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40화 (640/1,214)
  • 640화. 전쟁의 끝

    “과거의 적수들과 비교하면 네놈들은 형편없구나!”

    조롱하듯 한마디를 내뱉은 치우의 미간에서 마문이 떠오르더니 하얀색 뿔이 이마를 뚫고 나왔다. 그의 힘은 끊임없이 강해지는 중이었고, 아직도 절정의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순간, 그의 온몸에서 마문이 다시 빛나더니 등에 검은 빛이 모여들었고, 이 빛은 날개가 되어 활짝 펼쳐졌다. 그를 휘감았던 아홉 마리 화룡이 순식간에 찢겨 나갔다.

    활활 타오르던 삼매진화도 더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심협과 진원자의 몸이 강하게 떨려왔다. 두 사람의 피부에 동시에 균열이 생겨났고, 얼굴의 칠혈(七穴)에서 피가 흘렀다.

    “결국 이 지경까지 왔군. 심 도우, 나머지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진원자가 쓰게 웃으며 심오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을 심협은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한데 그때, 진원자의 미간에서 금빛이 나오더니 그대로 심협의 이마로 들어갔다.

    심협은 식해가 흔들리는 듯했고, 이어서 강력한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 힘은 자신의 법력과 아무런 배척도 없이 합쳐졌고, 육신을 다시 복원했다.

    “대선, 이것은……?”

    심협은 어렴풋이 뭔가를 알아채고는 황급하게 물었다.

    “힘이 부족해 천도를 합치지 못했군. 우리가 천지의 힘을 빌려 치우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결국 실패할 것이고, 그리 되면 삼계는 사라질 것이네.”

    진원자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그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새처럼 가볍게 날갯짓하며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심협은 그가 점점 높이 날아가는 것을 망연자실 바라보았다. 진원자는 이내 하늘에 길게 늘어진 균열에 닿았고, 그 몸은 점점 희미해지다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 빛은 환하게 번득였지만 뜨거운 느낌은 없었고, 반짝거리면서 점점 흐릿해졌다.

    마침내 하얀 빛은 완전히 사라졌고, 천지에 남아 있던 진원자의 마지막 기운도 완전히 사라졌다.

    “진원 대선…….”

    심협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양전 등의 눈가도 붉게 물들었다.

    다음 순간, 갑자기 빛이 크게 번득이더니 미친 듯이 하늘의 균열로 모여들었고, 균열은 빠르게 합쳐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더 많은 천도의 금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심협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가 다시 힘을 주자 땅이 짓눌리고 치우를 짓눌렀다.

    “천, 지, 인…… 이건 무극현황진이 아니라 절천지통(絶天地通)인가!”

    치우의 얼굴이 놀란 기색으로 가득해졌다.

    천책이 천(天), 산하사직도가 지(地), 심협이 인(人)이 되어 일찍이 실전되고 사라진 천지신통(天地神通)을 시전했다.

    치우는 황급히 아래를 바라봤다. 땅에 있던 둥근 법진의 바깥쪽 바퀴가 이미 떠올랐는데, 그 안에서는 진문이 서서히 그려지고 있었다.

    무극현황진의 복잡한 진도에 비해 절천지통의 진도는 매우 간단했다. 이는 곧 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는 의미였다.

    치우는 정말로 당황했다.

    “애송이들이 감히!”

    그는 포효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몸에서는 검은 바람의 칼날이 휘몰아치더니 암흑의 소용돌이가 되어 허공으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삼매진화가 전부 사라졌고, 영롱보탑마저 휘청대기 시작했다.

    심협 또한 몸이 크게 흔들렸다. 영롱보탑이 받은 충격의 상당부분이 그의 몸으로 전해졌고, 그는 마치 칼로 가득한 지옥에 떨어져 온몸을 베이는 형벌을 받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저 이 끔찍한 고통을 참아내며 치우를 짓눌렀다. 결코 진원자의 희생을 헛되게 할 수 없었다.

    “쿨럭!”

    기침에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끊임없는 충격에 오장육부가 망가진 것이다.

    소매로 피를 닦는 심협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몸이 이렇게 망가졌으니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버텨야 했다. 버티고 또 버텨야 한다.

    그때, 하늘에서 빛이 떨어져 그의 몸으로 들어갔다.

    “심 도우, 버티시오. 도우는 해낼 수 있소.”

    마치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들었다. 이랑신 양진의 모습이 하늘에서 점점 희미해지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뒤이어 심협의 체내로 또 다른 힘과 더 많은 천도의 힘이 들어왔다.

    “심 아우, 삼계의 운명이 그대 어깨에 달렸네. 부탁하네…….”

    근엄한 목소리에 이어 우마왕이 웅장하고 커다란 몸을 이끌고 하늘의 균열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하얀 빛이 금빛에 흡수되었다.

    그 빛은 너무나 눈부시고 뜨거웠다.

    “으아아!”

    이 순간, 그는 흉수의 화신이 되었고, 식해가 폭주해 이성을 뒤덮었다.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몸속으로 들어온 금빛은 금홍빛(金紅)으로 변하여 다시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갔다.

    이 힘이 주입되는 순간, 영롱보탑의 투명한 빛이 사라졌고 강력한 천도의 위엄에는 불순물이 섞였다. 힘은 더 강력해졌지만 순수함을 잃은 것이다.

    이와 동시에 땅에서 천천히 만들어지던 절천지통의 진도도 더는 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협의 두 눈은 붉게 물들어 이러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로 들어왔다.

    “오라버니!”

    누군가 심협의 앞으로 다가와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쌌다.

    너무나 부드러운 그 손이 얼굴에 닿는 순간, 분노와 원한에 혼이 나갔던 심협이 다시 깨어났다.

    “……채주.”

    그의 눈가에 가득하던 핏빛은 점점 사라졌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우리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말아줘요.”

    섭채주는 웃음을 머금고는 균열이 거의 사라진 하늘의 천책을 올려다봤다.

    심협은 그 미소를 보고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미치도록 만류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채주…….”

    간신히 벌어진 그의 입술에 차가운 입술이 포개지면서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섭채주는 돌아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

    콰쾅!

    잠시 후,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완전히 합쳐진 하늘에서 불경 같으면서도 도문의 주문 같은 찬란한 빛이 내려와 천지에 멀리 퍼졌다.

    산하사직도뿐만 아니라 바깥 세계의 허공에도 똑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찬란한 빛이 하늘과 연결되더니 땅을 향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땅에서 서서히 그려지던 진도가 마침내 완성됐고, 노란 빛이 진도에서 뿜어져 나와 만 리까지 펼쳐졌다.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치우의 두 다리는 땅속 깊숙이 박혔고, 노란 빛이 사슬처럼 그의 몸을 휘감아서 그를 묶어두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두 개의 힘이 그를 짓눌러왔다.

    “날 끝장내겠다는 건가? 어림없다. 내가 천지를 부숴주마!”

    치우는 절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절세의 흉악함을 극한까지 뿜어냈다.

    그의 외침과 함께 온몸에서 검은 불꽃이 활활 타올랐고, 몸이 점점 커졌다. 두 다리로 땅을 딛고 두 팔로는 점점 내려오는 하늘을 떠받쳤다. 그 옛날 반고가 하늘을 열 때처럼 자신을 제압하려는 천지를 갈라놓으려 했다.

    끊임없이 내려오던 하늘이 그에게 막혀 더는 내려오지 못했다!

    이 무렵, 심협의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마치 도자기로 만든 사람처럼 온몸의 피부가 갈라지면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자 허공에서 재가 되어 사라졌다.

    “아직도 안 죽었나?”

    발아래로 치우를 내려다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천지에는 오직 치우의 외침만 가득했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배웅해주지.”

    심협의 단전에서 불꽃이 치솟아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서서히 사라지던 기운이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불태워 최후의 일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마침내 그의 기운이 절정에 달해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제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두 손을 결인하자 손에서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외침!

    “삼성멸마!”

    쿠르릉!

    하늘 깊은 곳에서 강한 진동이 들려왔다.

    산하사직도 공간과 장안성의 반경 수만 리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끝도 없는 하늘 깊은 곳에서 별빛이 반짝이더니 금색 별들이 빼곡하게 나타났다.

    심협은 금빛이 흐르는 두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은하수에서 커다란 별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더니 그와 형용할 수 없는 연결이 생겨났다.

    이 별들은 마치 그의 부름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떨어져라!”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이 공간의 속박을 부수고 산하사직도에 울려 퍼졌고, 장안성 상공에 울려 퍼졌으며, 머나먼 은하수에 울려 퍼졌다.

    세 개의 거대한 별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인간 세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허공에 머무르지 않았고 별빛만 비추지 않았다. 정말로 하늘을 뚫고 인간 세상으로 떨어졌다.

    산처럼 거대한 치우가 하늘과 땅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과 작고 만신창이가 된 심협의 모습이 대조되어 보였다.

    밤하늘에 천화가 활활 타올랐고, 세 개의 거대한 별이 천 장 크기의 불꽃 별로 변해 사방으로 눈부신 빛과 천지를 무너트릴 기세를 뿜어냈다.

    세 개의 별이 일제히 땅으로 떨어지자 치우는 하늘을 뒤흔드는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등에서 두 팔이 더 자라서 함께 하늘을 떠받쳤다.

    하지만 실체가 되어 떨어진 삼성멸마의 힘과 절천지통 신위의 결합은 설령 반고가 이곳에 다시 강림해도 막지 못할 정도였다.

    심협의 헝클어진 머리는 바람에 휘날렸고, 두 손은 아래로 향했다. 그는 마지막 기력을 짜내 삼성을 인간 세상으로 소환하여 치우를 제압했다.

    치우의 네 팔이 끊임없이 짓눌러오는 힘에 비틀렸고, 근육이 터져나가면서 결국 버티지 못했다.

    마침내 삼계의 승리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때,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심협!”

    동시에 심협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흉악한 용의 발톱이 등 뒤에서부터 그의 심장을 뚫고 나왔다.

    “마수수…….”

    심협은 힘없이 그 이름을 불렀다. 기운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치우를 제압하던 세 개의 별은 갑자기 불안정해져 격렬하게 떨리면서 부서질 기미를 보였다.

    장안성 안팎에서 필사적으로 싸우던 인간족과 선족 그리고 요족은 엄청난 변화 앞에 희망의 불꽃이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그들은 절망했다. 희망의 불꽃이 컸던 만큼 그 불꽃이 꺼진 후의 절망도 컸다.

    좌절한 이들은 반항조차 포기한 채 무감각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죽음? 난 벌써 수십 번도 더 죽어봤지.”

    심협의 목소리는 나직했고, 역류한 피가 입에 가득해 발음은 부정확했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는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는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심협의 미간에서 빛이 반짝였고, 식해의 신혼 소인이 마지막 남은 신혼의 힘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태웠다.

    콰쾅!

    하늘을 뒤흔드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심협은 남은 힘을 모두 불태웠고, 한 줄기 빛이 되어 하늘의 찬란한 빛으로 들어갔다.

    세 개의 별은 마침내 땅에 떨어졌고, 절천지통 진도에는 별의 진문이 떠올랐다.

    산하사직도에서 천지가 합쳐져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심협의 머릿속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겠군.’

    * * *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푸른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거리 옆 계단에서 깨어났다. 그의 손에는 푸른색 가죽 서책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들이 오가느라 거리는 북적였고,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고개를 숙여 서책을 보니 전서체로 <대당서유기>라 적혀 있었다.

    남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계단 뒤의 집을 바라봤다. 문에는 주홍색으로 ‘장안서사(長安書肆)’라 적인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꿈?”

    청의의 남자는 의아해하며 일어나려 했다. 한데 땅을 짚는 손에 무언가 만져졌다. 희미한 광택에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는 현황색의 기다란 옥침이 있었다.

    “옥침이잖아!”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로 옥침을 들었다.

    콰직!

    옥침이 세 동강 나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