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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60화 (660/1,214)
  • 660화. 환영에 빠지다

    심협은 팔현경을 잃어 내심 화가 난 상태였는데 그 짐승이 다시 덤벼들자 곧장 높이 뛰어올라 손을 휘둘렀다. 이어 기혈번이 촥 펼쳐지면서 날아갔다.

    이번에는 기혈번이 방패가 된 것이 아니라 곧장 날아가 서망의 커다란 머리를 감쌌고, 이에 이 거대한 뱀은 자신의 독액을 뒤집어써야 했다.

    서망은 커다란 몸을 이리저리 틀며 발악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온몸의 비늘이 열리더니 검은색 마염이 뿜어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검은 불꽃 구렁이로 변했다.

    기혈번에 적잖은 마염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심협은 재빨리 깃발을 거두었고, 서둘러 손을 칼처럼 휘둘러 마염을 일제히 떨어트렸다.

    서망은 시야를 되찾자 온몸의 마염을 더욱 강하게 뿜어냈고, 다시 입을 벌려 불꽃과 독액이 합쳐진 자흑색 불꽃을 뱉어냈다.

    불은 독성을 더욱 강하게 했고 독은 불의 기세를 더욱 강하게 했다. 둘이 합쳐진 독 불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대기마저 부식시켰다.

    심협이 막 돌진하려는데 부동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맡기시오.”

    부동래는 곧장 심협을 뛰어넘었는데, 손에는 주전자만 한 새하얀 금속 조롱박이 들려 있었다.

    “빨아들여라.”

    부동래의 나지막한 음성과 함께 조롱박이 하얗게 빛나더니 입구에서 노란색 소용돌이가 날아가 검은색 독 불꽃을 끊임없이 조롱박 안으로 빨아들였다.

    독 불꽃이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자 하얀 조롱박의 아랫부분이 조금씩 검게 변했다.

    심협은 이를 힐끗 보고는 곧장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여 현황일기곤을 휘둘러 두 마리의 린우를 향해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곤봉도 함께 움직이며 허공에 잔영을 만들어냈고, 힘을 충분히 비축한 뒤 화산을 부술 기세로 한 마리의 린우를 향해 내리쳤다.

    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린우의 커다란 머리가 터져 나갔다.

    뒤이어 심협은 순식간에 노인 뒤로 돌아가 그에게 돌진해오는 린우의 목덜미를 곤봉으로 눌러 기세를 죽였다. 이어서 손을 흔들자 검망이 불쑥 튀어나왔다.

    금빛이 반짝이더니 린우는 미간에 구멍이 생겨나면서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노인은 심협이 순식간에 깔끔하게 두 마리의 마수를 처리하자 내심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감사의 인사를 했다.

    “구명지은에 감사하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소.”

    “그러실 것 없으니 일어나십시오.”

    이장청은 다시 세 번 절을 한 후에야 일어났다.

    “도우의 경지로 어찌 이런 위험한 짓을 하신 겁니까? 기연이면 목숨도 아깝지 않으신 겁니까?”

    심협이 꾸짖듯 말하자 노인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부끄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휴우, 나도 어쩔 수 없었소.”

    “누가 강요라도 했소?”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아니오. 사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사문의 은혜를 받아 종문을 이끌고 있소. 다만 내 실력이 미천하고 경영에도 서툴러 종문은 나날이 힘을 잃고 있소. 이러다 내 대에서 문을 닫게 될 지경이오.”

    노인이 머뭇거리며 설명을 이어가자 심협은 상대를 꾸짖으려던 마음이 사라졌다. 이 노인도 자신처럼 종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온 것 아닌가.

    “이해는 하나 무모한 짓은 하지 마십시오. 장문인이 죽으면 종문은 어쩌란 말이오?”

    “그건 나도 알고 있지만…… 내게 무슨 복이 있는 건지 2년 전에 두 명의 제자를 받았는데 자질이 훌륭하여 대승까지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오. 수련만 순조롭다면 종문에 다시 희망이 생길 것 같소. 다만…… 종문의 재산이 부족하여 단약이나 법기조차 물려주지 못하게 생겼으니…… 그들을 위해서, 종문의 미래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려.”

    노인은 쓰게 웃으며 말했고, 심협은 속으로 탄식했다.

    한편, 멀지 않은 곳에서는 부동래의 하얀 조롱박이 입구 근처까지 검게 물들어 독 불꽃이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그 무렵, 서망의 온몸에서는 불꽃이 완전히 사라졌고, 입안에 가득하던 독도 다 말라버려 입을 벌려도 마른기침과 함께 아주 미약한 독무만 천천히 뿜어져 나왔다.

    서망은 독염이 모두 흡수되고 원기까지 크게 상하자 서둘러 도망치려 했다.

    이를 본 부동래는 손풍(巽風)으로 온몸을 휘감고는 번개처럼 날아올라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에서 박요삭(縛妖索)이 튀어나가 서망의 몸을 휘감았다.

    몸이 묶인 서망은 바로 온몸에서 광풍을 일으켜 발버둥 쳤고, 부동래를 향해 머리에 달린 뿔에서 검은 빛을 뿜어냈다. 동시에 기다란 꼬리를 사방으로 휘둘러대자 돌멩이가 튀고 연기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부동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피해내면서 조금이라도 도망갈 기미를 보이면 바로 박요삭을 잡아당겼다.

    박요삭은 검은 빛을 발하면서 서망의 힘을 조금씩 흡수했고, 한참을 발악하던 서망은 결국 진이 빠져 몸이 축 늘어지더니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야 부동래는 천천히 다가가 서망을 향해 하얀색 조롱박의 입구를 열었다.

    조롱박에서 노란색 빛이 뿜어져 나와 서망을 끌어당기자 서망의 몸은 점점 줄어들어 그대로 조롱박 안으로 들어갔다.

    서망을 빨아들인 부동래는 기분 좋은 듯 조롱박을 툭툭 쳤다.

    “왜 죽이지 않은 것이오?”

    심협이 물었다.

    “서망은 마수이나 뿔 색깔을 보아하니 이미 화형(化形)의 조짐을 보이고 있소. 마족 수사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게요. 수련도 약하지 않으니 함부로 죽이기 좀 그랬소.”

    심협도 더는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장청의 상처를 살폈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상처가 가볍지는 않았다.

    “비취보제는 어찌 하는 게 좋겠소?”

    “두 선배께서 목숨을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은혜를 입었으니 제가 감히 탐낼 수 없습니다. 다만 제 두 명의 제자를 위해 감히 두 분께 간청드리오니, 그중 두 개만 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장청은 이제 두 사람을 은인으로 여겨 자신을 낮췄다.

    심협과 부동래가 심념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비취보제는 모두 여덟 개가 있으니 도우가 네 개를 가지시오. 우리는 두 개씩 나눠 갖겠소.”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두 개만 받아도 이미 큰 은덕입니다.”

    심협의 말에 노인이 서둘러 포권하며 사양했다.

    “이 나무는 그대가 발견한 것이니 그대와 인연이 있소. 만약 그대가 지키지 않았다면 이미 열매와 나무는 모두 마수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테지.”

    부동래도 이렇게 말했지만, 노인은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자 심협은 다짜고짜 네 개의 열매를 따서 그의 손에 쥐어주었고,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제가 무슨 복이 있어서 두 분을 만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노인이 눈시울을 붉히며 절을 올리려 하자 부동래가 서둘러 만류했다.

    “열매와 나무는 우리끼리 나눕시다.”

    심협은 남은 열매를 보며 부동래에게 말했다.

    “좋소.”

    두 사람은 비취보제의 열매를 나눠 가진 뒤, 한쪽에서 가부좌를 한 채 정양하는 이장청을 보호하며 각자 한 개씩 먹고 흡수하기 시작했다.

    비취보제 열매는 처음 먹을 때는 조금 차가웠는데, 뱃속에 들어가자 따듯한 기류로 변하여 강하게 단전 안으로 들어갔다.

    맹렬한 기세의 따뜻한 기운이 들어오자 심협의 대승 초기 한계가 조금씩 느슨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자세히 느껴볼 새도 없이 따뜻한 기운은 다시 법력과 함께 단전을 나와 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따듯한 기운이 끊임없이 온몸에 흐르자 부상들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고, 이전에 손실됐던 기혈도 절반이나 보충되었다.

    “정말 좋은 열매로군!”

    심협은 천천히 눈을 뜨며 감탄했다.

    한참 뒤, 부동래가 먼저 눈을 뜨고는 심협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심 형, 심 형의 약력을 흡수하는 속도는 정말 대단한 것 같소. 나와 같은 마족도 쫓아가지 못할 지경이오.”

    심협은 그제야 자각했다. 꿈에서 돌아온 뒤로 자신의 체질이 은연중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는데 다만 등잔 밑이 어두워서 자신이 몰랐다.

    이장청도 두 사람의 대화에 깨어나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전 청림문 장문 이장청이라고 합니다. 심 선배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은인의 성함을 모르고 있었군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하며 말했다.

    “사타령(獅駝嶺) 마족 부동래라고 합니다.”

    부동래가 답례하며 자신의 종문을 알렸다.

    “저는 마족은 전부 흉악하고 행동이 이상한 줄 알았습니다. 일전에 만났던 여자는 줄곧 저를 쫓아오기만 하고 공격하지 않다가 제가 여기에 도착하자 종적을 감춰버리지 뭡니까. 그자와 비교하면 부 선배님 같은 마족은 정말로 남다른 것 같습니다.”

    심협은 이 말을 듣자 표정이 조금 변했지만 부동래는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이장청에게 웃으며 말했다.

    “마족 중에도 저와 같이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좋아하는 자도 많습니다.”

    “부 형, 뭔가 이상합니다.”

    심협이 말하자 부동래의 표정도 갑자기 변하더니 이장청에게 물었다.

    “이 도우, 그대를 쫓아왔다는 마족 여자가 어떻게 생겼소?”

    이장청은 두 사람의 반응에 놀라더니 바로 긴장했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치마에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고 미간 사이에는 매혹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용했던 법보는 3척의 기다란 검은색 반달고리……”

    이장청의 설명을 듣자 부동래의 찌푸려진 눈살이 점점 깊어졌다.

    “이주(離珠), 그녀요. 갑시다. 어서 여기서 벗어나야 하오.”

    “그녀가 그렇게 강합니까?”

    심협도 그녀가 누군지 기억났다. 시련이 시작되기 전에 부동래 옆에 있던 요염한 여자였다.

    “대승 초기의 경지지만……그녀의 무서운 점은 경지가 아니라 마족의 진법사여서 진법 사용에 아주 능하다오.”

    부동래가 서둘러 설명했다.

    대화하는 사이 세 사람은 산골짜기 영역에서 벗어났다. 그곳에서 나온 뒤 세 사람은 고개를 돌려서 산골짜기를 바라봤지만 잔잔한 바람만 불어올 뿐 다른 것은 없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조심해서 나쁠 것 없소.”

    “어쩌면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세 사람이 대화하고 있을 때 주변의 허공이 갑자기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하자 허공에 서 있는 세 사람은 발밑에서 솟아오르는 강한 힘에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환영인가……”

    심협과 부동래는 동시에 표정이 변하면서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환영이 겹겹으로 부서졌고 다시 원래의 광경이 나타났다.

    세 사람은 그제야 깜짝 놀랐다. 그들은 아직도 산골짜기에 있었고 거기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아까 먹었던 비취보제는 모두 진짜였다. 안 그랬으면 처음 먹을 때 그들이 알아챘을 것이다.

    땅이 흔들렸을 때 눈에 띄지 않은 구석진 곳에서 검은 돌들이 흔들림에 떨어지면서 숨겨져 있던 대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심협 등이 대응하기도 전에 더 강렬한 진동이 땅속에서부터 전해졌고 아까 균열이 생겼던 산이 갑자기 좁은 길 사이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심협은 서둘러 허공을 날아올랐고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서 바라보자 수십 장 크기의 거대하기 그지없는 둥근 입이 땅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허공으로 떠오른 이장청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린 게 보였다.

    마치 활짝 핀 연꽃 같은 커다란 입은 안에 뾰족한 하얀 송곳니가 안쪽에 빼곡하고 겹겹이 나 있었고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입으로 이장청을 집어삼키려고 했다.

    이때, 부동래가 손풍처럼 빠르게 옆에서 날아와서 이장청을 휘감고는 심협 옆으로 다가왔다.

    “저게 도대체 뭐지?”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허지룡(魔虛地龍), 대승 후기의 마수인데 전력은 진선과 비슷하다오……저들이 어째서 비경에 저런 마물을 심어놨는지 모르겠군. 설마 참가한 모두를 죽일 생각인가?”

    부동래의 얼굴에는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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