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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34화 (634/1,214)

634화. 깨어나다

주기가 사라지자 십이도천신살대진은 몇 번 흔들리더니 완전히 무너졌다.

수많은 검은 빛이 빼곡하게 뿜어져 나와 곧장 하늘을 가리는 물결로 변했고, 진도 안 수백의 마족 진선과 요풍, 임심모, 이각 거한도 모두 날아갔다.

장안성을 뒤덮고 있던 검은 마운의 광막도 희미해졌다.

산하사직도 위의 상공에 파동이 일면서 심협의 모습이 나타났다. 보기에는 이전과 별다른 게 없었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확연히 달랐다.

이전의 그는 천지에 우뚝 서 있는 높은 산봉우리 같은 용맹스럽고 강력한 위세로 인해 의도하지 않아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에게서는 그런 기세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외려 모든 위세가 줄어들었지만 마치 끝없는 심해처럼 그가 어떤 힘을 숨기고 있는지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백발노인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심협도 이렇게 빨리 해와 달의 힘으로 몸의 주조 과정을 끝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심협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소매를 휘두르자 도천신살대진의 진기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 대진에 천존 경지의 웅장한 법력을 주입하자 열두 줄기 진기의 금제가 전부 연화되면서 도천신살대진을 바로 다시 운공했다.

대진의 진도가 다시 나타났는데, 요풍이 운공했을 때보다 몇 배나 커서 성을 넘어 장안성 땅 전체를 뒤덮었다.

심협은 눈을 감은 채 진도를 통해 검은 공간 안의 거대한 혈지에 커다란 존재가 누워 있는 것을 감지해냈다.

그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온몸에서 검은 빛이 반짝였고, 그윽한 마기가 넘실대는 것이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만 같았다.

검은 공간은 현묘하기 그지없는 마족의 금제가 가득해 그 안의 모든 기운의 파동을 막아내고 있었다.

만약 태고 제일의 마진인 도천신살대진이 그곳의 마족 금제의 힘과 통하지 않았다면 그가 천존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치우!”

심협은 가늘게 뜬 눈으로 그 커다란 존재를 보더니 손을 들어 산하사직도를 운공했다.

현재 그의 경지는 크게 정진되어 산하사직도의 모든 위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두루마리 그림에서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푸른색, 금색의 오색 빛이 반짝이더니 마치 오색 은하수처럼 혈지 안의 커다란 존재를 향해 날아갔다.

검은 허상 또한 심협의 시선을 느꼈는지 싸늘한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더니 두 손으로 허공을 잡았다.

검은 공간의 상공에 파동이 일어나면서 커다란 검은색 도끼가 나타났다. 고풍스러운 모습에 산처럼 크고 이채(異彩)가 흐르는 모습은 섬뜩했고,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강력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혈지 공간 상공에 오색 빛과 함께 산하사직도가 금제를 뚫고 천지를 뒤덮으며 떨어졌다.

검은 허상은 당황하지 않고 한 손으로 결인한 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곧장 몇 개의 법결이 반짝이며 검은 도끼 안으로 흘러들었다.

검은 도끼가 빙글빙글 돌면서 검은 빛을 뿜어내 떨어져 내려오던 산하사직도를 막아냈다.

“저 도끼는 무슨 보물이기에 산하사직도에 대항할 수 있는 거지? 전설 속 마족의 지보인 개천부(開天斧)인가?”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절반의 법력은 도천신살대진을 운공하고 있었기에 산하사직도에 전력을 다할 수는 없었다.

‘이 마족들이 여기에 남아 있으면 전력으로 치우를 상대하는 데 변수가 될 테니 먼저 처리해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심협은 전음으로 치우의 상황을 진원자에게 알리는 한편, 한 손으로 결인을 했다.

장안성 주위의 진법 광막은 빠르게 줄어들었지만, 대신 빠르게 두꺼워져 압축된 보호막같이 장안성 안의 모든 마족을 한꺼번에 감쌌다.

이와 동시에 십이조무의 화신이 심협의 조종에 따라 요풍과 이각 거한, 임심모, 늑대 요괴 등에게 달려들어 막아섰다.

혈지 공간 안. 검은 허상이 읊조리더니 두 손을 비비며 앞으로 내밀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열한 번째, 열두 번째, 총 네 개의 혈지에서 핏빛이 번득이더니 핏빛 법진으로 변하여 빠르게 움직였다.

요풍과 이각 거한, 늑대 요괴, 임심모의 몸이 핏빛으로 번득이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 혈지 공간 안에 나타났다.

“치우 대인, 상황이 급박한데 어찌 지금 저희를 부르신 것인지요?”

이각 거한이 검은 허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머지 세 명도 의아한 듯 검은 허상을 바라봤다.

심협 또한 치우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네 명의 태을 존재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그는 한결 부담이 줄었다.

십이조무는 일제히 공선과 마수수 두 사람에게 집중시켜서 불꽃, 얼음, 맹독, 번개 등 조무들의 공격을 쏟아냈다. 조무 분신들의 실력은 태을 후기와 비슷했기에 공선이 제아무리 강해도 그저 막아내기만 할 뿐, 반격할 힘이 없었다.

“축(縮)!”

심협이 결인하자 한손에서 금색 법결이 날아갔다.

도천신살대진의 진법 광막이 순식간에 열 배나 빨리 축소되어 반경 몇 리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 진법 광막은 장안성 안의 모든 마족을 감싼 채 마치 둥근 공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진원자와 섭채주는 이미 심협에 의해 광막 밖으로 옮겨진 후였다.

“가라!”

심협이 세차게 걷어차자 도천신살대진은 하늘 먼 곳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저 안에 갇힌 마족을 모두 죽이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아무도 조종하지 않는 도천신살대진은 공선 등을 하염없이 가둬둘 수 있었기에 심협도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심 도우, 치우는 어디에 있나?”

진원자와 섭채주가 날아왔다.

진원자도 치우의 흔적을 찾아봤지만 줄곧 찾을 수가 없었다.

“땅속 깊은 곳에…….”

자세하게 설명하려던 심협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산하사직도는 이미 혈지 공간에 침투해 있었기에 그는 그곳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다.

* * *

혈지 공간 안. 검은 허상이 두 손을 내밀자 네 개의 혈홍색 촉수가 날아가 요풍과 이각 거한, 늑대 요괴, 임심모의 단전 기해를 관통했다.

“대인, 이게 무슨……?”

이각 거한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관통한 핏빛의 촉수를 내려다봤다. 다른 세 사람도 경악으로 눈을 홉떴다.

검은 허상은 이각 거한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두 손을 다시 흔들었다. 핏빛 촉수에서 더 가느다란 10여 개의 촉수가 나와 그들의 몸 곳곳을 찔렀다.

네 사람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메마른 시체로 변해버렸다. 심지어 그들의 신혼도 몇 개의 핏빛 촉수에 둘러싸여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설마 저자가 지금……?”

심협은 이 광경을 보고는 퍼뜩 떠오른 생각에 전력을 다해 산하사직도를 운공했다.

“왜 너희를 소환했냐고 물었느냐? 당연히 너희의 정혈과 신혼이 나의 부활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영광으로 알아라! 크하하하!”

검은 허상은 크게 웃더니 입을 쩍 벌려 네 사람의 신혼을 한입에 삼켰다.

갑자기 검은 빛이 폭발하더니 빠르게 몸이 생겨났고 이목구비가 점점 뚜렷해져 이내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사내로 변했다.

혈지 상공의 검은 도끼도 이전보다 몇 배나 밝은 빛을 뿜어내며 필사적으로 산하사직도를 막아냈다.

검은 옷의 청년이 기이한 주문을 읊조리자 몸이 빠르게 줄어들어 순식간에 사람 절반만 한 아이가 되더니 검은 빛으로 변하여 혈지 안에 누워 있는 치우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치우의 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몸에서는 마광(魔光)이 솟구쳤고, 하늘을 찌르는 듯한 강력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콰콰쾅!

혈지 공간이 그대로 폭발하면서 그 위의 땅도 무너졌다.

산하사직도는 훌훌 날아서 그곳을 빠져나와 하늘 높이 날아갔다.

심협은 서둘러 결인하여 산하사직도를 안정시켰다.

발아래의 땅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거대한 산처럼 거대한 존재가 천천히 땅속에서 튀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검은 도끼가 들려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폭발하자 대당 영토의 모든 천지영기가 흔들렸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왔으며, 번개가 번득였다.

대당 밖의 동서남북 사면의 바다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파도가 100장 높이까지 치솟았다가 강하게 내리쳤다.

부서진 천정, 서천 영산, 지부 명계도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곳의 모든 생명이 무언가를 두려워하듯이 덜덜 떨었다.

“이런! 치우가 벌써 깨어나다니!”

진원자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심협의 표정도 차갑게 굳었다. 치우가 네 존자의 신혼을 흡수해 곧장 깨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욱이 그곳은 혈지 공간의 마족 대진 안이라 막으려 해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섭채주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치우를 보며 고운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의 경지는 태을 중기였기에 견디기 힘든 압박감에 호흡마저 벅찼던 것이다.

“크하하하! 드디어 본존이 깨어났다!”

치우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치자 거대한 파도 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섭채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더니 한 움큼 피를 토했다.

산하사직도를 운공하려던 심협은 그 광경을 보고는 급히 섭채주에게로 다가가 강력한 웃음의 파도를 막아냈다.

이내 섭채주는 본래의 안색을 찾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서둘러 버드나무 가지로 자신의 부상은 물론 심협과 진원자의 법력까지 회복시켰다.

그때, 부근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두 사람이 나타났다.

“우 형, 진군. 송구합니다. 제때 치우를 봉인하지 못했습니다.”

심협이 전음을 전했지만, 양전과 우마왕에게서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치우는 홀로 천정과 영산을 멸망시킬 만큼 강력한 존재였으니 애초에 심협이 정말로 성공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이미 결사의 항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웃음을 거둔 치우가 발아래의 다섯 명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토록 빨리 천존의 경지에 오르다니, 훌륭한 인재로구나. 진원 도우도 훌륭하다. 본존이 이미 깨어났으니 천도는 쇠하고 마도가 흥할 터. 이는 천지의 대세다. 한데 어찌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 드는가. 내게 복종하라. 하면 본존이 너희에게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를 주겠다.”

치우의 포섭에 심협과 진원자는 코웃음을 쳤다.

“헛소리!”

“우리는 선도의 사람이다. 너 같은 마도의 주인과 양립할 수 있을 성싶으냐! 헛소리는 그만하고 덤벼라!”

“선과 마가 양립할 수 없다? 마기와 영력은 천지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힘이다. 어찌 이런 간단한 이치를 모른단 말인가?”

치우는 의외로 화를 내지 않고 덤덤히 말했다.

진원자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기와 영력에 선악의 구별이 없다 한들 네가 다스리는 마족은 수많은 생명을 도륙하고 삼계를 멸했다. 그 살은 변함이 없다!”

심협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 휘하의 존자들이 나를 더 빨리 깨우기 위해 벌인 일. 허나 이제 내가 깨어났으니 당연히 그런 살육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밑으로 들어오면 함께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치우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감언이설은 집어치워라! 방금 혈지에서 네가 벌인 일을 봤다! 육체와 하나가 될 수 없었을 뿐, 네 신혼은 이미 깨어 있었지. 너는 마족의 선조가 아니더냐! 한데 어찌 책임을 수하에게 떠넘기는 것이냐! 삼계가 네 손에 넘어가면  더 이상 공의와 정의는 없어질 것이다!”

심협이 정색하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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