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65화 (665/1,214)
  • 665화. 다행히 창피당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선족이 우승자에게 드리는 청죽쇄운진(靑竹鎖雲陣)입니다. 설치 후 3년간 성장하면 종문의 기운과 연결되어 평소에는 스스로 운무를 만들어 산맥을 봉인합니다. 무단 침입자에게서 종문을 지켜줄 것입니다. 침입자가 수련 경지가 약하다면 경지를 잃게 될 거예요. 진선 수사의 전력을 다한 일격도 세 번을 막아낼 수 있지요.”

    선족 여자가 차분한 소개에 이어 가느다란 손가락을 휘두르자 허공에 떠 있던 진반이 번득였다.

    심협은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봤다. 빛 속에는 72그루의 자청(紫靑) 대나무 형태가 떠올라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이 가볍게 흔들렸다.

    대나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그 광경을 전부 뒤덮었다.

    “엄청난 보물이잖아! 어지간한 중등 중문도 저런 대진의 보호는 받지 못할 텐데…….”

    “저 녀석, 횡재했네?”

    “저자 문파가 어디지? 저 대진을 사고 싶은데…….”

    연무대 아래는 시끌벅적했으나, 심협은 이 물건을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침 지금의 춘추관에 꼭 필요한 물건 아닌가.

    그때, 여섯 개의 이빨이 솟은 코끼리가 나타나 다가오며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시끌벅적함이 모두 사라지고 주위는 잠잠해졌다.

    “마족이 우승자에게 묵림갑(墨臨甲)을 드리겠소. 36도의 금제가 걸려 있어 방어력이 뛰어나고 마기를 흡착할 수 있는 기능이 있소.”

    그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수군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갑이 무슨 상이라고…… 인간족에게 마기를 어떻게 쓰라는 거야?”

    “마기를 흡수해서 뭐하라고! 자신을 침식하라고?”

    “계륵이네. 마족은 처음부터 마족이 우승할 거라고 생각했나본데?”

    그 순간, 마상(魔象)이 버럭 화를 냈다.

    “시끄럽다.”

    강력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면서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감히 망언을 하느냐! 묵림갑은 마족이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하지만, 다른 두 종족에게도 유용하다! 마갑이 흡입한 마기는 마갑 안에 비축되어 있다가 공격을 받게 되면 개방하여 착용자를 보호해준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더니 두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인간족이든 선족이든 저 마갑을 입으면 마족과 싸울 때 상대의 마기가 침투하는 것을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방어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심협도 그 설명에 흡족했다.

    뒤이어 정교금 등이 각자의 점수를 발표하고는 순위에 따라 상금을 내렸다.

    말이 많았던 삼계무도회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 * *

    저녁 무렵, 대당 관부의 어느 밀실.

    심협은 정교금과 독대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었으나 정교금의 눈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

    정교금은 재차 물었다.

    “확실합니다. 숨겨져 있던 마허지룡의 마핵에 들어 있던 마주의 마기는 분명히 치우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매우 순수하기까지 했지요.”

    “난 자네를 믿네. 다만…… 그 일 이후 자네들이 나왔을 때는 나와 선족, 천기성의 그분까지 모두가 자제들을 살펴봤지만, 치우의 마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네.”

    정교금이 일어나서 서성서리며 말했다.

    “저도 그게 이상합니다. 마주가 이주의 손에 들어가 그녀와 합쳐지자 치우의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음,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이야기로군.”

    정교금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 삼계무도회는 인, 선, 마 3족이 공통으로 준비한 것이거늘, 어떻게 이런 실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 일을 극구 성사시킨 것은 마족과 선족이라네. 그들은 자기들만의 속셈을 품고 있었겠지. 비경에는 더 많은 기연과 위험이 숨겨져 있지만 이번에는 그게 나타나지 않았네. 다만, 마허지룡은 분명히 마족이 뭔가 수를 쓴 게 틀림없어.”

    “선배님, 후배의 직언을 용서하십시오. 삼계무도회는 처음부터 잘못되었습니다. 마족과 선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더는 개최해서는 안 됩니다.”

    “이건…… 너무 많은 것과 관계되어 있고 세 종족 간의 힘의 균형을 잡는 중요한 일이라네. 이번에 자네가 우리 인간족에게 주도권을 가져다줬으니 공로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사실 자네들은 시험대상에 불과했네. 다음의 삼계무도회 참가 인원은 이번보다 열 배, 어쩌면 백 배는 더 많아질 거야.”

    그 말에 심협은 속으로 탄식했다. 정교금이 말하는 인, 마, 선 세 종족의 힘의 균형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힘으로는 이 일을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그저 잠시 중단하는 정도밖에는…….

    다만 심협은 시종일관 이번 삼계무도회가 매우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후에는 자신이 모르는 것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대당 관부 쪽에서 더는 추궁하지 않더라도 그는 추적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자네 몸은 괜찮은가? 마기가 침투했다면서?”

    “마기는 모두 이주에게 빨려 들어가서 괜찮습니다.”

    정교금은 심협을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었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자 그만두기로 했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 괜찮다면 육화명 그 아이와 같은 공무를 처리하면 어떻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녹봉은 나쁘지 않다네.”

    “잊으셨습니까? 저는 지금 춘추관을 돌봐야 합니다.”

    “아, 잊고 있었군. 하하하! 이번에 자네가 본 시련의 우승자가 되었으니 조정과 관부는 약속대로 춘추관이 중등 종문에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겠네.”

    정교금이 이마를 치고는 크게 웃었다.

    “선배님, 잠시 대외적으로 청화산을 봉쇄하고 건물을 세우는 일을 저희 춘추관이 스스로 하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명성이 퍼졌을 때 제자를 받아야지 어찌 산을 봉쇄한단 말인가?”

    “명성은 늘 견제의 대상이 되는 법입니다. 지금 춘추관의 저력은 너무 약합니다. 기반을 제대로 다지기 전에 세력만을 키웠다가는 화근이 될 것입니다.”

    “신중함은 여전하군. 좋을 대로 하게. 종문에 건물을 세우는 것이야 조정에서 공부(工部) 관리를 보내긴 하겠지만, 형식적으로 처리하면 될 걸세. 선족의 그 대진은 종문의 공사가 모두 끝나면 육화명을 보내 가져다주겠네. 그전에 내가 국사님께 보여드려 대진에 무슨 문제가 있나 없나 확인해주지.”

    “선족…….”

    심협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현재 세 종족의 공존은 과거보다 돈독하긴 하지만, 선족은 우리도 대비를 안 할 수가 없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게. 춘추관이 중등 종문이 되면 그건 별것 아니게 될 걸세. 내 선족의 눈을 피해 국사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그저 혹시나 해서 그런 것뿐이지. 어쩌면 그분께서 개량해주실 수도 있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정교금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심협은 포권하며 인사했다.

    보름이 지났다. 심협은 장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백소천, 육화명과 함께 장안루에서 한차례 술을 마시고는 곧장 춘추관으로 돌아갔다.

    본래 그는 부동래도 부르려 했으나 그가 치료 차 장안성을 떠나 종문 사타령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육화명에 전해 들었다.

    그사이 진사원이 찾아왔다. 그는 약속했던 완전판 순양보전을 줬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경전도 몇 권 줬는데, 그중에는 수련 전적 외에도 연단 전적도 있었다.

    이제 진사원은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 심협에게 매우 정중했다. 심지어 은연중에 춘추관의 도통 문제를 떠보기도 했다.

    심협이 춘추관의 유지를 잇는 것은 과거의 약속 때문이지 공을 탐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개종(開宗)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진사원에게 춘추관의 도통은 변함없이 소모산 일맥이라고 대답했다.

    진사원은 심협에게서 약속을 받고 나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는 심협이 이번 기회에 소모산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스스로 종문을 세우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대당 관부의 지지를 얻게 되었으니 춘추관이 부흥하여 백여 년 정도가 지나면 당당하게 중등 종문이 된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진사원은 춘추관과 동맹을 맺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답을 듣게 되자 기꺼웠다. 그는 소모산을 대신하여 백 명의 도관(道官)을 보내 춘추관 확장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심협은 거절하려 했으나, 잠시 생각한 끝에 승낙했다.

    춘추관의 기반은 너무 약했다. 앞으로의 발전에 소모산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 * *

    사흘 뒤, 태양이 대지를 비추는 시각. 청화산은 햇살에 산과 대지가 모두 금색으로 물들었다. 춘추관도 마찬가지로 눈부시게 빛났고, 새로운 날을 맞았다. 관내 곳곳의 건물들이 모두 복원되었다.

    진명은 몇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아침 수업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함께 청화산 전체가 흔들렸다.

    “무슨 일이냐?”

    진명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가 안색이 크게 변했다.

    10장 길이의 푸른 비주(飛舟)가 춘추관 밖에 나타났다. 기다란 비주 주변에는 푸른 빛이 감돌았고, 구름이 요동쳤으며, 광풍이 몰아쳤다.

    비주는 폐쇄적이어서 안에 누가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복 등 춘추관의 제자들은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비주에 멍했다.

    진명도 놀라긴 마찬가지였지만, 춘추관의 주인답게 그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고는 심호흡한 후 결인했다.

    붉은 빛이 그의 몸을 받쳐 하늘로 띄웠다. 심협이 준 비행 법기로, 연기 후기 경지에 이르면서 간신히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어느 도우께서 친히 춘추관에 왕림하신 건지요?”

    발밑의 법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파동을 느낀 진명은 속으로 기뻐하며 물었다.

    주복 등도 진명이 날아오르자 환호성을 질렀고, 갑자기 나타난 비주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진 사형, 접니다.”

    심협이 푸른색 비주에서 내려왔다.

    “심 사제, 자네였군!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네. 한데 굳이 이런 소란을 피울 필요까지 있었나? 나는 또 적이 쳐들어온 줄 알았지 뭔가.”

    진명은 안도하면서도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 혼자 온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심협이 멋쩍게 웃고는 뒤쪽 푸른색 비주를 향해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비주가 천천히 땅으로 내려선 뒤 문이 열렸고, 백여 명이 줄지어 나왔다.

    모두 푸른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진사원이 약속했던 도관들이었다. 춘추관 확장을 도우러 온 것이다.

    모두가 나온 후 심협이 결인하자 거대한 비주가 빠르게 줄어들어 순식간에 손바닥만 해졌고, 심협은 비주를 소매에 넣었다.

    이 비주는 그가 선옥 500개를 주고 진사원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비행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지만, 매우 거대해 300여명을 태울 수 있었다.

    “심 사제, 이분들은 뉘신가?”

    “소모산의 도관들입니다. 이번에 다행히 창피당하지 않고 삼계무도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진 도우가 춘추관 확장에 도움을 주고자 보내주신 분들이지요.”

    “……그, 그게 사실인가?”

    심협의 말에 진명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삼계무도회가 어떤 대회인가! 삼계에서 유명한 거대 문파들이 모두 참가한 대규모 대회다. 심협이 강하다고는 해도 우승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춘추관의 발전을 위해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을 뿐.

    “사실입니다. 심 선배께서 삼계무도회에서 강적을 연파하고 마지막에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삼계 전체에 알려졌을 겁니다.”

    백여 명의 도관 중 좀 통통한 임호(林虎)가 웃으며 말했다. 백여 명의 도관을 이끄는 자로, 경지는 벽곡 후기였다.

    다른 도관 중 일부는 연기기였고 대부분이 몸을 강하게 하는 공법을 익혔을 뿐 수사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 도관들은 소모산의 외곽 세력이었다. 진사원이 아무나 보냈을 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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