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47화 (647/1,214)
  • 647화. 악당을 제거하다

    “당시 제가 가문의 위세 덕분에 종문에 들어왔다는 게 꽤나 유명했나 봅니다. 하하하! 맞습니다. 제가 바로 그 심협입니다. 춘추관이 멸문당할 때 운 좋게 도망쳐 살아남았죠.”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아, 내가 실언했군. 심 사제는 부디 개의치 말아주게.”

    진명은 그제야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사과했다.

    “다 지난 일 아닙니까? 진 사형도 개의치 마십시오. 그나저나 저자들은 누구인데 사형을 죽이려고 한 겁니까?”

    심협은 실제로 개의치 않았기에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저들은 수백 리 떨어진 기련산(祈連山)에 있는 흑운곡이란 종문의 수사들이네. 저들이 우리 춘추관의 영맥을 노리고는 여기를 차지하기 위해 어젯밤에 기습했지. 내 제자들 몇 명이 죽었네. 만약 심 사제가 제때 와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죽은 목숨이었겠지.”

    그는 감사의 말을 하는 한편, 몰래 눈앞의 사제를 살폈지만,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자 더욱 놀랐다.

    심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화산은 영맥이 꽤나 좋은 곳이고 진명 등의 실력은 약하니 당연히 남들이 노릴 만했다.

    “기련산에 흑운곡이 생긴 건 언제입니까?”

    그가 춘추관에 있었을 때에도 부근에는 종문이 상당히 많았지만 흑운곡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최근에 생긴 종문이네. 규모도 상당하여 방금 연기 수사인 그들 외에도 제자들이 구름 같다네. 게다가 그들이 수련하는 공법은 사도에 속해서 수신양성(修身養性)을 추구하지 않고 강도와 도적 떼, 투옥된 사형수들까지 끌어들여 마을을 불태우고 여인들을 강탈해갔네. 부근의 종문과 수선 세가들은 화가 났지만 감히 따지지도 못했지. 한데 오늘 세 명의 수뇌급이 죽었고, 나머지 제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니 이제 더는 악행을 저지르지 못할 걸세.”

    “그렇다 해도 흑운곡은 악행을 저지르고 감히 우리 춘추관까지 공격하여 본문의 제자들을 죽였습니다. 그 죄는 절대 용서할 수 없지요!”

    심협의 말투가 싸늘해지자 진명 등은 그의 살기에 몸이 얼음 덩어리처럼 덜덜 떨려왔고 안색이 변했다.

    “심 사제, 그렇다면……?”

    진명이 머뭇거리며 물었으나, 심협은 대답 대신 허리의 건곤대를 툭 쳤다.

    건곤대에서 검은 그림자, 귀장 조비극이 나타났다.

    백 년이 지났지만 귀장은 줄곧 건곤대 안에 숨어 있었기에 경지에도 큰 변화가 없어 여전히 출규 후기 정도였다.

    진명이 수련한 순양검결은 귀기에 매우 민감하여 귀장의 가라앉은 기운이 심협에 한참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귀장의 두려운 경지도 알아챌 수 있었다.

    “이 귀물은 당시의 사숙조님보다도 강한 것 같은데…… 설마 출규기 귀왕은 아니겠지?”

    진명은 큰 충격에 조심스레 물었다.

    “진 사형, 사형께서 귀장과 함께 기련산으로 가서 흑운곡을 쓸어주십시오. 한 명도 남겨두실 필요 없습니다!”

    “알겠네!”

    다급하게 대답하는 진명의 태도는 이전보다 겸손해져 있었다. 저리 무서운 귀물을 다스린다는 것은 심협의 실력이 가늠할 수 없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누굴 죽이러 가는 겁니까? 좋군요. 제게 맡기십시오!”

    귀장은 심협의 말에 흥분한 듯 대답했다. 건곤대에 백 년간 갇혀 있느라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진명을 움켜잡더니 검은 빛이 되어 멀리 날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저 멀리 사라졌다.

    산골짜기에는 심협과 둥근 얼굴의 청년만 남게 됐다. 이 둥근 얼굴의 청년은 매우 어색하여 공손하게 심협 옆에 섰다.

    “진 사형의 제자인가? 이름이 뭔가?”

    “제자 주복(周復)이라 합니다. 심 사숙을 뵙습니다.”

    둥근 얼굴의 청년은 심협이 불쑥 묻자 깜짝 놀라 급히 예를 올렸다.

    “주복이라. 좋은 이름이구나.”

    “스승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본래 고아였는데 굶어 죽을 무렵 스승님께서 데려다 키워주셨고, 이름을 내리시며 제게 춘추관을 다시 일으키라는 중책을 맡겨주셨습니다.”

    주복은 머리를 긁적였다. 말하는 데는 재주가 없어 보였다.

    “진 사형께서 좋은 일을 하셨구나. 걱정하지 마라. 그런 날이 곧 올 것이다.”

    심협이 하늘을 바라보며 유유히 말했다.

    “사숙께서는 춘추관에 남으실 겁니까?”

    주복은 무뚝뚝해 보여도 사실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렇다. 이번에 온 것도 춘추관을 다시 일으키기 위함이지.”

    그가 귀장에게 흑운곡을 멸망시키도록 한 것은 단순히 복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춘추관의 이름을 크게 떨칠 만한 사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주복은 그의 말을 듣자 기뻐했다.

    “이곳을 정리하고 오너라. 나는 먼저 돌아가 있으마.”

    심협은 주복에게 말하고는 붉은 빛으로 변하여 춘추관을 향해 날아갔다.

    주복은 공손하게 대답하고는 검은 옷의 수사들 시체로 다가갔다. 세 사람의 시체에는 좋은 물건이 상당히 많았다.

    * * *

    심협은 금방 춘추관으로 돌아와 관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연무장, 자신이 지냈던 거처, 뒷산의 수련장 등 낯익은 곳들을 둘러보자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어느새 그는 춘추관 뒷산의 산골짜기에 도착했다. 옥침을 발견했던 곳이었다.

    “옥침 같은 보물이 왜 춘추관 뒷산에 있었던 걸까? 누가 여기다 일부러 두고 간 걸까?”

    심협은 성큼성큼 걸어가 그때 옥침이 숨겨져 있던 동굴로 들어갔다. 그때는 그의 경지가 약했기에 살필 수조차 없었던 곳이다.

    ‘어쩌면 여기에는 다른 비밀이 더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심협은 신식을 넓게 펼쳐 샅샅이 동굴 속을 살폈고, 이내 천장에서 미약한 영력 파동을 발견했다.

    “저건 뭐지?”

    그는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그러자 푸른 빛이 손에서 날아가 동굴 천장으로 들어갔다.

    콰쾅!

    굉음과 함께 돌벽이 무너졌고, 푸른 빛이 돌아왔다. 손바닥만 한 현황옥판(玄黃玉板)이었다.

    옥판의 재질은 옥침과 같아 보였고, 그 위에는 그림과 문자가 빼곡했다.

    “이건……?”

    심협은 옥판의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

    그곳에는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적혀 있어 그의 지금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중에는 특수한 문자와 부문 그림이 있었는데, 연기 전적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연기의 도와 관련된 특수 문자 같았다.

    “어떤 연기 비술인가?”

    하지만 그는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주변에는 이 도에 관해 능통한 사람도 없었다.

    “나성성에서 만났던 연기사가 사람이 참 괜찮았지. 이름이 나삼(羅三)이었던가? 거울 요괴를 보내서 물어봐야겠다.”

    이어서 그는 바로 결인하고 물줄기를 소환하여 통령지술을 시전했다.

    강력한 요기가 느껴지더니 푸른 몸의 거울 요괴가 나타났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거울 요괴는 이전과 큰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실력은 비약적으로 정진하여 대승기 초기 절정에 도달해 있었다.

    “네 경지가 상당히 올라갔구나!”

    심협은 거울 요괴를 살펴보더니 기쁜 듯 말했다.

    “주인님과 눈물 요괴 언니 덕분입니다.”

    “내가 수련에 도움을 준 적이 있던가? 어쨌든, 이번에 부른 것은 부탁할 일이 있어서다.”

    심협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명령만 하십시오.”

    거울 요괴가 몸을 똑바로 세우고 공손하게 말했다.

    “이걸 가지고 나성성의 철모자 골목으로 가서 나삼이라는 연기사를 찾아가거라. 그에게 여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를 물어보고 오면 된다.”

    심협은 현황옥판을 거울 요괴에게 건넸다.

    “나성성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한데 주인님…… 지금 제가 눈물 요괴 언니의 도움으로 대승 중기로의 돌파를 앞두고 있습니다. 혹시 돌파한 후에 가도 되겠습니까?”

    “음, 그래. 급한 일은 아니니 그리 하거라.”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거울 요괴는 기뻐하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대승 중기로 돌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적으로 체내의 법력과 요기를 정련하는 것이다. 정련할수록 돌파 과정이 더욱 수월해지고…….”

    심협은 꿈속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거울 요괴에게 요점과 요령을 알려줬다.

    거울 요괴는 심협이 어떻게 이런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럼에도 경청했다.

    잠시 후, 심협은 다시 통령수동을 열어 거울 요괴를 돌려보냈고, 더는 뒷산에 머물지 않고 춘추관으로 돌아갔다.

    “심 사숙.”

    어느덧 돌아온 주복이 춘추관 안의 전투 흔적을 정리하다가 심협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다급히 달려와 맞이했다.

    “주복, 지금 춘추관에는 너와 진 사형, 두 사람뿐인가?”

    심협이 관내의 관이 묻힌 곳을 둘러보며 물었다.

    앞서 죽은 춘추관의 제자들은 이곳에 묻혀 있었다.

    “제자 몇 명이 더 있습니다. 그들은 스승님의 분부를 받고 물건을 사러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요.”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춘추관의 일을 더 물어보려다가 갑자기 먼 하늘을 올려다봤다.

    검은 무지개가 하늘 끝에서 나타나더니 유성처럼 날아와 몇 호흡 뒤에 춘추관 상공에 도착하더니 아래로 내려왔다. 귀장과 진명이었다.

    진명은 몸을 덜덜 떨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그는 연기기 수사였기에 아직 하늘을 날지 못했는데 귀장이 그를 데리고 하늘로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다. 다만 요동치는 기류를 막아주지는 않아서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진 사형, 괜찮으십니까?”

    심협이 귀장을 힐끗 노려보더니 물었다.

    “괘, 괜찮네.”

    진명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억지로 웃었으나,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주복이 황급히 달려가 진명을 부축하여 옆에서 휴식을 취하게 했다.

    “어떻게 됐지?”

    심협은 귀장을 바라봤다.

    “이제 세상에 흑운곡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귀장은 입술을 핥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번 싸움이 정말로 통쾌했던 것이다.

    “기운이 좀 흐트러졌군. 적수라도 만난 건가?”

    심협은 귀장을 살펴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주인님은 못 속이겠군요. 사실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흑운곡의 도적놈들을 죽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출규 후기의 노도가 덤벼들지 뭡니까. 감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내게 손가락질하며 덤벼들기에 가볍게 손을 좀 봐줬습니다.”

    귀장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뭐라! 네 마음대로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이냐?”

    심협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화를 냈다.

    귀장은 화들짝 놀랐다.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었기에 살육 욕구가 폭발하여 그의 정신에 영향을 끼쳤으나, 심협이 함부로 살생하는 것을 엄금했음이 이제야 기억난 것이다.

    “주인님, 용서해주십시오. 그 노도가 먼저 공격을 해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귀장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심 사제, 귀장 선배의 말이 맞네. 그자가 귀장 선배를 생포하여 자신의 귀총(鬼寵)으로 만들겠다고 눈이 뒤집혀 덤벼들었으니 귀장 선배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걸세.”

    옆에 있던 진명이 귀장을 거들었다.

    “그자는 누구지?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나?”

    심협은 진명의 말에 조금 화를 풀고는 물었다.

    “이름과 출신을 밝히지 않아서 저도 모르겠습니다. 회색 도포를 입었던 자라는 것밖에…… 이게 그자의 저물 법기인데 아직 살펴보지는 못했습니다.”

    심협은 귀장이 내민 검은색 팔찌를 신식으로 살폈다.

    안에는 수많은 영재와 단약 등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데 곧 심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이내 저물 법기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는데, 흑록 보석이 박힌 검은 영패였다. 검은 불꽃 모양이 그려져 있었고, 다른 쪽에는 천음문(天陰門)이라고 적혀 있었다.

    “천음문? 어떤 문파입니까?”

    심협이 진명에게 물었다.

    “경주(慶州)의 유명한 문파인데 수법이 음흉하여 사파로 분류되어 수많은 수선 종문이나 세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는 악인이었을 터. 죽어도 상관이 없었다.

    “진 사형의 얼굴을 봐서 이번 일에는 책임을 묻지 않으마. 허나 앞으로 한 번만 더 함부로 살인을 한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그는 귀장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황급히 대답한 뒤 검은 연기가 되어 건곤대로 들어갔다.

    그사이 주복에게서 심협이 종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남을 거라는 말을 전해 들은 진명은 크게 기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