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78화 (678/1,214)
  • 678화. 제련(祭煉)

    심협은 명월에게서 받은 옥간을 꺼내 신식으로 연기실 사용 방법을 살펴봤다.

    이곳의 연기실은 취보당보다 더욱 고명하여 사용법도 매우 복잡했다. 주변 돌기둥에 새겨진 화룡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은 사실 법진을 사용하여 땅속 아래 깊은 곳에 있는 지심성화(地心聖火)를 소환한 것이었다. 이 불꽃의 위력은 비록 천화에는 미치지 못해도 지화와는 비슷했다.

    일월주천로에는 자라천화가 담겨 있지만, 극강의 경지가 있어야만 신로 안의 중요한 금제를 발동할 수 있다. 이에 평소 오장관 제자들은 연기기를 빌리거나 혹은 지심성화에 의존해야 했다.

    일월주천로 주변 바닥의 법진은 일월건곤대진(日月乾坤大陣)으로 지심성화를 제어하여 불의 온도를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일월주천로를 제어하는 것이었다.

    이 신로는 구천의 신품으로, 내부 구조가 매우 복잡해 그가 봐왔던 어떤 법보보다도 열 배는 더 복잡했다. 이 신로를 능숙하게 사용하려면 적어도 수십 년을 천천히 모색해야만 할 터였다.

    다행히 심협은 일월주천로를 능숙하게까지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이 신로를 이용하여 만년화린목을 순양검배에 넣고 싶었을 뿐이었기에 꿈속에서 겪었던 경험과 퍽 익숙해진 현천공화결까지 더하면 문제없을 것이다.

    그는 옥간을 자세히 읽고, 반 시진이 지난 뒤에는 신식을 거두고 붉은 영패를 꺼내 결인했다.

    붉은색 영패가 갑자기 환하게 빛나면서 바닥의 일월건곤대진의 붉은빛도 같이 밝아졌다. 주변의 화룡 조각상이 뿜어내는 붉은 빛도 부름에 응답하듯이 더욱 짙어지면서 대전 안의 온도가 폭발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심협이 두 손을 결인하자 일월건곤대진의 구역마다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면서 그 구역 안의 화룡 조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심성화도 강해졌다가 약해지기를 반복했다.

    일월건곤대진은 진원자가 직접 설치한 것으로, 양의미진진보다 훨씬 강력했다. 붉은 영패를 가지고 있어도 제어하기는 너무도 어려워 마치 어린아이가 무거운 망치를 휘두르는 느낌이었다.

    심협도 서두르지 않고 계속 결인하며 대진의 제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꿈속의 경험까지 더해지자 심협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여 반 시진 만에 일월건곤대진 제어에 상당히 능숙해졌다.

    오장관 깊은 곳 은밀한 방. 접인도인은 뒷짐을 진 채 오래된 청동 거울 앞에서 서서 거울에 비친 일월전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민 끝에 진원자의 말을 어기고 몰래 심협을 감시한 것이다.

    인삼과를 훔친 자를 찾아냈지만, 범인이 자폭하면서 저물법기도 함께 부서져 몇 개의 인삼과를 훔쳤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접인도인은 인삼과를 훔친 범인이 그자 한 명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심협의 순양검배 기운과 과원에 남아 있던 기운은 너무도 비슷했던 것이다. 하여 그는 줄곧 심협을 의심해왔다. 물론 심협을 언짢게 생각한 것도 이유였다.

    “일월건곤대진을 저렇게 빨리 익히다니!”

    접인도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은 처음 일월건곤대진을 접했을 때 족히 수개월이나 걸려서야 제어에 익숙해지지 않았던가! 더욱이 그때 자신의 경지는 진선기였다.

    한편, 심협은 접인도인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계속해서 일월건곤대진을 운공했고, 한참 후에야 만족하고 비로소 멈췄다.

    그는 문을 닫고 양의미진진 등 몇 개의 금제를 대전 주변에 설치했다.

    명월이 일월전 안에 감시하는 수단이 없다고는 했지만, 자신이 직접 금제를 설치해야만 안심이 됐다.

    잠시 후, 몇 겹의 금제 광막이 솟아오르면서 대전을 덮었다. 특히 양의미진진이 만들어낸 하얀 안개의 광막이 대전 안의 모든 기운을 한 치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차단했다.

    오장관 깊은 곳. 접인도인 앞의 거울에서도 하얀 안개가 피어올라 모든 것을 가렸다.

    “이건 무슨 금제이기에 주역경(周易鏡)의 탐색까지 가린단 말인가!”

    접인도인은 놀라서 서둘러 청동 거울을 결인했다.

    청동 거울이 빠르게 반짝거렸지만, 하얀 안개는 살며시 흔들리기만 할 뿐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접인도인은 표정이 어두워졌으나, 잠시 후 차갑게 비웃고는 결인했다. 그러자 거울의 모든 빛이 사라지면서 거울 안의 모든 장면도 함께 사라졌다. 뒤이어 접인도인은 몸을 돌려 나갔다.

    * * *

    일월전. 몇 개의 금제를 설치한 심협은 그제야 안심하고 일월주천로 앞에 앉아 붉은 영패로 신로를 운공하기 시작했다.

    일월주천로에서 보랏빛이 솟아오르면서 갑자기 뚜껑이 떠올랐다.

    이어서 소매를 휘두르자 순양검배가 날아올라 신로 안을 조용히 떠다녔다.

    신로에 새겨진 일월성진 그림이 전부 번득이자 보라색 빛이 신로 곳곳에서 뿜어져 나와 순양검배를 휘감았다.

    순양검배의 영문이 밝아지면서 내부의 영력이 천천히 순수해졌고, 이에 따라 맑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구천신로답구나!”

    심협은 크게 감탄했다.

    꿈속 진원자의 말에 의하면 일월주천로는 자라선옥을 제련하여 만들었다. 보라색 빛은 자라선옥의 영광으로, 법보를 품는 효능이 있었다.

    그는 잡념을 털어 버리고는 만년화린목을 꺼내 신로 안에 넣었다. 그러자 바닥의 일월건곤대진도 웅웅 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월주천로 부근의 화룡 조각상도 바로 붉은 불꽃을 토해냈다. 일월주천로의 금제가 따라서 움직이면서 찬란한 별빛을 반짝였다.

    신로 주변의 금빛 금제와 만난 붉은 불꽃은 바로 안으로 흘러 들어가 신로 바닥의 아홉 개 구멍에서 솟아올랐다.

    본래 광포하게 타오르던 지심성화는 일월주천로 금제에 길들여지면서 점점 온순해져갔다.

    심협이 현천공화결을 시전하자 지심성화는 비단처럼 넓게 펼쳐져 만년화린목을 촘촘히 휘감았다.

    만년화린목 표면이 붉게 빛나자 안에 담겨 있던 순양의 힘도 점점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이 영목은 만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왔기에 영력이 깊이 축적되어 밖으로 흘러나오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일월건곤대진을 사용하여 더 많은 지심성화를 소환하자 만년화린목 안 순양의 기운 파동이 갑자기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 시진 뒤, 만년화린목의 나이테가 많이 축소되었고, 재질도 반투명하게 변했다. 이제 더는 영목이 아닌 화홍색 옥석처럼 보였다. 화린목 위의 붉은 빛은 이전보다 열 배나 더 밝아져 마치 커다란 붉은 등불 같았다. 안에 있던 순양의 힘은 더욱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심협은 기뻐하며 결인했다.

    순양검배가 바로 날아오르더니 붉은 빛으로 변하여 단숨에 화린목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그는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여 순양검배를 운공했다.

    순양검배는 자신의 주재료인 화린목의 기운이 주위에서 느껴지자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심협은 안도했다. 하지만 오늘 그가 원하는 것은 만년화린목만이 아니라 홍련업화까지 순양검배에 넣는 것이었다.

    소매를 휘두르자 두 개의 하얀 빛이 일월주천로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는 홍련업화가 담긴 하얀 구슬이었고, 다른 하나는 몇 척 크기의 하얀색 옥판이었다.

    옥판에는 복잡한 법진이 새겨져 있었는데, 처음 홍련업화를 연화할 때 사용했던 법진이었다. 심협은 어젯밤 자신의 소장품과 오장관의 영재를 약간 모아 저 옥판을 제련했다.

    법력을 밀어 넣자 하얀 구슬에서 갑자기 백색 광막이 떠올랐다.

    “갈라져라!”

    심협은 낮게 외치며 손가락을 튕겼다.

    한 줄기 날카로운 검기가 구슬의 하얀 광막을 베자 틈이 생겼다. 그러자 홍련업화가 벌떼처럼 쏟아져 나오더니 빠르게 일월주천로 안을 절반이나 채웠다.

    하얀 구슬 안에 이렇게 많은 홍련업화가 담겨 있는 걸 보자 화색이 돌았다.

    심협은 정신을 가다듬고 결인했다. 그러자 하얀 옥판이 순양검배 위로 날아올랐다. 법진이 움직이면서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의 결인이 바뀌자 붉은 빛에 둘러싸인 하얀 옥판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내 소용돌이로 변하여 강력한 흡수의 힘을 뿜어냈다.

    일월주천로 안의 홍련업화는 소용돌이의 강력한 흡입력에 이끌려 천천히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고, 가장 마지막에는 소용돌이 끝을 통해 순양검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옥판 법진의 연화를 거치자 홍련업화의 야성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순양검배 안에 이미 연화되어 있던 홍련업화는 같은 천화의 기운을 느끼자 갑자기 폭발하면서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홍련업화를 미친 듯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내심 안도했으나, 아직 안심할 수 없었기에 전력을 다해 신로 안의 움직임을 제어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 7일이 지났다.

    심협이 일월주천로 앞에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7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쉬지도 않으면서 모든 정신을 보물 제련에 쏟아부었다. 그의 경지가 높았어도 더는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순양검배의 제련은 거의 완성되어 갔다.

    일월주천로 안. 만년화린목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원기는 순양검배 안으로 주입된 상태였다. 신로 안의 홍련업화도 전부 순양검배 안으로 들어갔다.

    순양검배의 외형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상당히 길어졌고, 검날 주변에는 눈부신 붉은 빛이 박동하고 있었다.

    붉은 검망이 흘러나오면서 이전보다 열 배는 더 강력한 순양의 기운이 폭발하자 일월주천로도 가볍게 흔들렸다.

    심협은 일월주천로 안의 순양검배를 보며 기뻐했지만, 바로 꺼내지는 않았다.

    순양검배는 이제 막 만년화린목과 홍련업화를 흡수하여 위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에 아직은 내부의 원기가 불안정하여 일월주천로의 힘으로 더 온양해야 했다.

    그는 일월주천로를 운공하여 지심성화로 검배를 감싼 뒤 천천히 타오르게 했다.

    신로 안에서 다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검배를 온양했다.

    검배 안의 원기가 점점 안정되어 갔지만, 지금의 속도로 순양검배를 완전히 안정시키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릴 것 같았다.

    심협은 조급해하지 않고 단약을 복용해 법력을 회복시키면서 일월주천로를 운공했다.

    그때, 순양검배에서 갑자기 금빛이 조금씩 새어 나오더니 빠르게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심협은 깜짝 놀라 자세히 살폈다. 반짝이는 금빛은 그가 이전에 순양검배에 새겼던 순양금제였다.

    검배 안에서 매우 짙은 순양의 힘이 어떤 틈을 찾은 것처럼 금제 안으로 흘러 들어갔고, 금제의 부문이 순식간에 선명해졌다.

    잠시 후, 검배의 순양금제가 온전해졌다.

    “어찌 된 일이지? 검배의 위력이 강해지면서 더욱 빨리 법보가 된 건가?”

    심협은 매우 기뻐하며 서둘러 두 번째 순양금제를 결인했다.

    검배에서는 순양의 힘이 계속해서 벌떼처럼 쏟아져 나왔고, 이내 두 번째 금제가 생겨났다. 게다가 검배 안에서 들끓던 순양의 힘도 차츰 가라앉았다.

    “그렇군! 순양금제는 검배에 담긴 순양의 힘을 흡수한 게 아니라 검배 안에서 폭증하는 순양의 힘을 금제의 영역으로 집어넣은 거야!”

    심협은 순양검배가 금제를 만드는 과정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검배가 금제를 만들 때는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하나는 검배를 온양하여 순양의 힘을 모으는 것, 또 하나는 이 순양의 힘을 이용하여 순양금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 순양금제를 만들 때 힘들었던 이유는 검배의 힘이 부족해서였다. 이 때문에 순양의 힘을 온양한 뒤 금제를 만드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이다.

    지금은 만년화린목과 홍련업화의 도움으로 순양검배에 담긴 순양의 힘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자 첫 번째 단계를 건너뛰었다. 그리고 지심성화에 7일간 단련되면서 검배의 모든 원기가 증폭했다. 게다가 일월주천로의 온양 효과까지 더해지자 이토록 간단하게 두 개의 금제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유야 어쨌든 지금은 순양금제를 만들 절호의 시기였다.

    심협은 머뭇거리지 않고 세 번째 금제를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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