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74화 (674/1,214)

674화. 천지보감(天地寶鑑)

심협은 생각에 잠긴 채 손을 휘둘렀다. 푸른 빛이 두 개의 손으로 변하여 천천히 옥갑을 열었다.

옥갑 안에는 만독혼원주와 부러진 참마검이 들어 있었다.

“오형이 왔다 갔구나! 이렇게 빨리 돌려주다니.”

심협은 눈썹 끝을 치켜세웠지만, 별 생각 없이 두 가지 보물과 청색 옥갑을 챙겼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결인하여 건물 밖의 금제를 없애고는 문을 열었다. 명월이 밖에 서 있었다.

“명월 도우.”

심협은 명월이 이렇게 일찍 찾아와 매우 의외였지만 웃으며 인사했다.

“심 도우, 어젯밤은 잘 쉬셨습니까?”

“오장관 땅의 짙은 영력을 마음껏 받아 성과가 좋았습니다. 하하!”

심협은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명월은 그 말을 듣고는 밀실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짙은 물의 영력 흔적이 일렁이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군요. 백진연이 곧 시작되니 개명전(開明殿)으로 가시면 됩니다. 저는 다른 도우께도 알려야 하니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명월은 바로 시선을 거둬서 공수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명월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협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고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명월은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눈빛 깊은 곳에서 신중함과 의심이 깊이 서려 있었다. 명월은 인사를 핑계 삼아 무언가를 조사하러 온 듯했다. 현음미동을 대성한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오장관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심협은 의아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오장관에 무슨 일이 생겼건 자신이 뭘 어쩌겠는가.

심협은 오홍의 거처 쪽을 돌아봤다. 오홍은 벌써 나갔는지 그곳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훌쩍 날아 오장관 깊은 곳으로 향했다.

명월에게서 미리 개명전이 있는 곳을 들었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개명전은 유리전과 비슷한 규모에 탁자가 즐비했다. 어제 남았던 수사들이 현재 대부분이 도착해 있었다. 오홍도 있었다.

한데 대전 안의 분위기는 무거웠고, 수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거렸다.

“오형, 무슨 일이 있습니까?”

심협이 오홍 옆으로 다가갔다.

“나도 모르겠소. 어젯밤에 오장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침부터 오장관 제자들이 잔뜩 긴장한 것 같소.”

오홍이 고개를 내젓자 심협은 속으로 역시나 하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반 시진 뒤, 어젯밤에 남은 수사들이 전부 개명전에 모였다.

“관내에 작은 일이 생겨 처리하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접인도인이 대전 밖에서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접인 선배.”

대전 안의 수사들이 그를 향해 인사했다.

“모두 모이신 것 같으니 백진연을 시작하겠습니다.”

개명전 안에 있던 시종들이 각종 선과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긴 예복을 입은 십여 명의 미녀가 대전 안으로 들어왔고, 대전 양쪽에서 악사들이 나와 악곡을 연주했다. 미녀들이 연주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인간 세계의 것보다 아름다운 음악에 대전 밖의 진귀한 풀과 꽃들도 마치 춤을 추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전 안의 수사들은 마음속에서 의심과 경계를 거두고는 영과를 맛보며 춤을 구경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심협도 마음을 놓고는 영과를 먹으며 진원자가 언제 돌아올까 생각에 잠겼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순식간에 두 시진이 지났다. 춤의 흥도 거의 다 사라졌고 선과도 대부분 먹은 후라 적지 않은 수사들이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접인도인이 연회의 끝을 선포하지 않았기에 모두가 계속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심협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그때, 미약한 신식 파동이 무언가를 알아보려는 듯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현재 심협의 경지는 높지 않았지만, 꿈속에서는 천존의 경지에 도달한 바 있었고, 경험이 풍부했다. 특히 신식 제어에 매우 정교했던 그가 잘못 느꼈을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지? 오장관에서 우리를 남으라 한 게 무언가를 찾기 위함인가?’

그는 진원 대선에게 옥침 수리를 부탁해야 했기에 꺼림칙해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 반 시진이 지났지만, 접인도인은 여전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아래에 있는 수사들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접인 선배, 오장관의 선과와 가무가 정말 훌륭하군요. 정말 즐거웠습니다. 후배는 급히 처리할 일이 있으니 여기서 인사드릴까 합니다.”

푸른 도포의 사내가 일어나면서 인사했다.

“청운(靑雲) 도우, 어찌 그리 서두르십니까? 잠시 후에 선과가 더 올 거요. 그중에는 심령을 깨끗하게 해주는 세심과(洗心果)도 있어 청운 도우의 완심결(浣心訣)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오.”

“호의에 감사합니다만,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후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푸른 도포의 수사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고는 접인도인에게 포권을 한 후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한데 그가 대전의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 갑자기 푸른 광막이 나타나 길을 막았다.

부드럽지만 강력한 광막의 힘에 푸른 도포의 수사는 세 걸음이나 물러난 뒤에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접인 선배, 이게 무슨 뜻입니까?”

푸른 옷의 수사는 안색이 변하더니 갑자기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대전의 다른 수사들도 이 광경에 표정이 변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접인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하며 말했다.

“접인도인,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십시오. 저는 누군가에게 금제로 당하는 걸 즐기지 않습니다.”

백계가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 서우하주 상회의 회장인 그가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봤겠는가.

홍월노조와 금갑 청년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백계 도우, 조급하게 굴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이곳에 남게 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어젯밤 본관의 선과원(仙果園) 깊은 곳에 있는 몇 그루 선품 영과를 도둑맞았소. 게다가 본관의 진관 보물인 인삼과마저 세 개가 사라졌소!”

접인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인삼과를? 어찌 그런 일이!”

백계의 표정이 바뀌었고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인삼과의 명성은 자자하여 삼계 제일의 선과라 할 만했다. 1만 년에 고작 수십 개밖에 열리지 않는데 그중 세 개를 도둑맞은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심협도 놀랐지만,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그래서 명월 도우의 반응이 그랬던 게로군. 잠깐, 어젯밤이라고?’

심협은 가슴이 철렁해 아무도 모르게 옆에 있는 오홍을 바라봤다.

오홍이 오장관에 온 목적은 인삼과였다. 그리고 어젯밤, 갑자기 자신에게서 만독혼원주와 참마검을 빌려갔었다.

‘설마…… 오형이?’

하지만 오홍도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몰래 현음미동을 운공하여 살펴봐도 거짓은 없어 보였다.

‘진짜 오형의 소행은 아닌 모양인데?’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현음미동은 이미 대성하였기에 그 관찰력은 보통 사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른 일은 몰라도 관찰에 관해서는 어떤 연기로도 그를 속일 수 없었다.

“인삼과 부근에는 본문의 금제가 있으니 바로 경보가 울려야 했거늘, 이 도둑은 오장관의 호법 대진을 열었습니다. 지금 그 도둑은 아직도 관내에 있으니 모든 도우를 여기에 남게 한 것도 도둑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함이니 모두 양해해 주십시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사람들은 경계하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접인 도우께서는 생각해두신 방법이 있다면 편히 사용하십시오. 저도 감시를 당하는 것보다는 어서 그 도둑을 찾아내 혐의를 벗고 싶군요.”

백계도 좀 전에 자신을 훑고 지나간 파동을 느꼈던 모양인지 그렇게 말했고,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우 여러분의 협조에 감사드리오.”

접인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했다.

이어서 그가 바깥을 향해 손을 휘두르자 대전 입구에 나타난 푸른 금제에서 문이 하나 열리더니 10여 명의 오장관 제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협이 알고 있는 청풍과 명월은 물론 다른 자들의 경지도 모두 대승기였다.

이들은 대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진기와 진반 등을 꺼내 술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접인도인도 검은색과 하얀색 깃발을 꺼내 두 손을 바퀴처럼 깍지 끼고는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깃발에서 갑자기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제자들의 진기와 진반 등에서 마찬가지로 빛이 솟아오르더니 흑백의 기둥과 연결되면서 반구 형태의 광막이 대전 안을 뒤덮었다.

광막의 절반은 흑이요 나머지 절반은 백으로, 마치 태극문양 같았다.

대전 안의 수사들은 접인 도인에게 마음껏 살펴보라고 하긴 했으나 막상 이런 상황이 되자 적잖은 사람이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모두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오장관의 태극생화대진(太極生化大陣)으로, 탐색용일 뿐 공격성은 전혀 없습니다.”

접인도인은 그렇게 사람들을 조금 안심시킨 후 태극생화대진을 운공했다. 본래 대전 전체를 덮고 있던 하얀 광막이 점점 줄어들면서 모든 사람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 광막이 훑고 지나가자 사람들은 발가벗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퍽 불쾌했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오장관의 인삼과가 사라진 만큼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야만 했기에 모두가 묵묵히 탐문을 받아들였다.

태극생화대진이 심협을 훑고 지나가면서 수많은 탐색 파동이 임랑환 안까지 들어왔다. 심협은 거리낄 것이 전혀 없었기에 태연하게 탐색을 받아들였고, 곁눈질로 옆의 오홍을 바라봤다.

오홍의 표정도 평온했고, 하얀 광막이 훑고 지나가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이를 본 심협의 눈빛이 흔들렸다.

태극생화대진은 대전 안의 모든 수사를 훑고 지나갔지만 별다른 점이 없었다.

대전 안의 수사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도적이 매우 깊이 숨긴 모양입니다. 태극생화대진으로도 찾아내지 못했으니 이 보물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접인도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서 그가 손을 휘두르자 손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네모난 청동색 상자가 나타났다. 그 위에는 ‘천지(天地)’라고 쓰인, 좌우로 굳게 닫힌 창문 같은 장치가 있었다.

“저건 무슨 보물이지?”

심협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상자에서 엄청난 영력이 느껴지자 호기심에 눈을 떼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저건…… 천지보감(天地寶鑑)!”

오홍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외쳤다.

“천지보감? 그게 무슨 보물입니까?”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오홍을 돌아봤다.

“저건 진원자 선배님의 지보 중 하나로, 천지와 소통할 수 있소. 법력만 충분하다면 삼계의 모든 곳을 비출 수 있다고 들었소.”

오홍이 정신을 차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그런 보물도 있었습니까?”

“동해 용왕의 자제답게 오홍 도우는 역시 식견이 넓군요. 다만 진짜 천지보감은 관주님께 있고 이것은 복제품에 불과하여 삼계를 살펴볼 수는 없소. 단지 한 사람을 지정해 살펴볼 수는 있지요.”

접인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보물 아니겠소? 접인 도우께서는 그 보물로 우리를 하나하나 비춰볼 생각이신지요?”

“송구하지만 이게 유일한 방법이니, 도우들께서는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오.”

접인도인이 모두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대전 안의 수사들은 이미 협조하기로 결심한 상태였기에 이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