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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37화 (637/1,214)

637화. 불광사리(佛光舍利)

다음 순간, 발천난봉이 시전됐고, 곤봉의 허상이 눈처럼 허공을 뒤덮었다.

“떨어져라!”

심협의 외침과 함께 온몸이 금빛으로 번득이면서 마치 천도의 힘이 그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하늘 높은 곳에서 빛이 떨어졌다. 이에 하늘 가득한 곤봉의 허상은 오색 빛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다음 순간, 곤봉의 허상들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수천 개의 허상이 실체로 변하면서 하나가 되어 진해빈철곤으로 모여들었다.

오색으로 빛나는 곤봉은 백 장 길이의 오색 곤봉 허상으로 변하여 떨어졌다.

이 순간, 본래 둔기(鈍器)인 진해빈철곤은 허공을 가르는 칼날처럼 놀라울 정도의 예리한 빛을 폭발시켰다. 예리한 곤봉은 산하사직도를 찢을 듯한 기세로 치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꽈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치우의 거대한 머리가 순식간에 부서졌고, 뒤이어 마치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그의 몸도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편, 심협의 온몸은 피로 뒤덮였고, 진해빈철곤도 오색 빛을 잃고는 쩍 갈라지더니 산산조각이 났다.

심협은 모든 힘을 쥐어짜냈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이미 예상한 양전이 날아올라 그를 붙잡았다.

심협은 시선이 흐릿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기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 어찌 되었소?”

이 일격은 그의 법력과 신식의 힘을 남김없이 모조리 담아낸, 일평생 시도한 가장 강력한 일격이었다.

“해냈어. 그대가 정말 해냈소!”

양전은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 말에 심협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한데 그때였다.

“나를 이 정도까지 몰아세우는 건 진원자뿐일 것이라 생각했거늘, 설마 인간족이 이리 귀찮게 굴 줄은 몰랐구나.”

절망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힘겹게 고개를 돌려 몸이 절반으로 갈라진 치우를 돌아봤다. 마기가 치우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검은색의 마문은 이제 금색으로 변하여 두 개의 몸 사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여 빠르게 합쳐갔다.

얼마 되지 않아 치우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양전은 좌절했다. 그들과 원고의 불사신 사이의 차이는 너무도 커서 도저히 넘볼 수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치우는 너무도 많은 강력한 적들을 만났었다. 그에게 패한 자든 그를 이긴 자든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너희도 역사 속의 한 줌 먼지가 되거라.”

말을 마친 치우는 도끼를 들어 양전과 심협을 향해 내리쳤다.

천하에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한데 그때였다.

“아미타불…….”

불경을 읊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마치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혹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치우는 휘두르던 손을 우뚝 멈추고는 먼 곳을 바라봤다.

푸르른 산봉우리 아래. 나뭇가지가 무성한 오래된 나무 아래로 작은 초가집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광경은 산과 나무만 있는 이곳에 온기를 더해줬다.

월백승포(月白僧袍)를 입은 젊은 승려가 구환석장(九環錫杖)과 자금발우(紫金鉢盂)를 든 채 온화한 표정으로 치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는 천 리나 되었지만 마치 무한한 허공을 초월하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금선자(金蟬子)…….”

치우는 젊은 승려의 기운이 기억났다.

“빈승의 법호는 현장(玄奘)이라 합니다. 시주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지요.”

젊은 승려가 미소를 머금더니 석장과 발우을 들고 한걸음에 백 리 산하를 건넜다.

이때, 동쪽의 머나먼 산맥에서 마치 누군가 팔꿈치를 괴고 옆으로 누워 있는 듯한 매우 특이하게 생긴 산에서 금빛이 발하더니 갑자기 펑 터졌다.

산맥 한가운데, 부서진 돌에서 황갈색 승포를 입고 허리에는 호피 치마를 두른 원숭이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더니 그대로 구르다가 높이 뛰어올라 구름에 올라탔다.

그는 눈을 빠르게 몇 번 깜박이더니 어깨에 황금색 곤봉을 메고는 구름을 타고 이쪽으로 날아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 게으름뱅이야, 아직도 자고 있는 거냐?”

남쪽 10여 만 리 떨어진 어느 사막. 윤기가 줄줄 흐르는 참외밭 옆에는 그늘막 아래 흔들의자가 있었다. 그 아래에서 뚱뚱한 돼지 농부가 한 손에는 수박을, 다른 손에는 부채를 쥔 채 졸다가 갑자기 잠에서 깬 듯 벌떡 일어났다.

돼지 농부는 부채를 내려놓고 수박을 크게 베어 먹더니 옆으로 휙 던졌다.

“아이고, 일할 시간인가?”

그는 중얼거리더니 그늘막에서 나와 기둥에 기대어놓은 쇠스랑을 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몸이 만 배로 커지더니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크아아!”

서쪽에서는 용의 포효가 들려오더니 희미한 계곡에서 물결이 성난 소용돌이처럼 일어났다. 눈처럼 새하얀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면서 천 장 정도로 거대해졌고, 구름과 안개에 둘러싸인 채 치우를 향해 날아왔다.

한편,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 있는 북쪽의 커다란 호수에서는 시커먼 물이 넘실거리더니 엄청난 기세로 솟구치면서 누군가가 튀어나와 진흙 파도를 타고 빠르게 다가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바로 현장법사, 당삼장(唐三藏)이었다.

그는 열 걸음 만에 그 먼 거리를 다가와 양전 옆에 서서 손바닥을 치켜세우며 인사했다.

“진군, 오래간만이외다.”

“삼장법사님, 이게 어떻게……?”

양전은 반쯤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지장왕 보살님과 여래(如來)께서 미리 대비해놓으셨습니다. 심 시주는 어떻습니까?”

“강류 스님……. 저는 괜찮습니다.”

심협은 전력을 다해 회복하면서 가볍게 웃어 보였다.

“심 시주, 부처께서 도우셨습니다. 시주는 정말 대조화를 일으킬 분입니다.”

당삼장이 손을 세우며 말했다.

“이제 여러분께 맡기면 되는 건가요?”

심협이 씩 웃으며 말했다.

“농이 지나치십니다. 이 난국을 헤쳐가려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삼장이 말했다.

“삼장법사님,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양전이 서둘러 물었다.

당삼장이 막 답하려는데 치우의 거대한 도끼가 하늘을 가르며 내려왔다.

강력한 압박감이 덮쳐오더니 허공이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당삼장은 슥 올려다보고는 태연하게 이어서 말했다.

“치우를 봉인했던 무극현황진(無極玄黃陣)으로는 이제 그를 제압할 수 없습니다. 다시 봉인하려면 산하사직도와 천책이 합쳐진 천지의 힘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삼성멸마 신통으로 천지를 연결해야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우의 커다란 도끼가 백 장 앞까지 다가왔다.

그때, 대지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금색의 커다란 기둥이 그들 뒤에서 솟구쳤고, 둥 하는 굉음과 함께 도끼를 막아냈다. 치우의 도끼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노손이 같이 놀아주마. 헤헤헤.”

금색 털 원숭이가 나타나 기세를 뿜어내며 장난스레 키득거렸다. 그는 금색 기둥을 타고 치솟아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대로 커다란 도끼의 날을 들이받았다.

꽝!

거대한 금색 기둥에 막혀 있던 개천부는 손오공의 돌덩이 같은 머리와 부딪히면서 날아갔다.

“이 돼지의 쇠스랑도 받아라!”

다시 한번 천하를 뒤흔드는 포효가 들려오면서 만 장 크기의 정단사자(淨壇使者) 저팔계(豬八戒)가 어느새 다가와 거대한 쇠스랑을 치우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치우는 도끼를 다시 꽉 움켜쥐고는 검은색 반달을 그리며 도끼를 비스듬하게 휘둘러 날아오는 저팔계의 쇠스랑을 막으려고 했다.

차갑게 반짝이는 쇠스랑의 아홉 날들이 도끼와 충돌하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고, 동시에 아홉 개의 순수한 천강기(天剛氣)가 끊임없이 압박하여 치우의 도끼를 짓눌렀다.

“엄청난 힘이다!”

양전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의 기억 속의 저팔계는 저토록 힘이 강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산하사직도 안에 머물면서 늘 노곤하던 팔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천강기를 열심히 수련했습니다.”

당삼장이 양전의 생각을 짐작하며 설명하고는 금색 단약을 꺼내 심협에게 건넸다.

금빛 단약은 투명한 유리 같았고, 그 위에는 금색의 연꽃 위에 부처가 앉아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것은…… 불광사리(佛光舍利)?”

심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습니다. 여래께서 친히 주신 것입니다. 저도 줄곧 아까워 복용하지 않았죠. 그걸 먹으면 약력을 전부 흡수하지 못하더라도 8할의 원기는 회복될 겁니다.”

당삼장의 말에 심협은 머뭇거렸다.

“소중한 것은 소중한 곳에 써야 하는 법이지요. 우리 사제들이 산하사직도의 힘을 빌려 대신 치우를 막을 테니 봉인은 여러분께서 맡아주십시오. 삼계의 존망이 이 계책에 달려 있습니다.”

당삼장이 합장하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말없이 바로 가부좌를 하고는 단약을 먹었다.

뜨거운 기운이 감돌더니 그대로 심협의 단전으로 들어갔고, 약력이 빠르게 흐르면서 아랫배에서는 한 줄기 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심협의 전신이 새하얗게 변했고, 몸 밖으로 금빛이 모여들면서 부처의 허상이 떠올랐다. 부처의 허상이 그의 뒤에서 부드럽고 자비로운 힘을 뿜어냈다.

심협은 봄바람과 따뜻한 햇살 아래 유유자적 산보하는 기분이었고, 몸과 마음이 극도로 가벼워졌다. 대개박술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체내 곳곳의 작은 상처들까지 순식간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그의 단전과 법맥에 다시 웅장한 천기영기가 채워졌고, 법력도 빠르게 회복됐다.

“사리의 빛과 이렇게 조화를 이루다니, 제가 괜한 걱정을 했나봅니다.”

당삼장이 환하게 웃으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굉음이 들려왔다. 저팔계가 치우의 도끼에 의해 천 장이나 물러났고, 뒤이어 날아온 사승과 백룡도 모두 밀려난 것이다.

지금 치우는 분노가 하늘을 찔렀고, 힘이 점점 회복되면서 공격도 더욱 날카롭고 매서워졌다.

마음이 조금 진정된 양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진원자가 어느새 돌아와 온몸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하늘로 올라가 허공의 찢어진 부분을 복구하고 있었다.

양전은 곧장 허공으로 날아가 함께 복구를 도왔다.

당삼장은 이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움직여 우마왕과 섭채주에게로 다가가 주홍색 단약을 건넸다.

“이건 천년보심단(千年保心丹)입니다. 기혈과 육체의 손상을 회복시키는 데 능하니 먼저 상처를 회복하세요. 저는 가서 제자들을 도와야할 것 같군요.”

당삼장은 우마왕에게 약을 건네고는 곧장 날아올라 치우를 향해 돌진했다.

우마왕은 단약을 삼킨 후 정양했고, 그제야 섭채주도 치유를 멈추고는 심협을 돌아보았다. 이어서 다른 쪽의 대전을 보자 걱정이 더 쌓여 갔다.

* * *

산하사직도 밖의 전장도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핵심 전력인 심협 등 다섯 명이 빠지자 인선요 세 종족의 연합군은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

마족 대군은 숫자나 전력 모두 압도적이었다.

곳곳에서 전사자가 속출했고, 피가 흘러 대지를 적셨으며, 시체가 산처럼 쌓여갔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나타 등은 힘겹게 싸웠으나 무너져가는 기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들은 물러날 곳이 없었기에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미친 듯이 반항하는 이들의 기세에 마족도 손실이 적지 않았다. 수많은 진선급 수사는 물론 태을 경지도 적잖이 죽었으며 십이존자도 절반이나 전사한 상태였다.

이들은 전장을 압도하고 있으면서도 매우 불안했다. 치우가 산하사직도에 빨려 들어간 지 오래도록 바깥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겼다는 것이다.

공선도 치우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소. 우리가 저들을 모두 죽인다 해도 치우 대인이 봉인된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소?”

구두충이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소리쳤다.

“그대는 치우 대인을 그렇게 못 믿는 것이오?”

공선이 눈살을 찌푸리며 맞받아치자 구두충은 표정이 굳었다. 순간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에요.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돼요. 특히 심협…… 그자는 생각 이상으로 강해요.”

마수수가 끼어들었다.

“그럼 어쩌자는 거요?”

공선이 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산하사직도로 들어가서 적어도 치우 대인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라도 해야죠.”

마수수가 덤덤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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