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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32화 (632/1,214)
  • 632화. 잔령(殘靈)

    금색 검망 뒤에서 마수수가 나타났다.

    “섭 도우,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겁니다.”

    마수수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으나, 그 미소는 더없이 싸늘했다.

    한편, 진원자도 심협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안색이 굳었고, 서둘러 소매를 휘둘러 천책을 꺼냈다.

    쾅!

    100장 크기의 금색 소용돌이가 공선을 뒤덮었다. 허공이 찢어지면서 균열까지 소용돌이에 휩싸여 공선을 완벽하게 속박했다.

    다음 순간, 진원자가 심협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공선이 팔을 크게 휘두르자 옆에 있던 오색신광이 빛의 파도로 변하여 몰아쳤고, 주변에서 휘몰아치던 금색 소용돌이도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다섯 개의 빛의 파도는 그대로 날아가 순식간에 진원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원 도우, 그대의 천책이 완전무결했다면 내 오색신광으로도 어찌 하지 못했겠으나, 아쉽게도 아직 완벽하지 않은 모양이오. 하하하!”

    공선이 크게 웃는 동시에 빛의 파도에서 수많은 오색 검광이 쏟아져 나와 진원자를 향해 날아갔다.

    진원자는 공선을 상대하기에도 벅차 도저히 심협을 도우러 갈 수가 없었다.

    * * *

    “그런 거였군. 방금은 내가 해저존자를 오해했소. 어서 심협을 저 두루마리 안에서 끌어냅시다.”

    요풍의 옆에서 이각 거한이 일의 자초지종을 알고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늑대 요괴와 임심모도 요풍을 바라봤다.

    “세 분은 서두르지 마십시오. 치우 대인께서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 진도야말로 진정한 십이도천신살대진으로, 120명이 연합하여 운공해야만 완벽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요. 세 분께서 힘을 보태주신다면 십이도천신살대진으로 산하사직도를 연화하여 안에 있는 심협을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문제없소. 다만 120명이 필요하다면 우리 세 사람만으로 어찌 해야 하는 게요?”

    이각 거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요풍은 씩 웃더니 머리 위의 흑홍 깃발을 향해 결인했다.

    그 순간, 깃발에서 빛의 문이 나타나더니 핏빛 돌제단에 있다가 사라졌던 백여 명의 진선기 마족이 날아왔다.

    이들은 나오자마자 바로 진도 안의 수많은 백색 진안 위로 날아가 그 안으로 법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이각 거한과 늑대 요괴, 임심모도 이를 보고는 안도하며 진도 안의 세 군데 주요 진안으로 향했고, 법력을 주입했다.

    검은 진도가 갑자기 천천히 움직이자 굉음이 울리면서 하늘이 떨리고 땅이 흔들렸다.

    천지를 짓누를 강력한 힘이 산하사직도를 뒤덮더니 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편, 산하사직도 내부 세계의 천지가 무너지고 산과 물들이 흩어지면서 심협은 안색이 변했다. 곧게 폈던 몸이 구부러지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도천마화(都天魔火)!”

    요풍의 법결이 변하더니 나지막하게 외쳤다.

    쿠쿵!

    검은 진도 안에서 수많은 흑홍의 마염이 활활 타올랐다.

    진도 범위 안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면서 허공도 마치 불에 타버린 것처럼 격렬한 파동과 함께 무너졌다.

    흑홍 마염은 바깥의 흑홍색 광막 안의 핏빛 마염보다 위력이 열 배는 더 강했다.

    산하사직도도 이 강력한 마염에 휩싸였다.

    엄청난 고온이 산하사직도에 침투하며 무지막지하게 금제를 연화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서둘러 법력과 신념의 힘을 운공하여 산하사직도의 금제 방어를 발동했다.

    하지만 신념의 힘이 마화에 닿은 순간, 심협의 눈앞이 갑자기 붉어지면서 머릿속에 수많은 시체와 산처럼 쌓인 해골들이 떠다니는 피바다가 떠올랐다.

    광포하고 난폭한 기운이 즉시 그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심협은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다행히 현재 그의 신혼은 대폭 늘어난 상태라 견딜 수 있었다. 그는 부주진신법으로 전력을 다해 저항했다.

    거대한 진도 안. 대진이 제압하고 있지만, 시종일관 영광을 반짝이며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금빛 산하사직도를 본 요풍은 미간을 찌푸렸다.

    “황정경은 역시 방촌산의 신통답군. 허나 너는 여기서 죽을 운명이다. 얌전히 받아들여라!”

    요풍의 우렁찬 목소리가 심협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마치 숙명의 심판처럼 복종하게 만드는 힘이 담겨 있었다.

    “혹심신통(惑心神通)? 이런 삼류 수단으로 날 굴복시키려는 건가? 우습구나!”

    심협은 차갑게 웃더니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러자 몸에서 갑자기 찬란하기 그지없는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위기의 순간, 황정경에 관한 깨달음이 빠르게 정진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주변의 천지영기가 일제히 모여들더니 그의 경지가 태을 후기로 치솟기 시작했다.

    동시에 산하사직도의 금빛 또한 점점 밝아지면서 마염의 침투를 막아내기 시작했다.

    “분수도 모르는 놈이로군. 완전히 사라져라!”

    요풍은 혹심신통이 들통 나자 화를 내면서 입에서 정혈을 뿜어냈다. 이어서 빠르게 결인하자 정혈이 펑 하고 폭발하며 혈무로 변해 흑홍의 깃발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깃발은 마치 보약을 복용한 듯 열렬히 펄럭이며 빛을 더욱 발했다.

    십이도천신살대진의 움직임도 더욱 빨라졌고, 천지를 뒤덮은 마화에 포위된 산하사직도는 외부와의 모든 연결이 차단되었다.

    갑자기 압박감이 더해지고 산하사직도가 마진에 의해 차단되자 심협은 천지영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한창 치솟던 경지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내심 탄식했다.

    ‘마진의 방해만 없었다면 태을 후기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강력한 압박감이 끊임없이 전해져오자 그는 생각을 접고 전력을 다해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육이미후와 구명에 이어 또다시 큰 싸움을 치르느라 법력을 절반이나 써버린 채 홀로 십이도천신살대진에 대항하기는 벅찼다. 단약이 많다고는 해도 지금 상태에서는 물 한잔을 마시는 것과 비슷했다.

    심협 체내의 법력은 거의 바닥났고, 산하사직도의 빛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곧 쓰러지겠군. 조금만 더 힘을 내거라!”

    요풍은 십이도천신살대진을 발동하고 있는 마족들에게 외치고는 주진기(主陣旗)인 머리 위의 흑홍 깃발을 전력을 다해 운공했다.

    다른 사람들도 전력을 다하여 십이도천신살대진을 운공하여 강력한 힘을 끊임없이 산하사직도 안으로 흘려보냈다.

    심협의 몸에서는 금빛이 빠르게 사라져갔고, 체내도 텅 비어 일말의 법력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황정경을 운공하였다. 황정경의 비법으로 혈육을 태워 법력을 보충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때, 그의 가슴에서 갑자기 금빛이 번득이더니 순식간에 커지면서 금색의 원숭이 털이 나타났다.

    이 원숭이 털은 처음 황정경 공법을 얻었던 방촌산 동굴 안에서 본 것이었다.

    금색 원숭이 털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 금빛을 뿜어내자 도포를 입은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심협에게 황정경을 전수해줬던 노인이었다.

    다만 백발노인은 그때와 달리 흐릿하지 않고 선명했다.

    세 갈래의 기다란 수염과 신선다운 풍모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마치 끝없는 은하의 소용돌이에 수천 개의 별이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더없이 밝은 눈이었다. 이 눈은 무궁한 신비함을 더해줬다.

    백발노인이 소매를 크게 휘두르자 천지에 군림하는 방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너무도 쉽게 십이도천신살대진의 압박감을 막아냈다.

    벌떡 일어난 심협은 넋이 나간 얼굴로 노인을 바라봤다.

    “훌륭하구나. 오공 외에 황정경을 대원만의 경지까지 깨우친 자가 드디어 나오다니!”

    백발노인은 심협을 살펴보더니 껄껄 웃었다.

    “설마…… 보제조사이십니까?”

    심협은 멍하니 있다가 바로 공수하며 물었다.

    그는 비록 보제조사를 직접 만나거나 자화상을 본 적이 없지만 황정경 공법을 전수해주고 이런 신통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온 천하에 보제조사뿐이었다.

    “총명하구나. 허나 나는 보제가 아니다. 그는 이미 운명했고 난 그가 남긴 잔령(殘靈)에 불과하단다.”

    백발노인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허나 보제조사님이라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겠군요. 심…… 아니, 제자가 조사님을 뵙습니다. 그때 방촌산 동굴로 잘못 들어갔다가 황정경의 공법 구결을 얻게 되어 허락도 없이 익혔으니 부디 조사님께서 용서해주십시오.”

    심협이 절을 올리며 말했다.

    “보제가 그때 황정경을 동굴에 남긴 것은 인연이 닿는 자가 찾아와 방촌산의 도통(道統)을 전수받길 원한 것이니 네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어서 일어나거라.”

    백발노인이 허공에 손을 올리자 심협의 몸이 저절로 일으켜졌다.

    심협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그의 경지는 태을 중기에 육체도 극한까지 강해졌는데도 노인의 가벼운 손짓 하나 막지 못한 것이다. 잔령만으로도 이 정도라니, 보제조사는 도대체 얼마나 강했단 말인가!

    “조사님, 방촌산은 누구에게 멸망당한 것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심협은 잠시 고민한 끝에 물었다.

    방촌산의 참상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했다. 비록 정식으로 입문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방촌산의 수많은 비술을 익혔기에 큰 소속감을 느꼈다. 그러니 방촌산 멸문의 과정을 알게 된다면 현실 세계로 돌아갔을 때 미리 알려 화를 피하도록 도울 생각이었다.

    “치우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네 힘으로는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말아라.”

    백발노인은 담담한 눈빛으로 마치 그의 생각을 꿰뚫어본 듯이 말하자 심협은 놀랐으나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내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구나. 네게 해줄 중요한 말이 있다.”

    백발노인은 심협의 말을 끊고 말했다.

    “네 자질은 훌륭하여 오공 못지않다. 짧은 시간에 지금의 경지에 도달했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족에 대항했으니 방촌산의 명성을 조금도 떨어트리지 않았다. 훌륭하다.”

    “제자,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심협은 짧게 답했다.

    “다만 지금은 산하사직도를 가지고 있어도 치우와 맞서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내 잔령에는 보제의 도심 각인이 새겨져 있고, 그 안에는 황정경과 방촌산의 수많은 비술의 수련 심득(心得)이 들어 있다. 본래 네 신혼의 힘으로는 이 각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나 서혼대진 덕분에 신혼의 경지가 천존의 경지에 도달해 이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터. 잠시 후 내가 네 체내로 들어가 네 경지의 정진을 돕겠다. 얼마나 깨달을 수 있을지는 네 자질과 기연에 달린 것이다.”

    백발노인은 점점 진중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조사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이제 앉거라.”

    심협은 가부좌를 한 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했다.

    백발노인이 손을 들자 둥근 바퀴 모양의 금색 각인이 떠올라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며 강력한 법력 파동을 뿜어냈다.

    심협 체내의 법력과 수많은 신통이 이 파동을 느끼고는 흥분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백발노인이 손을 심협의 머리 위에 올리자 수많은 금색 부문이 날아가 현묘하기 그지없는 대도법칙(大道法則)을 이루었다. 이어서 공법의 오묘함이 흘러나와 심협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심협의 몸이 절로 떨려왔고, 삼성멸마와 을목선둔, 사월보, 발천난봉 등의 신통에 대한 깨달음이 곧장 비약적으로 치솟았다.

    그의 눈도 마치 백발노인의 눈처럼 별빛이 반짝이면서 금세 찬란한 은하가 모여들었다. 다만 그 크기는 백발노인에 비해 한참 작았다.

    몸에서 초록 빛이 피어오르더니 빠르게 밝아졌고 주위의 허공도 초록색으로 물들면서 마치 그의 몸과 하나가 되어 언제라도 허공으로 숨어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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