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46화 (646/1,214)
  • 646화. 사리 분별 못하고 덤비다

    심협은 빙긋 웃고는 그간 겪었던 일 중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 위주로 두 사람에 들려줬다. 두 사람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협은 이들에게 수련 경험도 전해주어 큰 깨달음을 주었다.

    세 남매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달이 높이 뜨고 나서야 멈췄다.

    “큰형님, 오늘은 집에서 쉬시죠. 내일 제가 가문 후배들을 인사시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이미 혼자서 조용히 수련하는 것에 익숙해져 사람이 많은 게 익숙하지가 않구나. 집안은 너희에게 맡기마.”

    심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벌써 가시려고요?”

    심사와 심목목 모두 놀랐다.

    “춘추관으로 가봐야겠구나. 무슨 일이 생기거든 춘추관에서 날 찾거라.”

    심사과 심목목은 그 말에 내심 안도했다.

    “배웅은 필요 없다.”

    심협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이 흔들리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심사와 심목목은 잠시 넋이 나가 있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저물 법기를 살펴보며 어떻게 나눌지 의논했다.

    * * *

    심협은 1만 장 높이에서 발아래로 춘화현 성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춘추관을 향해 날아갔다.

    심씨 가문의 발전에 크게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마겁이 지나갔다고는 하나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또한 자신의 적이라 할 만한 자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과 얽혀 가문이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춘추관의 터는 금방 시야에 들어왔다.

    춘추관 곳곳에는 옛날 요마에게 멸문당하면서 생긴 손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건물 몇 채만 보수했고 대부분은 붕괴한 채 그대로라 퍽 초라해 보였다.

    춘추관 안에는 인기척이 거의 없어서 쓸쓸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아 이전의 번영했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심협은 출신 종문이 이렇게 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좋지 않아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한데 이내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수리된 건물의 대문은 땅에 떨어진 채 활짝 열려 있었고, 입구 바닥에는 새로 수리한 흔적이 확연해 마치 방금이라도 싸움을 겪은 듯했다.

    신식을 펼친 후로는 표정이 더욱 좋지 않았다.

    관내의 어느 방에는 두 구의 시체가 있었는데, 춘추관 제자의 복장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신식을 더 넓혀 10여 리 떨어진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그곳의 영력 파동이 요동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수선이 싸우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그중 한쪽의 법력 파동은 매우 익숙한 순양검결이었다.

    심협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지금 그의 경지로는 금방이었고, 그는 어느 산골짜기에 조용히 내려섰다.

    산골짜기 안에는 두 무리의 수사가 싸우고 있었다. 한 무리는 두 명의 푸른색 도포를 입은 수사로, 춘추관 제자였다. 경지는 겨우 연기기에 불과했다.

    “진명(秦明)!”

    심협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바란 채 복숭아나무 부검(符劍)을 사용하는 청의의 노인을 바라봤다. 그의 외모는 많이 변해 있었지만, 그는 어렴풋이 소년 시기의 외문 동문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은 당시에도 가깝지 않았고, 그저 오가면서 몇 번 만난 게 전부였다.

    진명의 몸에서는 붉은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순양검결로, 연기 중기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다른 한 명은 검은색 전도(戰刀) 부기를 휘두르는 둥근 얼굴의 청년으로, 심협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진명의 제자 같았는데, 연기 초기의 경지였다.

    맞은편의 세 사람은 검은 옷을 입었고, 소매에는 검은 구름 모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세 사람의 경지도 연기기였는데, 한 명은 중기, 두 명은 초기였다. 그럼에도 머릿수가 많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게다가 세 사람은 똑같이 생긴 검은색 부검을 사용하며 검진을 이루었다. 검진은 음살(陰煞)의 검은 기운으로 충만했고 위력도 상당하여 진명 등을 완전히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하, 진명, 겨우 그 정도 솜씨로 청화산 영맥을 가지려 한 것이냐? 지금이라도 얌전히 내놓거라.”

    험상궂게 생긴 검은 얼굴의 노인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흑암노괴(黑巖老鬼), 청화산은 춘추관 조사께서 물려주신 곳이다. 감히 빼앗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진명은 두 눈에서 불을 뿜어내며 손가락을 그어 피를 복숭아나무 부검에 묻혔다.

    부검에서 갑자기 부문이 빛나더니 8장 크기의 붉은 검기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와 상대 검진의 검은 기운을 찢어발겼다.

    “과연 순양검결은 역시 대단하군. 허나 너희 실력이 부족해 위력을 제대로 발휘를 못 하는구나! 얌전히 검결과 청화산 영맥을 바쳐라!”

    검은 얼굴의 노인은 탐욕스러운 얼굴로 혀끝을 깨물어 피를 검은 부검에 떨어트리고는 비웃었다.

    다른 두 사람도 똑같이 하자 세 자루의 부검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굉음과 함께 찢어진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봉합됐다.

    검진 안의 검은 기운이 바로 일렁이더니 몇 장 높이의 거대하고 시커먼 바람기둥으로 변하여 진명 등에게 달려들었다.

    검은 바람기둥은 매우 강력해 지나가는 곳마다 땅이 벗겨졌다.

    진명 등은 부기가 바람기둥과 충돌하자 제어할 수 없게 됐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너희에게 특별히 우리 흑운곡(黑雲谷) 음풍부진(陰風符陣)의 강력함을 보여주마! 목숨을 내놓아라!”

    검은 얼굴의 노인은 숨이 차올랐지만 흥분한 표정으로 두 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두 개의 검은색 귀신 머리가 광풍에서 뿜어져 나와 진명과 그 제자를 향해 날아갔다.

    연기 초기에 불과한 둥근 얼굴의 청년은 가까스로 버텼지만, 검은 귀신 얼굴이 공격해오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저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뜨거운 기운이 덮쳐오더니 붉은 빛이 옆에서 쏜살같이 날아와 얇고 붉은 광막을 만들어 두 개의 귀신 얼굴을 막아냈다.

    검은 귀신의 얼굴이 입을 크게 벌려 깨물자 광막이 크게 흔들렸지만,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다.

    “스승님!”

    둥근 얼굴의 청년은 겨우 살아나자 옆의 진명을 돌아보고는 경악했다.

    진명은 화홍색 부적을 쥔 채 손바닥에서 피를 뿜어내 부적 안에 흘려보냄으로써 붉은 광막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만 이 술법은 원기의 소모가 너무 컸고, 본래도 창백했던 진명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도둑놈들이 강하긴 강하구나. 내 저들을 막을 테니 넌 어서 도망치거라!”

    진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제자가 어찌 스승님을 버리고 혼자 도망치겠습니까!”

    둥근 얼굴의 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어리석은 놈. 너와 나의 생사가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허나 춘추관의 도통을 여기서 끊기게 할 수 없다. 어서 가거라!”

    진명은 붉게 물든 눈으로 소리쳤다.

    둥근 얼굴의 청년은 머뭇거렸으나, 이내 이를 악물고는 검은색 전도를 잡은 채 멀리 날아서 도망치려고 했다.

    “흥! 두 놈 다 도망칠 생각은 버려라!”

    검은 얼굴의 노인이 차갑게 웃더니 검은 부검에 법력을 더 주입하고는 빠르게 결인했다.

    휙! 휙! 휙!

    바람기둥에서 세 개의 검은 귀신 머리가 쏟아져 나와 붉은 광막을 공격했다.

    계속해서 떨리던 광막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수많은 붉은빛이 되어 폭발했다.

    동시에 진명의 부적도 산산조각이 나면서 영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진명은 피를 뿜으며 뒤로 튕겨나갔고, 복숭아나무 부검도 모든 힘을 잃고 돌덩이처럼 땅에 떨어졌다.

    “죽여주마!”

    검은 얼굴 노인은 잔혹한 얼굴로 손가락을 구부렸다.

    크아아!

    검은 귀신의 얼굴이 포효하며 순식간에 진명에게 다가가 입을 크게 벌렸다.

    “스승님!”

    달아나던 둥근 얼굴의 청년은 이내 다시 몸을 돌렸고, 검은 전도에서 빛을 뿜어내며 검은 귀신의 얼굴을 향해 베었다.

    하지만 그와 진명의 거리는 너무 멀어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듯했다.

    진명의 목숨이 곧 끊어지려는 그때였다.

    휙!

    가느다란 붉은 빛이 어디선가 날아와 허공을 긋자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던 귀신의 얼굴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펑 하고 폭발했다.

    뒤이어 다른 귀신 얼굴들도 우뚝 멈추더니 동시에 폭발하여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내 행사를 방해하는 게냐? 남자라면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검은 얼굴의 노인은 진명 등을 신경 쓰지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다른 검은 옷의 수사들도 분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진명과 둥근 얼굴의 청년은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해 다소 얼떨떨했다.

    그때, 그들 옆에서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진명과 둥근 얼굴의 청년은 깜짝 놀랐지만, 심협의 표정에 악의가 없는 것을 보고는 내심 안도했다.

    한편, 검은 얼굴의 노인과 두 명의 검은 옷 수사는 느닷없이 나타난 심협을 보고는 당황하여 서로 눈치만 보면서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우선 이 단약부터 드십시오.”

    심협은 검은 옷의 세 사람을 등지고는 진명과 둥근 얼굴의 청년에게 웃으며 단약을 건넸다.

    그는 진즉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진명과 그 제자가 정말로 춘추관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것인지,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여지껏 나서지 않았던 터였다.

    두 단약에서 맑은 약력이 뿜어져 나왔고, 약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낫는 듯하자 두 사람의 눈빛에 희색이 돌았다. 자신이 본 그 어떤 단약보다도 뛰어남이 분명했다.

    허나 진명은 단약을 받지 않았다.

    “귀하의 도움에 감사하오. 허나 이리 귀한 단약은 차마 받을 수가 없소.”

    진명이 공손하게 사양하자 심협은 빙긋 웃었다. 상대는 역시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겨 두 개의 단약을 진명과 둥근 얼굴 청년의 입속으로 넣었다.

    반응할 틈도 없이 단약이 들어와 녹아들면서 뜨거운 기운이 체내로 흘러 다녔다. 이에 두 사람의 상처는 금세 회복되었고, 심지어 경지까지 정진되었다.

    진명의 몸에서 법력이 뿜어져 나오면서 연기 중기 절정에 도달했고, 둥근 얼굴의 청년도 연기 초기 절정까지 올라갔다.

    이러한 변화에 감탄하며 감사하려던 진명의 두 눈이 갑자기 커졌다.

    “선배님,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심협의 발밑에서 노란 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황토색의 작은 전갈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노랗게 변한 전갈 꼬리로 심협의 팔을 찔렀다.

    “하하하! 네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이제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검은 얼굴의 노인이 이 광경을 보고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는 심협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알아보고는 몰래 독전갈을 이용하여 기습한 것이다.

    전갈의 꼬리에 찔린 심협의 팔뚝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더니 부어올랐으나, 심협의 안색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가 손을 위로 올리자 푸른 빛이 손에서 흘러나와 전갈을 감쌌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와 함께 전갈은 순식간에 얼음덩어리가 되었다.

    심협은 만독혼원주를 꺼내 팔의 상처에 갖다 댔다.

    보랏빛 독소가 그의 피부에서 흘러나오더니 만독혼원주에 그대로 흡수되었고, 검게 물들었던 피부와 부기도 곧장 사라져 몇 호흡 만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역시 만독혼원주. 상처 안의 독소도 뽑아낼 수 있구나!”

    심협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가 어찌 전갈의 기습을 눈치채지 못했겠는가. 다만 그는 만독혼원주의 효능을 시험해보고 싶었기에 일부러 찌르도록 내버려둔 것이었다. 어차피 이 정도의 독은 그에게는 간지러움을 피우는 정도에 불과하기도 했다.

    “마, 말도 안 돼! 내 전갈은 13종의 맹독으로 만들어 벽곡기 수사도 물리면 무사하지 못하는데 대체 어떻게……?”

    검은 얼굴의 노인은 놀란 표정으로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닥쳐.”

    심협이 툭 내뱉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을 튕기자 붉은 빛이 반짝였다.

    거의 동시에 검은 얼굴의 노인은 머리가 터져버렸고, 머리가 없는 시체가 되어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다른 두 명의 검은 옷 수사는 경악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각자 검은 부적을 꺼내 몸에 붙이자 검은 광막이 그들의 몸을 보호했다.

    허나 심협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두 개의 매우 얇은 붉은 빛이 손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두 사람을 쫓아갔고, 가볍게 광막을 뚫고 들어갔다. 뒤이어 두 사람의 심맥은 검기에 갈기갈기 찢겨버렸다. 피부에는 아무런 혈흔도 없었으나, 이들은 그대로 쓰러졌고, 모든 기운이 사라졌다.

    진명과 제자는 심협이 너무나 간단하게 세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자 깊은 경외심이 더 생겨났다.

    “저희 사제의 생명을 구해 주시고 저를 대신하여 춘추관의 죽어간 제자들의 복수를 해주시다니,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선배님의 존함을 알려주신다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진 사형께서는 저를 완전히 잊으셨나 봅니다. 저 심협입니다. 그동안 혼자서 춘추관을 지키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명이 앞으로 두 걸음 나와서 절을 하려 하자 심협이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심협…… 그…… 그…… 집안의 돈으로 춘추관에 들어왔던 심협?”

    진명은 심협의 이름을 듣고는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고, 말까지 더듬었다.

    옆에 있던 제자는 궁금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봤다. 그는 심협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