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56화 (656/1,214)
  • 656화. 참새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살려…….”

    조통의 도와달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각추를 쥔 손이 그의 미간을 찔렀지만, 파고들지는 못했다.

    심협은 자신을 저지하는 힘에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자가 먼저 나를 죽이려 하는데 반격도 하지 말라는 거요?”

    “그는 못 하나로 기습했지만 도우는 물 화살 세 개로 반격하지 않았소? 방금은 일부러 막지 않은 것이오. 하지만 더는 안 되오.”

    황혁은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참으로 융통성 없는 사람이로군.”

    그가 손을 거두려는 순간, 조통의 손을 얼린 얼음이 녹으면서 혈운이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와 심협의 미간을 향해 날아왔다.

    심협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지만, 혈운은 방향을 바꿔 쫓아왔고, 심협은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그때, 황종대려(黃鐘大呂)의 울림 같은 폭발음이 두 사람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황혁이 다른 손으로 조통의 뻗은 팔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조통의 비명과 함께 손은 버티지 못하고 위로 올라갔고 혈운도 세 사람의 머리 위로 솟구쳐 폭발했다.

    하늘에서 혈운이 폭발하자 혈우(血雨)가 비처럼 떨어졌고, 세 사람은 서로 견제하느라 모두 움직이지 못하고 비에 젖었다.

    혈우가 몸에 닿는 순간, 마치 뜨거운 기름이 튄 것처럼 피부가 뜨거워졌다.

    “윽!”

    조통이 먼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더니 두 손으로 미친 듯이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혈흔을 닦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 이상한 혈흔은 닦이지 않았고, 그가 세게 문지를수록 더 빨리 피부로 스며들었다. 그의 온몸은 붉게 부풀어 올라 마치 잘 익은 새우처럼 변해버렸다.

    심협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얼굴을 만져봤지만, 조통처럼 비비지는 않았고, 어수지술을 사용해 물방울로 혈흔을 감싸 닦아내려 했다.

    한데 물방울은 혈흔에 스며들지 못했고,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심협의 얼굴에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이와 동시에 혈흔들은 피부로 파고들었다.

    심협은 갑자기 뜨거운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치면서 심장 박동이 점점 뚜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믿기 힘들 정도의 열기가 온몸을 감쌌고, 그의 피부도 조통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무슨 짓을 한 거야?”

    황혁은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소리쳤다.

    “저, 절대로 법력으로 제압하려고 하지 마. 그러면 독혈(毒血)이 더욱 강해져 정혈을 전부 태워버릴 거야.”

    두 눈이 붉게 물든 조통이 큰소리로 외쳤다.

    심협은 그 말을 듣고서야 이것은 저자가 수련한 연혈지술(燃血之術)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독혈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느냐! 빨리 말하라!”

    “이 독혈은 우리 스승님이 만드신 거다. 내가 위험할 때 쓰라고 주신 거라서 나도 해독 못 한다고!”

    심협의 호통에 조통이 허둥지둥 말했다.

    말을 마친 그는 땅에 가부좌를 하고는 본문의 비법을 운공하여 열혈의 독에 저항하려고 했다.

    심협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가부좌를 틀고 조통의 말을 무시한 채 무명공법으로 혈기를 왼팔에 모으기 시작했다.

    한데 법력을 운공하자 온몸의 피가 들끓기 시작했고, 혈우가 묻은 피부에서는 새하얀 수증기가 일어나 쉬지 않고 끓어올랐다.

    심협은 깜짝 놀라 팔을 자르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그는 여러 번 망설이다가 황정경을 전력으로 운공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바로 금빛으로 뒤덮자 온몸의 수증기가 들끓는 현상이 다시 일어났으나, 심협도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시뻘겋게 변한 얼굴에서 핏방울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어서 목과 팔, 온몸으로 퍼졌다.

    푹! 푹!

    가벼운 소리가 연달아 울리면서 심협의 몸에 맺힌 핏방울이 하나둘 터졌고, 독혈에 오염되어 검고 끈적하게 변해버린 피가 불쾌한 냄새와 함께 흘렀다. 독혈로 오염된 피를 곧바로 피부를 통해 밖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몸 안에서 독혈이 움직이는 것을 감소시킬 수 있기에 더 많은 오염을 피할 수 있고, 또 독혈을 제거하여 법력의 운공으로 주는 자극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염된 곳이 너무 넓어 혈액과 경맥이 상하고 피부 역시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심협은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전력을 다해 독혈을 제거하는 한편, 대개박술을 운공하여 상처를 치료했다. 독혈이 침투한 간과 창자도 함께 치유했다.

    기혈과 피, 법력 모두 극심하게 소모되면서 심협은 점차 허약해져갔다. 피가 부족했고, 피부도 창백해지면서 단숨에 수십 년을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그와 멀지 않은 곳에서 황혁은 금종(金鐘)의 허상에 둘러싸여 있었다. 금종의 사방에는 범문(梵文)이 맴돌았고, 이 범문에서 흘러나오는 영력 파동이 마치 밀물처럼 그의 몸을 씻어냈다.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섞인 하얀 연기가 계속해서 솟아올랐다.

    그는 마치 부처처럼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오른손은 몸 앞에 결인한 채였다. 왼손은 두 다리 사이에 올려져 있었고, 온몸의 검은 기운이 팔을 타고 흘러 왼팔로 모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이 어두워지도록 세 사람은 일어나지 못했다.

    세 사람 중 심협의 모습이 가장 비참했다. 마치 증발하는 것처럼 온몸에서는 연기가 솟구쳤고, 피부도 쭈글쭈글해 말라버린 고목 같았다.

    황혁은 그와 다른 방법으로 독혈을 전부 왼팔로 모았다. 그의 왼손은 검게 물들었고, 팔목부터 팔뚝은 보라색, 팔뚝부터 어깨는 새하얗게 변했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미친 듯이 흘렀고, 독을 제거하는 데 정혈의 소모가 너무도 컸다.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바짝 긴장한 것이 마치 독혈을 제거하기 위해 힘을 축적한 것 같았다.

    반대로 조통은 본래가 열혈지술을 수련했기에 독혈의 성질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종문의 비법으로 이를 억누를 수 있었다. 또한 비경에서 나가기만 하면 스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후…….”

    그는 길게 탁한 숨을 내뱉었는데, 숨에는 옅은 보랏빛이 섞여 있었다.

    조통은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 심협과 황혁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두 사람을 훑어보는 눈빛은 조금씩 차갑게 변했다.

    “심 도우,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것 같은 그 모습은 무슨 꼴이오. 내 선심을 써서 편하게 보내드리리다.”

    조통은 나지막이 말하고는 손을 들어 심협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그만둬!”

    황혁이 갑자기 소리쳤다.

    조통은 손을 멈추고는 그를 돌아봤다.

    “왜 말리는 것이오?”

    조통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그로부터 당신을 구했으니 당신도 그를 놔두시오.”

    “황 도우, 잊은 것이오? 당신은 내 스승님께 은혜를 갚고자 나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날 방해하러 온 것이 아니오!”

    “그래도 안 되오.”

    황혁은 완고하게 반대했다.

    “안 돼? 그럼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던가.”

    조통은 비릿하게 웃더니 끝내 손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심협의 머리를 내리쳤다.

    쾅!

    굉음과 함께 심협의 몸이 한쪽으로 쓰러졌고, 흙과 돌이 파이면서 한순간에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심협의 몸은 그곳에 박혔고 머리는 힘없이 한쪽으로 처졌다. 눈과 귀, 입, 코에서는 작은 뱀이 기어 나온 것처럼 피가 흘렀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극한까지 약해졌다.

    “조통!”

    분노에 가득한 외침에 이어 황혁은 오른손을 들어 왼팔을 잘랐다.

    푹!

    황혁은 피가 솟구치면서 떨어지는 자신의 왼팔을 조통에게로 걷어찼다.

    조통은 독혈로 가득한 팔이 날아오자 화들짝 놀라 심협을 다시 공격할 틈도 없이 황급히 피했다.

    조통은 몸을 가누고 창백한 얼굴로 황혁을 노려봤다. 온몸의 기운이 불안정한 황혁에게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이 너무도 치욕적이었다. 지금의 황혁이 자신의 적수가 되겠는가!

    “정말 날 적으로 삼을 것이오?”

    조통은 황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분명히 말했소. 당신은 그를 죽일 수 없소.”

    황혁의 팔에서는 여전히 피가 떨어졌지만, 목소리는 굳건한 반석 같았다.

    조통은 말없이 속으로 계산해봤다.

    ‘황혁은 여태껏 적지 않은 사람을 죽였으니 점수도 상당히 쌓았을 것이다. 저자와 심협을 다 죽이면 저들이 쌓은 점수는 다 내 것이 아닌가!’

    황혁은 그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날 죽일 생각이라면, 네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황혁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조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고, 조통은 그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이내 탐욕이 그의 마지막 망설임을 덮어버렸다.

    “심협과 너는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금 만난 사이건만, 어째서 저자의 편을 드는 것이냐?”

    조통은 살의가 올라왔으면서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네게 설명해야 할 이유가 있나?”

    황혁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너…… 오냐, 알겠다. 그렇다면 네놈도 함께 죽여주마!”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혈무가 조통의 몸을 뒤덮었고, 어느새 손에 나타난 2척 길이의 핏빛 정도(晶刀)가 황혁의 심장을 찔러 왔다.

    황혁은 날아오는 정도를 피하며 남은 손을 가슴 앞에 세우고 낮게 외쳤다.

    “나한금종(羅漢金鐘)!”

    그 순간,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황혁의 잘린 팔에서 흐르던 피가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몸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그는 마치 온몸을 금칠한 듯한 금신나한(金身羅漢)으로 변했다.

    몸 앞에 세운 손을 휘두르자 핏빛 정도는 단숨에 부러졌다.

    의외의 상황에 조통은 두 눈이 커졌지만, 도를 찌르는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온몸을 뒤덮은 혈무가 핏빛 정도의 겉을 감싸자 정도에는 날이 다시 생겨났고, 곧장 황혁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챙!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황혁의 몸이 강렬하게 흔들렸다. 핏빛 정도에 찔린 가슴에는 구멍이 생겨나면서 금빛이 사방으로 튀었다.

    핏빛 정도의 칼날이 황혁의 가슴을 파고들자 도에서 갑자기 요염한 빛이 번쩍이더니 얼마 남지 않은 황혁의 정혈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네가 명을 자초한 것이다. 염라대왕을 만나더라도 날 원망하지 마라. 흐흐.”

    조통이 비열하게 웃었다.

    한데 그때, 뒤에서 기척도 없이 그림자가 접근해오더니 순식간에 커졌다.

    조통이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검은색 강철로 만든 정(釘)이 그의 머리를 찌르더니 그대로 온몸을 뚫어 땅에 박아버렸다.

    강철 정을 쥔 사람은 한 발로 가볍게 정 끝에 내려서더니 천천히 몸을 굽혔다. 하얀 날개가 천천히 접히면서 얼굴이 드러났다. 영학(靈鶴) 요족 하천산이었다.

    그는 조통의 경악에 가득 찬 눈을 내려다보며 비아냥거렸다.

    “네놈들 머리를 거두러 오는 자가 있을까 하여 한참을 기다렸다. 혹여나 내가 참새 뒤의 참새에게 당하는 꼴이 될까 봐 기다렸는데도 아무도 안 오는군.”

    말을 마친 하천산은 씩 웃었다.

    강철 정에 박힌 채로도 아직 죽지 않은 조통은 힘겹게 한마디를 뱉었다.

    “죽고…… 싶으냐……?”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뚫린 이마에서 혈기가 솟아오르더니 하천산을 덮쳤다.

    “명을 재촉하지 마라. 내가 널 죽이지 않은 건 네 연혈지술에 흥미가 있어서다. 한데 이렇게 사리 분별을 못 하다니, 원한다면 너부터 보내주마.”

    하천산은 웃으며 말하고는 동물 가죽 부적을 꺼내 조통의 이마에 붙였다.

    그 순간, 조통의 이마에서 솟아오른 혈기가 갑자기 사라졌고, 법력은 동물 가죽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봉인되어 조금도 운공할 수 없게 됐다.

    “나머지 두 놈은 별다른 게 없어 보이니 바로 처리해야겠군. 우선 너부터다.”

    황혁과 심협이 있는 구덩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하천산은 껄껄 웃으며 황혁에게로 다가갔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황혁은 이미 하천산을 상대할 힘은커녕 반항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천산이 손을 휘두르자 손에서 검은색 정이 나타나 황혁의 미간을 노리며 날아갔다.

    그때였다.

    황혁 옆의 구덩이에서 갑자기 금빛이 번득이더니 곧장 타오르는 불꽃에 휩싸인 금색 검광이 하늘 높이 솟구쳐 하천산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천산은 검날이 닿기도 전에 뜨거운 기운이 덮쳐오자 당황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날개를 펼친 푸른 새가 그려진 푸른색의 둥근 방패가 나타났다. 이 새의 몸에서 푸른 빛이 흐르더니 갑자기 소용돌이를 뿜어냈다.

    소용돌이가 휩쓸며 날아가자 순양검배는 허공에서 막혔다. 그 틈에 하천산은 검은색 정으로 마저 황혁의 미간을 향해 찔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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