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48화 (648/1,214)
  • 648화. 폐관

    “여기 선옥과 재료, 부기, 법기 등은 사형께 드리겠습니다.”

    심협이 미리 준비한 저물 법기를 건네자 법력으로 살핀 진명의 얼굴에는 이내 화색이 돌았다. 이것들이 있으면 춘추관의 실력은 급속도로 성장할 것이다. 게다가 심협과 같은 고수가 있으니 과거의 영광이 재현될 날도 머지않았다.

    “이 옥패에는 본문의 순양보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춘추관이 멸문지화에 처했을 때 사숙조께서 제게 주신 겁니다. 진 사형께서 현재 춘추관의 관주(觀主)이시니 사형께서 보관하시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심협이 오래된 옥패를 진명에게 건넸다.

    “순양보전!”

    진명은 벌떡 일어나 흥분한 눈으로 심협 수중의 옥패를 바라봤다.

    춘추관의 제자라면 당연히 순양보전을 알고 있다. 멸문지화 때 이미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는 옥패를 받지 않았다.

    “순양보전은 매우 중요한 물건이네. 나는 경지가 너무 낮으니 내가 가지고 있으면 안전하지 않아. 그러니 심 사제가 그대로 가지고 있게. 그리고 사제가 돌아왔으니 관주의 자리도 당연히 자네가 이어받는 게 맞아.”

    진명은 관주인신(觀主印信)이라 적힌 청색 영패를 꺼내 두 손으로 받쳐 심협 앞에 내밀었다.

    “종문을 이끄는 것은 저와 맞지 않습니다. 춘추관은 당연히 진 사형께서 맡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옥패도 진 사형께서 가지고 계십시오.”

    심협은 영패를 받지 않고 오히려 옥패를 진명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심 사제, 자네의 경지가 높으니 춘추관은 자네가 맡는 게 맞네. 그리고 순양보전 같은 귀한 것을 내가 어찌 가지고 있겠나.”

    진명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저는 그저 수련할 줄만 알지 문파를 이끄는 일은 흥미가 없습니다. 진 사형께서 더 사양한다면 저는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순양보전은 감히 누가 빼앗지 못하도록 제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을 겁니다.”

    심협은 손을 내저으며,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결국 진명도 심협의 완고함에 옥패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바로 춘추관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춘추관 역대 조사들의 영패에 절을 한 다음, 두 사람에게서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다.

    진명의 말에 의하면, 춘추관이 멸문할 때 그는 외지에 나가 있어서 다행히 그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종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춘추관은 사라진 뒤였다.

    그는 종문 근처에서 살아남은 동문을 찾아다니다가 산골짜기에서 사숙조의 잔혼을 만나 순양검결을 전수받았다. 사숙조의 잔혼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춘추관의 도통을 유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사숙조께서 순양검결을 전수해주신 거군요. 어쩐지…….”

    사숙조가 어째서 자신에게 순양보전을 맡겼다는 사실을 진명에게 말하지 않았는의 의아했으나, 잠시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숙조는 두 가지 대비를 하신 것이다. 그와 진명이 서로를 모르고 있다면 한쪽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다른 한쪽이 살아남는다면 춘추관의 도통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믿었으리라.

    심협도 그간 자신이 겪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는데, 물론 적지 않은 내용은 빼고 말했다.

    그럼에도 풍부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들은 진명과 주복은 멍해졌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서 곧 태양이 밝아왔다.

    진명과 주복은 어젯밤의 큰 싸움을 겪고는 한숨도 못 자서 피곤했다.

    “두 분께서는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심협이 웃으며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 사제, 어딜 가려는 겐가?”

    심협이 일어나자 진명도 따라서 서둘러 일어났다. 이제 춘추관의 부흥은 모두 심협에게 달렸기에 그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뒷산에 동굴을 열어 수련이나 할까 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아, 알겠네. 다른 잡일은 내게 맡기고 심 사제는 안심하고 수련하게.”

    진명은 그제야 안도했고, 심협은 인사를 남기고는 뒷산으로 향했다.

    심협은 처음 옥침을 발견했던 동굴을 넓혀 동부를 만들고는 몇 가지 진기를 그 주의에 설치했다. 그중에는 양의미진환진도 있었다.

    이를 마친 후에야 심협은 안심하고 동부 안에서 눈을 감고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한참 뒤, 그는 눈을 뜨고 두 방울의 감로수가 담긴 옥병을 꺼내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물의 영력을 흡수했다.

    한 줄기 푸른 빛이 병에서 흘러나와 끊임없이 그의 체내로 들어갔다.

    주변에도 옅은 푸른 빛이 피어오르더니 빠르게 밀집되어 그의 몸을 뒤덮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순식간에 한 달이 지났다.

    동부 안. 심협 몸 주변의 푸른 빛은 열 배로 강해져 그의 몸을 뒤덮었다 그 모습이 마치 푸른 색의 작은 태양 같았다.

    파도와 같은 푸른 빛의 강력한 법력 파동이 끊임없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이때, 작은 태양과 같던 푸른 빛이 갑자기 번쩍이면서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몇 호흡 뒤, 모든 푸른 빛이 사라졌고, 심협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의 손이 들린 옥병은 텅 비어 있었고, 안에 있던 감로수도 모두 흡수했다.

    심협은 두 눈을 천천히 떴고,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역시 보타산의 지보인 감로수는 대단했다. 담겨 있던 물의 영력은 매우 풍부했다. 또한, 그는 대승기 수련에 대해 무척 잘 알고 있었기에 막힘이 없어 이번 수련으로 그는 경지가 비약적으로 정진했다. 다만 대승 중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감로수가 두 방울만 더 있었더라면 분명 대승 중기까지 도달했을 텐데…… 호법 선배께서 물의 영물을 찾으셨을지 궁금하군.”

    심협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쉽게도 대승기에 도달하면서 설백단은 그의 수련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울 요괴의 외모를 바꿔 나성성으로 보내 사오게 했을 것이다.

    그는 바로 하얀색 전신 진반을 꺼냈다. 이것 역시 흑곰 요괴가 준 것으로, 두 사람이 같은 주(州)에 있다면 서로 연락할 수 있는 보물이었다.

    심협은 한 손으로 결인하여 전신 진반을 발동하여 흑곰 요괴에게 부탁했던 물건을 모았나 물어보려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선배님도 수련 서찰을 그토록 원하셨으니 재촉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모아주실 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는 진반을 챙겨 넣었다.

    수련지물(修練之物)이 없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옥병을 꺼내 뒤집어 뇌골단을 손에 올려두었다.

    신식으로 자세히 살펴보고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심협은 단약을 먹었다.

    단약이 배에 들어가자 바로 녹아서 강력한 약력으로 바뀌었고, 뇌전의 힘이 흘러나와 몸과 경맥 안을 헤집고 다녔다.

    파지직!

    심협의 몸에 수많은 번개가 떠올랐다. 모든 모공에서 번개를 뿜어내 그의 옷을 찢고 부근의 땅을 까맣게 태웠다.

    “엄청난 뇌전의 힘!”

    뇌골단의 약력이 이토록 강할 줄 몰랐던 그는 깜짝 놀랐다.

    이 뇌전의 힘은 그의 몸속에서 기승을 부려 마치 작은 칼이 사방을 휘젓는 것처럼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다행히 대승기인 그로서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심협은 서둘러 심호흡하고는 황정경을 운공했다.

    황정경은 역시 방촌산의 보전답게 운공하는 순간 몸속에서 기승을 부리던 뇌전의 힘이 바로 온순해졌고, 얌전히 황정경의 운공을 따라 몸 곳곳에 녹아들었다.

    심협의 근육, 살, 뼈가 뇌전의 힘을 흡수했고, 눈에 보일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다.

    “내 추측이 맞았어! 연체 단약이 황정경의 수련을 빠르게 할 수 있구나!”

    그는 크게 기뻐하며 더욱 힘을 다해 황정경을 운공하여 빠르게 뇌골단의 약력을 흡수하고 연화했다.

    뇌골단의 약력은 강했지만, 황정경의 엄청난 흡수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곧 깨끗이 연화되었다.

    심협은 망설이지 않고 또 뇌골단을 꺼내 먹고는 계속해서 연화했다.

    순식간에 보름이 지났다.

    그사이 그는 뇌골단을 모두 먹어버렸고, 덕분에 황정경이 비약적으로 강해져 경지도 두 단계나 올라갔다. 두 마리의 금룡과 금색 코끼리가 그의 몸 주변에서 춤을 추더니 달리기 시작했고, 광풍이 몰아치면서 바람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협이 천천히 눈을 뜨자 금룡과 금색 코끼리는 네 개의 금빛으로 변하여 체내로 들어갔다.

    그가 일어서서 힘껏 주먹을 쥐자 온몸에서 금빛이 솟구쳤고, 뼈도 공명하면서 힘을 밖으로 뿜어냈다.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흔들렸다.

    한데 흥분한 기색으로 막 무언가를 해보려던 그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몰래 훔쳐보는 것이냐!”

    심협은 날카롭게 외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손바닥이 금빛으로 빛나더니 현황의 봉이 나타났다.

    그의 팔을 따라 봉이 흔들리더니 금빛 봉의 허상으로 변하여 번개처럼 몇 장 밖의 푸른 금제 광막으로 날아갔다.

    현황의 봉은 바로 현황일기곤이었다. 다만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곤봉 위에는 현묘한 부문이 떠다녔고, 양쪽 끝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이 이전보다 몇 배나 더 강한 기운을 휘감았다. 이전에 낙성도에서 연기사를 찾아가 보상선사의 선장 안에 있던 영양철신을 현황일기곤 안에 넣으면서 법보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푸른 금제 광막이 금빛 곤봉 허상에 종이처럼 찢어지면서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나타났다.

    상대는 마치 발각될 줄 몰랐던 것처럼 멍하니 있다가 서둘러 옆으로 숨었다.

    심협이 차갑게 비웃고는 손을 돌려 수중의 현황일기곤을 순식간에 세 개의 허상으로 변환시켜서 번개처럼 상대의 몸을 감쌌다.

    “이건……?”

    상대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 개의 곤봉 허상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림자를 때렸다.

    꽈쾅!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그림자는 마치 지푸라기처럼 날아가 몇 장 밖의 동부 벽에 부딪혔다. 벽에서는 몇 겹의 금제 빛이 떠올랐다.

    허나 현황일기곤의 일격은 실로 무서워, 금제의 빛들은 그림자와 충돌하자 금세 시들시들 부서졌다.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두꺼운 벽에는 큰 구멍이 뚫렸고, 그림자는 그대로 날아가 바깥의 땅에 떨어졌다. 연기와 먼지가 피어올랐다.

    심협은 멍하니 수중의 현황일기곤을 바라보다가 곧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전에는 육체의 힘이 너무나 약하여 현실에서는 발천난봉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 격천지동의 곤법도 줄곧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한데 이제 황정경 수련이 성취를 이루면서 마침내 이 곤법의 진정한 위능을 조금이나마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심협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두 다리로 달빛을 뿜어내며 벽에 생긴 구멍을 통해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한데 놀랍게도 현황일기곤에 맞고 날아간 상대의 전투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그만! 날세, 심 소우.”

    땅속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낯익어 심협은 의아한 얼굴로 구덩이 옆에 섰다.

    온몸에 흙먼지를 묻힌 흑곰 요괴가 구덩이에서 뛰어 올라왔다. 그의 얼굴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호법 선배님! 여기는 어떻게……?”

    심협이 깜짝 놀라 물었다.

    “물의 영력이 담긴 영물을 다 모아서 직접 건네주러 왔건만, 이런 오해를 살 줄이야……. 허험! 험!”

    흑곰 요괴는 헛기침을 하고는 머쓱해했다.

    그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물의 영력이 담긴 보물을 모으고 있었는데 마침 대당 왕조의 어느 벗과 대량으로 교환하게 돼 근처에 있는 춘추관까지 온 것이다.

    다만 흑곰 요괴는 멀리서 심협이 황정경을 수련하는 것을 보고는 신기해서 몰래 동부로 잠입하여 자세히 보려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발각된 것으로도 모자라 호되게 한 대 얻어맞은 차였다. 진선 후기 경지인 그가 대승기 수사인 심협에게 맞아봐야 별 일은 없지만,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셨군요. 제가 너무 무례했습니다.”

    현황일기곤을 거두고는 공수하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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