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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31화 (631/1,214)
  • 631화. 변고

    산하사직도 안. 심협은 열두 개의 검은색 깃발을 보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통해 그는 이 열두 개의 검은 깃발이 이루고 있던 대진이 도천신살대진임을 알게 됐다.

    이 대진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도천신살대진(都天神殺大陣)은 태고 제일의 마진(魔陣)으로, 상고의 십이마신을 소환할 수 있다. 그 위력은 천지를 파멸시킬 정도라 주천성두대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심협은 열두 개의 깃발에 그려진 마신의 도안을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그는 진원자를 통해 무족에 대해 들었고, 전신편 역시 무족의 무기임을 알게 되었다. 도천신살대진에서 소환되는 것은 상고의 마신이 아닌 십이조무다.

    “무족의 무기를 얻더니 이제는 도천신살대진을 얻게 되다니, 나는 무족과 인연이 깊은 모양이군.”

    그렇게 중얼거린 심협은 두 손을 결인하여 열두 개의 진기(陣旗)를 운공했다.

    금강권에게 흡수되면서 열두 개의 진기에 있던 제련의 흔적도 말끔하게 지워졌기에 그의 법력은 쉽게 스며들었다.

    열두 개의 진기가 쏜살같이 날아가 머리 위의 허공에 떠올랐고, 진기에서도 먹구름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와 원형을 이루며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심협의 법력이 열두 진기에 빠르게 흡수되었다.

    진기는 심지어 그의 본명원기도 은연중에 흡수하려 했다. 다행히 그의 황정경은 이미 대성을 이루었기에 본명원기는 산처럼 굳건해 태고의 첫 번째 마진에게도 끌려가지 않았다.

    * * *

    황성 부근. 멈춰 있던 검은 법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안의 혈염도 타오르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열두 명의 거대한 조무 중 세 명이 움찔하더니 갑자기 가까이 있던 청우 요괴에게 달려들었다.

    청우 요괴는 크게 놀라 요기와 마기를 미친 듯이 운공했고, 순식간에 백 장 크기의 거대한 요수로 변했다. 장팔점강모에서는 더 많은 성휘가 반짝거렸다.

    그가 창을 흔들자 창끝이 떨리면서 수천 개의 창영(槍影)이 피어올라 마치 끝없는 성진이 떨어지듯이 세 조무를 찔러들었다.

    거대한 굉음이 울리며 창의 허상이 그들의 몸에 수많은 하얀 점을 남겼지만, 이들은 전혀 충격도 받지 않은 듯 피부는 조금도 찢어지지 않았다.

    “이럴 수가!”

    청우 요괴는 경악했다.

    사람 몸에 새 머리를 한, 두 마리의 뱀을 밟고 있는 조무가 두 손을 뻗어 장팔점강모를 붙잡자 하늘에 가득하던 창의 허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른 두 조무도 번개처럼 좌우에서 나타나 청우 요괴의 몸을 붙잡았다.

    하나는 사람 얼굴에 호랑이 몸이었고 몸에는 금색 비늘과 두 날개가 달려 있었다. 다른 하나는 사람 머리에 용의 몸이었고 온몸이 빨간색이었다.

    청우 요괴가 전력을 다해 발버둥 쳤고 몸에서 푸른색 빛이 파도처럼 뿜어져 나와 세 조무를 공격했지만,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축우존자!”

    옆에 있던 유계존자가 안색이 변해 다섯 개의 신광을 번개처럼 날리려 했다.

    그때, 진원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공선(孔宣),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오?”

    이어서 그가 소매를 크게 휘두르자 하늘을 가리는 금색 소매가 나타나 오색신광을 막아냈다.

    마수수와 임심모도 청우 요괴를 돕고 싶었지만, 거리가 멀어 술법이 닿지 않았다.

    청우 요괴 좌우에서 두 조무가 피에 굶주린 듯한 포효하더니 전력을 다해 붙잡은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청우 요괴의 몸이 절반으로 갈라지면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요력이 크게 흔들리면서 본래의 크기로 돌아간, 잘려나간 두 개의 몸을 두 마리의 조무가 한입에 삼켜버렸다.

    “하나같이 당하기만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것들뿐이로군! 치우 대인께서 부활시켜 축우존자 자리를 주고 실력을 높여주신 것도 다 허사였어!”

    이 광경을 본 유계존자는 한에 사무친 것처럼 차갑게 내뱉었다.

    * * *

    혈지 공간 안. 왼쪽의 두 번째 혈지가 폭발하자 검은 허상이 다시 눈을 떴다.

    “축우도 당했다? 아무래도 혈지로는 실력을 빠르게 키울 수는 있어도 근간이 굳건하지 못하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모양이군. 차라리 제물로 써서 부활에 박차를 가하는 편이 낫겠어.”

    검은 허상은 덤덤하게 중얼거리며 손을 들었다.

    그 순간, 폭발한 혈지에서 법진이 생겨나더니 청우 요괴의 신혼이 허공에 나타났다.

    청우 요괴가 막 감사를 전하려는데 검은 허상은 입을 크게 벌렸다. 그 순간 생겨난 강력한 흡입의 힘에 청우 요괴의 혼백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검은 허상의 입으로 들어갔다.

    검은 허상에서 빛이 일렁이더니 실체가 더 굳어졌고, 그 거대한 몸집이 흔들리면서 표면에 옅은 검은 빛이 떠올랐다.

    * * *

    “해저존자, 멀었소? 축우존자가 당했소!”

    이각 거한이 먼 곳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요풍은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해서 흑과 홍의 영기를 운공했다.

    한편, 심협은 산하사직도 안에서 바깥의 상황을 지켜보고는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청우 요괴는 자신이 직접 상대해도 짧은 시간에 이길 수 없는데 이토록 쉽게 처리하다니, 십이조무의 분신은 역시 강력했다. 다만 도천신살대진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세 명의 조무 분신만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심협은 결인하자 세 조무는 가까이 있던 임심모와 마수수에게 달려들었다.

    마수수는 싸늘한 얼굴로 두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혈홍색의 대인(大印)이 나타났는데, 그 아래에는 전서(篆書)로 ‘칠살(七殺)’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기세는 놀라울 정도로 살기등등했다.

    그녀가 두 손을 교차하자 몇 개의 법결이 연달아 날아가 혈홍의 대인을 향해 날아갔다.

    놀라울 정도의 영력 파동이 담긴 빛의 파동이 칠살인에서 뿜어져 나오자 반경 수십 장 안의 허공에 파열음과 함께 균열이 생겼다.

    마수수에게 달려들던 두 조무의 분신은 갑자기 몸을 크게 떨더니 멀리 튕겨나갔다.

    거의 동시에 임심모도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두 손으로 거미줄을 쏴서 순식간에 커다란 그물을 만들어 한 마리 조무를 묶어놓았다. 이 거미줄은 이전에 심협에게 쐈던 것보다 열 배나 컸고, 유혹의 향기가 풍기는 분홍빛을 띠었다.

    섭채주가 수십 장을 날아와 조무들의 힘이 되어주려 했으나, 멀리서 풍겨오는 향기를 맡고는 온몸의 맥이 풀리고 신혼이 취하는 느낌이 들어 서둘러 멈춰 섰다. 백 장이나 거리를 벌린 후에야 몸을 돌린 그녀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늘을 뒤덮은 분홍색 그물이 떨어져 내려 조무를 뒤덮었다.

    강철도 녹일 만큼 혼을 빼놓는 향기가 날카롭게 조무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조무는 마치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것처럼 타오르는 두 손으로 거미줄을 잡고 찢었다.

    파직!

    파열음과 함께 커다란 거미줄이 찢겨 나갔다.

    “말도 안 돼! 내 최정대법(催情大法)은 원만 경지에 도달해 피와 살이 있는 몸이라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임심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성을 내뱉고는 쏜살같이 뒤로 물러났다.

    한편, 산하사직도 안의 심협은 냉소했다.

    임심모의 식골향기(蝕骨香氣)는 분명 대단해 평범한 수사라면 천존 경지라 해도 닿는 순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허나 애석하게도 임심모의 상대는 조무였다. 무족은 신통이나 법력을 수련하지 않고 육체를 단련한다. 그 덕분에 독물이나 미혼에 대한 저항력이 인간 수사보다 몇 배는 강했다.

    게다가 하필 그녀가 상대한 조무 화신은 축융(祝融)이다. 남방 불꽃의 조무이자 선천적으로 불의 신통을 가진 존재로, 모든 독물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니 임심모의 최정대법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심협이 결인하자 축융 조무는 임심모를 쫓았는데, 그 속도가 놀라울 정도였다. 단숨에 임심모를 따라잡은 조무의 거대한 손이 일그러진 건곤의 강력한 힘으로 번개처럼 단번에 그녀를 사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임심모의 발아래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은색 거미줄이 나타나 길게 늘어지며 이각 거한의 몸과 연결됐다.

    은색 거미줄이 반짝이자 임심모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먼 곳에 있는 이각 거한의 옆에 나타났다. 축융 조무의 커다란 손은 허공을 스쳤다.

    “천잠사!”

    심협은 보자마자 은색 거미줄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반사동의 신통이자 거미줄에 공간의 힘이 담겨 있어 거미줄만 연결되면 아무리 먼 곳까지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천잠사!

    현실에서 임심모는 몰래 천잠사를 그의 몸에 붙여놓고 이 신통으로 그를 쫓아왔는데, 심협은 당시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게다가 이 꿈속 세계에서는 이 신통의 정묘함이 한층 강해졌다.

    심협은 어두운 얼굴로 마수수를 내버려둔 채 세 마리 조무를 임심모와 요풍 등에게 달려들게 했다. 이어서 자신도 진해빈철곤과 전신편을 들고 직접 나설 준비를 했다.

    한편, 줄곧 멀리서 가부좌를 한 채 술법을 시전하고 있던 요풍을 보며 심협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더욱이 상대가 제련하는 흑홍의 깃발은 십이도천살신대진과 관계가 있어 보였다. 그러니 더더욱 요풍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세 마리의 조무가 달려오자 이각 거한과 늑대 요괴가 요풍의 앞을 막아서며 응전하려 했다.

    임심모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도망가지 않고 은의 채찍을 꺼냈다. 채찍에는 아홉 개의 별 같은 정석이 박혀 있었다. 주변에서 마치 신선의 음악처럼 맑은 소리가 울리는 것만 봐도 저 채찍은 평범한 법보는 아닐 터였다.

    그때, 갑자기 요풍이 줄곧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떴다.

    이 무렵, 그의 머리 위에 있던 흑홍의 영기는 이미 8장에 이르렀고, 바람에 펄럭였다.

    요풍이 정혈을 한 움큼 뿜어내 흑홍의 영기로 흘려보내자 깃발이 다시 한번 커져 순식간에 수십 장에 이르렀다.

    태양과 같은 핏빛은 쏜살같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고, 찰나의 순간 십이조무를 뒤덮었다.

    그러자 십이조무의 표정은 멍해졌다. 심협이 조종하던 세 마리의 조무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나무토막처럼 우뚝 멈춰 섰다. 심협이 금강권으로 열두 개의 깃발을 흡수했을 때와 비슷했다.

    “어떻게 된 거지?”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세 마리 조무와의 연결이 단번에 끊어지면서 조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열두 개의 검은 깃발로 이루어진 둥근 법진에서도 검은 빛이 난무하면서 무너질 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요풍이 손을 뒤집어 또 하나의 암홍색 구슬을 꺼내 부스러뜨렸다.

    수많은 혈운이 다시 나타나더니 십이조무의 체내로 흘러 들어갔다.

    그 혈운을 흡수한 십이조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몸도 3할이나 더 커졌고, 두 눈은 붉게 물들었다. 이들은 갑자기 모두가 어딘가로 달려들더니 각자 커다란 손으로 텅 빈 허공을 붙잡았다.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공간이 찢겨 나갔다. 하얀 두루마리 그림이 그들의 손에 잡혀 있었다. 산하사직도였다.

    산하사직도 안의 심협은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표정이 급변했으나, 침착하게 산하사직도를 재촉하여 날아가게 했다.

    하지만 십이조무의 커다란 손에 꽉 붙들린 데다 손에는 도천신살대진의 힘이 담겨 있어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드디어 잡았다! 금강권이 네 손에 넘어갔다는 것은 치우 대인께 들어서 알고 있었지. 열두 개의 깃발은 네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미끼였다! 어디 이번에도 도망쳐보거라! 하하하!”

    요풍이 사납게 웃더니 빠르게 법결을 맺었다.

    그의 머리 위에 있던 흑홍의 깃발에서 영광이 더 환하게 빛나자 진도 문양이 빠져나와 빠르게 펼쳐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황성 절반을 뒤덮었다.

    좀 전의 깃발에서는 느낄 수 없었지만 펼쳐지자 진도의 방대함이 진원자가 음령 산맥의 고분에서 펼쳤던 주천성도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진도 안에는 검게 반짝이는 진안(陣眼)이 수백여 개나 드러났고, 그 중심에는 산하사직도가 있었다.

    “함정이었구나!”

    심협은 표정이 일그러진 채 법력을 뿜어내 전력으로 산하사직도를 운공했다.

    하지만 방대하기 그지없는 힘을 뿜어내면서도 산하사직도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오라버니!”

    이 광경을 보고는 아연실색한 섭채주가 멀리서 초록색 둔광으로 변하여 심협에게로 다가오려 했다.

    그러나 금색 검광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쏜살같이 이 둔광을 휘감았다. 동시에 수백여 개의 금색 검의 허상이 나타나 거대한 검망(劍網)을 이루어 다가왔다.

    초록색 둔광 안의 섭채주는 놀라서 서둘러 옥정병을 꺼내 그 안으로 숨었다.

    금색 검망이 옥정병을 두들기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옥정병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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