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70화 (670/1,214)
  • 670화. 접인도인(接引道人)

    “어쨌든 우선 들어갑시다.”

    오홍의 말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여 오장관으로 향했다.

    “두 분 도우께서도 오장관의 백과선회에 참석하시는 겁니까?”

    문밖의 도동이 심협과 오홍에게 인사하며 물었다. 그는 경지가 비교적 낮아 벽곡기에 불과했지만, 명문의 소속답게 심협과 오홍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았다.

    “그렇소. 나는 동해의 오홍이고 이쪽은 내 벗, 심협이오.”

    오홍이 말하면서 초대장을 건넸다.

    “동해 오 선배님이셨군요. 환영합니다. 다만 초대장에는 선배님의 이름만 적혀 있군요. 성회의 규정상 한 분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푸른 옷의 도동은 옆의 심협을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허, 건방지다! 겨우 백과선회 따위에 벗도 못 데리고 들어간단 말인가!”

    오홍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호통쳤다.

    “부디 용서하십시오. 이번 백과선회는 접인장로(接引長老)께서 주최하시는 행사라 새로운 규정이 생겼습니다.”

    “접인장로가?”

    오홍은 마치 듣기 싫은 이름을 들은 것처럼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오형, 내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 너무 개의치 마시오.”

    “어찌 그럴 수 있겠소? 여기까지 동행했는데 어떻게 그대를 놓고 갈 수 있단 말이오?”

    오홍이 고개를 내젓고는 푸른 옷의 도동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다. 그때 얼굴이 네모로 각진 청년 도사가 산문에서 나오다가 흠칫 놀랐다.

    “혹시…… 심협 대인? 삼계무도회 우승자 그 심협이 맞습니까?”

    그러자 오홍이 놀란 듯 심협을 돌아봤다.

    “삼계무도회? 심형 거기 참가했소? 아니, 우승을 했다고?”

    그는 그동안 고민거리가 있어 삼계무도회에 관심을 두지 않은 터였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심협은 공손하게 답하고는 상대에게 공수했다.

    청년 도사는 경지가 매우 높아 대승 절정이었고, 진선기까지 한 걸음만 남겨둔 상태였다.

    “심 도우, 너무 겸손하십니다. 심 도우의 명성은 벌써 삼계에 널리 퍼졌으니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비례(菲禮)입니다.”

    청년 도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그 말에 가볍게 웃기만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청풍(淸風) 도우, 오랜만이오.”

    오홍은 청년 도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인 듯했다.

    청년 도사도 인사하고는 도동에게 엄한 말투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어째서 두 분 도우가 들어오는 것을 막은 게지?”

    “청풍 도우께서는 소도우를 나무라지 말아 주십시오. 저와 오형은 함께 왔으나 제게 초대장이 없어 법도대로 한 것뿐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명성 높은 심 도우께서 오장관에 오신 것은 본관의 영광입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청풍은 껄껄 웃으며 둘을 안으로 안내했다.

    심협은 감사의 의미로 포권을 하고는 오홍과 함께 오장관으로 들어갔다.

    산문에 들어가자 웅장한 대전이 있었고, 그 옆의 기둥에는 ‘장생불로신선부, 여천동수도인가(長生不老神仙府, 與天同壽道人家)’라고 쓰여 있었다.

    ‘엄청난 기세로군. 진원자는 지선의 선조이니 저 문장을 감당할 만하지.’

    심협은 속으로 생각했다.

    세 사람이 대전으로 들어가 큰 문을 지나자 앞에 누각이 눈에 들어왔다. 상서로운 구름이 가볍게 춤을 추고 있었고 선학들이 곳곳에서 날아다녔다.

    “이번 백과선회는 유리전(琉璃殿)에서 거행되니 절 따라오십시오.”

    청풍이 앞장서서 안내했다.

    “오형, 이 백과선회가 도대체 뭡니까?”

    심협은 전음으로 오홍에게 물었다.

    “심형도 알겠지만, 오장관에는 각종 선품의 영과들이 열리는데 대부분이 삼계 다른 곳에서는 사라진 것이라 각 문파의 수사들이 찾아와 선과를 구하고는 한다오. 이게 오장관 입장에서는 워낙 번거로운 일이라 10년에 한 번씩 교역회를 열곤 했지. 한데 이 교역회의 명성이 점점 퍼지면서 많은 수사가 자신의 선과를 가지고 와서 영물과 교역을 하다 보니 지금의 백과선회가 된 것이오.”

    “오형도 선과를 얻으러 온 겁니까?”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전음으로 물었다.

    “그렇소. 아버님의 건강이 상하셔서 귀한 선과를 구하러 온 것이오.”

    오홍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동해용왕께서요?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그럼 사양하지 않고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겠소. 심형도 마찬가지로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시오.”

    오홍은 심협에게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께서는 이번에 잘 오신 겁니다. 이번 백과선회는 접인장로께서 주최하셔서 평소보다 3할 이상 더 많은 선과를 내놓았습니다. 두 분께서 꼭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앞에서 안내하던 청풍이 웃으며 말했다.

    “오, 그럼 이번 대회에 인삼과(人參果)도 나오는 것이오?”

    오홍이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

    “인삼과는 본관의 진명(鎭觀) 선과라…… 지난 백과선회 때는 하나가 나왔지만 이번에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청풍이 당황한 듯 웃으며 말했다.

    이에 오홍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심협 또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삼과의 명성은 그도 알고 있었다.

    “오형, 너무 실망하지 마시오. 백과선회에서 어떤 영과를 내놓을지는 주최인이 결정하는 것이니 어쩌면 이번에도 인삼과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청풍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길 바랄 뿐입니다.”

    오홍은 표정이 조금 풀어졌으나 이내 쓰게 웃었다.

    이들은 금세 오장관 깊은 곳의 대전 밖에 이르렀다.

    이 대전은 전체가 유리와 옥석으로 만들어져 있어 곳곳이 반짝거렸고, 내부는 모두 유리로 장식되어 있었다.

    폭이 족히 3백 장은 되어 보이는 대전에는 수백 개의 좌석이 놓여 있었는데, 벌써 절반은 사람이 차 있었다.

    대전 가장 깊은 곳에는 길쭉한 석대(石帶)가 있었고, 보아하니 주인의 자리 같은데 지금은 비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 대부분은 오홍에게로 향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의 기운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했다.

    그중 일부는 심협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는데 대부분 삼계무도회 이야기였다.

    심협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본래 그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다. 만약 옆에 오홍이 없었다면 외모를 바꿨을 것이다.

    청풍은 두 사람을 비교적 안쪽의 빈 좌석으로 안내했다.

    “두 분 도우는 여기서 쉬고 계십시오. 필요한 게 있으면 옆의 시종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저는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니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회장 옆에 있는 시종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청풍 도우를 번거롭게 했군요. 일 보십시오.”

    오홍이 청풍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심협은 진원자를 만날 수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 여겨 말을 삼켰다.

    ‘오장관에 들어왔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청풍은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심협은 백과선회에 호기심은 있었으나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은 없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경지가 가장 약한 자도 출규기였고, 대부분은 대승기 이상이었다.

    심지어 몇 명은 진선기였다. 앞서 만났던 붉은 승포의 승려도 그중 한 명이었고, 대전 오른쪽에 살진 얼굴에 귀가 큰 노란 옷의 남자, 뒤쪽 구석 흑의의 사내와 삿갓을 쓴 신비로운 사람 등이었다.

    “백과선회에 참여한 것은 각지의 고급 수사들이오. 붉은 승포의 승려는 서북 갈석산(碣石山)의 홍월노조(紅月老祖)인데, 경지는 진선 중기요. 성격이 고약하니 괜히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오.”

    오홍의 설명은 좀 의외였다. 오장관 밖에서 마주친 저 승려는 태도가 매우 온화했었던 것이다.

    “저기 뚱뚱한 노란 옷의 남자는 서우하주의 유명한 장사꾼 집안인 백계상회(白溪商會)의 회장 백계(白溪)요. 듣기로는 어떤 선초를 잘못 먹었다가 체질이 바뀌어 뚱뚱해졌다더군. 저자는 연체공법을 수련해 육체의 방어가 가히 금강불괴에 도달했다고 하오. 그 뒤의 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나도 처음 보는군.”

    오홍의 설명을 들으며 심협은 그들을 힐끔 살폈다.

    흑색 일색의 차림인 신비로운 남자가 시선을 눈치채고는 돌아봤다. 삿갓 아래의 두 눈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눈과 마주하자 심협은 두 눈이 마치 바늘에 찔린 것 같았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침착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흑의의 남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시선을 거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

    심협은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기다렸다.

    밖에서는 계속해서 대회에 참가하는 수사들이 도착하면서 유리전의 자리는 금방 찼다.

    그때, 밖에서 또 발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이 고개를 돌려보니 청풍과 그 뒤로 키가 큰 청년이 들어왔다.

    키가 큰 청년은 머리에 우관을 썼고 금색 갑옷을 입은 모습이 매우 당당해 보였다. 진선기의 경지인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유리전 안의 사람들을 훑어봤다.

    “위풍당당한 선장(仙將)이군. 선족 사람인가? 오형은 저자를 아십니까?”

    심협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모르겠소. 다만 복장을 봐서는 천궁의 제자 같군.”

    “천궁의 제자?”

    심협이 깜짝 놀랐다. 삼계무도회에서 본 희요도 천궁의 문하였던 것이다.

    그는 천궁이라는 문파에 대해 소문만 좀 들어본 정도에 불과했기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청풍은 금색 갑옷의 청년을 자리로 안내하고는 떠나지 않고 옆에 앉았다.

    “마겁이 사라지고 선족의 권세가 나날이 대단해지니 인간 세계에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모르겠소.”

    오홍은 그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탄식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아, 별것 아니오. 그저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오홍이 고개를 저었다.

    심협은 의아한 눈으로 오홍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잠시 후, 큰 종소리가 유리전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대화를 멈췄고, 소란스러웠던 대전 안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이 대전 깊은 곳에서 나왔다. 가장 앞에 선 자는 일월 도포를 입고 있었고, 세 갈래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져 있었다. 신선다운 기개가 넘치는 것이 보제조사와 매우 닮은 모습이었다.

    신식을 펼쳐 살펴본 심협은 크게 놀랐다. 상대의 경지를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선 후기 절정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저분이 바로 청풍 도우가 말했던 접인도인(接引道人)이오?”

    심협은 상대의 주의를 끌기 전에 서둘러 신식을 거두고는 오홍에게 전음을 보냈다.

    “맞소. 저자의 경지는 고심(高深)하여 오장관에서 진원대선 바로 다음이오.”

    심협은 그 말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

    ‘저자와 먼저 접촉해서 진원자와의 만남을 부탁해야 할까?’

    접인도인 뒤에는 두 명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는데, 도포를 봐서는 오장관의 장로 같았다. 둘 모두 대승기 경지였다.

    “허허,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백과선회를 곧 시작하겠습니다. 대회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우선 저희 오장관의 선과를 보여드릴 테니 마음에 드는 분은 말씀하시고 교환하면 됩니다. 만약 두 분 이상의 도우가 동시에 원한다면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분과 교환하게 될 것입니다.”

    백과선회의 규칙은 항상 변함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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