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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76화 (676/1,214)
  • 676화. 진원자

    또 다른 마보인 유령주는 흑색 마갑과는 달리 그 안에 매우 은밀한 공간을 가지고 있어 만약 그의 강력한 신식이 아니었다면 못 알아챘을 것이다.

    접인도인은 흥분한 표정으로 모든 신식을 동원하여 마령주 안에 흘려보냈다.

    하지만 유령주는 마족의 법보인 만큼 사용된 금제가 선인의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또한 이 보물을 제련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기에 금제 봉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는 데 한참이 걸렸다.

    유령주에는 짙은 마기만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었고, 이에 접인도인은 크게 실망했다.

    유령주의 금제를 무리하게 뚫느라 지친 접인도인은 이어서 잔뜩 쌓여 있는 선옥은 훑는 듯 마는 듯 다른 보물들로 넘어갔다. 부서진 옥침과 붉은 영목, 금색과 청색의 선과, 푸른색 옥병, 주홍색의 불꽃이 담긴 하얀색 구슬…….

    이 몇 가지 물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매우 강렬했다.

    접인도인은 심호흡을 하고는 신식으로 몇 가지 물건을 덮어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표정은 더욱 굳어갔다. 나머지 물건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접인도인은 한참을 침묵했다가 다시 신식을 펼쳐서 임랑환 안의 물건들을 두 번이나 다시 살펴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달갑지 않았지만, 접인도인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협의 저물법기에는 잃어버린 선과와 관련된 단서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접인 선배님, 어떻습니까?”

    심협이 불쑥 물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군. 내 심 도우를 오해했소. 약조한 대로 심 도우가 원하는 바를 말하면 내 최대한 들어드리리다.”

    접인도인은 잠잠히 있다가 임랑환과 순양검배를 건네며 말했다.

    “접인 선배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검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이 일은 차후에 얘기하시죠.”

    심협은 임랑환을 다시 손목에 차며 말했다.

    접인도인은 의외의 반응에 내심 놀랐으나,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임랑환 안에서는 쌓여 있던 선옥 중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푸른색 옥갑으로 변했다. 그 위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는데, 바로 양의미진 부적이었다. 이 부적으로 푸른색 옥갑을 선옥으로 바꿔 접인도인의 탐색을 피했던 것이다.

    물론 양의미진진이 없는 상태인 만큼 부적으로만 옥갑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심협은 일부러 접인도인과 실랑이를 하며 시간을 번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접인도인의 경지가 워낙 고강하여 이 부적으로 속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선옥 사이에 숨겨 상대의 집중력을 분산시켰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성공했다.

    “다음 분.”

    심협은 곁눈질로 오홍을 바라봤다. 다음 대상은 오홍이었다.

    공옥 옥갑이 천지보감의 탐색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지만, 오홍이 어젯밤 정말로 인삼과를 훔쳤다면 약간의 기운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오홍은 심협에게 웃어 보이고는 자신감 있게 앞으로 나갔다.

    “접인도인. 어서 살펴보시죠.”

    접인도인은 천지보감을 운공하자 금빛이 날아 오홍의 몸을 덮었고 천지보감 안에 오홍의 모습이 비쳤다.

    금빛 파동이 그의 온몸 구석구석을 살폈으나, 아무런 이상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소. 협조에 감사드리오.”

    심협과 한바탕 오해 때문에 접인도인의 태도는 한층 조심스럽고 우호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홍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돌아왔고, 심협도 이를 보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 시진 뒤, 대전 안의 모두를 살폈으나 범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접인도인의 표정은 어두웠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접인 선배님, 두 번이나 탐색했으니 이제 가봐도 되겠습니까?”

    아까 급하게 떠나려고 했던 푸른 도포의 사내, 청운 도인이 말했다.

    “그게…….”

    접인도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전에 있는 모든 사람을, 그것도 두 번씩이나 살폈다. 더는 붙잡아둘 명분이 없었다. 허나 이대로 가게 둔다면 인삼과를 훔친 범인은 영원히 찾지 못하리라. 그렇다고 다른 탐색 수단도 없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접인도인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의 몸에서 하얀 옥부(玉符)가 날아올랐다. 옥부에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긴 복잡한 부문이 그려져 있었다.

    이 옥부는 곧장 하얀 빛을 뿜어냈는데, 그 빛이 점점 모여 반투명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청아한 외모에 세 가닥의 긴 수염, 불진을 든 모습은 범상치 않았다.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상대는 바로 진원자였는데, 부적으로 만든 분신이었다.

    무슨 부적을 사용했는지 그의 분신은 보통 사람과 거의 다름이 없었고, 마치 진짜처럼 표정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진원자의 표정은 어두웠고 두 눈빛은 날카로운 게 매우 화난 모습이었다.

    “관주님!”

    접인도인은 크게 기뻐하더니 바로 하얀 빛의 분신을 향해 예를 올렸다.

    “조사님!”

    다른 오장관 제자들도 예를 올렸다.

    “진원 선배님을 뵙습니다!”

    대전 안의 다른 수사들도 황급히 예를 올렸다. 이어서 접인도인이 오장관에서 발생한 변고를 설명하려던 순간, 진원자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일의 발단은 모두 알고 있으니 도우 여러분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바로 열매를 훔친 범인을 잡아내겠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손을 내밀었다. 웅대한 금빛이 오장관 깊은 곳에서 날아와 순식간에 대전 밖에 나타났고, 대전 주변에 설치되어 있던 금제를 뚫고 들어와 진원자의 손에 떨어졌다. 바로 진짜 천지보감이었다.

    이 천지보감은 접인 도우의 것보다 더 작았고 겉에는 혼돈의 빛을 띠고 있어 마치 천지개벽 때 탄생한 것처럼 아득한 느낌을 주었다.

    진원자가 결인하자 천지보감이 뜨거운 태양과 같은 금빛을 뿜어내더니 순식간에 대전 안의 모든 사람을 덮었다.

    뜨거운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와 몸 구석구석을 훑자 다시 한번 맨몸이 드러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접인도인의 것보다 더 철저했다.

    임랑환도 놓치지 않고 뜨거운 기운이 흘러 들어갔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하여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였다.

    임랑환 안의 푸른색 옥갑이 바로 움직여서 부서진 옥침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이 일을 마치는 순간, 뜨거운 기운이 몰려와서 임랑환 안의 모든 것을 뒤덮었다.

    이번의 뜨거운 기운이 더 강하고 세밀하다고는 하나 부서진 옥침에는 예측할 수 없는 신통이 있었다. 뜨거운 기운은 옥침에 닿자마자 물이 바위를 만난 것처럼 양쪽으로 스쳐 지나갔다.

    심협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그때, 날카로운 소리가 대전 안에서 울려 퍼졌다. 진원지는 검은 도포의 사람이었다. 그의 팔찌에 있던 저물법기에서 금빛이 반짝이자 상쾌한 향기와 함께 실오라기 같은 초록빛이 흘러나왔다. 그 냄새를 맡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모공이 활짝 열리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함을 느꼈다.

    “인삼과! 도둑놈이 바로 너였구나!”

    접인도인이 갑자기 검은색 도포 사람을 향해 오른손을 결인했다.

    푸른 비검이 잔영을 남기며 순식간에 상대의 머리 위로 날아가 허공을 베었다.

    하지만 검은 도포의 사람은 저물법기에 이변이 생긴 순간부터 대비하고 있었다. 그의 몸이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고, 푸른색 비검은 허공을 베었다.

    어느새 대전 입구에 나타난 그가 크게 외치자 주먹이 암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교룡이 동굴 밖으로 날아오르는 듯한 기세로 푸른색 광막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지나는 곳마다 허공이 웅웅 하며 떨려왔고,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파문이 강하게 푸른 광막을 때렸다.

    콰쾅!

    굉음과 함께 푸른색 광막이 거울처럼 깨지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검은색 도포의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번개처럼 밖으로 빠져나갔다.

    “도망 못 간다!”

    접인도인이 분노로 포효하며 손을 뒤집자 푸른색 작은 깃발이 나타났다.

    이어서 깃발을 휘두르자 부서진 광막이 갑자기 번득이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푸른색 연꽃으로 변했다. 연꽃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의 기둥이 날아오른 검은 도포의 사람을 감쌌고, 그는 허공에 우뚝 멈췄다.

    접인도인이 동시에 다른 손을 휘두르자 허황된 은빛이 뿜어져 날아갔다. 믿기 힘든 속도로 날아간 은빛은 검은 도포 사람의 머리 위를 강하게 내리쳤다.

    심협이 현음미동을 운공해 살펴보니 은빛 안에 있는 법보가 보였다. 은색의 둥근 고리였는데, 바로 꿈속 세계에서 봤었던 박룡권이었다.

    검은 도포의 사람도 박룡권의 위능을 알아챘는지 갑자기 괴이한 소리를 내더니 몸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동시에 연꽃의 푸른 빛을 조금 밀어낸 그는 간신히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빠르게 결인했다. 온몸에서 구름 같은 황금색의 상서로운 빛이 번쩍였다.

    이 상서로운 빛은 법문의 신통과 매우 비슷했지만, 불문의 순수한 기운이 아닌 음험한 느낌을 주었다.

    검은 도포 사람의 법결이 변하자 이 빛이 바로 금색의 커다란 손으로 변하여 박룡권을 떨쳐내려 했다.

    하지만 금색의 커다란 손이 닿는 순간, 박룡권은 갑자기 사라지더니 검은 도포 사람의 어깨에 나타나 강하게 옥죄었다. 동시에 박룡권에서 은빛이 뿜어져 나오자 검은 도포가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얼굴이 드러났다.

    회색 머리카락에 누추한 이 남자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저자는 누구지?”

    대전 안의 누구도 그를 모르는 것 같았다.

    접인도인은 말없이 두 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박룡권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아홉 개의 부문이 떠올랐다.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부문은 순식간에 은색의 광막으로 변하여 누추한 남자를 에워쌌다.

    그의 몸은 완전히 속박되어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접인도인이 그제야 안심하고는 옆의 진원자에게 무슨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쿠르릉!

    은색 광막이 갑자기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강력한 파동이 누추한 남자의 몸에서 폭발했다. 이어서 기가 충만해진 것처럼 빠르게 부풀어 올랐고, 박룡권조차 이를 막지 못했다.

    접인도인이 급변한 얼굴로 번개처럼 몸을 돌려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하자 박룡권의 은빛도 같이 커졌다.

    하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펑!

    굉음과 함께 누추한 남자의 몸이 폭발해 검은색 태양으로 변하더니 주변의 은색 광막을 강하게 두들겼다.

    은색 광막에 균열이 생겼고, 몇 호흡 뒤에는 터질 조짐을 보였다.

    반면 검은 태양의 기세는 조금도 줄지 않았고, 계속해서 빠르게 퍼졌다. 아래에 있던 푸른 연꽃은 시든 것처럼 소멸했고, 푸른색 광막도 절반쯤 부서졌다.

    개양전의 벽은 검은 태양에 충격을 받아 곧 무너질 듯 강하게 흔들렸다.

    대전 안의 사람들은 일제히 멀리 피했고, 각자 법보를 꺼내 몸을 보호했다.

    심협도 황급히 물러나며 기혈번으로 몸을 보호했다.

    진선기 수사의 자폭은 그 위력이 상상 이상이었고, 개양전은 좁았기에 모두가 완전히 피하기는 불가능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진원자가 천지보감을 앞으로 내밀었다.

    짙은 금빛이 보감에서 쏟아져 나와 번개처럼 검은 태양을 뚫고 지나갔다.

    폭발할 듯 커지던 검은 태양이 그대로 멈추더니 구멍 난 풍선처럼 빠르게 쪼그라들면서 몇 호흡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한 차례 폭풍이 물러가자 대전 안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감탄한 눈길로 진원자를 바라봤다.

    “제가 방심했습니다.”

    접인도인이 자책하자 진원자는 손을 내젓고는 개양전 대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추한 남자는 이미 뼈조차 남지 않았고, 그가 가지고 있던 저물법기도 소멸했다. 그 안에 있던 인삼과도 당연히 완전히 사라졌다.

    접인도인은 더 울화가 치밀었는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다만 그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기에 심호흡을 하며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모두에게 우스운 꼴을 보였습니다. 일전의 무례함을 용서해주십시오.”

    접인도인은 푸른 비검과 박룡권을 거두고는 대전 안의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은 함께 고개를 숙여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표시를 했다.

    “그럼 저희는 이제 가봐도 되겠습니까?”

    접인도인이 진원자를 바라보자 진원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접인도인이 웃으며 푸른 깃발을 휘두르자 대전 주변에 설치되었던 금제가 천천히 사라졌다.

    이유 없이 오장관의 사건에 휘달렸던 그들은 진원자까지 등장했으니 이곳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기에 모두가 인사하고는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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