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67화 (667/1,214)
  • 667화. 찾을 수 없는 우환

    밀실 안. 심협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살육과 피를 원하는 포악한 욕망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솟아 올라와 그의 정신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그는 혀끝을 깨물어 전력으로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잡았고, 피와 살육의 욕망을 간신히 억제했다.

    자신의 몸을 살펴본 심협은 충격에 빠졌다. 체내 경맥에는 어째서인지 요사스러운 흑홍색 마광이 흘렀는데, 특히 살기로 개척한 아홉 개의 법맥에는 마광이 강하게 번득였다.

    검은 살기가 경맥에서 끊임없이 용솟음쳐 몸을 휘감더니 더욱 짙어졌다.

    “마기가 경맥에 침투하다니! 도대체 언제…… 삼계무도회?”

    그의 머릿속에 마허지룡의 마기에 사로잡혔던 광경이 떠올랐다.

    당시 별다른 이상이 없어 괜찮은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큰 오산이었다. 마기는 이미 그의 경맥 깊은 곳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다.

    심협은 필사적으로 살인 충동을 제압했지만, 피를 원하는 충동은 갈수록 강해졌다. 두 눈의 흑홍색 빛도 더욱 밝아져 곧 정신이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다.

    “아, 안 돼…… 절대로…….”

    그는 이를 악물고 을목선둔을 시전했다.

    법력을 운공하자 몸에서 을목의 초록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맥 안의 흑홍색 마광은 마치 자극을 받은 것처럼 난동을 피우며 법력 안으로 들어갔다.

    몸에서 빛나던 초록빛은 몇 배로 더 밝아져 마치 초록색의 작은 태양 같았다. 그러나 이 초록빛에는 요사스러운 흑홍빛이 섞여 있었다.

    몸이 허공으로 숨어들면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 남은 정신도 피를 원하는 생각에 무너져 모든 감각을 잃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전신의 통증에 천천히 깨어났다. 온몸의 뼈가 부서졌다가 다시 맞춰지고 있는 듯했고, 모든 근육이 뻐근하여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수많은 침이 경맥을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심협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당황한 가운에 서둘러 체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육체의 손상이 심했고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특히 두 팔의 뼈와 근육은 잔뜩 부서지고 끊어진 상태였다.

    허나 더 큰 문제는 경맥이었다. 거의 모든 경맥이 뒤엉켜 있어 이전처럼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다행이라면 경맥 안의 마기는 모두 사라졌고, 머릿속에 울리던 살육의 욕망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의 일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심협은 간신히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낯선 푸른 산맥이었다. 높은 산봉우리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녹색의 밀림이 가득하여 인적이 전혀 없었다.

    그가 누워 있는 곳은 만신창이가 된 산골짜기였고, 땅에는 크고 작은 구덩이가 가득했다. 어떤 구덩이는 깊이가 수십 장에 이를 만큼 거대했는데, 그 안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골짜기 양쪽의 산도 마찬가지였다. 크고 작은 균열이 가득했고, 어떤 곳은 산 절반이 부서지며 수많은 자갈이 굴러떨어져 골짜기에 작은 산을 이루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내가 한 건가?”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살육의 욕망을 거의 억눌러 마지막 고비를 넘긴 뒤, 을목선둔으로 청화산을 떠난 것까지만 기억이 났다. 그 뒤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조비극은 알고 있을지도 몰라.”

    그는 심신을 운공하여 건곤대의 귀장과 대화를 나눴다. 다행히 신혼의 힘은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주인님…….”

    귀장의 허약한 목소리가 건곤대 안에서 흘러나왔다.

    “너도 다친 것이냐?”

    심협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주인님 몸에서 갑자기 무서운 마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건곤대가 막아주긴 했지만,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은 듯합니다.”

    귀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음, 미안하구나. 아마 내가 의식을 잃고 벌인 일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게지? 여기는 또 어디인가?”

    “저도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주인님께서는 둔술로 여기에 나타나신 후, 골짜기에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은 적들과 싸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안위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귀장의 허약한 목소리에는 깊은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내가 한 짓이라고?”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치료가 먼저였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단전에서 가장 가까운 법맥에 남은 미약한 법력을 움직였다. 지금 몸 상태로는 법력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기에 단약을 복용해도 연화하지 못할 터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스스로 천천히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이 황량한 곳에 도와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귀장도 지금은 중상을 입었기에 그의 귀기로 치료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심협은 고개를 젓고는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었다. 법맥 안에 남은 법력을 운공했고, 좌충우돌하며 경맥의 막힌 곳을 뚫으려 했다.

    남은 법력이 너무도 미약해 꼬박 하루가 걸려서야 겨우 막힌 곳을 뚫었고, 다른 두 개의 경맥을 관통하여 그곳에 남아 있던 법력까지 끌어모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제 운공할 수 있는 법력이 조금 많아졌다.

    * * *

    보름이 지났다.

    이제 체내의 막힌 경맥을 1할 정도 뚫었고, 비록 순조롭게 법력을 운공할 수는 없어도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게 됐다.

    그는 산맥의 은폐된 동굴을 찾아 계속 정양하며 치료했다.

    이 무렵 귀장도 원기를 회복해 호법을 섰다.

    또다시 한 달이 지나고서야 3할의 경맥을 뚫었고, 간신히 일주천을 할 수 있게 됐다.

    심협은 곧장 손을 뒤집어 비취보제 열매를 꺼내 먹었다.

    순수하고 뜨거운 기운이 순식간에 몸 곳곳으로 흐르면서 막혀 있던 경맥을 단숨에 뚫었다.

    다음 날, 가부좌를 한 심협의 몸이 갑자기 떨려왔고, 검은 피를 몇 번이나 토해냈다. 그러자 정신이 맑아지고 안색도 많이 좋아졌다.

    뜨거운 기운이 물러가자 심협의 경맥은 9할이 뚫린 상태가 됐고, 남은 몇 곳도 곧 완전히 뚫리게 될 터였다.

    “비취보제 열매의 효과는 실로 놀랍구나!”

    심협은 크게 감탄하며 내심 안도했다.

    그는 곧 마음을 다잡고 동굴에 가부좌를 한 채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남은 경맥을 완전히 뚫었다. 그리고 경맥 안에서 마기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마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현음미동을 사용해도 여전히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마기는 사라지지 않고 아마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이전에 자신이 마기를 제어하지 못했던 광경이 떠오르자 마음이 조급해졌고,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대체 어떻게 마기가 경맥으로 들어온 것인가! 마허지룡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마기로 나의 경맥을 침범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데 대체……?’

    한참을 고민하던 심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은 고민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이 우환(憂患) 때문에 평안히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다시 두 눈을 감고 운공했다. 이번에 운공한 것은 황정경이었다.

    황정경은 방촌산의 보전이니 마기를 물리치는 효과나 체내의 마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찬란한 금빛이 흘러나오더니 곧 그의 몸을 뒤덮었고, 두 마리 금룡과 금빛 코끼리가 나타나 주변을 배회했다.

    금빛이 몸 곳곳을 흘러 다니며 살펴봤지만, 마기의 흔적은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

    “황정경으로도 안 되는 것인가?”

    한데 그때, 머릿속에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다. 바로 부러진 참마검이었다.

    ‘참마’라는 이름답게 이 검은 강력한 순양의 힘을 품고 있어 마기와 상극이다. 이전의 싸움에서도 이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심협은 부러진 검을 잡고 순양검결을 운공했다.

    참마검이 부러진 칼날에서 갑자기 눈부신 금빛을 발하자 동굴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금빛에서는 팽창한 순양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심협이 부러진 참마검을 운공하여 순양의 힘을 체내로 주입하자 마치 용광로에 들어간 것처럼 몸이 뜨거워져 견디기 어려웠다.

    다행히 지금 그의 경지는 높고 육체는 강인하여 이 정도 고통은 참을 수 있었다. 그는 금세 심신을 가다듬고 부러진 참마검의 순양의 힘을 몸으로 흘려보내 경맥 안의 마기를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협의 안색이 점점 무거워졌다.

    잠시 후, 그가 열 손가락을 움직이자 부러진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이 빠르게 사라지더니 몇 호흡 뒤 완전히 사라졌다.

    마기는 마치 정말 사라진 것처럼 참마검으로도 찾아낼 수 없었다.

    가능한 방법을 모두 쓰고도 찾지 못했으니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마기가 갑자기 폭발한 것은 아마도 구여마갑 때문이겠지. 그걸 다시 사용하면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결심한 듯 결연한 얼굴로 일어났다.

    심협은 멀지 않은 곳에서 지키고 있는 귀장을 다시 부른 뒤 순양검배를 타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주변을 한참을 돈 그는 산맥 밖에서 작은 성을 발견했다. 신식으로 살펴보니 적주(赤州)의 작은 성이었고, 이 산맥은 적주의 오련산맥(五連山脈)이었다.

    “적주라니! 마념에 사로잡혀 을목선둔을 한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건만, 이렇게 멀리까지 날아왔단 말인가!”

    심협은 적잖이 놀랐다.

    등주와 적주는 가깝지만 춘추관과 오련산맥은 적어도 5백 리가량 떨어진 거리다. 그의 을목선둔이 비록 대성을 이루었다 해도 이 정도로 멀리 넘어오려면 열 번을 사용해도 쉽지 않을 터였다.

    “주인님, 이전에 을목선둔을 사용하실 때 마기가 흘러들자 을목선둔의 빛이 갑자기 폭증했는데, 아마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심협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고, 곧 흐릿했던 기억이 조금씩 맞춰졌다. 그리고 현재 그의 몸 상태와 실제 상황을 생각해보니 귀장의 말이 옳은 듯했다.

    ‘마기가 신통의 위력을 높여주었던 말인가? 그렇다면 마기도 쓸모가 있겠군.’

    심협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마기는 사도(邪道)의 부류다. 이번 발작으로도 큰 화를 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최대한 빨리 찾아 제거하는 게 좋을 것이다.

    심협은 곧장 순양검배를 운공하여 붉은 빛으로 변해 청화산 쪽으로 향했다.

    머지 않아 춘추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사이 청화산의 천지영기는 더 짙어졌고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조용히 동부로 돌아왔다. 누가 들어왔던 흔적은 없었고 밀실 바닥에는 구여마갑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심협은 마갑을 걸치려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푸른 빛으로 손을 감싼 뒤 한쪽에 내려놨다.

    밀실 주변의 부서진 금제 사이에 두 개의 전음 부적이 마치 머리 없는 파리처럼 서로 부딪치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푸른 빛이 두 개의 전음 부적을 끌어왔다. 신식으로 살펴보자 둘 모두 진명이 보낸 것으로, 하나는 갑자기 살기가 나타났던 이유를 묻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대답이 없자 상황을 묻는 것이었다.

    그는 신식으로 진명과 소통했다.

    “사도의 법보를 운공했으나 이제는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기가 몸속에 있다는 일은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마족이 삼계로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수선의 종문이 경계하고 있었다. 만약 그의 몸이 마기로 물들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결코 좋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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