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68화 (668/1,214)

668화. 국사를 알현하다

앞산의 밀실 안에서 벽곡기 돌파를 시도하던 진명은 머릿속에서 심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간의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심 사제가 무사하다니, 다행이군. 허나 언제까지 심 사제에게만 의지할 수 없다. 나도 최대한 빨리 경지를 높이고 더 많은 제자를 받아 춘추관의 옛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

진명은 그렇게 결심하고는 두 눈을 감은 채 다시 벽곡기 돌파를 시도했다.

한편, 심협은 먼저 부서진 금제를 고친 후 두 개의 금제를 더 설치했다. 그리고 양의미진진까지 꺼내 동부 밖에 배치했다.

그렇게 만반의 대비를 갖춘 후에야 구여마갑을 가지고 밀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바로 마갑을 이용하여 몸 안의 마기를 끌어내지 않고 가부좌한 채 두 눈을 감고 상처를 치료했다. 막힌 경맥은 모두 뚫렸지만, 마기가 폭발하면서 몸에 준 영향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두 손으로 결인하고는 법력을 실낱같은 푸른 안개로 바꿔서 몸 곳곳을 돌기 시작했다. 조금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니 역시나 적지 않은 내상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치료 단약을 복용한 뒤 무명공법과 대개박술을 배합하여 금세 내상을 치료했다. 이어서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푸른 빛을 몸을 따라 흘려보냈다. 몸은 여전히 다소 무거운 느낌이었다.

“내상을 모두 치료했는데도 어째서 아직까지 이질감이 남아 있는 거지?”

잠시 생각하던 심협은  다시 눈을 감고 원천강에게서 전수받은 비술, 신목은택을 운공하자 몸이 초록빛으로 빛났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두 눈을 떴는데, 안색이 어두웠다.

그의 추측대로 순수하게 다듬어진 본명원기가 현재 적지 않은 흑홍색 살기에 오염되어 있었다. 마기에 물든 것이다. 다만 이 흑홍 살기는 본명원기의 운공에 영향을 주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미처 몰랐던 것뿐이었다.

어쨌든 상황은 좋지 않았다.

“본명원기를 순수하게 하는 힘이 있는 신목은택으로 살기를 연화시킬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겠군.”

심협은 다시 눈을 감고 신목은택을 운공했다.

한 가닥 을목영기가 사방에서 그를 향해 몰려오면서 점점 강한 초록 빛이 번득였다.

탁한 숨을 토해내자 본명원기 안에서 초록색 불꽃이 피어오르면서 흑홍색 살기를 감쌌다.

이는 본명원기가 불타는 게 아니라 신목은택의 연화 효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연화의 불꽃으로 만든 것이었다.

초록색 불꽃이 타오르자 본명원기 안의 흑홍색 살기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한참이 흐른 뒤, 운공을 멈추자 몸의 초록 빛도 조금씩 사라졌다.

그는 두 눈을 떴고,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본명원기 안의 살기는 이미 절반 정도 제거되었지만, 여전히 흑홍색 빛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 그가 신목은택을 아무리 운공해도 전부 제거할 수 없었다.

다행히 흑홍색 살기를 절반 정도 제거한 것만으로도 몸은 이전처럼 회복되어 무거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흑홍색 살기는 마치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슬리고 불쾌했다.

“해결할 방법은 경지를 높이고 신혼을 더 강하게 하여 마기가 다시 폭발하지 못하도록 막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한참을 생각해도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우선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마기가 침투했다는 증거를 찾았으니 구여마갑을 이용하여 마기를 끌어낼 필요는 없게 됐다.

심협은 잠시 고민한 끝에 참마검을 꺼내 단전 안으로 넣었다.

‘이 보물은 사기(邪氣)를 제압하고 마기를 부수는 신통이 있으니 단전 안에 넣어두면 후에 마기가 다시 폭발해도 막아줄지도 모른다.’

심협은 이제야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냉정을 되찾은 심협은 마기가 몸에 들어온 것이 마허지룡 마핵에 있던 치우의 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했다.

“마겁이 사라졌어도 치우의 마기는 아직 남은 것인가? 뭔가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

심협의 표정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음, 지난번 꿈속에서 치우와 싸운 후 돌아오니 현실 세계가 변해 있었다. 그렇다면 꿈속 싸움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터. 옥침을 복원할 수 있다면 꿈속 세계에서의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협은 부서진 옥침을 꺼내서 부드럽게 매만졌다.

“저번에 찾은 옥판이 옥침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거울 요괴를 나성성의 연기사에게 보냈었지.”

심협은 통령지술을 결인하여 거울 요괴를 소환했다.

통령수동 안에서 강력한 요기가 느껴지더니 거울 요괴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승 중기의 중후한 기운이 느껴졌다.

“주인님.”

거울 요괴가 심협에게 예를 올렸다.

“저번에 나성성에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심협은 쓸데없는 말은 일절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삼이라는 자에게 물었으나 그도 옥판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였습니다. 그저 어쩌면 상고 시기의 연기술일 수도 있을 거라 추측했습니다.”

말을 마친 거울 요괴는 옥판을 꺼내 건넸다.

“상고의 연기술?”

심협은 옥판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기술과 옥침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옥침 안에 담겨 있는 금제는 너무도 신비로워 꿈속과 미래가 연결되었고, 또 그곳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현실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그는 현실과 미래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적지 않은 서책으로 다양한 지식을 쌓았지만, 어디서도 옥침에 관해서는 찾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토록 놀라운 보물이라면 천책과 비슷할 테니 복원하고 싶어도 분명히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니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정교금, 흑곰 요괴, 청련선자 등 수많은 대능을 알고 있지만, 모두 연기에 능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매우 신비로워 지금도 전혀 간파할 수 없는 대당의 국사 원천강만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 국사님을 찾아뵈어야겠군. 마기를 제거하는 방법도 여쭈어야겠어.’

심협은 생각 끝에 결심하고는 거울 요괴를 불렀다.

“경지가 또 정진을 이루었구나. 혹시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잘됐구나. 나는 당분간 종문을 떠나야 할 듯하니 이 동부에 머물면서 나를 대신해 춘추관을 지켜주기 바란다. 마침 이곳의 천지영기는 상당히 짙으니 경지를 안정시키기에도 좋을 게다.”

춘추관의 실력은 아직 너무 약한 상태라 떠나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거울 요괴는 동해에 머물고 싶었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자, 이것으로 보수를 대신하지.”

심협은 두 개의 옥간과 단약이 담긴 병을 꺼냈다.

옥간에는 두 개의 정교한 수속성 공법과 법술이 들어 있었고, 단약들은 거울 요괴에게 딱 필요한 것들이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거울 요괴는 옥간과 단약을 잠시 살펴보고는 크기 기뻐했다.

심협은 거울 요괴에게 춘추관을 지키는 것과 땅속의 영계영월경의 요점을 설명하고는 몇 장의 둔지 부적을 건넨 후에야 춘추관을 떠나 장안성으로 향했다.

그의 속도로는 금방 장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심협은 원천강과 연은 있지만 친한 편은 아니었기에 무작정 찾아가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먼저 대당 관부로 찾아가 정국공에게 부탁했다.

마침 대당 관부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던 정교금은 심협의 청에 다소 놀랐으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곧장 사람을 보냈다.

심협은 조용히 편청에 앉아 어떻게 해야 원천강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허허, 심 소우. 이게 얼마 만인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심협은 벌떡 일어나 돌아봤다.

원천강이 편청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이전과 변화가 없어 보였다.

허나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심협은 깜짝 놀랐다. 현재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대승 중기에 오른 그가 원천강이 다가온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원 국사님을 뵙습니다. 제가 궁으로 들어가 뵙기를 청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여 감히 국사님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였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는 서둘러 예를 올렸다.

“괜찮네. 얼마든지…… 음, 자네 몸에 마기가 침투했군!”

원천강은 손을 내저으며 웃다가 갑자기 눈빛이 굳어졌다.

“국사님의 법안은 역시 대단하십니다! 예, 경맥에 마기가 침투했습니다.”

심협은 원청강의 안력에 감탄하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천강은 말없이 불진을 든 채 몇 개의 은빛을 쏴서 심협의 몸을 살폈다.

심협은 애써 경계심을 억누르며 원청강의 시선에 몸을 맡겼다.

몇 줄기 은빛이 그의 경맥을 찌르더니 은빛에서 뿜어져 나온 특이한 힘이 그의 경맥 안을 돌아다녔다.

심협의 경맥은 갑자기 뜨거워졌고, 흑홍색의 마기가 흘러나와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마기가 다시 폭주한 것이다!

“안 돼!”

심협은 크게 놀라며 바로 순양검결을 운공하여 단전 안에 있는 부러진 참마검을 발동했다.

참마검이 강력한 금빛을 뿜어내자 뜨거운 태양과 같은 순양의 힘이 뿜어져 나와 빠르게 몸 곳곳으로 흘러갔다.

빠르게 커지고 있는 마기와 순양의 힘이 충돌하자 물과 불이 만난 것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심협의 몸은 강하게 떨려왔다. 두 개의 힘이 경맥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충돌하자 경맥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만약 황정경을 익히지 않고 경맥도 단련하지 않았다면 이미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심협의 몸에서 깊고 무거운 살기가 담긴 검은 빛이 흘러나왔는데, 순양의 힘이 마기를 막고 있었기에 살기의 위압감이 이전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하얀색 광막이 편청을 뒤덮었다. 살기의 공격에도 이 하얀색 광막은 그저 흔들리기만 했을 뿐 이내 처음으로 돌아왔다. 원천강이 옆에서 나선 것이었다.

그는 심협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폭주한 마기를 억제하도록 돕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디며 계속해서 참마검을 움직였다. 참마검은 이제 완전히 황금빛으로 변하여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더 강력하고 큰 순양의 힘이 흘러나오자 타버릴 것 같은 경맥의 고통은 더욱 커졌다.

두 순양의 힘이 한데 어우러지자 폭주한 마기가 조금씩 제압되어갔다.

심협이 완전히 회복됐을 때는 벌써 반 시진이 지난 후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지만,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거의 탈진 상태였다.

눈을 떠보니 원천강이 관심 어린 눈으로 심협을 살피고 있었다.

“심 소우, 괜찮은가?”

원천강이 불진을 흔들자 부드러운 하얀 빛이 심협의 몸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기운이 몸에 들어오자 눈 깜짝할 사이에 온 경맥에 퍼져 막힌 맥을 뚫었고, 이에 통증이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경맥은 더욱 강해졌다.

“이제 괜찮습니다. 원 국사님께 폐를 끼쳤습니다.”

심협은 자못 감동하여 일어나 공손히 인사했다.

좀 전의 하얀 빛에서 용솟음친 약력으로 보아 단약의 힘이 담겨 있던 게 분명했다. 순식간에 체력을 회복시켜주고 경맥을 강하게 해줬으니 분명 평범한 단약은 아닐 터였다.

“나로 인해 소우 체내의 마기가 폭주했으니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네. 한데 어찌 몸에 마기가 침투한 건가?”

그는 고개를 내젓더니 화제를 돌려 묻고는 심협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마도 삼계무도회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삼계무도회라니, 그럴 리가!”

“저도 추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때 무도회에서…….”

심협은 당시 마허지룡과 이주와의 싸움 그리고 치우의 마기를 다시 마주친 일을 숨김없이 설명했다.

“치우의 마기라니! 음, 그 마기라면 가능성이 있지. 그 마두가 봉인됐는데도 여전히 그런 위력을 가지고 있다니, 놀랍군.”

원천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국사님, 치우는 정말 봉인된 게 맞습니까?”

“그건 삼계의 대능들이 합세하여 한 일이니 틀림이 없네.”

심협은 원천강의 단호함을 보고 나서야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한데 어찌하여 그의 마기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마두의 신통은 강력하니 어쩌면 다시 벗어나려는 계략을 세우고 있는 게 아닐까요?”

“치우의 봉인은 이전과는 달리 절대로 벗어날 수 없네. 마허지룡의 마핵에 있던 치우의 마기는 이전의 산물일 터. 개의치 말게.”

원천이 손을 내저으며 완강하게 답하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