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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55화 (655/1,214)

655화. 도발

비경 안. 심협은 사람들이 이 싸움을 둘러싸고 환호하며 내기를 벌이고 있음을 당연히 알지 못했다.

온몸의 한기가 점점 더 강해졌고 온몸의 피도 조금씩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고, 두 눈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심협의 몸에서 갑자기 뜨거운 순양강기가 뿜어져 나왔고, 무형의 검기가 그의 소매에서 솟구쳐 날아갔다. 뜨거운 힘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순식간에 몸 앞에 맺힌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용각추도 동시에 빠져나가 적금색(赤金色)의 칼날이 칠살을 향해 날아갔다.

칠살은 의외라는 눈빛과 함께 바로 용명한수궁을 들어 한 손으로 휘둘렀다.

화살의 활시위가 떨리자 허공에서 파문이 일어났고 파문이 서로 연결되면서 겹겹의 한빙(寒氷) 광막이 펼쳐져 용각추와 순양검배의 앞을 가로막았다.

펑! 펑! 펑!

폭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고, 용각추는 세 겹의 한빙 광막을 뚫은 후 마침내 힘이 다 빠지면서 멈췄다.

그때, 심협의 짧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순양분검사!”

동시에 순양검배의 등(騰)에서 붉은 불꽃이 일어나더니 붉은 검의 허상이 겹겹이 검의 주변을 맴돌면서 질풍과 폭우처럼 한빙 광막에 떨어졌다.

쾅! 쾅! 쾅!

폭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한빙 광막이 터져나갔고, 수많은 얼음 결정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차례대로 뚫렸다.

칠살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상대를 쉽게 보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는데 지금 심협의 반격은 매우 날카로웠던 것이다.

칠살의 눈빛이 변함과 동시에 온몸에서 눈부신 금빛이 반짝이면서 갑옷이 온몸을 감쌌다.

콰쾅!

격렬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순양검배 밖의 불꽃이 빠르게 하나로 뭉쳐져 불꽃의 검이 되어 칠살의 금빛 갑옷을 조금씩 찔러 왔다. 금빛 갑옷에서는 겹겹의 파문이 일어나면서 순양검배의 힘을 막아냈다.

심협이 한 걸음 내디디면서 손을 뻗자 순양검배에서 강렬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칠살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서면서 정면으로 대항했다.

승부가 가려지려는 순간, 심협과 칠살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공격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칠살 도우, 지금 굳이 생사를 가를 필요가 있겠소? 괜히 다른 자들에게 어부지리를 취할 기회만 해주는 꼴이라 보는데, 어찌 생각하시오?”

심협이 몸을 가누며 물었다.

“날 알고 있나?”

칠살은 좀 놀란 듯했다.

“도우처럼 이름난 인재를 어찌 모르겠소?”

“도우의 이름은 무엇이오?”

“심협.”

“기억하겠소.”

칠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좌절한 느낌도 전혀 없었다. 상대를 인정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도우와는 승부가 나지 않았으니 영천수는 나눠 갖는 게 맞는 것 같소. 절반을 드리리다.”

심협은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세 개의 하얀 병을 칠살에게 던졌다.

병들을 받은 칠살은 고개를 끄덕였을 뿐, 감사 인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절반의 영천수를 그와 나눔으로써 심협은 자신을 향한 다른 자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터였다.

그때, 먼 초원에서 굉음이 들려오더니 다른 보물의 출현을 알리는 듯한 금빛이 또다시 하늘 높이 솟구쳤다.

“심 형, 함께 가보겠소?”

칠살이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 그만두는 게 좋겠소. 방금은 우연히 가까이 있었기에 제때 온 것일 뿐. 이번에는 너무 멀구려. 게다가 또 다른 강자들을 만나면 칠살 도우가 이렇게 대화로 풀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오.”

심협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칠살 역시 그 말에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보물이 나타난 곳으로 떠나갔다.

심협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주변이 조용해진 후, 서너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를 경계했지만, 함부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텅 비어버린 샘물을 보며 이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 놈들, 영천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가져갔어!”

온몸이 붉은 마족 수사가 화를 냈다.

“방금 그놈들끼리 죽기 살기로 싸웠으면 좋았을 텐데…….”

동행한 다른 사람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놈들의 형편없는 은신술 때문에 발각된 것을 누굴 원망하는 거지?”

누군가 갑자기 이렇게 말하며 나타나자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른 몸에 기이할 정도로 목이 긴 팔자수염의 요족 수사,  하천산이었다.

그는 구덩이 안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아무런 수확도 없자 두 팔을 펼쳐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라 우선 심협이 향한 쪽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금빛 기둥이 생겨난 곳을 바라봤다.

잠시 생각한 그는 두 팔을 움직여 무지개로 변하더니 금빛 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주위에 서 있던 자들도 일제히 날아올라 다음 보물이 나타난 곳으로 향했다.

한편, 심협은 사람들이 신식으로 살펴볼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자 바로 둔지부를 꺼내 땅속 백 장 깊이까지 빠르게 내려갔다.

이윽고 앞의 푸른 빛을 발견한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니 푸른 빛은 뭉쳐 있는 영천수액이었다.

심협은 망설이지 않고 입을 벌려 영천수액을 빨아들였다. 달콤한 영천수액은 실낱같은 영기가 되어 그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모두 흡수하자 수액 안에 들어있던 물건이 정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팔각형의 오래된 청동거울이었다. 마치 새것처럼 반짝였고, 뒷면에는 부문과 월계수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 거울을 손에 쥐자 마치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것처럼 영력 파동이 흘러나왔다. 심협은 보물을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의 짐작으로는 이곳의 영천수액은 아마 이 거울이 천지의 월화(月華)를 흡수하여 생겨난 것일 터였다. 나중에 이 거울을 춘추관에 두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영천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춘추관의 발전에는 적지 않은 의미였다.

비경 밖 주작 광장이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부러워했고 누군가는 질투했다.

“젠장, 무승부라니!”

“손해만 봤잖아! 저놈들은 왜 싸우다 만 거야?”

사람들이 심협과 칠살의 결과에 투덜거리고 있을 때, 내기를 주도하는 자들은 다시 소리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비경의 다른 곳에서 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진사원은 무척 당황했다. 심협이 순양분검 검식을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익혔단 말인가! 게다가 그 위력은 범상치 않았다.

심협의 순양검배는 분명히 양검(養劍)의 단계였고 마검(磨劍)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대승 후기의 수사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석연치 않았다.

높은 대 위. 얼굴을 가린 선족 여인은 심협을 보며 감탄했다.

“저 인간족 소우는 지혜롭군요.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는 영천수를 뽑아내는 척하면서 영계영월경(靈桂映月鏡)을 더 깊은 곳에 숨겼다가 기회를 봐서 보물을 취하다니. 아주 훌륭합니다.”

“부요선자(扶搖仙子), 천궁은 정말 대범한 듯합니다. 법보인 영계영월경을 상품으로 내놓다니 말입니다.”

정교금은 그녀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다른 마족과 요족 주최자들은 말없이 그저 자신들 제자를 지켜볼 뿐이었다.

* * *

비경 안. 심협은 영계영월경을 거두고는 또 한 병의 영천을 꺼내 마셨다.

방금 칠살과의 싸움에서는 소모가 제법 컸기에 급하게 떠나기보다는 땅속에 숨어 조용히 정양하기로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자신의 몸에 어떠한 힘이 감돌고 있는 듯한 불쾌한 느낌에 눈을 떴다. 허나 눈에 보이는 것도, 신식에 감지되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비경의 제한 때문에 그가 펼칠 수 있는 신식은 한계가 있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심협은 토둔지술을 시전하여 땅 위로 올라갔다.

이때, 비경에는 외로운 달이 높이 걸려 있었고 별들은 보이지 않아 하늘은 유난히 적막하고 깊어 보였다.

심협은 기지개를 켜며 황정경 공법을 운공해 몸을 풀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쾅 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오른쪽 먼 곳에서 눈부신 금빛이 하늘 높이 솟구쳐 어두운 하늘을 대낮처럼 밝게 비췄다.

“진 도장이 나를 속이지는 않았구나. 이 비경에는 보물과 기연이 정말 많단 말이지.”

심협이 빙긋 웃고는 곧바로 날아올라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얼마 되지 않아, 전방의 금빛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내 사라졌고 불어오는 밤바람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먼 곳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곧장 다가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한두 명이 싸우는 소리가 아니니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혼전에 휘말리게 될 터였다. 그럴 바에는 그들이 모두 싸우고 난 뒤에 어부지리를 취하는 게 나았다.

한참을 기다리자 달빛이 점점 서쪽으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그제야 소란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심협은 기회가 왔음을 직감하고 토둔지술을 사용하여 다가갔다.

그가 교전이 일어났던 곳으로부터 10장 정도 안으로 들어갔을 때, 갑자기 강렬한 법력 파동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가슴이 철렁해 바로 방향을 바꿔서 다른 쪽으로 피했다.

콰앙!

굉음이 울려 퍼졌고 심협이 피하기도 전에 부서진 바위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이미 행적이 탄로 난 이상 더는 숨을 필요가 없었기에 그는 두 팔을 들어 바위를 내리쳤다.

쿠르릉!

땅이 흔들리면서 수많은 돌이 마치 화산이 분출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튀었고, 심협이 그 안에서 떠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둥근 얼굴의 청년이 씩 웃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체구에 검은 옷을 입은 채 오른팔에는 가죽 갑옷을 찬 청년, 황혁이 있었다.

“허허,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더니 이렇게 직접 만나러 올 줄이야. 심 도우, 드디어 만났소.”

둥근 얼굴의 청년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오, 도우께서는 저를 찾고 계셨나보구려.”

심협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둥근 얼굴의 청년은 바로 수양산 집법당 장로의 제자 조통이었다.

“총명한 자로 알고 있는데 뭘 또 모르는 척을 하시오? 소모산이 그대를 보내 나를 상대하게 하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소. 그러니 내 큰 대가를 치러 황혁 도형을 모셔온 게 아니겠소?”

조통이 고개를 저으며 히죽 웃었다.

“난 당신이 죽지 않도록 지켜주기로만 했으니 살인은 하지 않을 것이오.”

황혁은 무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그 말을 통해 심협은 자신이 조통을 공격하지 않으면 황혁도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황형,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않소? 조금만 더 자극했으면 저자가 바로 나를 공격했을 텐데 말이오.”

조통이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난 본래 당신들 종문 사이의 원한에는 관심도 없고 이번에도 내 의지로 무도회에 참가한 게 아니오. 그러니 각자 알아서 갈 길 가는 게 어떻겠소?”

“심 도우는 상황 파악이 빠르시오. 우리 두 사람과 동시에 싸울 수 없으니 물러나겠다 이거요?”

조통은 여전히 심협을 자극했다.

심협은 조통에 대한 인상이 원래도 별로였으나 생각보다 더 별로라 생각하며 주변을 힐끗 살폈다. 전장은 좀 전의 충격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심협이 말없이 떠나려는 순간,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몸을 휙 돌려 주먹을 뻗었고, 핏빛 작은 못이 쏜살같이 날아와 그의 주먹과 충돌했다.

심협의 주먹에서 권강(拳剛)이 폭발해 핏빛 못을 부쉈다.

조통은 자신의 파혈정(破血釘)이 심협의 권강을 뚫기는커녕 그대로 튕겨 나오는 광경에 내심 놀랐다. 그는 바로 손을 내밀어 혈정을 거뒀다.

그사이 심협은 결인을 마치고 강하게 소매를 휘둘렀다.

휙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세 개의 물 화살이 그의 소매에서 뿜어져 나와 조통에게로 날아갔다.

조통은 가볍게 손을 들어 물 화살을 막으려 했다.

한데 강렬해 보였던 물 화살은 그의 손에 닿는 순간 흩어졌고, 조통의 손은 허공에서 꽁꽁 얼어버렸다.

화들짝 놀란 조통이 법력을 운공하여 이 얼음을 녹이려는 순간, 갑자기 달빛이 꽃잎처럼 눈앞에 떨어졌고, 순식간에 그의 옆에 누군가 다가와 용의 뿔 모양의 추로 미간을 찔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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