전은 인삼과가 있는 선과원과 가장 가까운 곳이지. 게다가 심 소우는 분명 명월에게 선과원과 인삼과 나무에 대해 물은 적이 있소. 틀렸소?”

접인도인의 계속되는 추궁에도 심협은 표정이 변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순간의 호기심이 이런 귀찮은 일을 일으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셋째, 저번에 인삼과를 도둑맞은 뒤로 인삼과 주변에 작은 금제를 설치해놨소. 이 금제는 방어나 탐색의 효능은 없소. 그저 부근의 상황을 기록하는 것뿐이지. 이게 그 금제가 기록한 상황이오.”

그렇게 말한 접인도인이 하얀 구슬을 꺼내 들었고, 그 안에서 누군가 날아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을 본 심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구슬 안의 모습은 매우 흐릿했지만, 외모는 알아볼 수 있었다. 분명 심협 자신이었다.

“만약 제가 정말 열매를 훔치고 나무를 망가트릴 생각이었다면 당연히 모습을 바꾸지 않았겠습니까?”

“접인 선배께서 이런 금제를 설치하신 줄을 모르고 거만을 떤 것이겠지.”

태산은 여전히 악의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심협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지만, 태산과 논쟁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넷째. 아마 보름 전쯤이었을 게요. 대당 관부의 육화명 도우가 오장관에 방문했소. 대당 황제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인삼과 하나를 내어달라 했다가 관주님께 거절당했지. 황제는 용기(龍氣)를 이미 잃었기에 윤회의 운명을 따라야 할 터. 억지로 수명을 늘리는 건 천도를 위배하는 것이었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심협은 놀라며 말했다.

“그리고 일전에 인삼과를 훔쳤다가 마지막에 자폭한 자의 정체를 이미 알아냈소. 그의 이름은 자의도(紫衣盜). 대당 관부의 명으로 인삼과를 훔치러 온 자였소.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오.”

접인도인이 차가운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의도가 열매를 훔치는 일에 실패하여 죽었고 인삼과도 가지고 나가지 못했다. 그러니 대당 관부와 깊은 연관이 있는 네가 다시 시도했겠지. 처음에 훔치지 못했으니 일부로 남아 있다가 기회를 틈타 움직인 것 아니더냐!”

뒤에 선 태산이 이어서 말했다.

심협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정황상 저들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니 누군가 그를 모함한 게 분명했다. 함정은 매우 정교해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죽을 판이었다.

심협은 심호흡하여 냉정함을 되찾았다.

“보아하니 여러분이 저를 의심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군요. 허나 심마(心魔)를 걸고 맹세컨대, 결코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함정에 빠트린 겁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 저물법기를 조사해보십시오.”

그는 임랑환을 빼 건넸다.

참마검은 현재 몸 안에 있고, 만독혼원주는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선옥으로 바꿔서 숨겨둔 터였다.

한편, 접인도인 등은 심협이 심마를 걸고 맹세하자 눈빛이 흔들렸다.

심마의 맹세를 어길 시에는 이후의 수련에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 심협이 이런 맹세를 한 것을 보면 그는 정말 아니란 뜻인가?

“심 도우가 그리 말한다면 거절하지 않고 다시 살펴보겠소.”

접인도인은 임랑환 안에 신식을 넣어 다시 한번 살폈으나, 이번에도 그는 양의미진부를 파악하지 못하여 만독혼원주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심 소우의 저물법기 안은 깨끗하나 혐의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으니 우리와 함께 가서 관주님께서 돌아오시길 기다리는 게 좋겠소.”

접인도인은 임랑환을 돌려주며 말했다.

심협의 표정이 굳어졌다. 접인도인의 말은 결국 자신을 감금한다는 뜻 아닌가.

태산 등이 심협을 에워쌌다.

“후우, 좋습니다. 단, 그전에 인삼과 나무를 보게 해주십시오.”

심협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조건을 제시하자 접인도인은 당황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또 무슨 꿍꿍이가 꾸미는 것이냐?”

태산이 차갑게 말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갈 수 없습니다. 제 경지가 비록 높지 않지만 안력은 쓸 만하고 을목 신통까지 익혔으니 어쩌면 무언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심협이 조용히 신목은택을 운공하자 손에서 소용돌이 같은 초록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주위에서 나무의 기운들이 끊임없이 몰려와 그의 체내로 흘러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