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9화. 진심으로 사람을 구하러 오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보물이 나타난 현상이 없었기에 저들이 왜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거구의 남자가 청년의 목을 잡아 위로 들어 올리고는 손에 힘을 주자 청년의 목에서 뼛소리가 들려왔다. 목뼈가 곧 부러질 것 같았다.
청년은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로도 장검을 힘차게 휘저어 사력을 다해 거구 사내의 심장을 찌르려 했다.
두 사람의 생사가 갈리려는 순간, 부동래가 참지 못하고 달려 나가 한 손으로는 남자의 손을 움켜쥐었고 다른 손으로는 하얀 옷 청년의 검을 빼앗았다.
“두 분, 이건 그저 시련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게요?”
부동래가 장검을 돌려주며 말했다.
두 사람은 강제로 떨어지게 되자 한숨을 돌리고는 동시에 부동래를 쳐다봤다. 그들의 눈에서는 처음에는 경계심이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마족 놈이 왜 우리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냐! 시체를 주워가려면 우리의 생사가 갈린 다음에 다시 와라.”
거구의 남자가 가슴을 감싸고 지혈한 뒤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흥! 저자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넌 이미 내 검에 죽었을 것이다!”
하얀 옷의 청년도 싸늘하게 외쳤다.
“기껏 도와줬건만, 어찌 그렇게 사리 구별을 하지 못하는 것이오?”
지켜보던 심협이 기분이 상해 끼어들었다.
“너희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우리 풍화곡(風火谷)과 저놈들 장청문(長靑門)은 세간의 원수다. 평소에는 대당 관부의 제약 때문에 사사로이 복수를 하지 못하니 이번 무도회에 참가한 것도 다 복수를 위해서다. 종문을 위해 죽는다면 영광일 터! 다행히 살아난다면 종문의 직계가 되어 훗날…….”
하얀 옷의 청년은 절반쯤 말하다가 멈췄다.
심협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한탄했다. 삼계무도회가 종문의 사투와 이익을 위한 장이 되어 버리다니, 안타까웠다.
허나 생각해면 자신도 조통과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두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리 두 사람 일에 당신들이 끼어들 필요 없으니 멀리 떨어져서 다시는 방해하지 마시오.”
거구의 남자가 나지막하게 외쳤다.
“무도회에서 위선자의 명성을 떨치고 싶다면 여기서 떠들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 찾아보시오.”
하얀 옷의 청년도 검을 들며 외쳤다.
부동래는 말없이 이들을 지켜봤다. 석연치 않은 눈빛이었다.
“갑시다.”
심협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두 사람이 멀리 떠난 뒤, 등 뒤에서는 다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조용해졌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없이 걸었다.
“부형은 인, 마, 선이 공존하면 삼계가 평온해질 것 같소?”
한참 후에, 심협이 불쑥 물었다.
“나도 모르겠소. 사실 내가 대당 관부에서 일하는 것은 인간족을 이해하고 삼계를 이해하고 싶어서요. 마족에 비하면 인간족은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고, 선족과 마족의 대립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소. 만약 정말 삼계를 평화롭게 만들고 싶다면 답은 인간족에게 있다고 생각하오.”
심협은 그 말에 먼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심형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부동래가 한참을 기다리다가 말했다.
“방금도 봤듯이 인간족끼리도 서로 죽고 죽이는데 답이 인간족에게 있다고 하니, 사실 자신이 별로 없소.”
심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전에 육화명이 말했듯이 인간족 중에는 수많은 배신자가 있고, 심지어는 마족보다 더 치우의 부활을 바라는 자도 있다.
이런 인간들이 존재한다면 삼계에는 평온한 날이 오지 않을 것이다.
“나도 관찰하며 배우고 있지만, 이런 내부의 싸움은 모든 종족에 있는 일이오. 그러니 세상의 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언제나 희망이 있을 것이오.”
“그러고 보니 마신의 부활을 막은 것은 마족들이니 삼계의 중생들에게 엄청난 공을 세운 게 아니오?”
“마신 치우를 향한 마족의 감정은 매우 복잡하오. 한편으로는 우리의 선조이자 한편으로는 삼계를 혼란에 빠트리는 원흉이지. 우리 마족은 그 덕분에 발전했고, 또 그 때문에 쇠퇴했소. 누군가 그를 대신하여 마족을 이끌어 다시 삼계의 정상에 서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결국 구시대, 과거의 영광이오.
그리고 그 희망을 억지로 지금의 마족 사람들에게 바라게 하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지. 게다가 모든 마족이 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으니 전쟁을 막고 생명이 도탄에 빠지는 걸 막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 아니겠소?”
두 사람은 어느새 산골짜기에 도착했다. 한데, 산골짜기 안에서는 고함이 끊이지 않았고, 서로 충돌하는 소리가 골짜기를 거쳐 들려왔다. 마치 천둥이 요란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이 소리는……?”
부동래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왜 그러시오?”
“우선 갑시다.”
말을 마친 부동래가 먼저 산골짜기 입구로 들어갔고, 심협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쫓아갔다.
골짜기 중앙에는 7, 8척의 청록색 묘목이 있었다. 전체가 비취처럼 반짝였고, 가지에는 나뭇잎 대신에 용의 눈 크기 정도 되는 붉은색 열매 여덟 개가 달려 있었다.
멀리 떨어진 심협도 이 열매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나무 앞에는 칠순은 되어 보이는 마른 노인이 전신에 피를 묻힌 채 산발이 되어 처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저 사람은……?”
“아는 자요?”
“청림문 장문인 이장청이오. 비경에 들어오기 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지.”
부동래의 질문에 심협이 대답했다.
현재 그의 손에는 팔각형의 진반이 들려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둥근 청동거울이 박혀 있었다. 그가 전력을 다해 그것을 운공하자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커다란 솥처럼 붉은 열매의 나무 주변을 뒤덮었다.
“저게 뭐지?”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노인이 버티고 있는 장벽 밖에는 세 마리의 청우(靑牛) 같은 요수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광막을 향해 들이받았다.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밖에도 길이가 백여 장에 이르는, 칠흑 같은 뱀이 거대한 꼬리를 채찍처럼 쉬지 않고 휘둘렀다.
“저건 린우(鱗牛)와 서망(犀蟒)이라는 흉악한 마수들이오. 세 마리의 린우는 그나마 출규 후기라서 안심이지만 저 서망은 적어도 대승 초기 같소. 저들은 아직 전력을 다한 게 아니오. 그러지 않았다면 저 인간족 수사는 벌써 버티지 못했을 테지.”
부동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고 있을 때, 심협의 시선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다른 이상은 없었고, 잠시 후 그가 다시 물었다.
“저 중앙의 초록색 나무가 무엇인지 부형은 아시오?”
“저건 비취보제(翡翠菩提) 열매라 하는데, 선족 지계의 영수요. 수련과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나무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기의 영재라오. 다만, 나무가 자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주변에 영기가 자욱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수십 년 전에 선계에서 옮겨와 아직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못한 것 같소.”
“좋은 물건이군요.”
“저 사람이 버티지 못할 것 같소!”
부동래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는 순간, 굉음이 들려왔다.
콰쾅!
검은 마염이 갑자기 서망의 몸을 휘감더니 커다란 꼬리를 높이 들어 강하게 내리쳤다. 고생하며 버티던 노인의 장막 결계가 산산이 부서졌다.
진반이 펑 하고 터졌고, 이장청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사람부터 살려야겠소.”
부동래는 나지막하게 말하고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심협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서둘러 뒤를 따랐다.
장벽의 결계가 부서지자 세 마리의 린우가 곧장 이장청에게 달려들었다. 두 개의 뾰족한 뿔에서 검은 빛이 감돌더니 빠르게 회전하면서 두 개의 날카로운 송곳이 만들어졌다. 결계를 공격할 때보다 더 강력한 공세였다.
심협은 마수들이 노인을 미끼로 더 많은 사람을 유인하려는 속셈임을 알아챘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걸려들지 않자 노인을 먼저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세 마리의 린우가 노인을 죽이려는 순간, 부동래가 먼저 그 앞에 나타나 두 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몸에서 검은 빛이 번득였다.
세 마리의 거대한 호랑이 허상이 갑자기 몸에서 튀어나와 세 마리의 린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펑! 펑! 펑!
굉음이 울려 퍼졌고, 세 마리의 린우는 동시에 강력한 힘에 충격을 받아 멀리 날아갔다. 머리의 뿔도 모두 부서진 상태였다.
부동래의 몸이 강하게 흔들리면서 세 마리의 호랑이 허상도 사라졌다.
그때, 머리 위에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검은 불꽃에 휩싸인 커다란 꼬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내게 맡기시오!”
심협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달빛이 부동래 뒤에 나타났다.
이어서 금빛이 하늘 높이 치솟았고, 심협의 현황일기곤이 어느새 손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커진 곤봉의 허상이 그대로 서망의 커다란 꼬리와 충돌했다.
꽝!
굉음과 함께 현황일기곤의 허상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서망의 거대한 꼬리도 충격에 튕겨나갔다.
곤봉이 강력한 힘에 땅에 꽂히면서 먼지가 일어났다.
서망과 린우가 동시에 물러나자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장청은 땅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나타난 인간족과 마족이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죽이러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그는 의아하면서도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도우 괜찮으십니까?”
심협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심 도우구려. 가벼운 상처만 좀 입은 거라 괜찮소.”
이장청도 심협을 알아보고는 대답했다.
심협은 그 대답에 속으로 웃었다.
‘상당히 신중한 자구나.’
상처로 인해 기운이 불안정한데도 심협과 부동래가 다른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르니 무사한 척하는 것이 분명했다.
심협과 부동래는 그 의미를 알았으나, 더는 묻지 않고 서둘러 상처를 치료하게 했다.
네 마리의 마수는 다 잡은 고기를 놓치자 흉악한 기색을 드러냈다. 린우의 몸에서 푸른 비늘이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코에서는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고, 네 발로 땅을 밟으며 언제든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서망은 이제 꼬리로 공격하는 대신 몸을 둥글게 말아 커다란 뱀 머리를 세웠다. 커다란 입에서 날름거리는 새빨간 혀는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코뿔소처럼 머리에 달린 검은색 뿔에는 회오리 같은 무늬가 나 있었다.
“크아아아!”
서망이 가장 먼저 입을 벌려 포효하자 초록색 독이 담기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세 사람을 뒤덮었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팔각형의 오래된 거울이 머리 위로 날아가 천천히 빛을 발했다. 거울에서 아래쪽으로 환한 빛을 뿜어냈고 동시에, 부문이 나타나면서 강렬한 영력 파동을 뿜어냈다.
치익!
독이 팔현경이 펼친 광막에 닿자 부식되는 소리가 크게 나면서 광막이 강하게 흔들렸고, 빛은 빠른 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때, 세 마리의 린우가 다시 힘을 모아 달려왔다.
이들은 서망의 독이 조금도 두렵지 않은지 광막에 독액이 남아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광막의 삼면이 충격을 받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강하게 빛을 뿜어내며 완전히 부서질 기미를 보였다.
콰직!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팔현경에 균열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넓어지면서 거울이 부서졌다.
뒤이어 폭발음과 함께 광막이 부서졌다.
세 마리의 린우가 그대로 달려 심협 등에게 나누어 달려들었다.
부동래가 앞으로 나서며 주먹을 들었고, 그의 팔에서 마문이 떠오르더니 근육이 끊임없이 팽창했다. 주먹에서 검은 빛과 금빛이 반짝이면서 호랑이 발톱으로 변하여 그대로 린우의 이마를 내리쳤다.
린우는 공격이 심상치 않자 고개를 휙 비틀어 날카로운 뿔로 부동래의 주먹을 들이받았다.
펑!
린우의 뿔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러졌고, 비늘 갑옷으로 가득하던 머리는 호랑이 발톱에 관통당했다. 커다란 몸은 그 충격에 수십 장이나 굴러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고서야 멈췄다.
한편, 심협은 현황일기곤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가 산을 떠받치는 기세로 달려드는 린우를 아래에서 슬쩍 밀어 올렸다. 그러자 그 거대한 몸이 붕 떠서 이장청에게 달려들던 린우 위로 떨어졌고, 둘 다 그대로 쓰러졌다.
그제야 이장청은 두 사람이 정말로 자신을 구하러 온 것임을 확신하고 감격했다.
한데 그가 막 감사의 인사를 하려는 순간, 서망이 다시 입을 벌려 독액을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