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39화 (639/1,214)

639화. 선(禪)이 일어나고 멸망하는 것

금고방과 도끼가 충돌한 뒤에도 양쪽은 서로 버티며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고, 손오공과 치우는 계속해서 자기 무기에 힘을 주입했다.

손오공이 길게 고함을 외치자 뒤에서 거대한 원숭이 허상이 나타나 가슴을 두들겼다. 그러자 강력한 힘이 금고봉으로 흘러들어갔고, 치우는 온몸의 마문이 검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힘이 더 강해졌다.

금고봉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할 때, 뒤에서 폭음이 다시 들려왔다.

“형님, 내가 도와주겠소!”

저팔계가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뒤에는 마찬가지로 송곳니가 가시처럼 솟아난 검은색 돼지의 허상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손오공의 등을 잡고는 모든 법력을 뿜어내며 밀었다.

뒤이어 사승도 조용히 다가와 똑같이 저팔계의 등에 손을 놓고는 법력을 아낌없이 흘려보냈다.

세 사람의 협공은 마치 세 마리의 절세 흉수가 날뛰는 것만 같았고, 그 기세의 강함은 조금씩 치우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크아아!”

손오공이 야수와 같은 외침이 울려퍼지자 여의금고봉에서 불꽃이 타올랐고, 마침내 도끼를 제압하며 그대로 떨어졌다.

치우의 눈빛이 굳는 순간, 도끼가 밀려나면서 그의 어깨에 떨어졌다. 뼈가 부서지는 묵직한 소리가 울리면서 치우는 땅에 무릎을 꿇었다.

쿠쿵!

산하사직도가 강하게 흔들리면서 온 하늘이 연기로 가득 차 손오공 등의 모습도 가려졌다. 그 너머에서 굉음이 쉬지 않고 울려 퍼졌고, 겹겹의 강력한 파동이 사방으로 흘러나와 천지영기를 크게 뒤흔들었다. 심협이 화안금정을 시전해도 그곳의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격렬한 흔들림과 폭음은 한참이나 계속되다가 마침내 멈췄다.

이내 손오공 등의 그림자가 연기 속에서 거꾸로 날아와 땅에 떨어졌다. 격렬하게 숨을 헐떡이는 그들의 엄숙한 표정과 시선은 연기 속에서 떠날 줄 몰랐다.

“크하하하! 크으…… 쿨럭!”

기침이 섞인 웃음소리에 이어 치우가 천천히 나타났다.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왼팔은 잘려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고통이 아닌 흥분이 가득했다.

“좋구나! 마침내 거록의 싸움에서 느꼈던 기분이 나게 해주는구나. 내가 원한 게 바로 너희의 분노, 원망 그리고 전의다. 천지의 혼란과 싸움, 살의가 바로 내 힘의 원천이다! 하하하!”

심협은 그 말을 듣고는 표정이 한층 굳어졌다. 전쟁의 신이라는 치우의 명성이 거기서 온 것이면 힘을 회복하는 근원이 바로 혼란과 전쟁, 살육이란 말인가!

“너희가 싸우고 죽일수록 나는 더 강해질 터! 너희는 결코 나를 이길 수 없게 된다. 으하하하!”

치우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면서 몸에 가득하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세상에 원한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상 나는 불사신이다!”

치우의 마지막 말에 심협은 머리에 벼락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던 그때,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치 만물이 반응이라도 하듯 적막이 깨졌다.

“금선자?”

치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사부?”

손오공 등은 화색이 돌며 사방을 둘러봤다.

“무릇 모든 현상은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현상이 곧 현상이 아닌 것을 알면 여래를 보리라.”

불경을 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매미가 일제히 울기 시작하자 마치 매미의 날개 같은 투명한 빛이 치우의 몸에서 반짝였다. 겹겹으로 쌓인 빛들이 굴절되어 종회무진으로 교차하며 공간을 베기 시작했다.

치우의 몸에서 혈흔이 연이어 생기면서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투명한 매미의 날개에 떨어져 붉게 물들였다.

그때, 매미들의 몸에서 불경 글자들이 떠오르더니 반짝이면서 떨렸다. 이윽고 뜨거운 감촉이 느껴졌다.

치우의 피가 불경의 빛에 둘러싸이자 일제히 타오르면서 금색 불꽃이 되었고, 마혈(魔血)이 순식간에 천지영기로 변하여 사방 모든 것을 채우기 시작했다.

“매미가 껍질을 벗으면 부패하여 신비로워진다고 하더니…….”

치우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으나, 곧 안색이 어두워졌다.

“허나 이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내게 영향이 있을 것 같은가?”

실제로 그의 몸에서는 상처 위로 여전히 마혈이 흘렀다. 이 마혈은 매미의 날개에 닿기 전에 스스로 타오르더니 뜨거운 혈염이 되어 오히려 그 날개를 물들였다.

마혈의 타오르자 산하사직도 중앙이 검은 영역으로 번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산하의 절반이 검게 물들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면서 본래 생기가 넘치던 봄과 여름의 광경이 가을과 겨울의 모습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던 진원자는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천책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터라 산하사직도에는 천도의 힘이 부족했고, 눈앞의 마기가 팽창하면서 역천의 기세가 되었다. 치우가 역천에 성공한다면 천책도 마기로 물들게 될 것이다.

진원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결단을 내렸다.

“가을바람은 서늘하고 추운 겨울은 잔혹하다. 저 매미가 언제까지 버티나 한번 두고 보마.”

“아미타불. 매미가 죽고 사는 것, 선(禪)이 일어나고 멸망하는 것, 이 모두는 생각에 달렸으니 아무런 미련은 없도다…….”

유유한 탄식이 허공에 울려 퍼지더니 이어서 치우 주변에서 호박 빛이 번득였고, 거대한 매미가 허공에서 나타나 이를 뒤집어썼다.

“진원자 도우, 심 도우, 이제 그대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당삼장의 공허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월백승포를 입은 젊은 승려의 신혼이 허공에 나타나 천천히 호박색 매미 위로 떨어져 천천히 합쳐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매미에서 바로 빼곡한 금색 문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금강경(金剛經)>의 경문이었다.

이 글이 완성되자 매미의 몸이 밝게 빛나면서 거대한 금색 부처의 허상이 그 위로 떠올랐다. 합장하는 두 손 사이에는 매미에 둘러싸인 치우가 끼어 있었다.

매미와 부처 허상의 봉인 속. 치우의 몸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지만, 산하사직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절반이나 물들어버린 산하의 그림도 더는 확장되지 않았다.

“우리 차례다.”

손오공이 씩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사형, 갑시다.”

저팔계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사승은 여전히 조용했으나 눈빛은 날카로웠고, 어느새 정신을 차린 백룡은 준수한 청년으로 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형제는 다시 흩어져 각자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사방으로 멀리 날아갔다.

잠시 후, 동서남북에서 마치 네 개의 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하늘에 빛이 솟구쳤고, 뒤이어 영기의 폭우가 대지로 떨어졌다.

치우에게 물들었던 대지에서 검은 흔적이 빠르게 사라졌고, 산하는 다시 봄으로 돌아와 생기를 되찾았다.

심협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저 멀리서 한 줄기 금빛이 비스듬히 날아오는 것을 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금빛이 그의 손에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금색 봉으로 변하였다. 봉은 금빛 불꽃이 일렁였고 손오공의 강력한 기운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여의금고봉을 움켜쥐자 강력한 기운이 그의 몸으로 밀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손오공이 그에게 남겨준, 치우를 쓰러트릴 힘이었다.

심협은 높이 날아올랐다. 몸의 기세가 점점 강해져 한계를 뛰어넘었다.

콰쾅!

폭발음이 들려왔다. 치우는 금색 매미 안에서 도끼를 강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허공이 떨리면서 합장한 부처의 허상도 강하게 떨려왔고. 금빛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조금 어두워졌다.

심협이 바로 손을 휘두르자 영롱보탑이 쏜살같이 날아가 허공에서 길이가 8장에 이르는 금색 보탑으로 변했고,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치우의 몸을 짓누르며 제압했다.

보탑이 떨어지는 순간, 탑에서 삼매진화가 솟구치더니 뜨겁게 타올랐다.

심협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영롱보탑 안을 들여다보니 치우의 온몸에서 솟구치던 마기가 뜨거운 불길에 타면서 빠르게 꺼지기 시작했다. 반면 호박색 매미의 금강경 문자는 금빛으로 반짝이며 더욱 빛을 발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압박은 점점 더 강해졌다.

심협은 곧장 영롱보탑 위로 올라가 금고봉을 집어넣고는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한 후, 한 손은 하늘을, 다른 손은 땅을 가리켰다.

진원자가 간신히 복구한 하늘. 천책의 균열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하늘 깊은 곳에서 금색 파문이 떠올랐고, 천도의 힘이 심협에게로 이끌려 내려와 그가 높이 들어 올린 손을 통해 체내로 주입되었다.

“큭!”

격렬한 통증이 심협을 휩쓸었고, 그의 전신 뼈와 경맥이 순식간에 투명해졌다. 체내로 들어간 힘은 맹렬한 불꽃처럼 그의 피와 살을 하나둘 태우기 시작했다. 뼈가 조각조각 부서질 것 같았고, 경맥은 끊임없이 늘어나 뻗어 나갔다. 피와 살도 쉬지 않고 요동치는 것이 곧 버티지 못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피부 위로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균열의 부문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 안에서 금색의 피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한 방울도 흐르지는 않았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체내로 흘러들어온 천도의 힘을 제어하여 땅을 가리킨 손끝으로 천도의 힘을 뿜어내 영롱보탑으로 모았다.

천도의 힘이 모인 순간, 금색 보탑에 투명한 빛이 반짝였고, 타오르던 삼매진화가 더욱 강렬해졌다. 그러자 안에 봉인되어 있던 치우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몸이 점점 줄어들었다.

한데 그때, 갑자기 그가 외쳤다.

“마역강림(魔域降臨)!”

보탑 안에서 제압당하여 꼼짝도 못 하는 것 같았던 치우의 몸에서 갑자기 마문이 번득이더니 가슴에서 검은 빛의 공이 떠올라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 빛의 공은 열을 세기도 전에 만 배는 커져서 검은 광막이 되어 심협 등을 모조리 뒤덮었다.

찰나의 순간 천지가 갑자기 어두워진 것 같았고, 본래 형형색색 물들어 있던 산천과 대지, 풀, 나무, 강 등은 모두 색을 잃고 회백색으로 변했다.

심지어 사람들도 심협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회색으로 변해갔다.

“이건 치우의 무상신통(無上神通)이라네! 이 일대를 순식간에 마계로 바꿔서 천도의 힘을 제외한 모든 원기 술법의 위능이 크게 줄어들게 돼!”

진원자가 상황을 눈치채고는 크게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치우의 몸을 덮고 있던 매미가 먼저 부서지더니 다음으로는 합장하고 있던 거대한 부처의 허상이 부서져 금빛으로 떨어져나갔다.

치우가 두 팔을 흔들자 거대한 힘이 하늘로 치솟았고, 영롱보탑이 땅에서 떠올랐다. 곧 멀리 벗어날 것 같았다.

심협은 온몸을 뒤덮은 통증을 참아내며 태산을 제압하는 기세로 탑의 윗부분을 걷어찼다. 그러자 보탑이 다시 내려가면서 치우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내가 돕겠네!”

진원자가 외치고는 수직으로 날아올라 영롱보탑 위에 섰다.

그도 심협처럼 법결을 결인하자 천도의 힘이 순식간에 흘러들어와 곧장 아래로 인도했다.

천도의 힘이 끊임없이 주입되자 영롱보탑의 투명한 빛이 점점 더 강해졌고, 내부의 불꽃도 더욱 강렬해져 아홉 마리 화룡이 되어 치우를 겹겹이 휘감았다.

탑 아래의 땅에서 둥근 진문이 조금씩 떠올랐다.

“무극현황진?”

치우는 부문 도안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가 선명해졌다. 법진의 진도는 천도의 힘을 결합하여 생겨난 것인데 진법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이 속도로는 사흘 밤낮이 지나도 대진이 완성되기 어려울 터였다.

그 이유는 치우도, 진원자도 잘 알고 있었다. 천책이 완벽하게 복원되지 못해 물이 새는 나무통처럼 힘을 완벽하게 모으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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