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49화 (649/1,214)
  • 649화. 소모산(小矛山)

    “물건은 모두 여기 있네. 확인해보게.”

    흑곰 요괴는 화제를 돌리고 싶어 얼른 팔찌를 빼서 건넸다.

    심협은 신식으로 안을 살펴보더니 눈이 반짝거렸다.

    저물 법기에는 물의 영력이 담긴 보물이 세 개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푸른 옥병이었고, 안에는 푸른색 영액이 담겨 있었다. 어떤 진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한기를 발산하는 것이 병을 사이에 두고도 확실히 느껴졌다.

    두 번째는 물방울 모양의 푸른색 정석으로, 안에서 파도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강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세 번째는 주먹만 한 푸른색 요단(妖丹)으로, 몇 개의 용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담겨 있는 물의 영력은 혼잡했지만, 그 양은 세 가지 보물 중 가장 많았다.

    “병 안에 있는 건 모든 물의 근원인 일원진수라네. 내 벗이 안에다가 한수(寒髓)를 넣어 보물로 만들려고 했는데 내가 거의 뺏다시피 가져왔지. 푸른 정석은 혼음원정(混陰元晶)인데, 선천적인 수원(水源)의 힘이 담겨 있다네. 마지막으로 요단은 대승 절정의 벽옥교룡(碧玉蛟龍)의 요단일세. 물의 영력이 충만하지.”

    흑곰 요괴가 간단하게 세 가지 보물을 소개했다.

    “셋 다 엄청나군요! 제게 아주 유용할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심협은 깊이 공수했다.

    흑곰 요괴는 심협이 만족해하는 모습에 안도했다.

    “이 정도 영물이면 충분한가?”

    “사실…… 좀 부족합니다. 딱 이만큼만 더 구해주신다면 수련 서찰을 드리겠습니다.”

    심협은 잠시 생각한 끝에 조심스레 답했다. 이 세 가지 보물이면 대승 후기까지 돌파할 수 있겠지만, 진선기에 도달하려면 더 많은 원기가 필요했다.

    “정말인가? 그럼 마저 찾아서 오겠네!”

    흑곰 요괴는 화내기는커녕 매우 기뻐하더니 인사하고는 그대로 날아서 하늘 저 멀리 사라졌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뇌골단을 더 살 수 있는지 묻고 싶었는데 그럴 틈도 없이 가버린 것이다.

    그래도 전신 진반이 있으면 언제든 흑곰 요괴와 연락할 수 있으니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다시 동부로 들어가 부서진 돌벽을 수리하고는 다시 밀실에 앉았고, 저물 법기를 꺼내 잠시 고민한 후에 일원진수를 꺼냈다.

    세 가지 보물 중 일원전수에 담긴 물의 영력은 가장 적었지만 가장 순수했다.

    그는 곧 대승 중기로 돌파할 것이다. 앞서 거울 요괴에게 대승 중기로 돌파하려면 자신의 요기를 순화시켜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인간 수사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일원진수가 수련하기에 가장 적합했다.

    심협은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일원진수에 담긴 물의 영력을 흡수하여 자신의 법력을 높였다.

    그는 법력이 올라가는 속도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를 압축하여 법력이 가장 순수하고 가장 깨끗한 정도에 도달하게 하는 데 주력했다.

    * * *

    춘추관 내의 주청. 진명은 흑록색 도포를 입고 금실로 만든 불진을 든 채 조용히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연기 후기의 경지였다.

    한 달 동안 그는 심협이 준 단약의 힘으로 순조롭게 돌파할 수 있었다.

    그들과 같은 작은 문파에서 연기 후기는 매우 높은 경지였다. 게다가 남은 단약으로 진명은 반년 안에 다시 돌파하여 벽곡기에 도달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면 심협이 떠난다 해도 춘추관의 깃발을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으리라.

    춘추관 곳곳에서 분주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돌아온 춘추관 제자들과 주복이 함께 인부들을 지휘하여 춘추관 안의 무너진 건물을 수리했다.

    사실 무너진 건물들을 수리하는 것은 큰돈이 들지 않았다. 춘추관이 낡았어도 재산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내버려두고 몇 개의 숙소만 수리한 것이다. 실력이 너무 약한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였다가 외부인의 관심을 끌까 저어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제 심협이 돌아왔으니 오히려 춘추관의 명성을 떨쳐야 할 때였다.

    진명은 바깥의 분주한 모습을 보며 속으로 흡족해했다.

    그가 춘추관을 맡은 이래로 줄곧 산문이 다시 세워지기를 얼마나 꿈꿔왔던가! 그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춘추관의 명성은 널리 퍼졌다.

    흑운곡의 세 사람이 춘추관을 공격하여 청화산 영맥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모두 죽었고, 오히려 자신들의 본산마저 기둥뿌리도 남지 못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춘추관의 위력과 독한 수단은 수선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진명은 밖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밀실로 다시 돌아와 오래된 옥패를 꺼내 심협이 전수해준 방법으로 금제를 열었다. 그러자 순양보전의 내용이 나타났다.

    그는 한 글자 한 구절을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비록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여전히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한데 그때였다.

    “순양보전인가? 그 공법은 사라진 게 아니었나? 제법이군.”

    낮은 목소리가 갑자기 밀실에 울려 퍼졌다.

    “누구냐?”

    진명이 깜짝 놀라서 황급히 옥패를 거두고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피며 결인하여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복숭아나무 부검이 그의 소매에서 나와 몸 주변을 날아다니다가 어딘가를 찔러 들어갔다.

    “흥!”

    푸른 옷을 입은 사내가 진명 옆에 나타나더니 손가락으로 복숭아나무 부검을 튕겨냈다.

    펑!

    복숭아나무 부검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진명도 신음과 함께 피를 토했다.

    진명은 놀란 표정으로 침입자를 바라봤다. 차갑고 오만한 얼굴에 보라색 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는 몸집이 컸고, 기운의 깊이도 알 수가 없었다.

    “선배님은 누구십니까? 우리 춘추관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것이오?”

    진명이 심호흡하더니 당당하게 공수하며 말했다. 이전 같았으면 이런 대범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심협이 있기에 그도 적잖은 배짱이 생긴 것이다.

    “자네가 춘추관의 관주 진명인가? 심성은 괜찮지만 경지가 약하군. 그대가 천음문의 현음도인(玄陰道人)을 죽였을 리가 없다. 말해라. 누가 죽였지?”

    “천음문? 현음도인?”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진명은 이내 그게 누구인 지 알 것 같았다. 귀장에게 죽은 천음문의 노도이리라.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음도인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게다가 천음문은 경주의 대종문인데 제가 어찌 천음문의 고수를 죽일 수 있었겠습니까?”

    진명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천음문은 경주의 대종문으로, 대승기 존재가 지키고 있다고 들었다. 절대로 천음문의 그 노도를 자신들이 죽였다는 것을 인정해서는 안 됐다.

    한편, 진명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흑운곡 사람들은 귀장이 시전한 신통으로 일망타진하여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텐데 이자는 어떻게 그 일을 알고 있는 걸까?’

    “잡아뗄 것 없다. 너희는 확실히 흑운곡을 몰살시켰고,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지. 다만 운은 없었더구나. 현음도인이 죽던 그때, 어느 산수가 우연히 흑운곡 부근에서 약초를 찾다가 그 광경을 목격했고 소문을 냈지. 지금 경주 수선계에서 이 일을 아는 자는 적지 않다.”

    보라색 수염의 남자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명은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흑운곡이 춘추관에 멸망하고 현음도인이 흑운곡에서 죽었다. 현음도인을 죽일 때 귀장은 정체를 말하지 않았지만, 머리가 있는 자라면 조금만 생각해도 그의 죽음과 춘추관이 관계가 있음을 눈치챌 수 있으리라.

    “선배께서는 천음문 사람이십니까? 춘추관에 복수를 하러 오신 겁니까?”

    진명은 한참 뒤, 냉정함을 되찾고 물었다.

    “걱정하지 마라. 난 천음문 사람도 아니고 너희를 귀찮게 하러 온 것도 아니다. 다만 현음도인을 죽인 자에게 흥미가 생겼을 뿐이다. 춘추관은 오래전에 멸문했는데 현음도인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있다니, 신기하지 않느냐.”

    사내는 보랏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진명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자의 실력은 너무나 강해서 끝을 알 수 없을뿐더러 적이 아니라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었다. 심협의 경지가 높다고는 해도 이자를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다. 얌전히 안내하지 않으면 네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보라색 수염 남자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진명이 막 무슨 대답인가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뒷산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거대하기 그지없었고, 마치 파도가 몰아치고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듯하여 밀실의 땅까지 흔들렸다.

    “저쪽인가!”

    보라색 수염 남자가 뒷산 쪽을 휙 보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진명도 황급히 밖으로 달려 나가 주청에 도착했는데, 그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뒷산에서 두께가 3장에 이르는 푸른 빛의 기둥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고,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굉음은 그곳에서 들려온 것이다.

    보라색 수염의 사내는 주청 밖 허공에 떠올라 푸른 빛의 기둥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기운의 파동…… 누군가 대승 중기로 돌파했구나! 게다가 이 이상(異常)을 봐서는 이자의 수련 공법은 보통이 아니다.”

    “대승 중기?”

    사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진명의 귀에는 청천벽력처럼 들려왔다. 이에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심협의 실력이 대승기에 도달할 정도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것은 전설 속의 존재였고, 과거 춘추관의 사숙조도 응혼기에 불과했다.

    “역대 조사님이 보우하사, 우리 춘추관에도 대승기 수사가 나왔구나!”

    진명은 감동에 겨워 온 몸이 떨려왔다.

    한편, 한창 일하던 주복과 다른 제자들은 물론 평범한 인부들도 멍하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진명, 뒷산에 있는 도우는 누군가?”

    허공에서 보라색 수염의 사내가 내려오더니 진명에게 물었다.

    진명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보라색 수염 남자를 노려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신중한 자로군. 오냐, 말해주마. 나는 소모산(小矛山)의 수사 진사원(陳師元)이다. 춘추관의 관주면 소모산이라는 이름은 들어봤겠지?”

    보라색 수염의 사내는 간신히 짜증을 억누르며 말했다.

    “소모산!”

    진명은 고개를 휙 들어 보라색 수염의 사내를 바라봤지만, 눈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차 있었다.

    “못 믿겠으면 이 영패를 잘 보게.”

    사내, 진사원은 진명에게 영패를 던졌다. 춘추관 관주의 영패와 흡사했다.

    “소모산의 영패가 확실하군요. 종문 전적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선배님을 못 알아뵙고 결례를 범했으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진명은 영패를 몇 번이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두 손으로 공손하게 돌려줬는데, 표정은 이제 의심이 아닌 황송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춘추관 전적에 소모산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이 신분 영패는 틀림이 없었다. 절대 위조한 것이 아니었다.

    “인사치레는 됐네. 어서 날 저 도우에게 안내해주게.”

    진사원은 진명의 반응을 보며 흡족해하고는 영패를 받으며 말했다.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진명은 진사원을 데리고 뒷산의 심협의 동부로 향했다.

    * * *

    심협이 머무는 동부 밖. 하늘을 찌르는 푸른 빛기둥은 오래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동부 주변에는 엄청난 하얀 안개가 겹겹이 껴 있어 동부와 주변의 산봉우리마저 뒤덮였다.

    하얀 안개에는 강력한 저항이 담겨 있어 진명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버거웠다.

    “저 도우는 방금 경지를 돌파하여 지금 경지를 굳건히 하는 것 같네. 그러니 밖에 이런 수호 금제가 발동한 모양이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

    “알겠습니다.”

    진사원의 제지에 진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괜찮으니 진 관주께서는 저 도우의 내력을 알려주시겠소? 춘추관의 어느 선배님이시오?”

    전방의 하얀 안개 금제는 너무나 현묘하여 그의 식견으로도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에 저 안에 있는 자에 대한 평가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진명을 향한 말투도 예의를 갖추게 되었다.

    “선배님, 그냥 진명이라고 부르십시오. 동부 안에 있는 자는 제 사제 심협이라 합니다. 그동안 줄곧 밖을 돌아다녔는데, 어떤 기연을 만났는지 경지가 비약적으로 정진하여 얼마 전에 돌아왔습니다.”

    진명은 숨김없이 아는 것을 전부 말했다.

    “뭐라! 자네 사제라고? 자네 나이도 2백 살도 안 된 것 같은데…… 그런데 자네 사제가 벌써 대승 중기에 도달했단 말인가?”

    진사원은 깜짝 놀라 반쯤 호통치듯 물었다.

    진명은 경지가 낮아서 심협의 경지가 오르는 속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몰랐지만, 진사원의 반응에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만약 심협이 백 년 동안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얼마나 놀랄 것인가!

    진사원은 그래도 대승기 수사였기에 금세 안정을 되찾고는 말없이 하얀 안개로 뒤덮인 동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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