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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28화 (628/1,214)
  • 628화. 기습

    거대한 혈지. 부서진 작은 혈지 주변의 법진이 움직이더니 핏빛이 번쩍였고, 육이미후의 신혼이 나타났다.

    “치우 대인,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육이미후는 자신이 나타난 곳을 확인하고는 안도하며 검은 허상을 향해 엎드렸다.

    “누구에게 당한 것이냐?”

    검은 허상이 물었다.

    “심협이란 자에게 당해 공간 법보 안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진원자와 보타산의 여제자가 천책으로 절 죽였습니다. 그자가 제 신혼과 육체로 천책을 위해 피의 제사를 지내려던 순간에 대인께서 저를 구해주신 겁니다.”

    육이미후의 공손한 대답에 옆에 있던 구명이 놀란 듯 외쳤다.

    “심협! 또 그자인가!”

    그제야 옆에 있던 구명을 발견한 육이미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는 구명이 순수한 마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치우 대인에게 중용된 것이지 실력은 자기보다 한참 아래라 여겨 줄곧 무시해왔다. 한데 자신이 적에게 포획돼 죽임을 당할 뻔한 상황을 구명이 모두 봐버렸으니 체면이 서지 않았다.

    “어디서 심협을 만난 것이오?”

    구명은 정중하게 물었지만 육이미후는 달갑지 않은 듯 말없이 한참이나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나 치우 대인 앞인 만큼 감히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장안성 안에 그가 잠복해 있었다.”

    “치우 대인, 제가 가서 심협을 상대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반드시 그의 머리와 신혼을 가져오겠습니다.”

    구명이 무릎을 반쯤 꿇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심협이란 놈의 지금 경지는 어느 정도지?”

    검은 허상은 육이미후에게 물었다.

    “태을 중기에 불과하지만 실력이 뛰어나 제 곤법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육이미후는 사실대로 말했다.

    “네 곤법은 절묘하여 태을 절정의 존재도 어쩌지 못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심협이란 자의 실력은 태을 경지를 넘은 것 같구나. 구명, 너 혼자서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그자의 옆에는 그들이 있지 않더냐.”

    검은 허상의 위엄 어린 목소리에 구명은 곧장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협과 몇 차례 충돌한 바 있다. 그자는 분명 강했지만,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구명, 축우존자를 데리고 가라. 이 보물을 사용해도 좋다.”

    검은 허상이 손을 휘두르자 하얀 빛이 손에서 벗어나 구명의 손에 떨어졌다. 하얀색 원환(圓環)이었다.

    이를 본 육이미후의 눈에 질투의 빛이 번득였다.

    하얀 원환은 태상노군의 호신법보인 금강권(金剛圈)이었다.

    “감사합니다, 치우 대인!”

    구명은 기쁜 목소리로 절을 했다.

    “이 정도로는 여전히 장담할 수 없다. 유계존자, 너도 함께 다녀와라.”

    잠시 생각에 잠겼던 검은 허상이 옆의 허공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

    귀찮음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구명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유계존자가 줄곧 가까이 있었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유계존자의 도움이 있으면 심협을 죽일 자신이 있었으니 기뻤던 것이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구명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검은 빛과 함께 그곳에서 사라졌다.

    혈지 공간에는 수련하는 다섯 명과 검은 허상 그리고 육이미후만 남았다.

    “치우 대인, 적이 습격해왔으니 제 몸을 다시 만들어주신다면 대인을 위해 계속 힘을 보태겠습니다.”

    육이미후가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의 혈지는 매우 신기하여 경지를 빠르게 높일 수 있고, 다시 몸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심협에게 붙잡히고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였다. 이곳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부활할 수 있으니까.

    ‘물론 아무나 부활시키지는 않지. 자서 같은 멍청이나 홍해아 같은 배신자는 부활시키지 않을 테니까.’

    그때, 검은 허상의 답변이 돌아왔다.

    “네 충심은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날 위해 열심히 일하느라 고생했으니 이제는 편히 쉬어라.”

    육이미후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이었다.

    그 순간, 검은 허상이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강력한 흡입력이 육이미후의 신혼을 뒤덮었다. 그의 신혼은 검은 허상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치우 대인, 지금 무슨…… 멈춰!”

    육이미후는 그제야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전력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와 검은 허상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이제는 차갑게 반짝이는 새하얀 치아까지 보일 정도가 됐다.

    이것이 육이미후 신혼이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그는 더는 반항하지 못하고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허상이 입속으로 들어갔다.

    검은 허상의 몸에서 핏빛이 번득이더니 빠르게 실체가 굳어지면서 이목구비가 또렷해졌다. 그 순간, 검은 허상은 더욱 빠른 속도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검은 허상은 고개를 들어 다섯 개의 작은 혈지 안의 존재들을 보며 무언가 하려는 듯했으나,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저 두 손으로 허공을 안았다.

    그 순간, 혈지 안에서 쿠쿵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천지영기, 마기, 기혈의 힘이 더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진원자가 육이미후의 신혼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을 설명하자 심협은 우뚝 몸을 멈추고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육이미후의 태도로 봐서는 이미 그렇게 될 줄 예상했던 듯하네.”

    진원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심협도 미간을 찌푸린 채 무거워진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육이미후는 산하사직도 안에 있었는데도 산하사직도의 주인인 자신 모르게 신혼을 옮겨갔다. 이는 장안성에서 오직 치우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이 여기로 들어왔음을 치우가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였다.

    그때, 장안성 깊은 곳에서 느릿하면서도 긴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장안성 곳곳에서 마족들이 무언가를 찾듯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리 빠르다니!”

    심협은 놀랐으나, 전혀 걱정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산하사직도를 통해 허공으로 들어간 뒤 계속해서 날아갔다.

    성안의 금제가 전력으로 작동하며 탐사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지만, 산하사직도는 천도지보라 허공과 융합할 수 있었다. 또한 심협이 갈수록 산하사직도의 사용에 능숙해졌기에 이제 육도윤회반처럼 완벽하게 공간의 힘을 차단할 수 있는 절세 법보의 금제만 아니라면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허공에 숨은 채로 빠르게 장안성 내부로 들어가 황성으로 향했으나, 성안에서 마족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황성 부근에는 검은 법진이 뒤덮여 있었고 안에는 매우 극심한 흉살의 기운과 열두 개의 강력한 흉신의 힘이 공간의 힘을 완벽하게 봉인한 상태라 산하사직도로도 지나갈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법진이지? 눈에 익은데…….”

    심협은 의아한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현재 성 밖에서는 양전 등이 중과부적으로 마족의 대군을 견제하고 있으니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기에 그는 진해빈철곤과 전신편으로 뚫고 들어가려 했다.

    “심 도우, 잠깐! 육이미후에게서 한 가지 보물을 빼앗았는데 어쩌면 금제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르네.”

    진원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어 혈홍의 옥패가 날아왔다.

    심협은 옥패를 살폈다. 안에는 검은색의 매우 순수한 흉살의 기운이 담겨 있었는데, 이는 눈앞의 검은 법진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쓸모가 있겠군.’

    그는 두 손으로 결인하고는 핏빛 옥패를 발동했다.

    옥패는 앞으로 날아가 검은 법진의 광막 위에 붙더니 눈부신 검은 빛을 뿜어냈고, 이어서 갑자기 뭉쳐 검은 문이 되었다.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빛의 문이 천천히 열리자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심협은 기뻐하며 검은 그림자로 변해 빛의 문으로 들어갔다.

    한데 그때, 장팔점강모가 갑자기 나타나 한 줄기 차가운 빛으로 변하여 그대로 심협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심협은 깜짝 놀랐지만 침착하게 몸을 옆으로 틀면서 전신편을 힘껏 휘둘러서 창을 막았다.

    카캉!

    그 순간, 옆에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번개 같은 검은 그림자가 황금 도끼로 그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왔다.

    장팔점강모와 황금 도끼의 습격은 완벽한 계획처럼 보였다.

    하지만 심협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왼쪽으로 피하던 몸이 느닷없이 돌아 앞으로 달려 나오며 황금 도끼를 피했고, 동시에 진해빈철곤을 위로 뻗어 도끼를 쳐내려 했다.

    한데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새하얀 고리가 허공에 나타나 진해빈철곤을 옭아맸다.

    곤봉과 심협의 연결이 순식간에 끊어지면서 가늘어졌고,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고리 안으로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얀 고리도 반짝이더니 사라져버렸다.

    “이게 무슨……?”

    심협의 두 눈이 커졌다.

    진해빈철곤과 그는 서로 통하고 있었기에 절대 끊을 수 없거늘 이토록 쉽게 사라지게 하다니, 저 하얀색 고리는 도대체 무슨 보물이란 말인가!

    구명이 나타나 팔에 힘을 주자 황금 도끼는 더 빨라져 잠시 멍해져 있는 심협의 가슴을 향해 떨어졌다. 파공음과 허공을 찢어발기는 기세로 보아 그 위력이 범상치 않을 터였다.

    하지만 심협 옆에서 산하사직도가 하얀 빛으로 반짝이더니 수많은 버드나무 가지가 벌떼처럼 쏟아져 나와 벽을 이루어 심협의 앞을 막았다.

    콰직!

    황금 도끼가 꽂히면서 나무 벽은 절반으로 갈라졌지만, 그 뒤에는 어느새 심협의 모습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신식으로도 찾을 수 없었다.

    구명은 곧장 검은색 발우를 꺼내고는 망설임 없이 결인했다.

    발우에서 검은색 마염이 피어오르더니 시커먼 불꽃 장막이 그의 몸을 감쌌다.

    거의 동시에 그의 뒤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커다란 채찍이 번개처럼 불꽃 장막을 공격했다.

    펑!

    짧은 폭발음과 함께 검은 불꽃 장막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긴 전신편은 멈추지 않고 구명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편,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청우 요괴는 복잡한 표정으로 하얀 고리를 보더니 이내 평정심을 회복하고는 춤추듯 장팔점강모를 휘두르며 구명과 함께 심협을 공격해갔다.

    그때, 반으로 갈라졌던 나무 벽이 갑자기 흩어지더니 수천 개의 버드나무 가지로 변하여 하나같이 청우 요괴의 급소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깜짝 놀란 청우 요괴는 장팔점강모를 사방으로 휘둘러서 막아냈다.

    심협을 기습했던 구명은 이제 오히려 자신이 기습을 당하게 되자 기겁하며 몸을 돌려 황금 도끼로 막으려 했다.

    그러나 전신편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에 구명의 황금 도끼는 버티지 못하고 일격에 날아갔다.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무기가 충돌하는 순간, 기이한 흡수의 힘이 구명의 머릿속 신혼에서 발동했다. 이에 그의 신혼은 강렬한 파동을 일으켰고, 일순 눈앞이 깜깜해졌다.

    구명은 전력으로 신혼의 힘을 운공하여 머릿속 신혼의 파동을 억제하려 했으나, 그 순간 영롱탑이 그의 머리 위에서 강하게 떨어져 내려왔다.

    가뜩이나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구명은 이를 악물고 황금 도끼를 휘둘렀다. 길이가 수백 장에 이르는 도끼가 영롱탑을 향해 떨어졌다.

    챙!

    굉음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영롱탑이 흔들렸다.

    이를 본 심협이 팔을 휘두르자 전신편이 구명의 머리를 향해  독사처럼 달려들었다. 이대로라면 구명의 머리가 부서지고 신혼이 소멸할 게 분명했다.

    ‘젠장! 저자가 이리 강했다니! 그동안 내가 너무 얕봤구나!’

    심협의 전광석화같은 공격이 이어지자 구명은 경악했으나, 그 와중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결인했다.

    진해빈철곤을 막았던 하얀 고리가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나 빠르게 회전하며 전신편을 막으려 했다.

    두 법보가 충돌하려는 순간, 심협이 마치 예상했다는 듯 전신편을 잡고 있던 오른손을 휙 잡아당겼다. 전신편과 하얀 고리와의 거리가 벌어진 그때, 구명의 발아래 땅에서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금색 밧줄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그를 꽁꽁 묶었다.

    강력한 금제의 힘이 흘러들어오자 구명 체내의 마기가 봉인되었고, 이에 하얀 고리의 빛도 점차 사라지면서 금강의 팔찌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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