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35화 (635/1,214)
  • 635화. 굽히지 않는다

    “공의와 정의가 그리 중요하단 말이더냐?”

    치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당연하다! 정의와 공의를 위해 싸울 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도를 수행하겠느냐!”

    심협이 진해빈철곤으로 치우를 겨누며 대꾸했다.

    “배짱이 두둑하구나! 허나 삼청도존(三淸道尊)과 서천여래 모두 본존의 적수가 되지 못했거늘 이제 겨우 천존에 들어선 애송이가 내게 맞서려는 것이냐?”

    치우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지만, 눈에는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

    심협의 진해빈철곤에서 금빛이 솟구쳤고, 다른 사람들도 법보를 꺼내 전투 준비를 했다.

    “정녕 본좌와 싸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본좌 휘하의 마장부터 넘어서거라!”

    치우는 담담하게 대꾸하고는 크게 손을 휘둘렀다.

    저 너머 마족 성 밖의 마족 대군의 두 눈이 핏빛으로 번득이더니 마기가 폭발해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장안성 주변의 도천신살대진은 이미 사라졌고, 수많은 마족이 날아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를 에워쌌다.

    양전과 우마왕은 표정이 급변하여 몸을 돌려 응전하려 했다.

    “마족들은 내게 맡기게!”

    진원자가 결인하며 말했다.

    그의 손에서 천책이 날아오르더니 펼쳐졌고, 금빛과 은빛의 허상이 나타나면서 빼곡하게 허공을 가득 메웠다. 천책 안에 있던, 이미 죽은 수만 명의 천병과 천장들이었다.

    그중 이십사성숙(二十四星宿)과 사대천왕, 거령신 등 천장들은 허상이 아닌 실체가 있었고, 법력 파동도 이전보다 더 강력해져 있었다. 다만 생명의 기운이 아닌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진선자가 천책 안 천병과 천장들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하고자 거령신 등의 시체를 찾아 특유의 비법으로 잔혼을 집어넣은 것이다.

    천병과 천장들은 이미 죽었고 남은 영지도 높지 않지만, 마기에 대한 증오는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주변에서 빠르게 돌진해오는 마족들을 감지한 천병과 천장들은 진원자의 명령을 기다릴 것도 없이 곧장 사방으로 흩어져 싸우기 시작했다.

    천병과 천장들은 매우 강력해 순식간에 마족들을 막아냈다.

    심협은 바깥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치우의 성격상 거듭된 도발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그는 고개를 들어 화안금정 신통으로 치우를 살폈다.

    “치우는 방금 깨어난 터라 아직 힘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기에 시간을 끈 겁니다! 모두 지금 쳐야 합니다!”

    심협은 크게 외치며 산하사직도를 꺼내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법력이 밀물처럼 뿜어져 나와 보이지 않는 위압감을 뿜어내다. 이에 그가 서 있던 땅이 크게 흔들리면서 복잡하고 고풍스러운 부문이 나타났다.

    “열려라!”

    심협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치자 몸에서 바로 오색 두루마리가 하늘로 솟구치더니 펄럭이며 수십 리에 걸쳐 펼쳐졌다.

    두루마리 그림은 오색으로 반짝였는데, 그 안에서는 오행이 힘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붓으로 그린 산과 강의 그림에서 생생한 생기가 일어나 마치 물에 젖은 것처럼 빠르게 수묵화의 그림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동시에 장안의 대지와 그림 사이에 형용할 수 없는 연결이 생긴 것처럼 천지영기가 그림 안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더 많은 색을 입혔다.

    “산하사직도인가!”

    치우는 10리에 걸친 그림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서 그가 개천부를 높이 치켜들자 몸에 있던 마문이 일제히 번득이면서 창망하고 거친 힘이 솟구쳤다.

    천지도 색이 변했고, 사방 10리 안의 짙은 마기가 순식간에 비워지더니 전부 거대한 도끼로 모여들었다. 주변의 허공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도끼는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 100리까지 길어졌다. 치우는 도끼를 움켜쥐고 그대로 허공을 찢어발기면서 산하사직도를 향해 휘둘렀다.

    콰쾅!

    폭음이 진동했고 대지가 강하게 흔들렸다. 허공에 있던 천지영기와 마기가 일제히 혼란에 빠졌고, 대지와 하늘에는 동시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나 오랫동안 합쳐지지 않았다.

    이미 부서져 폐허가 되었던 장안성은 하늘과 땅이 흔들리면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휩쓸려 완전히 가루가 되었다. 하늘과 땅을 파멸시킬 위력의 검은 빛은 그러고도 줄어들지 않은 기세로 산하사직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를 본 심협은 어두운 얼굴로 산하사직도를 옮길 방법을 모색했다. 진원자도 결인하여 도울 준비를 했다.

    그때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막을 테니 전력을 다해서 시전하게!”

    동시에 우마왕이 뛰어올라 산하사직도 앞에 서더니 몸에서 검은 빛을 크게 뿜어냈고, 단숨에 천 장 크기로 변했다. 두 눈에서는 붉은빛이 반짝였고, 온몸은 혈기가 끓어오른 듯한 안개에 뒤덮였다.

    심협은 이런 상태의 우마왕을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강력함이 느껴졌지만, 매우 불안정해 보였다. 마치 밀물처럼 파동이 끊이지 않았다.

    “명을 재촉하는구나!”

    치우는 차갑게 비웃었지만, 우마왕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현재 그는 매우 기이한 경지에 빠져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눈에는 오직 날아오는 검은 빛만 들어왔다.

    온몸의 정혈이 불타면서 체내의 기운이 점점 안정되었고, 태을 절정의 마지막 장벽을 넘어 천존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가 두 손으로 혼철곤을 강하게 움켜쥐자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면서 혼철곤을 감쌌고, 부문이 빛나면서 마치 불에 타는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크아아!”

    우마왕이 한 발을 내디디며 혼철곤을 강하게 내리치자 혈염이 타올랐고, 날아오는 검은 빛과 충돌했다.

    콰쾅!

    두 개의 빛이 충돌한 곳에서 강렬한 폭음이 들려왔다.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검은 빛과 하늘 가득한 혈염이 충돌하자 양쪽 모두 우뚝 멈췄다.

    치우는 의외라는 눈으로 이를 보더니 두 팔을 번쩍 들어 다시 한번 내리쳤다.

    우마왕은 자기도 모르게 반쯤 물러났는데, 온몸은 이미 피로 가득했다.

    그가 이를 악물자 이빨 몇 개가 부서졌지만 그는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간다!”

    마치 겨우 짜낸 듯한 쉰 목소리에 이어 우마왕이 몸을 세차게 휘돌리더니 혼철곤을 어깨에서부터 산을 베는 기세로 위로 휘둘렀다.

    도끼의 검은 빛이 강제로 방향을 바꿔 그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콰콰쾅!

    땅에서 솟아오른 빛에 하늘에는 만 장 깊이의 균열이 생겨났고, 주변의 천지영기가 혼란에 빠지면서 균열을 채우려는 듯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늘 가득한 혈염이 조금씩 꺼지면서 핏빛 비가 되어 흩날렸다.

    천 장 크기의 웅장한 존재는 이미 사라지고 전신이 상처로 뒤덮인 우마왕만 남아 있었다. 전신의 상처에서는 멈추지 않고 피가 솟구쳤지만 그는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양손으로 혼철곤을 의지해 버텨냈다.

    치우는 자신의 공격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그러고도 상대가 살아 있자 내심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다만 그도 지금은 여유가 없었기에 두 손으로 도끼를 쥐고 다시 한번 공격을 퍼부었다.

    심협은 이를 보고만 있지 않았고, 그는 모든 법력이 빠져나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힘껏 솟구쳤다.

    “으아아!”

    그가 포효하자 허공에 있던 두루마리 그림이 마침내 완전히 색을 입었고, 이제 활기찬 생기를 뿜어냈다.

    이와 동시에 진원자도 그림 위로 떠올라 양손으로 결인했다. 그러자 그림에서 갑자기 하얀 소용돌이가 나타나 그를 끌어들였다.

    “개천(開天)!”

    짧은 외침과 함께 진원자의 온몸에서 찬란한 금빛이 날아갔고, 그 안에서 금색 서책이 나타났다.

    촤라락!

    금색 서책은 저절로 펼쳐졌고, 한 장씩 흩어져 두루마리 속 하늘로 날아가 고풍스러운 금색이 되어 허공에 녹아들었다.

    진원자는 두루마리 속의 허공으로 들어가 두 손을 펼치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문을 읊조렸다.

    하늘에서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이 내려와 체내로 주입되자 그의 두 눈 중 한쪽은 하얗게, 다른 한쪽은 검게 변했다. 두 손은 허공에서 원을 그리다가 가슴 앞에서 합치더니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켜 천지를 이었다.

    그때, 허공의 산하사직도 안에 있던 그림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혼연한 천지의 힘이 솟구쳐 맑은 바람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무런 흔적도 없었기에 막을 수도 없었다.

    치우의 도끼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다시 꺼졌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적잖이 놀랐다. 자신의 몸이 장안이 아닌 산하사직도 안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심협 등도 산하사직도 안으로 들어왔다.

    섭채주가 심협과 우마왕 뒤에서 두 손으로 보병인(寶甁印)을 결인하자 옥정병과 버드나무 가지가 세 사람 머리 위에서 푸른 빛을 물결처럼 뿜어냈다.

    보도중생과 양류감로 두 개의 신통을 동시에 운공하여 우마왕의 부상과 심협의 법력을 회복시키느라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다.

    양전은 삼첨양인도를 쥔 채 옆에 서서 지키고 있었는데, 미간의 세로 눈에서는 피가 흘렀다.

    “채주, 나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으니 우 형의 치료에 전념해줘.”

    심협은 섭채주에게 말을 건네고는 세 개의 단약을 먹은 후 무명공법과 대개박술을 동시에 운공하기 시작했다.

    혈을 열자 무명 공법이 천지영기를 흡수해 회복 속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이를 본 섭채주는 안도하며 우마왕을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

    우마왕의 부상은 심각했다. 방금 그는 대부분의 정혈을 불태워 스스로 회복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라 섭채주의 치료에 의지해 목숨을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녀의 법력이 계속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마왕의 생명도 꺼져버릴 것이다.

    “나를 산하사직도로 끌어들이면 봉인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더냐? 순진하구나! 하하하!”

    치우는 사람들을 차례로 둘러보며 차갑게 웃었다.

    진원자는 그 말을 무시하고 법결을 결인하여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산하사직도 안의 공간이 흔들리더니 사방에서 굉음과 함께 산들이 하늘 높이까지 솟구쳤다.

    “오악을 불러내 사악한 마를 제압하리라!”

    그의 입에서 포효와도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순간 치우가 서 있는 땅이 흔들리면서 발아래에서 산봉우리가 솟구치기 시작했고, 노란 빛이 피어올라 그의 몸을 휘감았다.

    이와 동시에 동서남북의 네 산봉우리도 날아올라 중심의 커다란 산 주위에 뿌리를 내려 포위하는 형세를 취하고는 각자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악이 형세를 이루자 대지에서 웅장한 힘이 치우의 몸에 주입되기 시작했고, 오악의 무게를 뛰어넘는 웅장한 힘이 천천히 짓눌러왔다.

    치우의 두 다리는 점점 가운데 산봉우리에 박히기 시작했고, 커다란 몸도 천천히 땅속으로 끌려갔다.

    “이런 어린애 장난으로 나를 봉인할 수 있을 거 같으냐?”

    그가 크게 외치고는 온몸에서 검은 빛을 발하자 두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충격파가 마치 파도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다섯 개의 웅장한 산이 강렬하게 흔들렸고, 돌과 흙이 떨어지면서 산 자체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진원자의 두 눈이 검은 빛과 하얀 빛으로 강하게 빛났다. 이어서 그가 두 손을 펼치자 소매에서 바람소리와 함께 여러 겹의 금빛이 떨어져 허공을 짓눌렀고, 겹겹이 무너져 내렸다.

    “천도의 힘을 빌리다니!”

    치우는 내심 놀랐지만, 이내 비웃었다. 그는 억지로 오악에서 빠져나가려 하지 않고 두 손으로 개천부를 잡고는 온몸에서 검은 빛을 뿜어내며 도끼를 높이 치켜들었다가 연달아 내리쳤다.

    쾅! 쾅! 쾅!

    연이은 굉음에 겹겹의 금빛도 차례차례 부서졌다. 천도의 힘으로도 도끼의 위력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심협 등은 이를 보고는 경악했다. 우마왕이 아까 그 일격을 막아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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