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29화 (629/1,214)
  • 629화. 천존의 싸움

    ‘내 진해빈철곤을 그렇게 쉽게 거두어 간 것이 이 보물이었군!’

    심협은 급히 왼손을 뻗어 금강의 고리를 잡고는 법력을 운공하여 곧장 산하사직도 안으로 넣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다시 전신편을 휘둘러 구명의 머리를 부수려 했다.

    황금승에 마기가 속박되어 꿈쩍도 할 수 없었던 구명은 이대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처지였다.

    그때, 갑자기 전신편 앞에 푸른 빛이 나타나더니 가볍게 채찍을 막아냈다.

    심협은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산하사직도로 구명을 휘감으려고 했다.

    하지만 앞에서 이번에는 붉은 빛이 반짝이면서 산하사직도를 막아냈다. 심지어 아무리 몰아붙여도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보물은 좋지만 경지가 부족해서 진정한 위능을 발휘할 수 없구나.”

    평온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흘러나왔다.

    “누구냐!”

    심협은 굳은 얼굴로 외쳤지만, 상대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여전히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신식으로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대답 대시 하얀 빛이 나타나 구명을 휘감으려 했다.

    그때, 한 필의 명주 같은 하얀 불진(佛塵)이 한 발 빨리 산하사직도에서 튀어나와 하얀 빛에 휘몰아쳤다.

    펑!

    굉음과 함께 하얀 불진은 소리와 함께 부러졌고, 부러진 부분은 하얀 빛에 휩쓸려 사라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구명 또한 심협에게 붙들려 산하사직도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흥!”

    허공에서 차가운 콧방귀 소리가 들려오더니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검은색, 하얀색의 빛이 동시에 나타났다. 다섯 개의 빛은 모두 백여 장 크기로 커지더니 강력한 위세로 심협과 산하사직도를 향해 날아왔다.

    주변의 천지영기가 갑자기 혼란스러워지더니 순식간에 수많은 영기 소용돌이로 변했다. 그 안에서 반짝이는 다섯 개의 영광은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심협은 갑자기 천지영기에 대한 제어를 잃었고, 체내의 법력도 주변의 어지러워진 영기의 영향을 받아 제대로 운공할 수 없게 됐다.

    산하사직도의 하얀 빛이 어두워지면서 조금씩 주위의 영기 소용돌이의 기세에 빨려 들어갔다.

    “갈(喝)!”

    심협이 크게 외치며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하자 금빛이 크게 뿜어져 나왔고, 체내부터 바깥까지 금색으로 변하여 금인(金人)이 되었다. 그러자 혼란에 빠졌던 법력도 진정되었다.

    그가 움켜쥐자 산하사직도에서 하얀 빛이 크게 일렁이더니 사람과 그림이 하나가 되어 뒤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이 모든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번개처럼 빨랐다.

    “어딜 가려고!”

    영기 소용돌이 안의 인영이 짧게 외치자 다섯 개의 검광이 엄청난 속도로 심협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때, 산하사직도에서 진원자가 튀어나오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 입구가 금색으로 변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고, 거대한 금색 소용돌이가 생기면서 오색의 검광을 휘감더니 그대로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오색 검광은 비록 크지는 않아도 그 안에 담긴 위능은 강력하고 태산처럼 굳건하여 조금도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금색 소용돌이와 격렬하게 충동하면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지만, 그뿐이었다.

    섭채주도 산하사직도에서 나와 버드나무 가지와 옥정병을 운공하여 공격을 퍼부었다.

    콰쾅!

    오색 검광과 금색 소매가 동시에 강렬하게 흔들린 후, 각자 뒤로 물러났다.

    “허허, 일격에 빈도의 불진을 부수다니, 공(孔) 도우의 오색신광은 갈수록 현묘하구려.”

    진원자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진원 도우의 건곤도 대성의 경지에 도달했구려. 허나 애석하게도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다르니 오늘 승부를 낼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때, 앞에 있던 영기 소용돌이에서 커다란 누군가 나타났다. 키가 8척이었고, 얼굴은 금속처럼 반짝거리는 구릿빛이었다. 몸은 놋쇠로 주조한 듯했고, 무궁한 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갑옷을 걸친 채 푸른 대간도(大杆刀)를 들었는데, 몸 뒤로는 오색의 영광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 거대한 인영이 팔을 휘두르자 푸른 대간도가 곧장 무지개를 그리며 진원자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쐐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반경 수백 장의 대기가 반으로 갈렸다.

    진원자는 신중해진 눈빛으로 이번에는 금색 불진을 꺼내 휘둘렀다. 그러자 이 불진은 순식간에 백배로 커져서 마치 금색 신룡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푸른 도광과 충돌했다.

    콰쾅!

    굉음과 함께 주위의 공간은 강력한 충돌을 견디지 못하고 왜곡된 균열까지 생겨났다.

    “좋군요. 다시 갑니다!”

    커다란 남자가 눈을 번득이더니 푸른 대간도를 다시 휘둘렀다. 속도는 이전보다 열 배는 빨라서 잔영이 생겨났다.

    진원자의 금색 불진도 똑같이 빨라져 잔상을 그리며 맞서갔고, 두 무기가 충돌하자 강렬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진원자와 거구의 남자 모두 흐릿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 상태로 둘은 끊임없이 충돌했고, 그때마다 천지의 허공에 균열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천존 경지의 싸움인가!”

    심협은 멀리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내 시선을 돌리고 곧장 산하사직도 안으로 들어갔다.

    산하사직도 안은 그의 세계였고, 모든 것이 그의 지배 아래 있었다. 구명은 황금승에 더 단단하게 묶였고, 금색의 커다란 산에 눌려 꿈쩍도 못 하고 있었다. 금색 고리도 마찬가지였다.

    심협이 손을 들어 금빛을 발하자 구명의 몸에서 작은 은색 침이 끌려 나왔다. 진해빈철곤이었다.

    “내 보물, 돌아왔구나!”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바로 결인했다. 그러자 진해빈철곤이 금빛을 발하면서 원래의 크기로 변하여 심협의 손에 떨어졌다.

    현재 그에게는 많은 법보가 있고 진해빈철곤은 그중 특별히 강한 것이 아니었으나 사용하기에 가장 용이했다.

    심협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구명을 바라봤다.

    “네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진심으로 탄복했다. 허나 네놈들 실력으로는 치우 대인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다!”

    온몸을 꿈쩍할 수 없었던 구명은 간신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전신편이 구명의 머리를 두들겼다. 육이미후의 신혼을 천책의 복원에 사용하지 못했으니 구명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 심협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바로 공격한 것이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구명의 머리가 터져 나갔고, 머릿속의 신혼도 흩어지면서 그대로 채찍 속의 서혼대진으로 흡수됐다.

    핏빛 공간 깊은 곳. 작은 혈지 하나가 폭음과 함께 폭발했다.

    “구명도 죽었단 말인가!”

    검은 허상이 그곳을 보더니 굳은 얼굴로 곧장 결인했다.

    폭발한 혈지에서 핏빛이 번득이더니 법진을 이루어 주변을 돌며 구명의 신혼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명의 신혼은 서혼대진 안에 있었기에 육이미후의 신혼과는 달리 소환되지 않았다.

    “음!”

    심협도 이 상황을 눈치채고는 전력으로 서혼대진을 운공하여 구명의 신혼을 흡수했다.

    구명의 신혼은 두 개의 힘이 동시에 작용하자 유리처럼 부서지면서 하나둘 흩어졌다. 그 안에서 빠져나온 빛에는 각각의 기억들이 담겨 있었다.

    “구명의 기억인가?”

    심협은 빛 속의 장면을 보면서 내심 놀랐다가 이내 기뻐했다.

    모든 생명은 삼혼칠백(三魂七魄)을 가지고 있다. 삼혼은 주로 윤회를 주관하고 칠백은 감정과 기억을 담고 있기에 혼백과 서로 뗄 수 없을 만큼 밀접한 만큼 외부의 힘이 간섭하면 완전히 부서지게 된다. 그래서 영혼을 수색하여 그 기억의 내용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극소수였는데, 서혼대진은 태을의 존재를 상대로 해낸 것이다!

    심협은 침착함을 되찾고는 얼른 구명의 기억들을 살폈고, 그 안에서 수많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 *

    “도대체 누구지? 구명의 영혼을 가둘 뿐만 아니라 그 기억까지 염탐하다니!”

    혈지 공간. 검은 허상의 눈에 섬뜩한 빛이 스치더니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들어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커다란 혈홍색 번개가 구명의 혈지 위에 나타나더니 번개의 손이 되어 강하게 내리쳤다.

    펑!

    굉음과 함께 구명의 혈지가 완전히 터져 나갔고, 번개 같은 핏빛도 완전히 사라졌다.

    * * *

    산하사직도 안. 구명의 신혼이 부서지면서 수많은 가루가 되어 흩어지자 서혼대진도 더는 흡수할 수 없게 되었다.

    기억의 화면도 함께 부서지자 심협은 내심 아쉬웠으나, 법진의 운공을 멈췄다.

    “아무래도 내가 구명의 기억을 염탐하는 것을 누군가가 눈치챈 모양이군.”

    심협은 아쉬움을 접고 손을 흔들어 구명의 법보와 저물 법기를 거두고는 금강환을 주워 선천연보결로 제련하기 시작했다.

    금강환은 금방 하얀 영광으로 빛났고, 손 위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심협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금강환은 인도지보이자 태상노군의 호신 법보였기에 제련하기가 매우 까다로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선천연보결을 운공하자 금강환의 수많은 금제를 뚫고 가볍게 침투한 것이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니 심협은 서둘러 제련을 끝냈다.

    금강환에서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하얀색 환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심협은 금강환의 신통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보물은 사람을 교화시켜 성자로 변화시킬 때 만들어진 지보로서 모든 보물을 흡수할 수 있다. 또한 적을 막을 수도 있고, 외도가 침범하지 못하게 해주는 매우 신묘한 법보였다.

    심협은 이 보물을 품에 넣고는 곧장 산하사직도 밖으로 나와 황궁 깊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구명의 기억 속에서 치우가 황성 깊은 곳의 어딘가에 숨어 있음을 알아냈지만, 정확히 알아내기 전에 구명의 신혼이 부서졌다.

    그러나 대략적인 위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심협의 현재 수단이라면 약간의 시간만 주어지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터였다.

    * * *

    혈지 공간. 검은 허상의 얼굴에는 머뭇거리는 기색이 드러났지만, 이내 결심을 굳히고는 결인했다. 그러자 손끝에서 검은 빛 세 개가 연달아 나타나 날아갔다.

    이 빛에 닿자 수련하고 있던 다섯 명이 몸을 떨더니 모두 깨어났다.

    “치우 대인!”

    이들은 서둘러 혈지에서 나와 검은 허상 앞에 몸을 굽혀 절했다.

    그중 한 명은 마수수로, 그녀는 태을 후기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두 손은 금빛으로 반짝여 마치 황금으로 만든 것 같았고, 손등에는 금색 용의 비늘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매우 단단해 보였다.

    그녀 왼편에는 분홍색 치마를 입은 붉은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만약 심협이 그녀를 보았다면 크게 놀랐을 것이다. 여인은 반사동 여제자 임심모였기 때문이다. 다만 외모는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마수수의 오른편에는 삿갓을 쓰고 온몸에 검은 기운이 감도는 사내가 있었다. 바로 현실에서 심협 등과 여러 번 얽혔던 요풍이었다.

    다른 둘 중 한 명은 커다란 체구에 선홍색 마갑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암홍색 괴도(怪刀)를 들고 있었다. 도의 날은 마치 커다란 이빨 같았고, 그 끝에는 붉은 눈동자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커다란 뿔이 나 있었다. 순수하기 그지없는 마기는 구명보다도 위였고, 경지는 태을 후기였으며, 암홍색 도기는 방대하여 평범한 보물이 아닌 게 분명했다. 검은 허상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는 존경과 복종이 가득했다.

    마지막은 늑대 요괴였다. 노란 도포를 입은 이 요괴는 눈썹이 짙고 코가 높았으며, 들고 있는 잠강도(蘸剛刀)는 위풍당당했다.

    “적이 장안성까지 들어왔고 구명과 신후존자는 이미 죽었다. 가서 적을 막아라. 절대 여기까지 들어와 나의 부활을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검은 허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다섯 사람은 흠칫 놀랐다가 곧장 대답했다.

    이어서 검은 허상이 손을 휘두르자 눈앞에 황성 안의 상황이 나타났다.

    황성의 사방에서 온갖 고함과 비명이 들려왔고, 진원자와 유계존자 등 네 사람이 싸우는 소리가 다섯 사람에게까지 느껴졌다.

    한데 그들이 나가려던 순간, 허공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누군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심협이었다.

    그는 구명의 기억을 토대로 이곳을 찾아왔는데 뜻밖에도 갑자기 이 다섯 명이 눈앞에 나타나자 순간 당황했다.

    마수수를 비롯한 다섯 명도 심협을 발견했다.

    “심협, 당신이었군요!”

    마수수는 바로 심협을 알아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