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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77화 (677/1,214)

677화. 도울 방법이 없다

“심형, 진원자 선배께서 돌아오셨으니 남아 있을 거요?”

“물론입니다.”

“나는 동해 용궁에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함께하지 못할 것 같소.”

오홍은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급한 일이 있다면 어서 가십시오. 나중에 동해에 갈 테니 차나 한잔합시다.”

오홍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

넓은 개양전에는 이제 접인도인과 진원자를 비롯해 몇몇 오장관 시종들과 제자들만 남았다.

“심 도우, 왜 아직도……?”

접인도인은 심협이 아직도 남아 있자 놀라며 물었지만, 이내 자신이 심협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나자 바로 입을 닫았다.

“이 소우는 누구신가?”

“심협 도우는 이번 삼계무도회의 우승자입니다.”

심협이 말하기 전에 접인도인이 소개했다.

“오, 심 소우였구려. 백과선회는 이미 끝났는데 소우는 무슨 일로 남았소?”

진원자는 의아한 얼굴로 심협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원자 선배님을 뵙습니다. 후배는 진원자 선배님께 도움을 청하고 싶어 남았습니다. 선배님은 고인이시니 후배가 어찌 감히 빤히 바라보며 말하겠습니까? 접인 선배님, 약조하신 요구를 이것으로 대신해도 되겠습니까?”

심협은 먼저 진원자에게 예를 올리고는 접인도인에게 물었다.

접인도인은 이 말을 듣고는 표정이 굳었고 머쓱하여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요구? 그게 뭔가?”

진원자가 접인도인을 바라봤다.

접인도인은 심협이 진원자 앞에서 이 일을 언급하자 매우 불만스러워 긴 말이 나오지 않도록 다급하게 설명했다.

“그랬군. 그런 일이 있었다니, 어떤 요구든 말해보시오. 내 도울 수 있다면 온 힘을 다해 들어주겠소.”

진원자는 접인도인을 힐끗 보고는 심협에게 말했다.

“혹시 장소를 옮겨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심협이 주변의 시종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하자 진원자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날 따라오시오.”

두 사람은 오장관을 이리저리 거닐고는 근처에 있는 한적한 외청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으니 심 소우는 편하게 말씀하시오.”

진원자는 심협에게 앉을 것을 권하고는 상냥하게 말했다.

심협은 자리에 앉자마자 옥침과 옥판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옥침 안의 푸른 옥갑은 이미 빼서 임랑환에 넣어둔 상태였다.

“이것은……?”

진원자는 의아한 얼굴로 두 가지 물건을 바라봤다.

“이 옥침은 제가 이른 나이에 얻었던 보물입니다. 꿈속으로 보내주는 매우 중요한 보물인데, 어째서인지 갑자기 부서졌습니다. 진원 선배께서 연기술에 뛰어나시다는 말을 들어 복구를 부탁드리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심협은 공수하며 큰절을 올렸다.

진원자는 말없이 옥침을 살폈다. 처음에는 가볍게 이리저리 훑어보던 그의 표정이 점차 진지해져갔다. 기다란 다섯 손가락을 내밀어 부서진 옥침을 가볍게 쓰다듬자 손끝에서 하얀 빛이 반짝거렸다. 옥침 안의 금제를 살피는 중이었다.

심협은 옆에 조용히 서서 감히 방해하지 못했다.

진원자는 한참을 살핀 후에야 손을 거두고는 옆에 있는 옥판을 바라봤다.

“옥침을 발견했을 때, 이 옥판도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니 여기 쓰여 있는 문자는 상고 시기의 연기술 같다 합니다.”

진원자는 심협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옥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꽤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고개를 들었는데 매우 복잡한 표정이었다.

“선배님?”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말이 없자 심협은 가볍게 재촉했다.

“아, 별것 아니오. 옥판에 기록된 내용을 보니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잠시 정신을 팔았구려. 우스운 꼴을 보였소.”

진원자는 정신을 차리고는 웃었다.

“아닙니다. 옥판의 내용이 정말로 상고 시기 연기술입니까?”

심협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고는 바로 물었다.

“그렇소. 다만 이 연기술은 매우 부정한 수단이라 평범한 연기사는 쓸 수 없으니 가치가 크지 않소.”

이 옥판의 내력이 매우 신비하여 옥판에 기록된 내용이 선천연보결이나 현천공화결 같은 상고 비술일 거라 기대했던 심협은 크게 실망했다.

“그럼 이 옥침은 선배님께서 복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바로 최대 관심사를 물었다.

“내 연기술을 알기는 하나 능통한 편이 아니라 이 옥침 안의 현묘한 금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소.”

심협은 그 말을 듣자 잠시 멍해졌다. 원 국사의 점괘는 분명 오장관에 오면 옥침을 고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하지 않았던가!

“선배님의 신통으로도 아무 방법이 없는 겁니까?”

그는 단념하지 않고 물었다.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오. 접인이 그대에게 했던 약조는 내 다른 것으로 바꿔서 들어주리다.”

진원자가 탄식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면…… 오장관의 일월주천로가 천정 태상노군의 팔괘신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들었습니다. 그것을 사용하여 법보를 정련하고 싶습니다.”

심협은 실망했지만 한참 뒤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그야 간단하오. 소우는 우선 돌아가 준비하시오. 내일 사람을 보내 안내해주겠소.”

“감사합니다.”

심협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자리에서 떠났다.

진원자는 심협이 멀리 가기를 기다렸다가 천지보감을 꺼내 소매를 휘둘렀다.

보감이 열리더니 안에 있던 거울에 어떤 화면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진원자는 보감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참 뒤에야 그 보물을 거두었다.

그의 뒤에서 허공이 일렁이더니 접인도인이 나타났다.

“관주님, 심협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제시하지는 않았습니까?”

“별것 아니네. 내게 법보를 고쳐 달라더군. 한데 고칠 수 없었네.”

“관주님도 고치지 못하는 법보라니요! 어찌 그런 일이……?”

접인도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는 진귀한 보물들이 수없이 많고 내 연기술은 그저 쓸 만한 정도일 뿐이니 고치지 못하는 법보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네. 심협에게 다른 요구를 권했더니 내일 일월주천로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더군.”

“알겠습니다. 다만 심협은 평범한 대승기 수사가 아니니 뭔가 다른 의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몰래 금제를 설치하여 저자가 무엇을 제련하는지 알아볼까요?”

“그럴 것 없네. 내가 방금 천지보감으로 살펴봤더니 그는 대당 관부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네. 게다가 보타산 소종주의 약혼자이니 괜한 짓을 해서 미움을 사지 말게.”

“네, 알겠습니다.”

이어서 다른 말을 하려던 진원자의 몸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영환형부(浮影幻形符)의 시간이 다 되었나 보군. 나는 한동안 돌아오지 못하니 오장관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방비를 더욱 강화하여 다른 소란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게.”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원자의 엄숙한 말투에 접인도인은 굳은 얼굴로 서둘러 대답했다.

진원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바스러진 옥부만 남았는데, 그마저도 이내 불이 붙으면서 몇 호흡 뒤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접인도인은 그곳에 한참을 머물다가 몸을 돌려 나갔다.

* * *

심협은 이전에 묵었던 방으로 돌아왔으나,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에 서성였다.

원천강의 점괘가 틀렸다니! 대당의 국사인 그의 점괘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정말로 옥침은 고치지 못하는 것인가!

“조급해하지 말자. 오장관에서 옥침을 고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 했지 그게 진원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면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도 몰라.”

심협은 애써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옥침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내일 일월주천로를 사용할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손을 뒤집어 만년화린목을 꺼냈다. 그가 일월주천로를 쓰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그 신로의 힘으로 만년화린목을 순양검배 안에 넣기 위함이었다.

이 일은 법보를 정련하는 것보다 간단했기에 연기의 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그도 해낼 자신이 있었다.

다만 내일 만년화린목을 제련할 때 홍련업화도 검배 안에 넣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했다.

잠시 후, 그는 임랑환 안의 영재를 살펴본 뒤 일어서서 나갔다.

반 시진이 후, 심협은 돌아오자마자 바로 밀실로 향했다. 그 안에서 강렬한 영력 파동이 흘러나왔다.

다시 한 시진 후에는 피곤한 기색으로 나왔지만, 표정에는 기쁨도 엿보였다.

할 수 있는 준비는 마쳤으니 내일 신로를 사용하여 연기하기만 하면 되리라.

파란만장한 날이었기에 심협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실로 들어가서 쉬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심협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명월이 서 있었다.

“심 도우, 어젯밤에는 잘 쉬셨습니까?”

“잘 쉬었습니다. 명월 도우께서 새벽부터 무슨 일로 오셨소?”

“심 도우의 일은 모두 스승님께 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연기하는 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소.”

“절 따라오시죠.”

심협은 기뻤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명월을 따라 오장관 깊은 곳으로 날아가자 곧 골짜기 앞에 도착했다.

산골짜기에는 금색 대전이 있었는데, 한쪽에 일월전(日月殿)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골짜기 뒤는 울창한 숲이었는데, 그 깊은 곳에서 향긋한 향기가 은은히 풍겨왔다. 어떤 보물이 있는 것 같으나 금제에 막혔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곳의 짙은 천지영기는 저쪽 숲에서 전해져 오는 것 같은데 저기는 뭐 하는 곳입니까?”

이곳의 천지영기는 다른 곳보다 배는 짙었는데, 산골짜기 뒤편 숲속의 영기는 훨씬 짙었다. 이에 심협은 궁금한 듯 물었다.

“저곳은 본관의 선원(仙圓)입니다. 관내의 수많은 선과가 저곳에 있는데, 스승님께서 특수한 수단으로 저곳의 천지영기를 높여서 영과를 키우고 있습니다.”

명월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인삼과도 저곳에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심협은 호기심이 생겼지만, 이내 앞에 있는 일월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월주천로는 일월전 안에 있습니다. 골짜기에는 아무도 없고 아무런 금제도 없으니 심 도우께서 혼자 가셔도 됩니다. 일월주천로를 사용하는 방법과 안의 금제 기구를 조작하는 방법은 여기 담겼으니 안심하고 법보를 제련하십시오.”

명월은 옥간과 붉은 영패를 심협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심협은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골짜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명월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산골짜기 밖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앉았다.

심협은 곧장 일월전으로 가서 문을 세게 밀었다.

문은 매우 무거워 조금 흔들리기만 했을 뿐, 완전히 열리지는 않았다.

심협이 더 힘을 주자 무거운 문은 그제야 천천히 밀렸다.

뜨거운 열기가 안에서 덮쳐오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내부를 둘러봤다.

일월전은 유리전이나 개양전보다 더 넓었다. 반경 수십 장에 붉은빛으로 번득였는데, 30여 개의 화홍석 기둥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이 기둥들은 상당히 두꺼웠고, 위에는 매우 생생하여 언제든 살아날 것 같은 화룡 조각상이 새겨져 있었다.

화룡 조각상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이 대전 중앙에 있는 연기로를 뒤덮고 있었다. 비록 붉은 하광이 뒤덮고 있었지만, 신로에 그려진 일월성진의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광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하여 더욱 현묘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일월주천로였다. 그 주변 바닥에 그려진 복잡한 법진은 주변의 돌기둥들과 연결되어 붉은빛으로 빛났다.

심협은 놀란 눈으로 이 모든 것을 살피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처음 순양검배를 제련할 때 사용했던 취보당의 연기실과 지금 있는 연기실을 비교하자 취보당의 허름함에 웃음이 절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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