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화. 경쟁심
다음 날, 심협은 춘추관을 나와 장안으로 돌아왔다.
장안성은 여전히 시끌벅적했고, 성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성 밖에도 천막과 간이 가옥이 백 리까지 이어져 있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성문 입구에는 삼계무도회의 정확한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었지만, 시합 내용과 규칙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심협은 한참이나 장안성을 바라보다가 성안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광경은 그가 떠났을 때보다 더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걷기도 힘들어지자 견디지 못한 심협은 인파가 적은 거리로 들어갔다.
한데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형!”
고개를 들어 옆 모퉁이의 주루 2층을 올려다보니 백소천이 술잔을 들고 반쯤 몸을 내민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데 그가 대답하려는 순간, 백소천 옆에서 또 한 사람이 머리를 내밀고는 똑같이 환하게 웃었다.
“소운?”
“형님, 어서 올라오십시오.”
백소운이 반갑게 인사했다.
심협은 환하게 웃고는 주루로 들어갔다.
“심 형님, 건업에서 뵌 후로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백소운은 심협에게 술을 따르며 감격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뒤로 꿈속에서도 보긴 했지만…… 아니, 그게 더 미래의 일인가?’
백소운은 건업성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많이 성숙하고 차분해졌지만, 꿈속에서 본 백씨 선조와는 여전히 많이 달랐다.
심협은 그의 모습을 보며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뭘 그리 생각하나?”
백소천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소운이 많이 큰 것 같아서 말이오.”
심협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답하자 백소운이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심 형님, 저도 벌써 백 살이 넘었습니다. 어찌 아직까지 어린아이 취급을 하십니까?”
“그것도 그렇군. 하하! 백형, 돌파를 위해 폐관한다고 들었는데 왜 벌써 나온 게요?”
“아, 그렇지. 그때 이미 돌파가 눈앞이라 이미 돌파했네. 그리고 소운, 이 녀석이 돌아온 참이라 겸사겸사 또 나왔지. 들어보니 자네는 춘추관으로 갔다던데…… 아, 이제 심 관주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백소천의 말에 심협은 옷을 단정히 정리하고는 똑바로 앉아서 그를 살짝 내려다봤다.
백소천이 조금 당황하자 백소운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형님, 심 관주님이 인사를 받으시려는 모양입니다.”
백소천은 그제야 눈치채고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심협을 흘겨봤으나, 별말 없이 인사를 올리려 했다. 어찌 됐든 그도 한때 춘추관 문하였기 때문이다.
“제게 무슨 절입니까 나는 관주가 아니오. 아무튼 시간 나면 언제 한번 들르십시오.”
심협은 그가 정말로 인사하려 하자 화들짝 놀라 어색하게 웃으며 만류했다. 백소천은 속았다는 생각에 다시 자리에 앉아서는 연신 투덜대며 부채질을 해댔고, 백소운은 배를 잡고 웃었다.
“이번에 장안에 온 건 삼계무도회를 구경하기 위함인가?”
백소천이 잠시 뒤 물었다.
“구경이 아니라 참가하기 위함이오.”
“자네가 삼계무도회에 참가한다고?”
백소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고, 백소운도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봤다.
“왜 그러시오? 뭐 잘못됐소?”
“왜 참가하려는 거지?”
만류하려는 듯한 백소천의 말투에 의아했던 심협은 소모산과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심협의 설명에도 백소천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심형은 삼계무도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심협은 진사원에게서 들은 대로 답했다.
“자네, 당했군. 된통 당했어.”
백소천이 부채를 접고는 엄숙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당했다니, 무슨 뜻이오? 삼계무도회에 다른 내막이라도 있는 게요?”
백소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막까지는 아니고, 종문 안에서 떠도는 소문이 있지. 소모산에서 일부러 숨기고 자네에게 말을 안 한 듯한데…….”
“어떤 소문이기에 그러시오?”
“그자가 이번 무도회의 과정은 자세히 설명 안 했겠지?”
“이번이 처음 열리는 무도회라 그런지 각 종족 간의 견해차가 커서 자세한 규칙이나 과정은 나중에 정해진다고 들었습니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게 바로 문제네. 사실 자네가 권유를 받았을 때쯤에는 모든 규칙이 정해져 있었거든. 아직 공포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중 가장 중요한 항목은 바로 ‘본 무도회에서 생사장(生死狀)을 작성해서 비경에서의 모든 생사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걸세.”
“무도회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도 있다지만, 미리 생사장을 작성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소. 이번 무도회 규칙은 살인을 장려한다는 말이오?”
심협이 진중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당연히 살인을 장려한다는 말은 없겠지. 다만 이번 무도회의 포상은 적지 않으니 분명 전력을 다해 싸울 터. 생사장까지 쓰게 된다면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걸세.”
“저는 형님 말처럼 그렇게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경 시련에서 꼭 서로를 죽이고 최후의 1인을 가린다는 말은 없지 않습니까? 그저 비경에 숨겨진 열쇠를 찾아서 비경의 출구를 여는 게 우승 조건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무사히 살아남기만 해도 상당히 좋은 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백소운은 백소천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련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숨어서 기다리는 것은 안 되겠군요.”
“그렇게 쉬울 리가 있겠나? 살아남으면 상이야 받겠지만 점수에 따라 상이 달라지겠지. 많은 점수를 얻으려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점수를 빼앗아야 할 테고…….”
백소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심협의 표정도 무거워졌다.
그처럼 아무것도 모르거나 속아서 참가한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이 규칙을 알고도 참가했을 터. 싸움을 피하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 같았다.
“아, 참가자들은 모두 대승기 수사요?”
“이번 무도회에는 대승 후기라는 상한선이 있지만, 하한선은 없네.”
“정말이오?”
“그렇긴 한데, 죽고 싶다고 달려드는 연기기 수사는 없겠지. 대부분은 대승기 수사일 게야. 게다가 이번 상품은 대승 후기가 진선으로 돌파할 때 필요한 단약과 부적이라 하니 더 많은 대승 후기들이 눈독을 들일 걸세.”
“첫 삼계무도회가 이렇게 소란스러울 줄은 몰랐소.”
심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처음이라서 이렇게 예상치 못한 규칙이 생긴 거겠지. 듣기로는 앞으로 삼계무도회는 인, 선, 마 각 종족이 번갈아가며 개최하는데, 이번 무도회를 통해 방식을 확정한다더군.”
“그래서 이번 삼계무도회에는 각 세력들이 시험 삼아 참가하는 것이고 제가 아주 공교롭지 않게도 소모산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군요.”
심협은 자조하듯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 삼계무도회가 설립된 의중이 그저 삼계 세력들의 놀이는 아닐 테고,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 참가자 본인들만이 아닐 게야.”
“이해했소. 소모산이 그렇게 저자세로 내게 권유한 것도 반드시 어떤 이익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만약 제가 우승하면 도통 중에서 소모산의 지위가 상당히 높아지겠죠?”
“당연하네. 열쇠를 차지하여 비경의 출구를 연 승자가 된다면 인, 선, 마, 요 네 종족의 공동 지지를 받아 엄청난 법보와 공법 등을 지원받는 것은 물론이고, 종문 역시 큰 이득이지. 자네가 우승한다면 춘추관은 소문파에서 단번에 중급 종문으로 올라가지 않겠나. 그럼 상종인 소모산도 당연히 엄청난 덕을 보겠지.”
백소천이 다시 부채를 펼치고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또한! 삼계의 네 종족은 동맹을 맺었지만 어쨌든 동족은 아니니 여전히 서로 각종 분쟁이 있을 걸세. 다만 동맹 관계인 만큼 서로 큰 충돌은 일으키지 못하니 대신 삼계무도회를 개최한 것이지. 그러니 이번 무도회에서 승리한 쪽은 향후 백 년은 다른 종족들의 분쟁을 주도할 중재권을 얻게 될 걸세.”
“배후에 깊은 뜻이 있었군요. 그렇다면 각 종족에서 참가하는 자들이 심상치 않겠군요.”
“그렇지. 우리 인간족에서는 방촌산 출신이자 수년간 폐관하여 대승 후기에 오른 자가 참가한다더군. 듣기로는 아주 독해서 과거 대승기 초기 경지 때 두 명의 대승 중기 요족 수사를 죽이고는 수십 년을 폐관해 현재 진선 경지로 들어섰다던데…….”
“형님, 설마…… 형님을 두들겨팼던 황혁(黃奕) 사형을 말하는 겁니까?”
백소운이 불쑥 끼어들었다.
“어허! 심형과 대화 중이니 끼어들지 말아라.”
백소천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뭐요? 백형, 어디 가서 맞고 다니시오?”
심협은 실실 웃으며 물었다.
“아, 그건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전에 형님이 화생사의 장로님과 방촌산으로 불, 도의 변론을 하러 갔지요. 본래 그저 사문 선배들이 도리를 전하는 걸 듣기로 했는데, 우열이 가려지지 않자 제자들이 참지 못하고 치고받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 형님이 방촌산의 무명 제자들을 상대로 한창 우세했는데, 황혁이 나서서는 그만 형님을 두들겨팼지 뭡니까.”
백소운이 흥분한 얼굴로 빠르게 설명했다.
“백형, 그러게 남의 집에서 머릿수도 밀리는데 덤비면 어쩌자는 거요?”
“방촌산 제자들이 먼저 도발하는데 내 어찌 나서지 않겠는가! 화생사였으면 내가 지주(地主)의 정을 생각해서 봐줄 수 있겠지만, 남의 영역이라고 무시당하고 참을 수는 없지!”
말을 마친 백소천은 그때 생각이 떠올랐는지 한참을 씩씩거렸다.
“아무튼, 황혁 그자는 정말 강하긴 강하다네.”
“우리 인간족 수사 중에 강한 자가 있으면 좋은 일이죠.”
“그자는 성격이 괴팍하니 마주치거든 피하는 게 좋을 거야.”
백소천의 당부에 심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계무도회라…….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후,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나마 좋아진 편이라고 할 수 있네. 마족과 요족은 서로 죽고 죽여서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가 우승하여 모든 영광을 누리게 하자고 했거든.”
백소천의 말에 심협은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불쑥 반감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 인간족이 처음부터 반대했네. 다른 삼족, 특히 천성적으로 싸움을 좋아하는 요마에 비하면 인간족이 한참 뒤처지지 않던가. 결국은 선족도 우리 뜻에 힘을 보태면서 지금의 방식으로 바뀐 걸세.”
“그 말을 듣고 나니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 소모산에 당한 걸 복수하고 이번 기회에 춘추관을 키워 보려고?”
백소천이 웃으며 말했다.
“춘추관이야 소모산의 분파이니 복수를 하고 말고 할 게 무엇이겠소? 다만 계속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다 싶긴 하오.”
심협은 진중한 얼굴로 정색했다.
“정말로 우승 자리를 노릴 생각인가?”
백소천은 심협이 진지해 보여 오히려 걱정이 됐다. 심협이 강하다고는 해도 지금의 경지로는 대승 후기 수사를 이기기란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종족의 수사 중에도 황혁과 같은 부류가 적지 않을 것이니 심협이 굳이 경쟁하려 든다면 꽤나 위험할 터였다.
“걱정 마시오. 내가 누구처럼 덜렁대는 성격도 아니고 일의 경중을 알고 있으니 상황을 봐서 잘 대처하겠소.”
심협은 백소천의 어깨를 툭 치며 농을 건넸다.
“휴, 스승님께서 엄금을 내리셔서 참가하지 못하는 게 아쉽군. 안 그랬으면 나도 같이 가는 건데…….”
백소천의 깊은 한숨에서 진심을 느낀 심협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형님, 스승님께서 형님은 못 가게 하셨어도 저는 못 하게 하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
“안 된다.”
“안 된다.”
백소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협과 백소천이 동시에 그의 말을 끊었다.
“출규 중기에 불과한 네가 어딜 간다는 게냐? 가서 얌전히 머리를 바칠 생각이더냐?”
“나는 괜찮으니 형님 말씀 들어라.”
“……네.”
백소운은 진짜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시무룩해 어깨가 축 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