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화. 처절한 행색
이주의 날카로운 바늘이 심협의 목을 노리고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순간, 소매에 들어가 있던 기혈번이 확 펼쳐졌다.
휙!
심협의 마음과 통하고 있던 순양비검이 그의 가슴 앞에 나타나 곧장 이주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순양비검이 반 척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나타나자 기겁한 이주는 부적을 빠르게 부숴뜨려 순간이동으로 몇 장을 물러났다.
심협은 그 기민한 반응에 내심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크게 외쳤다.
“가라!”
사방에 널려 있던 곤봉의 허상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마핵이 아닌 이주를 향해 쏟아졌고, 집결한 대군처럼 포위해 끊임없이 떨어졌다.
그녀는 벗어나려 했지만 도저히 도망칠 수 없었다. 그녀는 궁지에 몰려 절망감이 덮쳐들었다.
한편, 심협은 그녀를 내버려둔 채 마핵을 향해 돌아섰다. 마액을 파괴하는 것이 지금의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순양검배를 쥔 채 순양보전 공법을 운공하자 순양지기가 강해지면서 날카로운 기운이 검날에 뭉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두 눈을 번쩍 뜬 그는 손끝을 살짝 베어 순양정혈을 검날에 떨어트렸다.
기운이 치솟은 순양검배에서 갑자기 금빛이 폭발했고, 뜨거운 힘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며 검날의 등에서 붉은 불꽃이 치솟았다. 자신의 순양정혈로 자극하여 순양검배가 본래의 경지를 뛰어넘는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심협이 창안해낸 것이었다.
“순양검배!”
심협이 나지막하게 외치고는 뛰어올랐으나, 이전처럼 곧장 내려치지는 않았다.
그가 몸을 소용돌이처럼 회전시키자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순양검배의 검날에 불꽃이 겹겹이 모여들면서 타오르는 힘이 끊임없이 강해졌고, 점점 더 순수해져갔다.
“염탁(炎啄)!”
처음으로 펼치는 이 초식의 이름이었다.
심협은 몸을 쏜살같이 내달려 순양분검의 기세를 한곳에 집중하여 찌르는 초식으로 개량했다.
이 순간, 그의 몸은 장검과 하나가 되었고, 순양검배의 칼끝은 불새의 부리처럼 변하여 마핵의 보호막을 찔렀다.
쉬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순양검배가 보호막을 찔러 들어갔고, 심협의 몸도 함께 그대로 뚫고 지나가 거대한 하얀 알에 박혔다.
푹!
마치 사람 몸에 칼이 박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찢어지는 소리에 이어 하늘을 찌르는 마기가 솟구치면서 순식간에 심협을 뒤덮었다.
밖으로 새어 나온 마기는 뒤이어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던 이주를 삼켰다.
“아, 안 돼…… 안 돼!”
마기 속에서 비명이 들려왔지만, 이내 뚝 그쳤다.
이주는 마기 안에서 마치 혼백이 빠진 몸뚱이처럼 비틀거렸다.
하지만 갑자기 흉악함으로 두 눈이 붉게 물들더니 마기의 중심에 있는 심협을 향해 돌진했다.
심협 앞에는 용안(龍眼)만 한 자흑색 구슬이 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나선형 마문이 보였다. 하얀 알이 깨지고 모든 마기가 흩어진 뒤에 나타난 구슬이었다.
심협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눈으로 하얀 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핵에서 너무나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치우의 기운……. 치우는 분명 완전히 봉인되었을 텐데 어찌 그자의 마기가 이 비경에 있단 말인가?’
치우의 마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심협은 이 자흑색 구슬에서 느껴지는 치우의 마기는 너무나 정순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상황을 파악하려 필사적으로 추론하고 있는데, 마기에 삼켜진 이주가 실성한 것처럼 돌진해왔다.
정신이 번쩍 든 심협은 달빛을 뿜어내며 단숨에 물러났고, 그 결과 이주는 그를 쫓아가지 못하고 마주(魔珠)를 향해 달려들었다.
심협은 그녀의 기이한 표정과 탐욕으로 가득한 눈빛을 보고는 서둘러 손을 휘둘러 무형의 힘으로 마주(魔珠)를 끌어당겼다.
이주는 마주가 심협 쪽으로 끌려가자 분노한 듯 방향을 틀었다.
심협이 한 손으로는 마주를 끌고 다른 손으로는 결인하자 순양검배가 금빛을 뿜어내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이주는 순양검배의 돌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손을 휘둘러 막았다. 순식간에 손에 구멍이 뚫렸지만, 덕분에 순양검배의 궤적이 바뀌면서 옆으로 비켜났다.
그녀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더 빨리 달려나가며 마주를 잡으려 했다.
그녀의 손이 마주에 닿으려는 찰나, 상황이 긴급해진 심협은 사월보를 시전하여 빠르게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주의 손이 한 발 더 빨랐다.
심협의 손이 마주에 닿는 순간, 손에 뜨거운 힘과 함께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심협은 깜짝 놀랐다. 마주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의 손을 타고 들어가 몸속에 침투하려고 시도하는 듯했다.
핏빛 불꽃이 타오르더니 그의 손을 타고 전신으로 뻗어갔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하여 빠르게 황정경을 운공했고, 단전의 법력을 끌어올려 팔의 맥으로 흘려보내 침투하는 마기를 막았다. 곧바로 무명공법도 운공하자 푸른 빛이 팔을 휘감아 핏빛 불꽃을 감싸려 했다.
하지만 푸른색이 불꽃에 닿는 순간, 모든 물의 기운이 순식간에 증발했고, 불꽃은 강렬한 기세로 그의 팔을 타고 올라갔다.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천책을 소환하여 불꽃과 마기를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천책은 사라진 후였기에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광기에 사로잡힌 이주가 다시 쫓아오더니 심협이 잠시 정신이 팔린 틈에 그의 손에서 마주를 빼앗으려 했다.
순간, 심협은 그대로 마주를 그녀에게 넘겨주려 했지만 마주는 이미 사라졌고, 마기가 그의 몸으로 끊임없이 침투했다. 핏빛 불꽃도 끊임없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이주는 이미 마주가 심협에게 흡수되었음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의 이마를 찌르려 했다.
심협은 서둘러 팔을 흔들어 이주를 떨쳐내고는 불타오르는 손을 그녀의 심장을 향해 뻗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주가 전혀 피할 기색조차 없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돌진해오며 심협의 손에 가슴을 꿰뚫린 것이다.
다음 순간, 이주는 잔인한 미소를 짓고는 심협이 다시 팔을 빼기 전에 붙잡았다.
심협은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팔을 붙잡혔고, 자신의 팔에 있던 불꽃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몸으로 침투한 마기가 이주의 몸으로 흘러가는 것을 알게 됐다.
마기와 불꽃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자 이주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졌고 기운 역시 점점 강해졌다.
더 괴상한 것은 그녀의 기운이 강해질수록 치우 특유의 기운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심협의 머릿속에 믿고 싶지 않은 추측이 떠올랐다.
이주가 그의 몸속에 있는 마기를 전부 제거해줄 수 있을지 없을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할 것이다.
심협이 손을 들자 순양검배가 바로 떠올라 그의 손에 쥐어졌고, 심협은 그대로 이주의 미간에 검을 찔러 넣었다.
심장을 찔릴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이주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다급히 몸을 젖혀 피했다. 몸에서는 혈광이 더 크게 빛났고, 심협에게서 마기가 빠져나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이와 동시에 심협의 체내에 남아 있던 치우의 기운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면서 몸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녔다. 심협은 기혈이 솟구치고 법력의 운공이 어지러워지면서 극심한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마기의 일부는 곧장 머릿속으로 돌진해 식해까지 파고들었다.
일순 심협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는 황홀한 기분에 자신이 시체의 산 위에 서서 저 멀리 장안성의 무너진 성벽과 흐르는 피를 바라보았다.
그 피에 비친 사람은 심협이 아닌 치우였다.
식해가 강렬하게 흔들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 돼! 치우가 다시 일어날 기회를 줄 수는 없다!’
심협은 스스로를 다그친 후 순양검배를 놓더니 두 손으로 이주의 머리를 붙잡고 온 힘을 다해 당겼다.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이마에 맞대려 한 것이다.
다음 순간, 순양검배가 이끌림에 날아올라 붙어 있는 두 사람의 이마를 향해 찔러왔다.
이주는 비검이 날아오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두 손으로 심협을 밀쳐내려 했다.
그러나 심협은 그녀의 머리를 끝까지 붙잡은 채 피하지 않았다.
“크아악!”
이주가 갑자기 흉악한 포효를 내지르더니 두 손으로 심협의 팔을 잡고는 기운을 폭발시키며 거세게 아래로 잡아당겼다.
퍽!
심협의 두 팔은 근육이 끊어진 채 피를 뿜어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온몸의 법력을 두 팔로 흘려보내 버텼다.
그 순간, 순양검배가 이주의 뒤통수를 찔렀다.
검광이 떨어지면서 피가 튀었고, 이주의 뒤통수에는 구멍이 생겨났다. 불꽃으로 타오르는 순양검배가 그대로 그녀의 식해를 뚫고 이마로 나와 심협의 이마를 조금씩 뚫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 갑자기 다가와 이주의 뒤에서 순양검배를 잡았다.
피가 흐르는 심협의 이마가 조금씩 뒤로 물러났고, 순양검배의 칼날은 그녀의 이마에서 조금씩 빠져나왔다.
심협은 두 눈에 피가 흘러들어 상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부동래임을 확신하고는 미소를 머금은 채 감사의 인사를 했다.
“미친 게요? 어찌 동귀어진까지 하려 드신 게요!”
부동래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꾸짖었다.
심협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젓고는 뒤로 물러나 그대로 쓰러졌다.
부동래는 얼른 다가와 단약을 먹인 뒤 부축하여 가부좌를 틀 수 있도록 도와줬다.
심협은 한참 뒤에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는 대개박술을 운공하여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 * *
비경 밖 광장에서 현천경이 천천히 내려갔다.
연무대 위에 새겨진 진문이 다시 빛나면서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눈부신 빛과 함께 시련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는데, 모두가 부상으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빛의 기둥 가운데에는 나반을 든 심협이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부동래 등이 있었다.
잠시 후, 빛의 기둥이 점점 줄어들더니 완전히 사라지자 광장에서 열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은 심협은 안색이 창백해 마치 큰 병에 걸린 것만 같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부동래, 칠살, 희요, 화리, 황혁 그리고 마족 청년과 젊은 선족 여자였다. 시련에 참가했던 수십 명 중 무사히 돌아온 것은 이게 다였다. 결과는 말 그대로 처참했다.
“이장청은?”
심협이 의아해하며 부동래를 바라봤다.
부동래도 의아해했다. 심협이 이장청을 산골짜기 밖으로 내보냈으니 큰 싸움을 피했을 테고, 그러니 살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비경 안은 위험하고 변화가 심한 곳. 그가 나타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답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높은 대에 앉아 있던 정교금 등이 일제히 연무대로 내려왔다.
“녀석, 잘했다! 하하하!”
정교금이 다가와 심협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허나 이내 심협이 굳은 표정을 본 정교금도 진중해지더니 전음으로 몇 마디를 나누었다. 대화가 이어짐에 따라 그의 표정도 차츰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다시 껄껄 웃으며 모두에게 심협의 우승을 선포했다.
우승 선포에 따른 반응은 열렬한 환호성이 아닌 야유였다. 심협의 우승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그가 비경에서 부동래와 함께 다른 사람의 싸움을 막은 데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싸움의 결과에 막대한 돈을 건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심협과 부동래로 인해 싸움의 결과가 무승부가 되면서 돈을 잃었으니 분통을 터트린 것이다. 처음 심협과 칠살의 싸움에서 많은 사람이 돈을 잃었던 것처럼.
“위선자!”
“명예나 좇는 멍청이!”
“저런 놈이 우승이라니!”
곳곳에서 분개한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누가 보면 심협과 부동래가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줄 알았을 정도였다. 이들의 흉악한 표정에는 살기가 가득했고 가슴 깊은 곳에서 혐오감이 싹트고 있었다.
“정숙하시오!”
정교금이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법력이 담겨 있었기에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위압감은 충분했다.
광장이 이내 조용해졌다.
“심협, 본 삼계무도회 우승자가 속한 종문은 백 년 동안 대당 관부의 지원을 받는다. 필요한 물자는 모두 대당 관부의 승인 하에 지급된다.”
정교금은 사람들을 무시한 채 선포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얼굴을 가린 선족 여자가 앞으로 다가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어떤 재질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푸른색 진반이 허공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