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58화 (658/1,214)
  • 658화. 생사를 건 도박

    “대승기 수련에 필요한 단약과 법보를 주겠소. 심 도우가 약속만 하면 우리 수양산 집법당이 반드시 구해줄 것이오.”

    조통은 의논할 여지가 생겼다 여겨 곧장 답했다.

    “대승기라…… 아무래도 조 도우는 자신의 목숨을 고작 그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군.”

    심협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니오. 내 말을 잘못했소. 대승기의 경지를 돌파할 수 있는 단약과 기물이오! 말만 하면 내가 반드시 드리리다!”

    조통이 얼른 말을 고쳤고, 이에 심협의 얼굴에는 약간의 머뭇거림이 생겼다.

    “심 도우도 대승기 경지의 한계를 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지 않소? 스승님께서 나를 위해 대승 중기 다음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설백영서단(雪魄靈犀丹)을 준비해두셨소. 이번에 사문으로 들어가 얻게 된다면 남김없이 모두 심 도우께 드리리다. 어떻소?”

    심협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수련한 연혈공법이나 내놓으시오.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겠소.”

    심협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설백영서단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그렇게 말했으나, 조통은 표정이 굳어 억지로 화를 억누르며 답했다.

    “심형, 너무 난처하게 만들지 마시오. 연혈공법은 우리 수양산의 내문비전이오. 도우에게 넘기면 사문을 배반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나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쫓겨날 것이오. 심형도 죽을 때까지 우리 사문의 추격을 받게 될 게요.”

    “공법을 안 넘기면 지금 죽을 텐데,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나가 생기는 쪽을 택하는 게 낫지 않겠소? 그리고 비경에서 나가면 당신이 죽든 말든 나와 상관없고 내가 쫓기건 말건 그 또한 당신과는 상관없지 않소?”

    심협이 전음으로 말했다.

    “심 도우, 너무 몰아붙이지 마시오. 나를 죽여도 당신에게는 별 이득도 없지 않소? 그대의 문파는 소모산의 작은 분파에 불과한데 정말로 그들이 그대를 끝까지 지켜줄 것 같소? 솔직히 말해 난 수양산 집법당 대장로의 관문 제자일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이기도 하오. 무도회의 규칙 때문에 그대를 당장에는 어떻게 하지 못할지 몰라도 언제까지 수양산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소?”

    조통이 이를 갈며 답했다.

    “살아 있어야 후손이지, 죽으면 그저 쓸모없는 놈이 되는 거요. 그대의 배후가 정말 당신의 복수를 위해서 규칙을 어길 것 같소? 그대의 목숨이 그들이 백 년 동안 나를 쫓을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게요?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군.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비경에 보내진 것만 봐도 당신에 대한 대우를 알 수 있을 텐데?”

    심협의 조롱 가득한 말에 조통은 일순 멍해졌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수양산에는 자신보다 경지도 높고 자질이 뛰어난 사람도 많은데 어째서 소모산이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낸 것일까?

    그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사실을 알았다 한들 어쩌겠는가. 연혈공법은 수련 초기부터 금제가 심어져 있으니 외부인에게 넘기려는 시도만 해도 피가 스스로 타올라 그는 잿더미가 되어 버릴 것이다.

    “심 도우, 그것만 아니면 무엇이든 들어주겠소.”

    “이런 우연이 있나!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인데…….”

    심협은 웃으며 대꾸했다.

    잠시 후, 조통의 눈에 결연한 빛이 스치더니 그가 무언가를 깨물었다. 다음 순간, 그가 가볍게 숨을 내쉬자 검은 연기를 동반한 뜨거운 불길이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심협은 곧바로 순양검배를 휘둘러 조통의 향해 베었다.

    조통의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피와 살이 불에 타오르는 것처럼 피부에 용암 같은 균열 무늬가 생겨나면서 기괴한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의 두 눈도 이미 불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마에 붙어 있던 동물 가죽 부적도 덩달아 빛나더니 녹색 빛이 번져 조통의 부서진 머리에 생긴 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을 제압하려는 듯했다.

    “크아아!”

    조통은 야수와 같은 비명을 내질렀고, 한쪽 팔로 심협의 칼날을 막았다.

    그의 몸에서 강력한 힘이 일순 폭발하자 동물 가죽 부적이 타버리면서 재가 되었고, 머리의 구멍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심협은 재빨리 그와 거리를 벌렸고, 황혁과 부동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다가왔다.

    “심협,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것이다! 다 같이 죽자꾸나!”

    원망이 가득한 조통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그가 손을 내밀자 불꽃이 뿜어져 나오면서 불꽃 검이 되었다. 조통은 검을 쥐자마자 심협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순간, 심협이 손을 휘둘렀다. 기혈번이 허공에 펼쳐지면서 거대한 방패처럼 머리 위를 막았다.

    핏빛의 불꽃 검이 다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기혈번 위에 떨어졌지만, 이 깃발을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깃발도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뜨거운 열기가 끊임없이 전해졌다.

    심협 등은 열기의 영향으로 온몸의 피가 타버릴 것 같았다.

    부동래가 공격하려고 했지만 심협이 말렸다.

    “서두를 것 없소. 저자는 부상이 가볍지 않으니 그저 죽기 전의 발악이나 다름없소. 얼마 버티지 못할 게요.”

    심협의 말이 끝나는 순간,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더니 타오르던 불꽃이 완전히 사라졌다.

    기혈번을 치우자 조통의 몸에서 타오르던 불꽃은 이미 사라졌고, 온몸의 피부도 완전히 타버려 온몸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자세히 살펴보니 조통의 그을린 시체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에는 보라색이 섞여 있었다. 피에 담겨 있던 독성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다.

    “심협이 조통을 죽였으니 총 5점을 얻었습니다.”

    조통은 스스로 불타서 죽은 것인데 어째서인지 그의 2점이 심협에게 쌓였다.

    주변에는 시체 썩는 악취가 가득했지만, 심협 등은 서둘러 떠나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심 도우, 아무래도 내 상처는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소. 그래서 심 도우에게 부탁을 할까 싶소.”

    황혁은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로 심협에게 전음을 보냈다.

    “말해보시오.”

    심협 또한 전음으로 답했다.

    “본래 계획은 내 비경 열쇠를 찾아 1위를 하여 향후 백 년간 우리 인간족이 삼계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소.”

    “황형의 부탁이라는 게 나더러 대신 1위를 차지해 달라는 겁니까?”

    “그렇소.”

    “황형은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려. 나는 그런 일에 흥미도 없을뿐더러 설령 내가 전력을 다한다 해도 해낼 수 없을 것이오.”

    심협은 쓰게 웃었다.

    “심 도우, 내 말을 좀 들어보시오. 인간족의 대의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은 그렇다 쳐도, 1위를 한다면 심 형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게요.”

    황혁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심 도우도 알다시피 수양산 종문의 실력은 약하지 않고 집법당도 종문들 중에서 최강의 부문 중 하나요. 조통의 스승은 도량이 적은 자요. 암암리에 다른 수를 써서라도 심 도우를 노릴 터. 대당 관부가 암수까지 막아주지는 못할 것이오.”

    “그게 내가 무도회에서 우승하는 것과 무슨 관계란 말이오?”

    “당연히 큰 관련이 있소. 생각해 보시오. 도우가 만약 인간족에게 승리를 가져다줘 인간족이 향후 백 년간 삼계의 발언권을 얻게 된다면 도우는 인간족의 공신이 되오. 그러니 도우를 해하려 해도 그 대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거요.”

    황혁의 말에 심협의 안색이 굳어지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뿐이라면 수양산의 복수 따위에 개의치 않을 것이나 이제 자신에게는 춘추관의 전승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심 도우가 정말 해낸다면 사조 어르신께도 체면이 서지 않겠소?”

    심협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 뒤에야 전음으로 대답했다.

    “한번 해보겠소. 다만 약속은 할 수 없소.”

    “그거면 됐소.”

    황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반나절 후, 심협의 부상이 절반 정도 회복되었고 소모한 정혈도 대량의 단약으로 많이 회복되었다.

    “심 도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오?”

    “아직 모르겠소. 부형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부동래의 물음에 심협은 대답 대신 반문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열쇠를 찾아 이 무도회를 끝낼 생각이오.”

    부동래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 도우도 무도회 1위를 노리고 있었소?”

    심협은 다소 의외였다. 부동래가 처음 했던 말에 따르면 그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시련에 참가한 것뿐이지 본인이 원해서 참가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1위에 흥미가 생긴 걸까?

    “심 도우가 오해했구려. 1위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무도회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오.”

    부동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째서요?”

    “이번 무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적지 않은 사람이 죽지 않았소? 그저 경기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을 지금은 혈투를 벌이고 생과 사가 갈려야만 승부가 나고 있소.”

    “그건…… 비경에 들어오기 전에 모두가 각오했던 게 아니오?”

    비경에 들어오기 전에 모두가 이미 생사장에 서명을 했는데 이제 와서 그 점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 심협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형도 알겠지만, 비경에서 싸우는 우리 모습이 삼계 전체에 송출되고 있소. 수많은 사람이 우리의 생사를 걸고 내기를 하고 있지.”

    그 말에 심협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자신의 목숨이 다른 사람의 도박에 소비되고 있다니, 반감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심협은 더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나 역시 비경의 열쇠를 찾고 싶으니 함께 움직이는 게 어떻겠소?”

    “그게 좋겠소.”

    심협의 말에 부동래도 웃으며 대답했다.

    “황형은 어떻게 하겠소? 같이 가겠소?”

    “내가 같이 가면 짐만 될 테니 여기 남아 정양하겠소.”

    황혁은 자신의 잘린 팔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심협을 돌아봤다.

    심협은 당부를 잊지 말라는 그 뜻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과 부동래는 황혁과 헤어져 산을 넘어 다른 숲으로 들어갔다.

    비경의 공간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산봉우리를 넘을 때 상당한 요수의 습격을 받았으나, 심협 등은 시간을 빼앗기기 싫었기에 빠르게 도망쳤다.

    “심형, 일전에 비경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게 없소?”

    부동래가 길을 재촉하며 물었다.

    “그런 건 왜 물으시오?”

    “별거 아닐 수도 있고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비경에서 수사들이 싸웠던 전장에서 마수의 기운이 느껴졌소. 다만 그 기운이 너무 옅어 확신은 없소.”

    “마수의 기운?”

    “요수의 기운과 비슷하여 쉽게 헷갈릴 수 있소. 그때도 기운이 옅어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 뒤로는 마주치지 못했소.”

    “듣고 보니 나 또한 이전에 땅속으로 들어가 수련하던 중에 뭔가 석연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 적이 있소. 다만 자세히 알려보려 하니 느껴지지 않아 그냥 넘어갔소.”

    “듣기로는 이 비경은 본래 하늘 밖을 떠다니는 무법의 땅이었는데 훗날 인, 마, 선 삼계가 안정되면서 삼계의 대능들이 함께 나서서 여기로 끌고 왔다 했소. 이후 천기성의 도움으로 개조하여 지금의 삼계무도회 시련의 장소가 되었다 들었지.”

    “나도 들어본 적이 있소. 비경 곳곳에서 나타나는 보물도 사실은 인, 마, 선 세 종족이 나중에 상으로 갖다 놓은 것이라 했으니, 비경의 요수와 마수도 아마 그들이 들여놓은 게 아니겠소?”

    “평범한 요수 혹은 마수면 모르겠으나 특수한 마수일까 걱정이오. 그리 되면 모두가 위험해질 것이오.”

    부동래가 눈살을 찌푸렸다. 호랑이의 눈에는 근심이 떠올랐다.

    “괜찮을 게요. 우리가 서둘러 비경 열쇠를 찾아 시련을 끝내면 되지 않겠소?”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부동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게 막 대꾸를 하려는 순간, 앞에서 갑자기 폭음이 들려왔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조심히 다가가 보니 하얀 옷을 입은 청년이 날카로운 검을 든 채 거구의 사내를 찌르려 했다. 같은 인간족 두 사람이 생사를 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