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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38화 (638/1,214)
  • 638화. 그림 속의 싸움

    공선은 장안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고 앞서 펼쳐져 있던 천 장 길이의 두루마리 그림도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산하사직도는 지금 허공으로 흘러들어갔건만 들어가는 게 그리 쉽겠소?”

    황룡진인이 물었다.

    “산하사직도가 스스로의 세계를 이루고 있고 설령 허공으로 들어갔다고는 해도 결국은 진짜 경계가 아니니 이 삼계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오. 내가 허공의 입구를 찾아보겠소. 다만 열기도 어렵고 들어가는 것도 어려울 게요.”

    공선이 턱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하겠소?”

    “내 오색신광은 모든 오행술법을 부술 수 있소. 산하사직도는 오행의 영기를 근본으로 만들어졌으니 내 전력을 다하면 허공의 입구를 부술 수 있을 게요.”

    “그게 정말이오?”

    구두충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줄곧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공선은 힐끗 쳐다본 후 퉁명스레 답했다.

    “물론이오. 다만 그리 되면 나는 싸움에서 빠져야 하오. 허공을 여는 것은 소모가 너무 크니 말이오.”

    “그건 신경 쓰지 마시오. 저런 패잔병들은 무서워할 필요 없소.”

    구두충이 바로 말했다.

    “그리고 허공 입구를 열어도 입구를 유지하는 것도 힘드니 아마 한 명밖에 못 들어갈 게요. 사실…… 그 한 명도 들어갔다 나올 때 매우 위험할 테고…….”

    공선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들어가는 게 아니었소?”

    구두충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경지나 실력 모두 공선이 가장 높았기에 그가 들어가는 것이 당연히 가장 안전할 터였다.

    “산하사직도의 힘에 대항하는 게 그리 쉬운 줄 아시오? 그랬다면 치우 대인께서 벌써 나오지 않았겠소! 허공의 입구를 열고 직접 들어가기까지 할 수 있다면 그대가 직접 해보시오!”

    공선은 한심하다는 듯 호통을 쳤다.

    구두충은 분노로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누가 들어갈 것이오?”

    공선이 나머지를 바라봤다.

    “그대의 말이 그렇다면 나는 들어가지 않겠소. 만일 그대의 손이 떨려 허공 입구에서 끼어 죽게 된다면 나는 누구에게 따지란 말이오?”

    황룡진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단칼에 거절했다.

    구두충은 본래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황룡진인의 말을 듣자 바로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때, 마수수가 끼어들었다.

    “제가 가죠.”

    “잘 생각한 것이오?”

    공선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구두충 도우는 여기서 대군을 지휘해야 하니 제가 빠지는 게 가장 낫겠죠. 어렵게 천정을 무너뜨렸으니 절대 저들에게 일말의 가능성도 줘서는 안 돼요.”

    마수수의 말에 구두충은 화색이 돌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그리 하시오. 잠시 준비할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황룡 도우가 옆에서 호법을 서주시오. 절대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되오.”

    공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가서 대군을 지휘하라 하지 않았소? 어서 저들이나 쳐 죽이시오. 여기서 그대가 할 일은 없소.”

    공선이 가차 없이 꾸짖자 구두충의 눈에 다시금 분노가 들어찼으나,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이내 몸을 돌려 떠나갔다.

    공선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웃었다.

    “선배님, 그래도 같은 진영인데 너무 그러지는 마십시오.”

    마수수가 참다못해 끼어들었다.

    “지금 날 가르치려는 게요?”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공선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천 장 높이의 허공까지 떠올라 오색 빛을 발했다. 그러자 뒤에서 공작의 날개 같은 부채꼴 모양의 빛이 펼쳐졌고, 그 안에서 오색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는 표정이 굳은 채 한 손으로 결인하고는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끝에서 오색광선이 뿜어져 나가 허공을 뚫자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전방의 허공에 물결 같은 파동이 일어나더니 본래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일그러지면서 작은 나선 모양 소용돌이가 서서히 나타났다.

    “가라!”

    공선의 외침과 함께 뒤에서 오색 빛이 갑자기 더 밝게 피어오르더니 오색신광이 무지개처럼 허공을 가르며 작은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본래 손톱만 했던 소용돌이가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바로 속도를 높여 회전하면서 점점 커지고 더 빨라졌지만, 폭은 여전히 크지 않았다.

    마수수는 소용돌이를 지켜보다가 크기가 안정되면 들어가려고 허공에서 기다렸다.

    한편, 나타는 창으로 막 마족 수사의 몸을 꿰뚫고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바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빠르게 회전하는 소용돌이가 보였다. 공선이 뭘 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창끝을 흔들어 마족 시체를 흩어버리고는 두 발에 불꽃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하늘로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하지만 접근하기도 전에 누군가 앞에 나타나 가로막았다.

    “나타, 여기는 길이 없다. 돌아가라.”

    황룡진인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나타는 그와 말도 섞지 않고 창을 들고 돌진했다.

    황룡진인이 곤봉을 꺼내 창을 막아내고는 반격하려는데 뒤에서 갑자기 바람 소리가 크게 나더니 금색 고리가 그의 뒤를 노리고 날아왔다.

    황룡진인은 황급히 몸을 움츠리고는 민첩하게 건곤권의 공격을 피했다.

    이어서 갑자기 두 발을 뻗어 엄청난 힘으로 나타를 걷어찬 뒤, 바로 뒤쫓아가 싸우기 시작했다.

    * * *

    산하사직도 안. 손오공의 사제(師弟) 다섯 명은 치우를 협공하고 있었다.

    당삼장이 멀리서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불경을 읊자 대지에서 거대한 금색 손바닥이 나타나 그와 똑같이 합장하여 치우를 뒤덮었다.

    저팔계는 뒤에서 상보심금(上寶沁金) 쇠스랑에 금빛을 크게 번득이며 등을 내리쳐 치우를 보호하는 마광을 부쉈다. 그러나 아홉 개의 날은 그 피부까지 뚫지는 못했다.

    치우의 정면에서는 사승의 항요보장(降妖補杖)이 강한 빛을 발하더니 허공에서 백 장 크기로 빠르게 커져 치우의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백룡은 허공에서 차가운 기운을 토해내 설백의 한기로 치우의 몸을 휘감았다. 이 한기는 곧장 치우의 몸속으로 침투했다.

    손오공은 허공에서 금고봉을 마치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처럼 변화시켜서 치우의 머리를 내리쳤다.

    다섯 사제의 협공에 치우는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손오공의 일격만 막고 나머지에는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다.

    콰쾅! 쾅!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치우의 몸이 강하게 흔들리고 크게 꺾였지만, 아무런 상처도 생겨나지 않았고, 오히려 발아래의 거대한 산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산이 무너지자 연기가 솟구쳐 백 리의 시야를 가렸다.

    손오공의 두 눈이 금빛으로 빛나더니 표정이 변하며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난 포효가 연기 속에서 들려오더니 강력한 음파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붉은 빛 속의 시커먼 칼날이 단번에 겹겹의 연기를 베어버렸다.

    손오공의 목소리에 저팔계는 순식간에 몸을 줄였기에 다행히 머리카락만 조금 베였다. 안 그랬으면 목 위로는 무엇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둥근 빛의 칼날은 천 리까지 날아갔다가 점점 사라져갔고, 백 장 높이의 공간에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베인 흔적이 나타나 한참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연기가 점점 걷히고 돌아보니 치우의 몸은 일장 크기 남짓으로 줄어들어 있었고, 도끼를 든 채 웃음을 머금고 차가운 눈빛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귀찮게 구는군.”

    당삼장은 치우의 발아래 땅을 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다섯 개의 산이 모여 있는 곳은 현재 초목이 마르고 모든 만물이 메말랐으며 대지는 검게 물들어 있었다.

    칠흑 같은 영역 끝에는 검은 빛이 살아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움직여 밖으로 퍼져나갔다.

    “줄곧 저 자리에서 공격을 막아낸 것은 전부 산하사직도를 침식하기 위함이었군.”

    손오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부님, 이대로 가면 산하사직도가 버티지 못할 겁니다.”

    저팔계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도의 힘이 너무 약해져 대지가 서로 받쳐주지 못하고 산수(山水)만 의지하니 천지의 순환이 어려워졌습니다. 치우가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회복되는 전력이 더 강해지니, 그리되면 저희의 힘으로는 막지 못할 것입니다.”

    사승도 옆에서 끼어들며 말했다.

    당삼장은 심협 등을 흘끗 보고는 천천히 말했다.

    “아미타불, 우리가 산하사직도로 들어온 것도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함이 아니었더냐? 저들을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벌자꾸나.”

    “시간을 벌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 내 지금껏 그림속의 산하를 빼앗기 위해 놀아준 것일 뿐이다. 한데 저런 후배들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치우는 피식 웃으며 말하더니 곧장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비명이 들려왔다. 하늘에 있던 백룡이 갑자기 추락해 땅에 처박혔다.

    대지가 크게 흔들리면서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고, 백룡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혼절해 있었다. 이어 비늘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두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한 줄기 연기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당삼장 앞에 나타났다.

    “사부님, 조심하세요!”

    손오공이 가장 먼저 검은 그림자의 움직임을 눈치채고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검은 그림자에서는 치우가 주먹을 뻗어 당승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나무 관세음보살…….”

    당삼장이 불경을 읊자 몸에서 금빛이 갑자기 치솟았다. 이어서 거대한 금강법상이 나타나더니 두 눈에서 영광을 뿜어냈고, 치우의 주먹이 떨어졌다.

    금강법상은 종소리 같은 굉음과 함께 눈부신 빛이 폭발했고, 안에 있던 당삼장의 몸도 순식간에 폭발하여 뼈와 살이 날아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사부님!”

    모두가 경악해 외쳤다.

    산하사직도의 파편 속에 오랜 세월 머물면서 그들은 줄곧 마음을 가다듬고 수련해왔다. 서로 대화도 오랫동안 없었지만 사실 모두가 예상했다. 다시 만나는 그날 마지막 시험대에 오를 것임을…….

    그들은 각자에게 일어날 결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삼장이 이렇게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보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치우!”

    손오공의 분노가 폭발했다.

    쏜살같이 내달리는 동안 온몸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고, 순식간에 화과산에 군림하던 만세의 요왕으로 변했다.

    그의 여의금고봉에서 부문이 강하게 빛나자 황금색이 적홍색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은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고, 곤봉의 모습도 희미해졌다.

    한편, 심협도 이러한 변고를 느끼고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때 손오공은 높이 떠올라 치우를 향해 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는 봉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봉에서 타오르는 붉은 불꽃이 점점 늘어나더니 겹겹이 겹쳐진 봉의 허상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발천난봉!”

    심협은 바로 알아보았다.

    보기에는 곤봉 하나가 펼치는 신통 초식 같지만 사실 수많은 곤봉의 허상이 순간적으로 겹쳐진 것이었다. 그 위력은 심협이 전력을 다해 백 번 시전한 것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설령 자신의 상처가 모두 낫고 최상의 상태를 되찾아도 손오공처럼 수천 번의 공격이 한 번의 공격처럼 보이게 시전하기란 불가능할 터였다. 저것이야말로 발천난봉의 극치였다.

    그가 적잖이 놀라고 있을 때, 손오공은 이미 곤봉을 내리쳤다.

    갑자기 폭발한 엄청난 일격에 치우도 눈빛이 굳어져 몸을 홱 돌리더니 두 손으로 개천부를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마문이 반짝였다.

    끝을 알 수 없는 웅장한 힘이 도끼 속으로 끊임없이 들어간 그때, 치우는 몸을 빠르게 한 바퀴 돌려 축적된 힘을 쏟아내며 비스듬하게 베었다.

    도끼 위로 그의 몸에 있던 것과 똑같은 마문이 나타나자 색깔이 혈홍색으로 바뀌면서 금고봉과 강하게 충돌했다.

    꽈르릉!

    이어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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